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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9

       서쪽으로 향하는 마차의 안.

        

       마차 내부에는 세 소녀가 앉아있었다. 그중 두 명은 오랜 여행으로 피로가 쌓인 모양인지, 꿈나라로 떠나 있는 상태였다.

        

       두 사람을 내버려둔 채 차창 밖을 응시하던 로테가 고개를 내저었다. 식곤증을 물리치기 위함은 아니었다. 오히려 잠이 안 와서 문제였다.

        

       로테는 시선을 내부로 돌렸다. 서로의 어깨를 맞댄 채 곤히 잠들어 있는 두 소녀가 시야에 들어왔다.

        

       침까지 흘려가며 자고 있는 학생은 프레이 셸커니라는 이름의 소녀였다. 셸커니, 희귀한 성씨다. 적어도 제국에서는 들어본 적 없는 가문명이었다.

        

       프레이는 키가 작은 소녀였다.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을 드워프라고 소개했는데, 술을 잘 마셨고 연성술에도 조예가 깊었다.

        

       남에게 배우길 좋아했던 로테는 지계마도를 공부하다가 모르는 게 생기면 곧장 프레이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과외비는 맥주 한 캔이면 충분했다.

        

       체구가 작고, 연성술에 조예가 깊은데다가, 아무리 독한 술도 잘 마신다. 드워프의 특징을 그대로 빼다 박은 아이였다.

        

       ‘그래도 드워프는 아니지.’

        

       드워프는 오래 전 마수에게 멸족당했다. 그렇게 된 지도 최소 수백 년이 지났다. 프레이가 드워프라고 떠벌리고 다녀도 진지하게 믿는 이는 없었다.

        

       ‘별난 친구야.’

        

       프레이에 대한 평가를 마친 로테는 시선을 살짝 틀었다. 

        

       때마침 창문 밖에서 시원한 산들바람이 불어왔다. 흑단을 머금은 듯한 검은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살랑거렸다. 로테가 정확히 보고 있는 방향이었다.

        

       눈앞의 소녀는 손에 깍지를 낀 채로 쌔근거렸다. 로테는 이 특유의 숨소리를 석 달 넘게 들어왔다. 당사자가 숙면을 못 취하고 있을 때 종종 내는 소리였다.

        

       ‘에테르.’

        

       자신의 1학기 룸메이트였던 금안족 소녀.

        

       에테르는 틸레트 마도 아카데미의 입학시험에서 차석으로 합격했다. 실기는 아슬아슬하게 낙제점을 면했지만, 대신 필기에서 만점이라는 전례 없는 점수를 받아냈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한데, 그 위로도 한 명이 더 있다. 카우렐리아에서 온 엘프 유학생, 버멜이었다. 버멜과 에테르가 각각 1등과 2등을 가져갔던 탓에 로테는 3등 성적표를 받았다.

        

       ─ 언니가 3등이라고? 말도 안 돼.

       ─ 그렇게나 열심히 노력했잖아!

        

       자신을 따르던 다른 가문의 학생들과, 가문의 시종들. 그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반 학기 전에 들었던 말을 곱씹으면 이런 식으로 뒷맛이 쓰라렸다.

        

       로테는 씁쓸한 웃음을 지은 채 맞은 편에 앉아서 자고 있던 에테르를 바라봤다.

        

       ‘네가 부러워.’

        

       타고난 두뇌를 지닌 금안족. 종족적인 격차는 메울 수 없는 걸까.

        

       물론 자신에게도 재능이 있었다. 마력량은 뛰어났고, 공부도 늘 최상위권 유지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재능은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것이리라.

        

       그렇다고 노력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비가 오는 날이나 눈이 오는 날이나 수련했다. 또래보다 백 배는 자주 스태프를 휘둘렀고, 아버지의 서고에 있는 마도서는 전부 독파했다. 스크롤을 그리느라 검지와 중지마디가 닳을 정도였다.

        

       특히 화계마도는 주특기로 삼을 수 있을 만큼 열심히 연마했다. 언젠가 하스펠트 공작 가문을 뛰어넘을 궁극의 화계마도를 구사하고자.

        

       그러나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나서 세상엔 자신보다 뛰어난 이가 많다는 걸 깨달았다.

        

       ‘솔직히 질투할 생각도 안 나.’

        

       이론 부분에서의 압도적인 격차. 실전에서 자신의 기술을 한 번에 무력화한 고유마도.

        

       그랬기에, 질투보다는 동경이 들었다.

        

       물론 로테는 시기심이 나쁜 감정이라는 걸 아버지에게서 먼저 배웠다. 당파 싸움에서 물러나 절대 중립을 선언한 살리에르 백작은 언제나 자신과 자신의 오라버니에게 감정을 다스리라고 충고했다.

        

       ─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남을 시기해선 안 된단다.

        

       그 충고를 마음에 새기고 살던 덕분에 많은 걸 깨쳤다. 에테르에게 부탁해서 배운 화계마도이론을 통해 8백 개에 가까운 화염마법을 쓸 수 있게 됐다.

        

       그냥 8백 개도 아니고, 3개월 사이에 그만한 양을 습득한 것이다. 예전에 마법 하나를 익히는데 걸리던 시간을 생각해본다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아버지의 말씀이 옳았어.’

        

       로테는 그릇된 선택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에테르를 보며 지나간 추억을 회상했다.

        

       플레어를 같이 개발했던 일. 흑사병에 걸려 죽을 위기해 처했던 걸 에테르가 최선을 다해 간호해 주었던 일.

        

       ‘앞으로도 너와 이런 관계였으면 좋겠어.’

        

       이대로 졸업까지 함께 했으면 좋겠다.

        

       “앗.”

        

       저 너머로 날카롭게 깎아내린 듯한 산이 보인다. 

        

       피치블렌드라는 이름이 붙은 산맥의 한 줄기다. 북쪽의 엘랑카야 대산맥으로부터 뻗어나와 서부 국경을 가로지르고 있는 녀석이었다.

        

       저 산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건 살리에르의 영지에 진입했다는 뜻이었다.

        

       슬슬 친구들을 깨울 때가 되었다.

        

       로테는 곤히 자고 있었던 에테르의 어깨를 흔들었다. 

        

       “으아.”

        

       잠깐의 늘어지는 신음 말고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묘하게 장난기가 생긴 로테는 이번에는 에테르의 뺨을 톡톡 건드려보았다.

        

       ‘이래도 안 일어나네.’

        

       “지베 보내저어.”

       “…!!”

        

       ‘깜짝이야…!’

        

       하마터면 간 떨어지는 줄 알았다. 갑자기 잠꼬대를 할 줄은 몰랐다.

        

       그나저나.

        

       ‘집에 보내달라고?’

        

       이게 무슨 소리일까.

        

       에테르는 꿈속에서 고향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만약 그렇다면 앞뒤가 안 맞았다.

        

       여름방학은 모두가 수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기간. 원한다면 에테르도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

        

       ‘혹시 모종의 이유로 못 돌아가는 걸까?’

        

       에테르의 고향이 어디인지는 모른다. 엘랑카야 산맥이 아닐까, 하고 추리는 해 봤지만 어디까지나 가정에 불과하다.

        

       그래도 만약, 어쩔 수 없는 이유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해서. 그래서 수도의 살인적인 물가를 피해 자신이 있는 서쪽 지대로 오게 된 거라면.

        

       ‘잘 대해주자.’

        

       흑사병에서 자신을 구해 준 생명의 은인이다. 아버지와 인사를 시킨 뒤 가능하면 성채에 들일 생각이다.

        

       로테는 다시 한 번 두 사람을 흔들어서 깨웠다.

        

       “으엑.”

        

       이상한 소리를 내며 먼저 일어난 건 프레이였다. 프레이는 입가에 묻은 침을 소매로 문지르며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에테르 쪽은 여전히 깊게 잠들어 있는 모양인지 잘 일어나지를 못했다. 주변을 둘러보며 정신을 점차 차린 프레이가 물었다.

        

       “도착했어?”

       “거의 다.”

        

       프레이는 바깥을 내다보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

        

        

       툭, 툭, 툭.

        

       누구냐. 내 단잠을 방해하는 녀석이.

        

       툭, 툭, 툭.

        

       조금 전엔 볼이더니, 이번에는 옆구리다. 누군가가 날 찔러대고 있다. 좌석 배치를 생각해보면 이 짓거리를 할 애가 한 명밖에 없는데.

        

       “야! 저기 좀 봐봐!”

        

       아니나 다를까. 꼬맹이가 내지른 소리에 반사적으로 눈을 떴다. 창문 너머로 시커멓고 높은 산이 보였다.

        

       “저게 피치블렌드 산이야! 넌 처음 보지?”

        

       프레이의 말에 나는 탄성을 흘렸다. 보기보다 규모가 컸기 때문이었다. 

        

       좋아. 재료가 부족할 일은 없겠네.

        

       “잘 잤니?”

        

       로테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머지않아 영지에 도착할 거야.”

        

       찌뿌둥한 몸을 펴고자 기지개를 켰다. 우드득, 하고 연골 사이의 기포가 빠져나가는 듯한 소리가 났다.  

        

       버멜과 밀회하느라 일주일에 2시간 이하만 자고 버텼다. 확실히 그 때문에 몸이 많이 피로해진 모양이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로테나 프레이와 대화했던 기억이 거의 없었다.

        

       [그동안 잘 주무셨나요? 쌕쌕거리는 게 아주 일품이시던데.]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 골통에 직접 울리는 음색이었는지라 편두통이 느껴졌다. 여신이 나에게 내려줬을 것으로 강력하게 추정하는 양장본이 내는 목소리였다.

        

       [그래서, 절 두고 며칠간 뭘 하셨나요?]

        

       양장본은 툴툴거리며 말을 걸어왔다. 종강파티 이후로 서랍에만 처박아뒀더니 어지간히 삐진 것 같았다.

        

       와, 책 주제에 조금 안 읽어줬다고 토라지네. 

        

       [지구로 귀환하기 위한 마도는 더럽게 안 익히셨죠. 흑사병이 있던 동안에는 그러려니 해요. 그런데 그 이후로는 뭘 하셨나요?]

        

       뭘 하긴. 그야…. 아니다, 이건 말하지 말자.

        

       [보나마나 뻔하죠, 뭐. 틈만 나면 술이나 퍼드시러 갔겠죠? 당신네 세계에서 아카데미 학생들은 다들 1학년을 그런 식으로 보내시나 봐요?]

        

       뭐, 그게 1학년의 묘미지. 사망년이라고 흔히 부르는 3학년부터는 답도 없어지니까.

        

       취업할 애는 그때부터 취업 준비해야 하고, 대학원 가려면 석차 관리에 신경써야 한다. 다들 그런 식으로 제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글쎄. 여기서 제 자리를 찾아간다는 게 뭘까.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거?

        

       [그렇죠. 원래 세계로 귀환하는 거.]

        

       양장본은 그제야 조금 누그러진 투로 답변했다.

        

       아, 그러네. 얘는 내가 마도를 연구하지 않으면 화를 낸다. 반대로 정신을 차리고 공부하려고 하면 말투가 나긋해진다.

        

       학습지 선생님이냐고.

        

       어쨌거나 중간 점검은 필요하다. 나는 오랜만에 양장본을 펼쳐 지금까지 익힌 마도의 개수를 증가했다.

        

       [◆ 진행도]

        

       [화계마도 : 1011/1049]

        

       일단 화계마도는 대부분 진행했다.

        

       [수계마도 : 421/992]

       [지계마도 : 578/1007]

       [공계마도 : 160/824]

       [미분류 : 21/149]

        

       나머지는 거기서 거기다.

        

       그렇게까지 많이 진행하지는 못했다. 그나마 선전할 부분이 있다면, 화계마도를 거의 다 해 간다는 것 정도?

        

       그 외에도 배워야 할 지계마도의 숫자가 1005개에서 1007개로 두어 개 늘어난 게 눈에 들어온다. 분명 수계는 천천히 공부하기로 해서 아직 부족한데, 숫자가 늘어났다는 건 어떤 의미를 갖는다.

        

       누군가가 새로운 마도를 만들었다. 그게 배우기 쉬운 것이든, 어려운 것이든 상관없이.

        

       이게 나름대로 문제다. 

        

       내가 마도를 가능한 빨리 익힐수록 지구에 돌아가는 데 걸리는 시간도 단축된다. 반대로 꾸물거리고 있을수록 대륙의 누군가가 새로운 마도를 만들어낸다. 

        

       한 번 만들어지고 기록된 마도는 삭제 불능. 뭔 짓거리를 해서라도 그걸 발견하고 스크롤을 구축해야만 습득한 것으로 인정된다.

        

       [이제 아셨나요? 제가 서두르라고 말한 이유에 다른 게 있는 게 아니었어요.]

        

       그래.

        

       이 정도야 예상 범위 내다. 혹시나 습득해야 하는 마도가 급증할 걸 대비하여 제2책, 제3책은 마련해 둔 상태다.

        

       오랜만에 양장본을 펼쳐보았다. 불가시 모드를 꺼 두고 있었기에 공부벌레인 로테가 순식간에 집중을 가졌다.

        

       “여기서도 공부하려는 거야?”

       “내릴 때까지만 잠깐 보려고.”

        

       로테는 프레이와 자리를 바꿔 앉길 청했다. 양장본에 관심이 없었던 꼬맹이는 별다른 불만 없이 자신과 로테의 자리를 바꿔주었다.

        

       “흠.”

        

       봐도 상관은 없으려나.

        

       양장본의 부속 기능인 펜을 소환했다. 소환에 필요한 마력은 양장본에게서 끌어쳐 온다. 로테가 눈치 못 채도록 자연스럽게 힙색에서 펜을 꺼내듯 움직임을 취했다.

        

       그렇게 구축되어 나온 펜은 태블릿PC에 쓰이는 펜처럼 생겼다. 이거, 이쪽 세계 디자인이 아닌 것 같은데. 원래 이랬었나?

        

       어쨌거나 이 펜으로만 양장본에 쓰기(-w) 기능을 사용할 수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관리자 모드로 전환합니다.]

        

       [이곳에 새 마도를 기술할 이론적 제반을 구축합니다.]

        

       나는 피치블렌드 산을 바라보며 필기를 시작했다. 그런 내 모습을 한동안 지켜보고 있던 로테가 입을 열어 물어보았다.

        

       “저기, ‘텔러-울람 설계’라는 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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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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