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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9

       “관중석 대피는 어디까지 진행됐지?”

         

       크래프트 상단의 사병 책임자이자 후작 각하께 현장 지휘권을 위임받은 맥스는 경비대원에게 물었다.

         

       “대피는 끝났습니다. 일부 학생이 중독 증상을 보이고 있긴 하나 미리 대비한 대로 연금학부가 즉각 치료 중입니다.”

       “각하의 선견지명이 빛을 발했군.”

         

       이런 과격하고 무모한 방식일 줄은 몰랐지만 교단의 가스 테러를 대비한 보람이 있다.

         

       맥스는 비공정 난간을 잡고 지상을 내려봤다.

         

       원형 결투장 모양의 토너먼트 건물은 보라색 뭉개 가스가 온통 채워진 상태였다.

         

       가스는 경기장을 뒤덮고 관중석까지 메우며 냄비 속에서 들끓는 독극물처럼 넘실거렸다.

         

       원형 건물이 가스를 가두는 밀실처럼 작용하고 있었다. 공기보다 무거워 가라앉는 특성의 보라색 가스는 쉽사리 빠져나가지 않은 채 내부를 채웠다.

         

       사실 당장 외부로 배출돼도 문제였다. 건물 주위로 행사 부스들이 늘어선지라 외부 대피까지 마치고 해결해야 추가 피해를 막을 수 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건물 출입구마다 바람 마법을 동원해 가스 배출을 막는 중이었다.

         

       “연금학부 교수진의 의견으론 가스 증기압이 낮아 주변부 대피를 끝내고도 배출까지 20분가량은 소요된다 합니다. 그 이후에야 제대로 된 진압이 가능합니다.”

       “미련한 과격파 놈들. 자폭 테러라도 하겠다는 건가.”

         

       비공정을 몰고 오는 거야 일반적이다. 비공정을 경기장 상공에 띄우고 가스 폭격을 하는 것도 예상 범위다.

         

       한데 그런 것도 아니었다. 대공 포격을 맞아가며 비공정을 밑도 끝도 없이 가속시키더니 상공의 방호 결계들에 부딪히며 경기장 한복판에 내리꽂았다.

         

       당연히 추락한 비공정은 박살 났지만 충동적인 추락이 아닌 양 충돌과 함께 폭발적으로 방출된 독가스는 삽시간에 번져 버렸다.

         

       “그래도 각하께서 대비한 테러 시나리오 중 하나라 큰 피해는 막았나.”

         

       무식한 비공정 추락은 예상 밖이긴 해도 경기장 침입은 각하께서 대비해 뒀다. 당장 앨시어 공작 영애가 암살 대상이니까. 토너먼트 결투 도중에 난입하는 것만큼 손쉬운 암살도 없다.

         

       그래서 비공정 추락과 동시에 가벽의 마법진이 발동해 경기장과 관중석을 분리시키고 관중석으로 퍼지려던 가스를 잠시 막아냈다. 그 사이에 관중을 대피시킨 덕에 피해가 적었다.

         

       “하지만…….”

         

       여전히 대련장의 가스 속에 갇힌 멜리사 학생과 앨시어 학생을 구출하긴 어려웠다.

         

       “가스 방출까지 20분이 걸리는 게 맞나? 마법사 인력까지 고려해서 더 시간을 단축시킬 방법을 찾아와!”

       “예!”

         

       맥스는 비공정 난간을 꽉 쥐었다. 경기장은 가스에 뒤덮인 채 어떤 상황도 보이지 않았다.

         

       무슨 짓을 한 건지 비공정 추락에서 생존한 마족 테러범들이 가스 속에서 총성을 만들었다. 교단의 의뢰대로 앨시어를 살해하려는 거겠지.

         

       기사단도 오지 않는 상황이니 저 들 맘대로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사병 하나가 저편을 가리켰다.

         

       “각하께서 돌아오셨습니다!”

         

       고개를 돌리자 하얀 빗자루를 탄 분홍 머리카락의 소녀가 날아왔다.

         

       소녀는 비공정 난간으로 비행해 맥스 앞에 멈췄다. 머리카락을 쓸어 정리하며 토너먼트 경기장을 내려봤다.

         

       “상황은요?”

         

       평소의 발랄한 목소리 톤과는 다른 차가운 목소리다.

         

       후작 각하께선 보이는 광경만으로도 경기 중이었던 친구들이 위험하다는 걸 바로 추측할 수 있을 텐데도 냉정을 유지했다. 친구에 죽고 못 사는 말랑한 모습과는 딴판인 이성적인 태도였다.

         

       맥스는 다시 한번 더 크래프트 각하의 순진한 모습은 연기라는 걸 확신했다.

         

       크래프트 각하가 자신은 쿠데타에 휩쓸렸을 뿐 주도자는 맥스라는 괴상한 해명을 신문부가 게시하게 명령하시긴 했어도 전부 여론 조작용 인터뷰였을 것이다.

         

       맥스는 상황을 전달했다.

         

       “가스 처리까지 20분가량이 소요된다는 교수진의 판단과는 별개로 건물 외벽을 비공정으로 폭격해 시간을 단축해 볼 계획입니다.”

       “어쨌든 관중 대피는 끝났다는 거죠?”

       “예.”

         

       대답을 들은 소녀는 한결 표정이 풀렸다. 소녀 자신이 컨트롤타워로서 묶여있을 필요까진 없다는 사실을 들은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 맥스 씨는 주변부 대피에 신경 쓰며 인명 피해를 막아 주시고요.”

         

       소녀가 경기장을 노려봤다.

         

       “저는 구출하러 가죠.”

       “예?”

         

       하얀 빗자루가 급가속했다. 바람이 일고 분홍 머리카락이 꼬리처럼 휘날렸다.

         

       “각하?!”

         

       맥스는 난간에서 떨어질 듯이 내려봤다.

         

       “위험합니다! 구출 작전은 가스가 빠지고…….”

         

       그러다 멈칫했다.

         

       뭉게구름처럼 쌓인 보라색 가스 속으로 주저 없이 날아가는 후작을 보며 뭔가 묘한 생각이 든 것이다.

         

       저 행동은 마치 친구의 생명이 경각에 닥치자 혈기를 못 참고 달려드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맥스는 알았다. 크래프트 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기사단발 소문이 머리를 스쳤다.

         

       각하께서 테러범인 마족 용병대장을 붙잡곤 쓸모가 다 한 도구는 폐기 처분이라 말했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남은 이유는…….

         

       이미 알고 있는 독가스 혹은 후작 본인이 관여한 독가스라서 해독제가 있으니 거침없는 것.

         

       설마.

         

       정말 권력 강화를 위한 테러 조장이었고, 지금 손수 테러범을 토사구팽을 하시려는 건가?

         

       혹은 요즘 순진한 모습의 이미지 관리가 제대로 먹히지 않자 친구를 위해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주시려는 건가?

         

       경기장에 고립된 학생 2명만 구하면 비공정 추락 같은 과격한 테러가 피해 없이 유능하게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이미 계획된 것처럼 말이다.

         

       어느새 후작 각하는 보라색 가스 속으로 사라졌다.

         

       맥스는 확장하려는 생각을 끊었다.

         

       정말인지 아닌지를 궁리하는 건 의미가 없었다.

         

       어차피 크래프트는 대대로 그래왔으니까.

         

         

         

       #

         

         

         

       멜리사는 경기장 외벽에 기대 주저앉았다. 손에 쥔 마법 지팡이가 바람을 만들고 주변 공간의 가스를 밀어냈다.

         

       간헐적인 기침이 나왔다.

         

       품위 없는 기침에 손수건으로 입을 가렸다. 하얀 손수건을 붉은 자국이 더럽혔다.

         

       어머니, 죄송해요.

         

       언제나 사주 경계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지키지 못했어요.

         

       벨라몬트와의 경기에 너무 집중하느라 신속히 반응하지 못하다니, 변명의 여지가 없어요.

         

       죄송해요.

         

       갈수록 지키지 않는 가르침만이 늘어가네요.

         

       이런 제가 캐머롯을 잘 이끌어갈 수 있을까요?

         

       요사이 그런 생각이 들어요.

         

       착한 파스텔, 음…….

         

       근래 꽤 의심스럽긴 하지만 착한 건 맞는 파스텔은 가문을 살리기 위해 더러운 일에도 손을 대고 있죠. 밀무역이라거나 하늘섬의 행정권 장악 같은 거요.

         

       비록 그건 기품 없고 교양 없으며 탐욕적인 행동이긴 하지만 유일하게 생존한 크래프트 가주로서 해야만 하는 의무가 아니었을까요?

         

       죽은 가문 구성원을 위해 기꺼이 손을 더럽히고 비난을 감수하고 악명을 뒤집어쓰는 끔찍한 일이요.

         

       하고 싶든 하고 싶지 않든 과거에 삶을 묶고 미래에 삶을 던지는 여정을요.

         

       저라면.

         

       만약 저라면…….

         

       해야만 하더라도 할 수 없을 거예요.

         

       그야 그럴게.

         

       그건 너무 품위 없는 일이잖아요.

         

       이해받지 못하고 모욕만을 당할 미래를 제 손으로 결정하라니. 그런 수모는 감수할 수 없어요.

         

       그렇네요.

         

       요사이 그런 생각이 자꾸 들어요.

         

       어머니의 가르침이 틀린 게 아닐까. 모두 그렇진 않더라도 일부는 그렇지 않을까.

         

       2학기 동안 한 일을 생각하면 분명 파스텔은 어머니의 가르침대로라면 멀리해야 할 친구겠죠.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은걸요.

         

       캐머롯의 품위 있는 후계자로서 크래프트의 책임 있는 가주를 배반할 순 없잖아요.

         

       그건, 귀족답지 않으니까요.

         

       죄송해요.

         

       2학기 시작부터 확인차 가르침을 무시하고 파스텔을 뒤따라 벨라몬트의 기숙사에 찾아가 버렸어요. 다소 떨어진 다른 테이블에서긴 해도 티파티를 즐겼죠.

         

       비록 천박한 벨라몬트가 트집을 잡아 언성이 높아지긴 했지만 후회는 없어요.

         

       같이 먹는 쿠키는 맛있었으니까요.

         

       글쎄요.

         

       이것이 파스텔이 말하던 배덕감일까요?

         

       반항아가 되어버렸네요.

         

       멜리사는 붉어진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았다.

         

       하지만 역시 어머니가 옳았나 봐요.

         

       어머니의 말씀대로 처음부터 벨라몬트를 무시했다면 경기에 집중하느라 사주 경계를 소홀히 할 일도 없었겠죠.

         

       그렇네요.

         

       처음부터 파스텔을 무시했다면, 그 근거 없는 절친 선언에 얽매이지 않았다면, 친구 같은 건 사귀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없지 않았을까요.

         

       어머니.

         

       존경하는 어머니.

         

       하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어요.

         

       쿠키는 맛있었고, 눈앞의 소녀는 아름다우니까요.

         

       “멜리사!”

         

       작게 비명을 지른 파스텔이 빗자루를 멈췄다. 가스로 보이지 않는 주변을 경계하더니 빗자루에서 내렸다.

         

       “피 토를 하는 거야?!”

       “단순한 기침이에요.”

         

       조곤조곤 대답한 멜리사는 피 묻은 입가를 닦고 손수건을 접었다.

         

       “관중들은 어떻게 됐나요? 가스가 관중석까지 퍼졌던데요. 대피는 시키고 온 건가요?”

       “지금 네가 그걸 신경 쓸 때야?!”

         

       으아아.

         

       파스텔이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안절부절못했다. 그러며 정작 손은 이성적으로 상비 해독제를 꺼내는 모습이 참 대단했다.

         

       “그렇네요.”

         

       멜리사는 미소 지었다.

         

       “당신이 해결했겠죠.”

         

       파스텔이 살짝 화를 냈다.

         

       “웃지만 말고 어서 마셔!”

       “그럴게요.”

         

       해독제는 사탕물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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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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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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