퍽퍽퍽-!
“크워어어!”
등 뒤에서 느껴지는 무자비한 격통에 <스톤 트롤>의 괴성이 울러퍼진다.
격통의 근원지는 바로 주나용의 주먹.
그것도 그냥 평범한 주먹질이 아니다.
[격투]의 보정을 받은, 7레벨의 [연타]이기에 한방한방의 위력과 범위가 상당하였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화르륵-!
팔에 힘을 주는 주나용.
가공할 양의 마력이 휘감긴다.
이내 그것은 붉은빛의 화염으로 변질되었고, 그녀의 양팔을 타고 휘감기기 시작한다.
“용아아앗!”
콰, 콰아앙-!
거의 폭발과도 같은 타격음이 스톤 트롤에게 퍼져나간다.
[타오르는 화염]으로 위력이 증폭된 [연타]가 매서운 속도로 점멸하기 시작한다.
원래 이정도 일격이라면, 웬만한 보스는 너덜너덜해져야 정상이지만, 녀석은 놀랍게도 버텨내는 데 성공하였다.
‘…까다롭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주나용의 맨눈으로 보일 만큼 <스톤 트롤>의 상처가 빠르게 아물어 갔기 때문이다.
<스톤 트롤>은 전형적인 내구에, 대다수의 능력치를 몰아넣은 보스 종.
여기에 [강력한 재생력]이라는 희귀성이 높은 레어(Rare) 등급의 스킬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성가신데.
재생된 상처 위로는 마치, 갑주처럼 바위 조각이 뒤덮인다.
마찬가지로 레어(Rare) 등급.
[거친 바위의 틈새]의 파생스킬, [암석 굳히기]였다.
내구에 비례하여 방어력을 올려주고, 일시적으로 육체를 단단하게 해주는 능력.
안 그래도 높은 내구에 날개를 달아주는 능력이었다.
이 두 가지의 힘에 입은 <스톤 트롤>은 웬만한 탱커는, 명함도 내밀지 못할 강인함을 선보였다.
“크워어어!”
괴로움에 <스톤 트롤>은 몸부림쳤다.
녀석의 살기 등등한 눈동자가 주나용을 쳐다본다.
당장이라도 이 촐랑거리는 년을 찍어 뭉개버릴 기세였다.
“[중춧돌의 위엄]!”
“크와아아!”
하지만, 류다래의 입에서 외쳐진 ‘도발’ 스킬에 속절없이 시선을 돌렸다.
눈앞에 생겨난 애꿎은 토템을 공격한다.
이것이 바로 류다래, <샤먼 워리어>의 힘이었다.
탱커임에도 불구하고 주술이라는 강력한 유틸성을 보유하여, 간단한 저주는 물론이고 이런 소환술도 펼칠 수 있었다.
다만, 장점만 가득한 건 절대 아니다.
다양성이 많다는 건, 다르게 말하면 어중간하다는 소리.
<샤먼 워리어>는 탱킹은 탱킹대로 애매하고.
그렇다고 전문적인 주술사라고 하기에는 <샤먼> 클래스에 비하면 뒤처졌다.
특히 소환물의 내구성이 형편없이 약하다는 게 가장 컸다.
그러나 놀랍게도 류다래가 소환한 [중춧돌의 위엄]은, <스톤 트롤>의 주먹을 연속으로 맞음에도 묵묵히 도발을 펼치고 있었다.
<스톤 트롤>의 화력이 약한 것도 아니었다.
현재 트롤의 양팔에 감도는 너클 같은 바위 조각.
[거친 바위의 틈새]의 파생스킬 [암석 주먹]이었다.
내구 수치에 비례하여 화력을 올려주는 훌륭한 스킬로, 이것을 발동한 <스톤 트롤>은 웬만한 것들은 다 때려 부술 만큼의 파괴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녀석이 아무리 두들겨도 [중춧돌의 위엄]은 부서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 이유는 토템에게 향하는 공격을, 은은한 푸른빛의 장벽이 전부 막아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쁨아! 곧 실드 깨져!”
“캐스팅 완료했어!”
장벽의 주인은 바로 황기쁨.
그녀의 클래스는 서포터 계열인 <방벽사>.
별다른 회복도, 유틸도.
그렇다고 적의 힘을 약화하고, 아군을 강화하는 능력도 없는 클래스.
그 대신, 강력한 ‘보호막’을 만드는 데 특화된 클래스였다.
<샤먼 워리어>와 <방벽사>.
모두 파티에서 크게 환영받지 못하는 클래스.
그런 어중간한 두 클래스가 서로 힘을 합쳐서 나타나는 시너지는 상상 이상으로 대단하였다.
“용아아앗!”
마지막으로 그것에 힘입은 주나용은 자신이 가진 화력을 마음껏 펼쳤다.
일말의 방해를 받지 않고 주어지는 최고의 딜타임.
안 그래도 높은 주나용의 공격력을 더욱 돋보여주었다.
주나용의 전신을 타고 붉은빛의 비늘과 용 꼬리가 돋아난다.
눈동자에 마름모 형태의 문양이 그려지며, 가공할 힘이 그녀의 전신을 휘감는다.
[주나용이 고유능력 ‘용의 아이’를 발동합니다.]
유세하도 인정하는 사기 능력의 발동.
주나용은 미친 듯이 주먹을 휘둘렀다.
퍼버벅하고 들어가는 [연타]가 기관총을 쏘는듯한 음성으로 바뀐다.
“크와아아아!!!”
<스톤 트롤>의 눈동자가 터지며 피가 흘러내린다.
한계치를 넘은 피해에 출혈이 강해지지만, 덕분에 느낀 극한의 고통은 일시적으로 [도발]을 무시할 수 있었다.
몸을 돌린 <스톤 트롤>은 양팔을 깍지 끼고, 주나용을 향해 내려찍었다.
“…! 나용아!”
“주나용 위험해!”
걱정하는 두 명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러나 주나용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지속하던 [연타]를 끝내고, 오른팔을 회수한다.
쾅-!
부서지라 땅을 밟는다.
[타오르는 화염]의 열기가 양팔을 넘어 어깨까지 휘감긴다.
마치 진노에 찬, 용과 같은 형상이 주나용의 몸을 타고 흐른다.
허리에 탄력을 준다.
그것에 힘입어 뻗어 나가는 정권은, 곧 특유의 묵직한 울림으로 승화되었다.
“[붕권]!”
“크워어어!”
펑-!
폭탄이 터진 듯한 폭발음이 일어난다.
흙먼지가 자욱하게 퍼져나간다.
곧 연기가 거두어진다.
그렇게 드러난 모습은…
“후!”
“……”
숨을 고르며 [타오르는 화염]을 끄는 주나용과 상체가 통째로 증발해 버린 <스톤 트롤>의 모습이었다.
* * *
“해냈어, 해냈다고!”
“고생했어. 나용아!”
주나용은 자신을 끌어안고 기뻐하는 둘의 행동에 볼을 긁적였다.
이거 좀 부끄럽네.
‘…유세하와 마하나는 서로 아무렇지도 않게 포옹하던데.’
대체 둘은 이런 감정을 어떻게 제어하는 걸까?
‘으음…’하는 주나용.
대충 고개를 털며 빙그레 미소 지었다.
이것으로 이겼다.
하지만 아직 모든 게 끝난 것은 아니다.
“나용아. 이제 폐쇄해야지.”
맞다.
완벽한 폐쇄 과정을 거쳐야 정식으로 승부가 끝난다.
주나용은 고개를 끄덕이며, 품에서 둥그스름한 아티팩트를 꺼내 들었다.
입장하기 전 협회 소속으로 파견된 직원이 넘겨주었던 물건이었다.
‘큼지막하네.’
주나용이 아는 것보다 명백하게 큰 아티팩트.
[클랜]에서 사용하는 것과 달라 약간 의아했지만, 개의치 않고 넘겼다.
아티팩트에 마력을 불어넣자, 윙 하며 작동한다.
그리고 이것은…
이변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이기도 하였다.
“……?”
시간이 지나도 잠잠한 던전.
‘왜 폐쇄가 진행되지 않는 거지?’ 싶던 그때였다.
아티팩트는 부르르 떨더니 주나용의 손에서 벗어나 멋대로 <스톤 트롤>을 향해 날아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얼을 빼는 세 사람.
그 사이 시체에 들러붙은 아티팩트는 곧 산산이 부서지며 안의 내용물을 공개하였다.
“! 나, 나용아 저거!”
“서, 설마?!”
자줏빛이 감도는 자수정 같은 검은색의 보석.
거기서 풍기는 끔찍하기 짝이 없는 마기.
틀림없이 <마인, 빌런>들이 사용하는 [악마석] 이었다.
그것도 그냥 보통 수준이 아닌.
대형 범죄 클랜에서 손을 써줘야 구할 정도의 순도 높은 물건이었다.
‘저것이 왜 여기에!?’
라는 생각을 하던 그 순간.
주나용은 자신을 밀치는 손길에 화들짝 놀랐다.
“…기쁨아?”
황기쁨.
<방벽사>의 클래스를 가진 여린 소녀가 곤란하다는 듯 웃는다.
퍼억-!
그와 동시에 육중한 무언가가 황기쁨을 후려쳐 뒤로 날려버린다.
쾅, 쾅, 쾅-!
무방비하게 공격을 당한 황기쁨의 육체가 나무를 부수고 바위에 처박혔다.
“기쁨아!!!”
“주, 주나용…저, 저기 앞!”
덜덜거리는 류다래의 말에 주나용은 그제야 눈치챌 수 있었다.
어느새 일어난 거구의 존재가 황기쁨을 해치웠다는 사실을.
“크르르르륵!”
상반신이 사라졌어야 정상인 <스톤 트롤>의 몸체가 완벽하게 재생되어 있었다.
녀석의 가슴팍에 박힌 악마석은 마치 심장처럼 쿵쿵하고 울리고 있었다.
일반적인 <스톤 트롤>이 아니라는 듯, 덩치가 더욱 커진다.
몸에 뒤덮은 암석 같은 피부도 더더욱 굳건해진다.
“크와아아아!!”
“크라아아아!!”
마지막으로 목 주변에 살덩이가 하나 더 자라난다.
이내 그것은 똑같은 머리통 하나를 더 만들며 서로 괴성을 질러대기 시작한다.
틀림없었다.
“…설마, 트윈 헤드…?”
<트윈 헤드 트롤>.
간신히 A급에 턱걸이하는 변이 트롤들의 왕.
턱걸이라고 하여도 A급은 A급이라는 듯.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마력의 잔향이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찰나의 순간.
주나용은 팀장 언니가 해주었던 던전의 변이 증상 중 하나를 기억해 냈다.
―아가씨. 아주 가끔, 보스 몬스터가 어떠한 계기를 통해 자신의 한계를 벗어던지고, 위 단계로 나아가는 증상이 일어나고는 합니다.
저희 헌터들은 그것을…
<존재 진화>라고 부릅니다.
*
공포로 모든 것이 얼어붙는다.
덜덜 떨며 오들오들 눈물을 흘리는 류다래.
턱-!
“…나, 나용아?”
숨을 몰아쉬던 주나용이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비장한 각오를 눈에 담으며 양 주먹을 불끈 쥐었다.
화르륵-!
[타오르는 화염]이 피어오르며, 그녀의 의지대로 양팔을 감싸기 시작한다.
“다래야, 내가 막고 있을게.”
“……! 무, 무리야! 차라리 같이-”
“-이대로면 기쁨이가 죽고 말 거야. 어서 돌아가서 치료받아야 해.”
주나용의 말대로 바위벽 넘어, 정통으로 맞은 황기쁨이 피가 섞인 기침을 내뱉고 있었다.
내부가 다쳐 출혈이 가속한다는 증거.
그 모습에 류다래가 이를 악 다문다.
냉정하게 판단해야 했다.
<사면 워리어>는 ‘주술’을 이용한 다양한 유틸성을 갖춘 트릭키한 탱커이다.
단점으로는 어중간하다는 점.
그리고 연비가 너무 나빠서 한번 전투를 치르면 마력이 바닥을 친다는 점이었다.
현재 류다래의 마나는 바닥을 치는 상황.
서둘러 교수를 부르는 게 현명하였다.
생각을 마친 류다래는 입고 있던 갑옷, 방패, 칼을 바닥에 버리고 황기쁨을 대신 들어 올렸다.
“최대한 빨리 돌아올게. 절대로 죽지 마. 나용아!”
“죽기는 누가 죽는다고!”
말을 마친 류다래가 미친 듯이 달려나간다.
그 모습에 흥분한 ‘트윈 헤드 트롤’이 뒤를 쫓으려 한다.
퍼억-!
“크륵?!”
“너 상대는 나야!”
타오르는 주먹을 꽂아 넣고 뒤로 거리를 벌리는 주나용.
그녀는 오히려 공격한 자신이 아픈 이 상황에서 곤란한 한숨을 내뱉었다.
불이 붙은 트롤의 등은, 어느새 말끔하게 나아있었다.
전과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재생력은, 절로 질린 목소리가 나오게 하였다.
이것 참……
“…폼 잡을려고 멋지게 말하긴 했는데…”
“크르르륵!!!”
이내, 마지막으로 생각한다.
어쩌면……
여기가……
“…내 묫자리일지도.”
“크와아아!!!”
Ilham Senjaya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