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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9

       “…….”

        

       “…….”

        

       점심 식사 후, 제도로 돌아가는 기차 안.

        

       내 주변에는 여러모로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아 있었다.

        

       아니, 사실 따지자면 기차 객석 안 자체가 조용하긴 했다.

        

       내가 황제 대리라는 역할로 벨부르 왕국에 갔을 때는 당연히 내 호위도 황제에 준하는 것이라 내가 있는 객석에 있는 사람이 황녀인 앨리스, 그리고 황자인 제이든과 루카스뿐이었다. 하나의 방이라고 본다면 꽤 큰 크기의 객실 하나가 오로지 우리 네 사람을 위해서 쓰였다는 소리다.

        

       하지만 아카데미 학생으로서 기차에 탄 이상, 다른 학생들보다 특별한 취급을 받을 수는 없다.

        

       물론 객실 자체를 아카데미에서 통째로 빌리기는 했다. 귀족 A반은 정원 수가 열다섯밖에는 되지 않았으므로 객실 하나를 통째로 빌린 이상 자리가 매우 많이 남았다. 그렇다고 해도 평범한 일등석 객실이라 그냥 빈 자리가 많을 뿐이지 안을 돌아다니며 뭔가 하기에는 애매했지만.

        

       레나 마이어에게서 도망치듯 식사를 끝내고 그대로 방에 박혀 있다가 시간이 되자마자 바로 기차역으로 향한 내가 마주한 존재가 바로 레나 마이어였다.

        

       거의 40분은 일찍 도착한 것 같은데, 레나 마이어는 그보다 일찍 나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지, 굳이 나를 기다린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냥 성실한 성격 탓에 먼저 와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의 표정은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척.

        

       이번에도 효과음이 들릴 정도로 각 잡힌 경례였다. 딱! 하고 구두 발꿈치가 닿는 소리도 다시 들렸다.

        

       “……만날 때마다 그렇게 경례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이 아카데미에 들어온 이상 저희는 같은 반 학우일 뿐이니까요.”

        

       “알겠습니다.”

        

       …….

        

       저 딱딱한 말투.

        

       적응되질 않는다.

        

       내가 무표정 캐릭터를 처음 만나는 것은 아니었다. 이런 상황이 아니라면 제이크와 함께 다니는 로티도 무표정 메이드 캐릭터였으니까.

        

       하지만…… 뭐랄까. 느껴지는 감각이 좀 다르다. 로티는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어색한 애다. 그건 게임에서도 마찬가지라서, 친해졌다고 표정이 흐물흐물 녹아내린다거나 폭소하거나 하는 성격은 아니다. 그러니까…… 따지자면 샤를로트와 비슷한 성격이다. 다만 샤를로트보다 조금 더 안전을 추구하고 문제를 일으키고 싶어 하지 않는 성격일 뿐이다.

        

       그래서 제이크가 들러붙을 때마다 귀찮아하거나 곤란하다는 듯 반응하는 거고. 본인이 제이크를 좋아하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로티가 웃는다고 사람들이 경악할 이유는 없다. 그건 캐릭터성이 뒤집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친해져서 자연스럽게 보여주게 되는 표정일 뿐이니까.

        

       반면에, 나 같은 경우에는 ‘감정이 억눌린’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었고……

        

       레나 마이어도 어째서인지 나와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마치 가면을 쓴 것 같은 무표정.

        

       “…….”

        

       “…….”

        

       40분 전이면 열차도 도착하기 전이다. 민간용 기차역으로서는 제국 최북단에 있는 기차역인지라 열차는 출발 30분 전에 미리 도착해서 기다린다. 더 북쪽에는 레나 마이어의 고향인 자치국이 있긴 했지만, 국경 주변은 민간용 열차가 다니기에는 치안이 매우 불안정했다.

        

       “…….”

        

       “…….”

        

       두 무표정 캐릭터가 마주 서 있으니 대화가 흘러가지를 않는다.

        

       내가 어색하게 느끼는 만큼 쟤도 나를 어색하게 느낄까?

        

       “……제국에 가 보는 것은 처음이십니까?”

        

       “예, 그렇습니다.”

        

       그래도 내가 말을 걸면 바로 대답이 나오기는 했다. 그리고 그 태도도 묘하게 군인 같았다. A급 신병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군기가 바짝 들어있다고 하면 좋을까.

        

       ……정작 군인은 아니긴 했지만.

        

       “리클란트 자치국과는 분위기가 여러모로 다를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예, 매우 기대하고 있습니다.”

        

       별로 기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표정이 무표정해서 어떤 감정인지 잘 모르겠다.

        

       ……주변 애들이 나를 볼 때도 이런 감각일까?

        

       생각해보니, 이전에 의뢰하러 가는 레오와 클레어를 앞질러보겠다고 새벽에 일어나 가도까지 갔던 적이 있었다.

        

       의뢰를 수행하려고 왔더니 가도 입구에 그 의뢰 대상 시체를 가져다 두고 기다리고 있던 나를 보았던 두 사람의 감정이 이랬을까?

        

       “…….”

        

       음, 그건 아니었던 것 같기도.

        

       왜냐하면 클레어는 나를 볼 때마다 엄청나게 반가워했으니까. 그 새벽에도 클레어는 활짝 웃으며 나에게 인사했었다.

        

       불편해했던 사람은 레오였지.

        

       ……내가 너무 과했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사이에, 역에 기차가 들어왔다. 그때까지도 레오와 그 일행은 역에 도착하지 못했다. 게임에서도 검성을 만나는 퀘스트를 클리어하게 되면 기차 출발 직전에서야 도착한다는 이벤트가 추가되었으니까.

        

       그리고 그렇다는 말은, 내가 일행이 올 때까지 열차 안에서 레나 마이어와 단둘이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기차가 도착하기 전에 와서 기다리던 학생이 우리뿐만이었던 건 아니었지만, 우리에게 굳이 말을 거는 학생은 없었다. 사람을 거리낌 없이 죽일 수 있는 황녀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무표정한 학생 둘이 함께 있는데 말을 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

        

       평소라면 나도 말을 거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편안함을 느꼈겠지만, 지금은 제발 누구 하나라도 말을 걸어줬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기차를 타는 동안, 레나 마이어가 내 근처가 아니라 조금 떨어진 곳에 앉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고 있었지만……

        

       ……그런 희망은 헛된 것이었다.

        

       내가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자, 레나 마이어는 당당하게 나와 마주 보는 앞자리에 앉았다.

        

       “…….”

        

       “…….”

        

       그리고 침묵.

        

       그렇다고 내가 다른 자리로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무표정이라고 해도 감정이라는 게 있는 법이고, 내가 그런 짓을 하면 상처받게 될 테니까.

        

       애초에 평소에도 혼자 자리에 앉아서 다녔다면야 앞으로 지내면서 ‘저 사람은 원래 그렇구나’하고 생각하게 되겠지만, 나는 평소에 어디 다닐 때 친구들과 몰려다니곤 했다. 물론 내가 그 그룹을 주도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여기 앉아있으면 레오나 클레어, 앨리스, 샤를로트, 미아 크로우필드, 심지어 제이크까지 전부 내 주변 자리로 자연스럽게 모여들게 될 거다.

        

       그런데 이 애를 여기 그냥 두고 다른 자리로 옮긴 뒤 친구와 만나 같이 앉게 되면……

        

       ……그건 좀, 뭔가 따돌리는 느낌이잖아.

        

       “…….”

        

       “…….”

        

       그러니 어색함을 참고 앉아있는 수밖에 없었다. 레나 마이어라는 애는 무표정하긴 했지만 나름대로 행동을 통해 자기감정을 표현……하는 것 같았으니까. 확신은 없지만.

        

       어쩌면 내가 처음으로 대화해 본 아카데미 학생이라 나름대로 친밀감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지…… 확신은 없지만.

        

       그렇게 침묵을 지키며 20분은 앉아있었을까.

        

       기차 안에 다른 학생들이 들어오면서 조금씩 시끌시끌해졌다. 뭐, 그렇다고 해도 열 명이 채 되지 않는 숫자이긴 했다.

        

       생각해보니 주인공 일행의 숫자만 따지면 반에서 3분의 1이 넘는 숫자였다. ……원작에서는 주인공 일행 중 단 한 사람도 반 안에서 따돌림당하는 묘사가 없었는데, 이렇게 생각하니 반에서 가장 숫자가 많은 그룹이었다.

        

       오히려 누구 하나 따돌리려고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 정도로 권력도 어마어마한 사람들이었고.

        

       이제 보니 아주 인싸모임이었구만.

        

       그로부터 약 5분 정도 더 기다리고 나서야, 기차 안으로 헐레벌떡 들어오는 아이들이 있었다.

        

       아침이 되어서야 겨우 산에서 내려와 제니퍼와 차를 타고 돌아온 아이들이었다.

        

       생각해보면 무려 교사인 제니퍼가 함께 있었으니 조금 늦게 와서 기차를 타지 못했어도 어차피 아카데미로 돌아올 수 있었지 않을까? 평소에 약속 시간은 반드시 지켜야 직성이 풀리는 애들이라서 어떻게든 시간을 맞춰 오려고 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언니! ……어?”

        

       나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며 내 자리 쪽으로 오던 클레어가 내 앞자리에 앉은 레나 마이어를 보고 조금 당황했다.

        

       클레어를 보자마자 레나 마이어가 튕기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소개해주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이미 나는 두 번이나 보았던 완벽한 군대식 경례를 하며 레나 마이어가 말했다.

        

       “레나 마이어라고 합니다. 황녀님께 인사드립니다.”

        

       “……어?”

        

       클레어가 다시 한번 멍하니 중얼거렸다.

        

       나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부끄럽다.

        

       당사자가 아닌 내가 보아도 부끄럽다.

        

       아무래도 레나 마이어는 나를 ‘언니’라고 부르는 클레어를 다른 황녀로 착각한 모양이었다.

        

       ……아, 하긴.

        

       제국 귀족들 사이에서야 내가 팬그리폰의 피 한 방울 안 섞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정보력이 비교적 떨어지는 소국에서는 모를 법도 했다. 아무리 그래도 제국에서 공식적으로 ‘입양된 아이다’라고 떠들지는 않았으니까. 귀족들도 외부인과 만날 때면 쉬쉬했을 테고.

        

       자치국이라면 국내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도 벅찼을 테니 바로 옆의 나라라고 하더라도 황가의 내력을 세세하게 조사하고 있을 여력은 없었을 것이다.

        

       “…….”

        

       멋지게 군대식 경례를 하는 레나를 그대로 두고, 열차 안의 분위기는 한동안 얼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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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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