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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9

     

    출발 준비는 순식간에 완료됐다.

     

    “선생님, 마차 도착했습니다!”

     

    10분도 안 되어 보리스가 마차를 끌고 왔다. 기운 좋아 보이는 숫말 두 마리가 끌고 있었다.

     

    타냐가 가져온 가운을 걸치며 마차에 오르려고 하니 클로에가 낑낑대며 짐을 끌고 오고 있었다. 수술 도구가 든 상자다.

     

    그녀를 발견한 기사들이 상자를 날라주니 겨우 한숨을 돌린다.

     

    “진작 기사들 시키지 그랬어.”

     

    “어읍, 그, 그러려면 기사님들에게 말을 걸어야… 하잖아요.”

     

    “걸면 되잖아.”

     

    “쉽지 않아요….”

     

    클로에가 고개를 푹 숙이니 빗자루 같은 장발 뒤로 팔짱을 낀 아셀라가 드러났다.

     

    내가 클로에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황녀님은 왜 데려왔어.”

     

    “어읍, 지, 지금은 제가 담당이라서요. 지금은 외부 활동 중이니 황녀님과 떨어지면 안 되니까아.”

     

    “그래서 황녀님을 모셔왔다고? 그냥 후작가에서 잠깐 기다리라고 하지.”

     

    “쉬, 쉽지 않아요….”

     

    클로에의 어깨가 축 처졌다. 아셀라가 또각또각 발소리를 내며 내게 다가왔다.

     

    “내가 따라간다고 했어. 주치의와 간호사가 주군의 옆을 비우겠다니 어이가 없어서.”

     

    “응급 상황입니다. 이해해 주세요.”

     

    “이해했으니 간다는 거야. 내게도 응급상황이 생기면 날 책임져야 할 거 아냐.”

     

    아셀라의 말이 옳았다. 원칙대로라면 클로에는 놓고 가야 한다.

     

    하지만 평민 남자의 말을 보아 긴급 수술에 들어가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때 내겐 클로에가 필요하다.

     

    “미리 양해를 구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황녀님. 이해에 감사드립니다.”

     

    “그래. 내놓을 대가나 준비해 놔.”

     

    대가라.

    그래도 써먹을 무기가 몇 개 있는 지금, 전보다는 덜 부담된다.

     

    버블티도 먹혔으니 다음엔 탕후루라도 대접해 드릴까.

     

    아셀라가 손을 내저으며 시녀장, 호위기사와 함께 다른 마차에 올랐다.

     

    나는 클로에, 타냐, 브루노와 함께 같은 마차를 탔다. 평민 남자도 함께했다.

     

    “서, 선생님! 어떻게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배운 게 없어서… 무례함을 용서해 주십쇼!”

     

    남자가 고개를 푹 숙였다. 다급한 것이 정신이 없어 보였다.

     

    “우선 진정하고 상황 설명부터 해 봐. 자네, 이름은?”

     

    “아, 예! 팔이라고 합니다. 농부입니다.”

     

    “아내가 위급하다고 했지. 출산 중이야?”

     

    “그렇습니다. 아낙들이 도와주는데도 도무지 아이가 안 나와서… 힘이 다 빠져가고 있습니다요.”

     

    “첫 진통에서 경과한 시간은?”

     

    “하루하고도 반나절 정도 됐습니다.”

     

    “건강한 상태는 아니겠어. 클로에, 수액 투입 준비해 둬.”

     

    “네엣.”

     

    클로에가 내 옆에서 열심히 메모하며 대답했다.

     

    “선생님의 이야기는 항상 많이 들었습니다. 황실 주치의로 가셔서 어마어마한 활약을 하신다고 후작령에 소문이 자자합니다. 마침 저택에 계신다고 하셔서 실례가 될 줄 알고도 찾아뵈었습니다.”

     

    “그 말대로 선생님께서는 다름 아닌 황실의 주치의시다.”

     

    쿵, 타냐가 위협적인 발소리를 내며 남자에게 강조했다.

     

    “선생님은 제국에서 가장 중요한 옥체를 치료하시는 손을 가지셨다. 심지어 지금은 휴식을 취하시던 시기였다. 귀중한 시간을 써 주시는 것이니 감사하여라.”

     

    “무, 물론입니다! 이렇게 단숨에 행차하여 주셔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아내가 죽어가고 있으니 눈에 보이는 게 없어져 버려서….”

     

    그의 마음도 이해가 간다.

    나라도 눈앞에서 네리아나 아버지가 다치고 있으면 필사적으로 변하겠지.

     

    “너무 나무라지 마. 어느 환자도 경시하지 않는 게 의료인의 정신이기도 하니까.”

     

    “그렇습니까.”

     

    “그래. 내게는 수많은 환자 중 한 명이어도 환자에게는 단 한 번의 중요한 진료잖아.”

     

    “환자에게는 단 한 번… 그렇네요.”

     

    클로에가 고개를 끄덕였다.

     

     

     

    머지않아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후작령 동쪽의 밀밭이었다. 작은 오두막 앞에 내려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어머, 세상에!”

    “공자님이 오셨어!”

     

    환자를 돌보던 아낙들이 나를 보고는 예를 표했다.

     

    타냐가 그들을 물리고 나는 즉시 환자를 체크했다.

     

    “진단.”

     

     

    ―――――――――――

     

    부상 상태 : 난산 (이상 태위)

    부상 상태 : 소량 출혈 (하혈)

    부상 상태 : 탈진

    부상 상태 : 빈혈

    부상 상태 : 골절 (좌측 골반)

     

    ―――――――――――

     

     

    좋지 않은 상황이다. 지나치게 길어진 출산으로 산모는 거의 기절한 상태였다. 우리가 들어온 것도 인식하지 못했다.

     

    “클로에.”

     

    “네.”

     

    클로에가 즉시 산모의 팔에 주사기를 설치했다. 영양 공급용 수액을 연결한다. 비상용으로 만들어놨던 용액이다.

     

    “평민은 이런 곳에서 사는구나.”

     

    아셀라의 목소리였다. 나는 잠깐 그녀를 향해 돌아서서 부탁했다.

     

    “황녀님, 환자의 상태가 안 좋습니다.”

     

    “그래 보이네.”

     

    “조금 집중이 필요합니다. 자리를 비워주시면 안 될까요.”

     

    아셀라는 그녀를 쫓아내려는 내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조용히 지켜보기만 할게.”

     

    “지금처럼 한두 마디 거드시면 제가 실수할 수도 있어요.”

     

    “…정말로 조용히 있을게.”

     

    아셀라가 확신을 담아 말했기에 나도 더 몰아붙일 수 없었다.

     

    이렇게까지 말하고 약속을 어기진 않겠지.

     

    나는 그녀를 기다리게 하고 이어 환자를 진찰하기로 했다.

     

    커다랗게 부푼 배가 힘 빠진 호흡과 함께 위아래로 들썩인다.

     

    “클로에, 보여? 태아의 팔이야.”

     

    “머리가 아니네요.”

     

    “안에서 자세가 기묘하게 꼬여있어. 정확한 자세는 여기서는 판단이 안 되지만 이대론 출산할 수 없어.”

     

    “억지로 출산하면 어떻게 되나요?”

     

    “자세에 따라 탯줄이 태아를 감아 장애가 생길 수도 있고, 심하면 사망할 수도 있어. 그 경우 산모에게도 영향을 줘서 함께 위험해져.”

     

    “서, 선생님. 아내는 괜찮을까요.”

     

    남자가 손을 벌벌 떨며 나를 바라봤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그에게 물었다.

     

    “여기서 가장 깨끗한 장소가 어디야?”

     

    “깨끗한 장소요? 음… 아, 그나마 옆방이 괜찮습니다. 언젠가 아이 방으로 쓰려고 준비해서 아무것도 없습니다.”

     

    “단장, 그 방 멸균 부탁해. 시간이 없으니 기초적인 것만.”

     

    “알겠습니다.”

     

    타냐가 기사 둘을 데리고 옆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남자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산모와 아이 둘 다 살리기 위한 출산을 진행하겠어. 자네는 밖에서 기다려.”

     

    “…선생님을 믿겠습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나는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줬다.

    남자와 아낙들은 부엌 쪽에서 대기하도록 했다.

     

    가운을 벗는다.

     

    “클로에, 수술 준비를 해줘. 응급 제왕절개를 실시하겠어.”

     

    “제왕절개… 분명 산모의 배를 갈라 아이를 꺼낸 후 봉합하는 수술이지요.”

     

    “잘 기억하고 있네. 상당한 대수술이야. 본래 이런 장소에서 할 게 아니지만 시간이 없으니 어쩔 수 없지.”

     

    “전신마취부터 준비하나요?”

     

    “감염을 막아야 하니 제모부터. 나도 나가서 준비하고 올게.”

     

    잠시 오두막을 나선다.

     

    급한 대로 마차에서 왕진 가방의 내용물을 꺼내 수술 장비가 모두 있나 확인한다.

     

    절단용 메스, 석션에 쓸 주사기, 겸자, 바늘, 흡수성 봉합실까지.

     

    상태창에서 수술 스킬도 확인하는데 아셀라가 내게 다가왔다.

     

    “저기, 공자.”

     

    “제가 뭐라고 말씀드렸죠?”

     

    “그건 그런데… 하나만 물어보면 안 돼?”

     

    “나중에요.”

     

    내가 단호하게 대답하니 아셀라도 더 실랑이를 벌이진 않았다.

     

    어쩐지 기운 없게 어깨를 트는 아셀라.

     

    거 참.

    결국 신경 쓰이게 하시네.

     

    “뭔데요.”

     

    “응? 아니… 조금 그… 놀라서.”

     

    “놀라셨다니요?”

     

    “산모의 배를 가른다며.”

     

    “예.”

     

    “그러면 죽잖아. 저렇게 약해져 있는데 정말 살릴 수 있어?”

     

    “살려야죠.”

     

    단호한 대답에도 아셀라는 안절부절했다.

     

    “그게… 공자가 칼을 쓸 줄은 몰랐거든. 혹시 잘못돼서 네가 산모를 죽였다고 잘못 소문나기라도 하면 어떡해?”

     

    “그러니까 살려야죠. 아이도 함께요.”

     

    나는 주사기를 들어 보이며 자신 있게 대답했다.

     

    “별 것 없습니다. 황녀님도 처음엔 그렇게 무서워했지만 지금은 주사기를 누구보다 좋아하시잖아요?”

     

    “안 좋아해! 아니, 처음에도 안 무서웠거든. 누가 그러니?”

     

    “하하.”

     

    팔짱을 끼며 주사기에서 시선을 돌리는 아셀라를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공자.”

     

    “예.”

     

    “…응원할게.”

     

    웬일이셔.

     

    아셀라 치고는 듣기 힘든 말이 나왔다.

     

    별일도 다 있다고 생각하며 나는 마스크를 썼다.

     

     

     

    ***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방은 기초 멸균이 끝나 어느 정도는 수술할 환경이 됐다.

     

    침대 위에 누운 산모의 팔에는 주사가 꽂혀있다.

    수액에 섞여 강한 마취제가 조금씩 흘러 들어간다.

     

     

    [상태 : 전신마취됨 (88%)]

     

     

    80퍼센트대 이상을 유지하면 환자가 깨어나는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

     

    세균감염을 막기 위해 소독과 항생 처치도 완료했다.

     

    양손을 들면 클로에가 초록색 수술장갑을 씌워준다.

     

    “수술을 시작한다.”

     

     

    [수술 C가 발동합니다.]

     

     

    “10번 블레이드.”

     

    클로에가 칼날을 꽂은 메스를 넘겨준다.

     

    지금처럼 넓은 면적을 절개할 때 필요한 칼날이다.

     

    머리에 쓴 확대경에 조립한 발광 아티팩트가 절개 부위를 비춘다.

     

    ―스윽

     

    손이 마술에 걸린 듯 깔끔하게 움직인다.

     

    치골 위로 3cm 부위, 환자의 신체를 고려하여 가로로 9.5cm 절개했다.

     

    출혈부위는 석션과 함께 추가 출혈이 없도록 혈관을 일일이 묶는다.

     

    두근거리는 자궁이 드러난다.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있음을 온몸으로 표출한다.

     

    양수는 이미 터져있다.

     

    태반조기박리가 있는지 확인한다. 제왕절개에는 많은 합병증이 따라올 수 있으므로 주의한다.

     

    …여기까지 문제없음.

     

    다음 메스로 교체하여 한 번 더 절개한다.

     

    내부의 태아를 건드리지 않도록 어느 때보다도 신중하게 손을 움직인다.

     

    사과의 껍질만을 도려내듯 정확하게 갈라낸다.

     

    머리가 보인다.

    예상대로 탯줄이 복잡하게 꼬여있다.

     

    아이의 머리를 받치고 탯줄을 풀어내며 조금씩 들어올린다.

     

    입안의 이물질을 제거한 순간.

     

    ―우아앙!!

     

    난생처음 폐호흡을 시작한 갓난아이가 우렁찬 울음을 터트렸다.

     

    “고생하게 하기는, 이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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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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