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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9

       *

         

        -타앙—!!

         

         “총성!?”

         

         

         이자벨은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 방향은 아저씨가 간 곳인데…? 그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그녀는 얼굴을 감싸쥐며 신음했다.

         

         또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슬프게도 타당한 의문이었다.

         

         

         “아, 이런 시작된 건가.”

         

         

         혼란에 휩싸인 이자벨과 에시디스, 그리고 엘피헤라와는 달리. 이 부스에 있던 세 빙의자들은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자리를 정리했다.

         

         어차피 손님도 없겠다. 누가 훔쳐갈 재료도 없겠다. 부스를 그냥 방치하고 떠도 손실이랄 게 없는 상황.

         

         주변에서 비명이 들리고, 여기저기서 혼란에 빠진 인파가 우르르 달려가는 와중에도 이들은 태연하기만 했다.

         

         

         “뭐, 뭐, 무슨 일인데 이게! 무슨 일인지 설명해줄 인간? 인간 축제는 원래 이런가? 아, 예포. 예포 같은 거지 이거?”

         “아뇨, 그런 일정은 들은 적이 없거든요.”

         

         

         이자벨은 공포에 질린 인파 사이에서 복면을 쓰고 달리는 수상한 인물들을 눈으로 쫓으며 말했다.

         

         

         “이게 진짜 축제 일정이었으면 사람들이 도망치진 않을 것 같고요.”

         “이런이런, 모르는 건가? 이래서… ‘이세계’인들이란….”

         

         

         유진이 고개를 저으며 다가왔다. 어느새 가벼운 활동복으로 갈아입고, 옆구리에 메이스 한 자루를 낀 상태였다.

         

         

         “아아, 이건 ‘습격’이란 거다. 아카데미…. 그러니까 대학에선 흔한 일이지.”

         “당신 성격이 좀 바뀐 것 같은… 아니 그리고 대체 어느 대학이 습격을 흔하게 당하는….”

         

         

         이자벨은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뭐지? 왜 흔하게 당했던 것만 같지…?

         

         생각해보면, 입학 열차에서도 습격이 있었고, 현장 실습에서도 습격이 있었고, 뜬금없이 지진도 일어나고, 지금 축제까지.

         

         입학으로부터 고작 3개월 안에 일어나기엔 너무…?

         

         이걸 그냥 헤프닝이었다고 생각하기엔 좀 잦게…?

         

         

         “어… 어어?”

         “이제야 깨달았나? 이건 ‘상식’인 것을….”

         

         

         유진은 후후 웃으며 옆에서 함께 미소 짓고 있는 오스왈드에게 말했다.

         

         

         “자, 오스왈드. 내게 ‘승리의 주문’을 부탁해.”

         “할 수 없군.”

         

         

         오스왈드는 피식 웃으며 다가가 손을 들어 올렸다.

         

         어느새 그의 손엔 고풍스러운 투구가 쥐어 있었다. 고행하는 편력기사들이나 쓸법한, 양철통 모양의 옛 시절 투구였다.

         

         기묘한 붉은 십자 무늬가 그려진.

         

         오스왈드는 투구를 유진의 머리에 씌운 뒤 바이저를 내렸다. 철컥, 하고 무거운 마찰음과 함께 바이저가 유진의 얼굴을 덮었다.

         

         그리고 그 위에서, 보라색 마력이 휘릭 감겨 또아리를 틀었다.

         

         손가락 끝에서 마력을 직조하여 마법을 완성한 오스왈드는, 유진의 머리맡에 주문을 집중하며 작게 속삭였다.

         

         

         “주께서 바라신다.”

         

         

         키잉—.

         

         마법이 완성되며 유진의 투구 아래로 스며들었다. [용기 부여]. 마인드 소서리의 평범한 각성계 주문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평범하지 않았다.

         

         

         “이교도를 죽여라.”

         

         

         투구 바이저 아래에서 황금색 안광이 화륵, 타올랐다.

         

         

         “주의 이름으로!! 신은 위대하시며 오직 한 분 뿐이시로다!!”

         “그건 이슬람….”

         “쉿, 집중을 깨지 마세요. 즐기시게 놔둬.”

         “아… 네.”

         

         

         유리와 오스왈드는 자리를 박차고 나서는 유진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오스왈드는 가볍게 무장을 확인하고 난 뒤, 얼떨떨하게 굳어 있는 다른 학생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자, 어쨌건 이런 상황이에요. 어디보자….”

         

         

         그는 이들이 용사 파티의 자제들이란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이반의 설명에 의하자면, 이들은 이번 ‘시나리오’의 ‘주역’들이다.

         

         아카데미물에서 축제 습격이 일어난다는 것은 곧, 주역들의 레벨업 경험치 이벤트나 다름없다. 그건 상식이니까.

         

         오스왈드는 이걸 다시 이세계 기준으로 설명할 말들을 골랐다. 음. 그러니까.

         

         

         “지금 민간인들이 습격을 받고 있고, 학생들 중엔 전투계열과 관련 없는 학부생들도 많아요. 실전 경험이 전무한 학생들이 대부분이고요. 정신을 바싹 차리세요. 지금 우리가 가장 이성적인 상황이니까.”

         “어, 어어….”

         “아, 에시디스 양은 음대생이셨죠. 어쩔 수 없죠. 뒤로 물러서 계시고….”

         

         

         바드가 뭘 할 수 있겠는가. 뒤에서 노래나 부르면 되지.

         

         오스왈드가 그렇게 말하자, 에시디스는 머뭇거리다가 곧 눈을 꾹 감고 물었다.

         

         

         “삼, 삼촌은요? 이반 삼촌이요.”

         “아마 총성이 들린 방향이나 평소 그 양반 성격이나… 뻔하죠. 제일 위험한 데에 뛰어 들어가셨겠지.”

         “그럼 저도 같이 갈래요.”

         “무기는 있으세요?”

         “네.”

         

         

         에시디스는 스산한 표정으로 버클을 풀었다. 등에 메고 있던 악기 가방이 스르륵 풀려나와 그녀의 손에 감겼다.

         

         

         “야, 너 또 바이올린으로….!”

         “이제 그런 짓은 하지 않아요. 깡깡이는 무기가 아니니까요.”

         

         

         악기 가방 지퍼를 열자 나온 것은, 금속 재질의 지휘봉이었다.

         

         진압용 삼단봉과 비슷한 정도의 길이, 즉 지휘봉으로 사용하기엔 너무 길고 두꺼운.

         

         그리고 척 보기에도 묵직한, 강철로 만들어진 막대기였다.

         

         

         “다음 학기부터 복수전공으로 오케스트라 지휘과를 지원하기로 했어요. 지휘봉은 저렴하고, 재질을 타지 않지요….”

         

         

         두 손가락으로 가볍게 쥐고 흔들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기야 하지만, 지휘봉의 재질이 무엇인지 특별히 제한하는 조건은 없다.

         

         그리고 에시디스는 강철 막대를 두 손가락으로 쥐고 흔들 수 있을 정도의 악력과 완력을 이미 겸비하고 있었다.

         

         사상 최강의 음대생, 광전사 에이나르의 딸. 드로안 최강의 여대생 답게도.

         

         

         “이제 오랜 모욕의 시간은 끝났어요! 저는 오늘부터 지휘자가 됩니다!!”

         

         

         신이시여 슬픔을 노래하소서!!

         

         에시디스는 꽥 소리치며 전장으로 나섰다. 이자벨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지휘라는 것이 사람 머리에 대고 하는 짓은 아닐텐데. 뭐, 본인만 좋다면 좋은 거지.

         

         그녀는 어깨를 으드득 풀고는 검을 들었다. 축제 기간에도 패용하고 온 보람이 있다 하겠다.

         

         

         “음대랑 신학대가 저렇게 나서는데 기사학부가 가만히 있으면 좀 부끄럽죠. 유리 양, 같이 가실까요?”

         “네, 이자벨 양. 뒤를 맡길게요!”

         

         

         두 기사학부 학생은 검을 쥐고 인파 사이를 향해 달렸다.

         

         이제 부스엔 오스왈드와 엘피헤라만 남게 되었다. 오스왈드는 그 모습들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파티 플레이가 뭔지 모르는 건가?”

         

         

         사제 하나 단독 돌진.

         그 뒤에 바드가 근접 무장을 하고 돌격.

         

         그 이후에야 기사 둘이 출격.

         

         이게 무슨 개판이란 말인가. 우리 동아리는 그래도 나름대로… 오랜 시간 파티를 짜며 합을 맞춘 사이가 아니었나?

         

         어떻게 후열 마법사만 덩그러니 두고 사라질 수가…?

         

         어휴, 오스왈드는 어깨를 으쓱이며 앞장선 이들을 따라가려 했다. 그때 엘피헤라가 그를 가로막았다.

         

         

         “어디 가세요?”

         “아, 저도 한 손 거들까 해서요.”

         “그럼 안 되죠. 제가 혼자 남잖아요.”

         “네?”

         “저 마력 이제 진짜 한 톨도 안 남았단 말예요.”

         

         

         엘피헤라는 어깨를 으쓱이며 뒤로 물러섰다.

         

         오스왈드는 당황했다. 엘피헤라는 괴물 같은 마력량으로 이미 학부에서도 유명한 천재였다. 그런 그녀가 마력을 모두 소진할 정도로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고?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대체 왜? 그리고 무슨 마법을….

         

         오스왈드가 머뭇거리고 있자, 엘피헤라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엘프의 의무라는 게 있으니, 불쌍한 단명종들을 구해주러 가야죠. 혹시 이스트벨펜 씨는 권총 쏠 줄 아세요?”

         “기본은 압니다.”

         “잘 됐네요. 마인드 소서리에서 쓸 줄 아는 주문은?”

         “어… [용기 부여]랑, [공포의 형상], [올로그의 눈가리개] 정도요?”

         “[조준 보정]은요?”

         “아, 그것도 할 줄은 알죠.”

         “훌륭해요. 주문양은 얼마나 남았어요?”

         “열 번 정도는 가능합니다.”

         

         

         엘피헤라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따라와요!”

         “네? 마력을 모두 소진하셨다면서 어딜 가시려 합니까? 그리켄코스 양은 칼리온의 귀빈입니다. 안전한 곳에서 쉬고 계셔야지요!”

         “어허, 이럼 점수를 딸 기회를 놓치잖아요.”

         

         

         이 사태는 결코 일정 이상 규모로 번지지 못할 것이다. 프리첸카야 한복판에서 일어난 사태이니만큼 진압 또한 순식간에 이루어 지겠지.

         

         지금이야 축제로 몰린 인파가 너무 많다보니 다소의 혼란이 일어나고 있지만, 소요 사태는 곧 진정될 것이 뻔했다.

         

         그리고 이반은 왕녀에게 직접 작전을 하달 받는 고위 인사다. 테러 진압 과정의 보고는 손쉽게 수급할 터.

         

         그 사이에서 점수를 따는 방법은 간단하다. 앞서 행동하고, 도드라지는 모습을 보여주기.

         

         거기에 하나 더 덧붙이자면, 이반의 주무장 중 하나인 ‘권총’으로 사태를 해결하는 것.

         

         그리고 자연스럽게….

         

         

        -어머, 페트로비치 경. 지난 테러에서 제가 권총이란 병기를 처음 사용해 보았는데요.

        -그게 처음 써보는 실력이었단 말입니까? 믿을 수가 없군요!!

        -아, 별 것 아닌 재주에요. 엘프라면 무릇 어떤 병장기에도 능통하기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페트로비치 경은 이 권총이란 병기에 능숙하셨지요?

        -인간 주제에 능숙해보아야 얼마나 능숙하겠습니까마는, 몇 년 정도 다룬 적은 있습니다!

        -아아,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하루라도 앞서 배운 이가 있다면 인간에게라도 배움을 청하라 하셨어요. 제게 권총 사격술을 가르쳐 줄 수 있나요?

        -끼에에에에엑!! 일생의 영광입니다! 오늘 일을 일기에 적어 가보로 전달할 계획이온데, 혹시 싸인을 넣어 주실 수 있으신지요!!

        -오호호호호!! 그럼요! 아무렴요! 어서 가져오세요!!

         

         

         “후후….”

         “그리켄코스 양?”

         “우후후… 가요! 빨리! 가여운 인간 분들을 모조리 구해버리러!!”

         

         

         엘피헤라는 잔뜩 상기된 얼굴로 도도도 달려나갔다.

         

         

         “궈, 권총은 또 어디서 구하시게요!”

         “아까 보니까 실탄 째로 잔뜩 있던데요 뭘!”

         

         

         드미트리는 현장 지휘 도중 들이닥친 칼리온 엘프 귀족들에게 무장을 강탈당해야 했다.

         

         

        *

         

         

         사태가 마무리된 이후, 이반은 무릎 꿇고 앉은 드미트리의 앞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이렇게 됐나.”

         

         

         보고서를 팔락팔락 넘긴 뒤에, 그는 마뜩찮은 표정으로 머뭇거렸다. 관직은 이제 더 이상 수행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었는데.

         

         어쩔 수 없나.

         

         쿠욱, 붉은 인주를 바른 도장을 보고서의 마지막 장에 꾹 눌러 박으며. 이반은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고 보고서를 옆으로 넘겼다.

         

         파벨은 보고서를 받은 뒤, 이반이 도장을 찍은 옆 자리에 자신의 도장을 꾹 눌렀다.

         

         

        -정 : 이반 페트로비치 대령.

        -부 : 파벨 세르게예비치 올로브 중령.

         

         

         “그… 이제 밀린 군인 연금도 지급받으실 거고요….”

         “….”

         “급여 지급은 군부 쪽이 아니라 동궁정에서 나올 건데… 이게 궁정부 소속이거든요. 헤헤.”

         “….”

         

         

         드미트리는 아무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두 과거의 망령에게서 시선을 돌려 바닥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슨배님들.”

         “훈련 계획부터 다시 짜지.”

         “음.”

         “생각해보면 왕실 근위대가 그대로 이어졌다고 봐도 되겠군. 안 그런가?”

         

         

         전쟁 시절 왕실 근위대의 유일한 생존자(이반)가 절멸 부대로 편제를 바꿨으니, 왕실 근위대의 후신이 절멸 부대라고 해도 무방하고.

         

         그 절멸 부대에서 또 생존한 이들을 모아 추린 것이 지금의 방첩사령부니까.

         

         어떻게 보자면 왕실 근위대의 재편이 아닌가?

         

         파벨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시작하기 좋은, 의미 깊은 자리로군. 하고.

         

         

       

       

       

       

        Ep 12. 아카데미 축제의 상식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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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프롤로그에서 30년이 흘렀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got transmigrated into a game I’ve never seen before. I thought it was a top-notch RPG and spent 30 years on it. I retired as a war hero and planned to spend my remaining time leisurely. But it turns out, it was an academy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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