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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9

    오랜만에 돌아온 숲은 참 안정적인 기분이 들었다.

    도시의 시끌벅적하고 바쁜듯한 느낌과는 판이하게 다른느낌.

    루크는 예르나의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는 첼로케이스를 바라보았다.

    “이제 하루종일도 연주할 수 있겠구나, 그렇지?”

    -……!?

    마치, 정말 그래줄거야? 라는 듯이 눈을 빛내는 파이의 모습에 루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일세. 콩쿠르의 준비도 해야하고…….”

    엠마에게 물어보니 콩쿠르는 가을에 열린다고 한다.

    주어진 시간은 참 많았다.

    그러고보면 일시아라는 아이는 이번 콩쿠르에서 상을 타는것이 목적이라 했던가.

    ‘마음같아선 아이의 모습을 봐서라도 봐주고 싶지만…….’

    상은 내게도 필요한 것이니 어쩔 수 없다.

    루크는 후에 상을 타면 사과라도 해야하나 고민했다.

    그리고 곧 고개를 저었다.

    과거에도 몇번 그런 경쟁이나 대회같은 곳에 참가한적이 있기는 했지만, 우승하고 사과할때마다 별로 좋지 않은 반응이 돌아온것이 떠올랐다.

    ‘왜일까? 그저 마음을 전했을 뿐인데 말이다.’

    루크는 승리자가 패배자에게 전하는 사과가 듣기에 따라서는 기만이 될 수 있다는것을 몰랐다.

    그는 진심으로 하고자 한 데에선 단 한번도 패배해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마왕을 제외하고는.

    “나중에 격려라도 해줘야겠군.”

    ———

    마법사라는 존재는 종종 자신의 세계에 빠져들고는 한다.

    마법이란것은 결국 오랜 사색을 통해서 자신만의 세계를 완성하는것이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루크는 더이상 그런 사색의 시간이 필요치 않지만, 오래도록 그러한 경험이 어디로 가는것은 아닌 모양이다.

    스스로도 그런 시간에 마음이 충만해짐을 느끼는 것을 보면.

    그런 점에서, 이 고요한 숲속의 분위기는 루크의 마음에 쏙 드는 것이었다.

    한적한 시골에 은거한 그때의 느낌도 들고 말이다.

    보통은 숙소 안에서 연주하지만, 오늘은 혼자서 연주하고 싶었다.

    요 며칠간 숙소에서 연주할때마다 무슨 연주회라도 열린 것처럼 숲지기들이 루크의 연주를 듣다보니, 그 시선들과 기대들이 조금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그냥 연습삼아 대충 연주를 해봐도 ‘와, 정말 잘하네!’따위로 어떻게든 칭찬을 쥐어짠다는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묘했으니까.

    가끔은 누구의 시선도 신경쓰지 않고 연주하고 싶었다.

    가끔은 누구도 듣지 못하는 곳에서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싶은 것처럼 말이다.

    루크는 결국 숙소에서 조금 멀리 나가도 된다고 허락을 받았다.

    그리고 그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나도 훌륭하고, 바람도 기분 좋군.’

    이따금씩 바람에 나무가 흔들려 나뭇잎끼리 부딪혀 들려오는 바람소리도, 자연의 연주다.

    숲은 고요하지만 동시에 집중해보면 시끄럽기도 하다.

    단조로워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도시 못지않은 다양한 소리가 숲만의 색채로 반짝이고 있다.

    그리고 지금, 루크는 그 고요함에 조금 색채를 더하고자 첼로를 꺼내 적당한 바위에 걸터앉고 활대를 꺼내 현에 올렸다.

    -…….

    파이는 이미 기대감에 가득차 루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얼른 연주를 해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살짝 미소지은채 고개를 끄덕였다.

    -기이잉–.

    첼로가 울었다.

    평소보다 조금 더 깊은 울림이 나는것이 신기해 살짝 놀란다.

    으레 연주를 하면 마나도 반응한다.

    마나 그 자체의 의지인 정령이 그토록 음악을 좋아하는 것처럼 말이다.

    ‘장소가 달라져서인가.’

    마나의 농도와 음악에 담기는 분위기에는 또 그러한 상관관계가 있는 모양이었다.

    이토록 마력이 충만한 숲속에서의 연주는 처음이니까, 루크는 새로운 발견에 미소지었다.

    급기야 루크는 평소보다 더욱 듬뿍 감정을 담아보기로 마음먹었다.

    누군가 들을거라는 생각따윈 하지 않기로하고.

    ‘그러고보면, 마지막으로 감정을 드러내본게 얼마나 오래전 일인지.’

    이 몸이 되기 전에는 감정을 참 많이 억누르고 살았다.

    그는 대마법사였고, 과도한 감정은 마법사에겐 적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제 심장에 새긴 서클은 그런 감정따위에 휘둘리지 않는다.

    100여년이상 고민하고 설계한 루크의 서클은, 아주 완벽하게 자신의 의지와 동화된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얼마든지 감정을 드러내도 제멋대로 폭주하는 일 없이 고요하고 침착할까?

    실험할가치는 있었다. 

    어느정도 선까지 허용되는 것일까?

    아예 눈마저 감은채 자신의 감정을 연주에 실었다.

    요즘들어 점차 연주에 자신의 감정을 싣는것이 자연스러워진다고 느낀다. 연주중에 무심코 허밍을 해서 화음을 넣게 되는 것도 어쩔 수 없을 정도다.

    음악이란 감정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그렇다보니 실제로 연주자의 감정이 실리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 때문에 마법사는 정령사와 어울리지 않았다.

    감정적인 정령사와 냉정한 마법사,어떻게해도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이다.

    서클마법은 마법사에게 정령과의 감정적 교류를 막았고, 정령은 그런 마법사에게 별다른 관심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지금 제 앞에서 하늘하늘 날아다니며 자신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이 정령과는 깊은 연대감을 느끼고 있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의미없을지도 모를 안부를 묻고, 처음 보는 것이나 새로운 것들을 보면 같이 놀라며 서로를 쳐다본다.

    파이와 루크는 참 많이 친해졌다.

    그리 생각하니 또 신기하지 않은가.

    평생을 ‘마법사’만으로 살아왔는데, 스스로도 이토록 감정을 드러낼 수 있을줄은 몰랐다.

    음악에 실리는 감정이 깊어질수록, 파이와의 연대감이 깊어지는것이 느껴졌다.

    음악의 연주가 어째서 정령과의 대화라고 불리우는지, 이제야 알것만 같은 느낌.

    연주가 멈추자, 파이는 소리없이 루크와 눈을 맞추었다.

    “어땠는가?”

    -……, 루크.

    ‘평소보다 좋았어, 루크.’

    라고 하는 듯 하다.

    자세히는 알 수 없겠지만, 그러한 감정이 전해져온다는 느낌. 이것이 정령과의 유대인가.

    ‘그리 나쁘지 않군.’

    루크는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바람을 느끼며 미소지었다.

    바람에 정령의 향취가 묻어있는것이, 이것은 파이가 수고했다며 보내주는 바람이구나 싶다.

    ‘그래, 정령과는 언어로 대화하는것이 아니로군. 감정으로 대화하는 것이었어.’

    말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그런 느낌이 든다.

    그래, 언어란건 결국 지식과 감정을 타인과 교류하기위한 포장지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가끔 착각을 하곤 한다.

    스스로의 감정을 좋은 포장지에 담는것이 중요하다고, 포장지만을 열심히 꾸며낸다.

    보기좋은 포장지에 싸여진 더러운 감정들, 지저분한 의도들. 

    악의를 감추기위해 몇겹이나 곱게 포장한 더러운 대화.

    하지만 정령에겐 그러한 포장지가 의미없다.

    그들의 언어는 인간처럼 언어를 포장하지 않는다.

    정령은 스스로의 감정을 있는대로 드러낸다.

    그렇기에, 정말로 순수한 정령은 사람의 언어체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리라.

    그들에게는 감정을 포장할 ‘말’이 없으니까.

    그 사실을 깨달으니 문득, 그토록 구슬픈 노래를 부르던 드니스는 어떤 감정을 음악에 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토록 듣기좋은 비극을 연주하려면 어떤 감정을 지녀야했을까.

    루크는 이번엔 그런 감정을 담아보기로 했다.

    소중한 자들의 죽음, 이 세계에 맨몸으로 떨어져 이방인이 되어버린 자신의 상황은 그런 감정을 손쉽게 끌어낼 수 있었고, 끌어올린 감정은 손쉽게 끌어올린 만큼이나 간단하게 첼로에 깃들었다.

    무의식적 지식의 상태.

    수많은 음악가들이 이루고자 노력하는 경지이건만, 루크는 그저 이 몸에 새겨진 일종의 본능으로 그 경지에 도달해버리고 말았다. 

    마치 옹알이를 하던 아이가 자라서 능숙하게 말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처럼, 이것은 의식적으로 행하는 연주가 아니었다.

    -…….

    절절한 첼로의 노래가 아무도 없는 숲에서 퍼져나간다.

    그리움, 아련함, 그리고 조금은 후회.

    그리웠다. 먼저 떠난 케일과, 너무나 오랫동안 혼자서 살아갔을 레니에가.

    아련했다. 행복했던 그때의 어렴풋했던 감정이.

    그리고 후회되었다. 불사성을 연구 한다며 오히려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을 낭비한 자신이.

    5000년을 뛰어넘어 나는 이 자리에 있다.

    하지만 지금 그대는 없구나.

    나는 또 늦어버리고 말았구나.

    마치 내가 케일을 잃었을 때처럼.

    연주가 멈췄다.

    문득, 눈에서 축축하게 물기가 흐르는것이 느껴진다.

    루크는 조금 당황했다. 그동안 이랬던 적은 없었는데, 숲의 마력 탓인가? 연주에 너무 감정을 실은 탓인가?

    복받힌 감정탓인가, 심장의 서클이 조금 엇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읏…….”

    루크는 재빠르게 자신의 심장을 잡으며 서클을 다잡았다.

    비록 아주 조금이지만, 서클이 심장에서 엇나가는 감각은 너무나 오랜만이었다.

    감정따위 잊은지 오래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저 드러낼 기회가 없었던걸지도 모르겠다.

    그때였다.

    “루!”

    숲에서 뛰쳐나오는 한 인물.

    예르나였다.

    “왜 그래? 어디 아파? 갑자기 심장을……. 혹시 서클이?”

    루크는 갑작스런 그녀의 등장에 살짝 정신이 멍해졌다.

    “예르나……? 그대가, 왜 여길……?”

    루크는 자신의 눈물을 호들갑스럽게 손수건으로 슥슥 닦아내는 예르나를 바라보며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그, 사실은 걱정돼서……. 근처에서 계속 보고있었지…….”

    “……처음부터, 말이더냐?”

    “응.”

    “이런…….”

    역시 숲지기는 숲지기였던건가, 기척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사실은 일부러 탐지를 할 생각도 없었다.

    루크는 숲지기들의 GPS와 능력을 믿었고, 3서클을 쌓는 중인데 그런 것으로 마력을 낭비하고싶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들었다니…….”

    그렇다면 중간부터 감정을 잔뜩 집어넣은 연주도 들었다는게 아닌가.

    루크는 마치 잔뜩 혼잣말을 하던장면이 누군가에게 보여진 것 같아서 굉장히 부끄러워졌다.

    그동안 그토록 감정을 드러내 보인적은 한번도 없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왜 울었어? 무슨 일 있는거니?”

    예르나는 평소엔 결코 울지않던 루크가 울어버린것이 너무나 걱정되었다.

    게다가 귀도 축 쳐져서 나 지금 우울해요 하는 티를 잔뜩 내고있지않나.

    하지만 루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 그냥 연주하다보니, 감정이 복받쳐왔을 뿐이라네.”

    “겨우 그거때문에 운거야……?”

    후우, 크게 심호흡을 몇번 한 루크는 다시 의연하게 말했다.

    “연주에 감정을 너무 담았던 게지.”

    감정, 감정이라.

    그러고보면, 루크의 연주는 중간부터 갑자기 분위기가 크게 달라져 사람의 감정을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마치 오래전의 슬픈 기억들은 불러일으키는, 그런 멜로디였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억지로 떠오르게 하는것이 아닌, 아련한 감정을 불러내 위로하는 듯 한 연주.

    그 연주에 위로받은 예르나는, 역시 루크는 허투루 연주한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마저 몰입할 정도로 깊은 연주, 그 덕분에 음악에 진정성이 느껴졌던걸까.

    나는 그 진심에 위로를 받은거구나.

    “그런데, 평소에는 그렇게 우울한 연주는 하지 않았잖아.”

    “그야, 우울한건 즐겁지 않잖은가.”

    루크는 씨익 웃었다.

    “나는, 그대들에겐 즐거운 감정만 들려주고 싶었다네.”

    예르나는 우수를 머금은 루크의 눈빛에 잠깐 압도되어 머리를 쓰다듬던 손길을 멈췄다.

    10살짜리가 이런 눈빛을 갖게된 이유는 어째서일까.

    “울어서 배고프겠다. 돌아가자! 다이튼이 바베큐를 했대.”

    “그렇군, 바로 가지.”

    ——

    그리고 루크가 떠난 자리, 파이는 조금 더 머문다.

    연주에 압도되었달까, 파이는 그 연주안에 담긴 루크의 오랜 세월 묻어둔 감정들에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루크의 깊은 감정이 그대로 전해져, 중간부터는 거의 어떠한 반응도 하지 못한채 멈춰버리고 말았으니까.

    정령이 이지를 잃은지 2000년, 아주 오랜 세월 스스로의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떠다니던 마나 덩어리였던 파이는 그 연주에 스스로를 살짝 자각했다.

    루크의 감정이 파이의 아주 오래된 감정을 깨닫게 한 것이다.

    ‘루크, 이제야 처음으로 네 이야기를 해줬네.’

    예상보다 훨씬 깊은 대화였다.

    이런 감정은 정말로 오랜만인데…….

    ‘역시 루크는 ‘에레’야.’

    에레가 아니고서야, 이런 대화는 가능할리가 없다. 애초에, 반딧불이로 자신을 그렇게 소개하지 않았던가.

    ‘나는 에레야, 나에게 와줘, 파이리스’

    라고.

    어째서 자신을 루크라고 부르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파이는 조금 더 마음을 추스리기 위해 숲에 남기로 했다.

    절대 에레가 맛있게 바베큐를 먹는걸 보는것이 고통스러운게 아니다.

    ‘나도 다시 물질계에 간섭하고싶어……!’

    파이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혼자서 연주하다가 과몰입해버린 루크….

    근데 쓰다보니 작가도 과몰입해서 미리 삽화그려둔 부분까지 진행시키지 못한…..

    덕분에 아주 급하게 삽화를 그려야 했습니다.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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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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