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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9

       서브리미널.

       분명 그런 이름이었다.

         

       원더스타인은 개략적인 설명을 마치고 마야를 바라봤다.

       그녀는 설명을 들을 순간부터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었다.

       지금부터는 그녀가 알아내야 할 영역이었다.

         

       사실 그도 은막이 부린 수작에 대해서는 방금 설명한 내용 이상으로 자세히 알지 못했다.

       방송에서 지나가듯 본 게 다였으니까.

       그나마도 원더스타인의 초인적인 시력이 아니었다면, 포착하는 것조차 힘들었을 것이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이렇게 단서를 던져주는 것까지였다.

         

       실제로 은막이 사용한 방법은 방송에서 본 것보다 효과가 몇십 배는 더 강했다.

       그가 아는 현실의 어떤 최면이나 암시도 지금 매점 앞에 바글거리는 사람들처럼 즉각적이고 강력한 효과를 낼 수 없었다.

       그가 모르는 어떠한 마법적인 힘이 작용한 것이다.

         

       마야가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엘라는 옆에서 분개해서 방방 뛰었다.

         

       “규칙 위반이야!”

         

       그녀는 품에서 수십 번은 반복해서 읽어 꼬질꼬질해진 종이 쪼가리를 꺼내 들었다.

         

       “봐! 분명 규칙에 나와 있잖아! 향정신성 물질과 정신계 마법은 사용 즉시 실격 처리라고!”

       “쉿! 조용히 해. 사람들이 쳐다보잖아. 이런 건 함부로 떠들면 안 돼. 기억 안 나? 다른 팀에 악의적인 비방을 퍼트리거나 선동한 참가자 역시 실격 처리되는 거?”

         

       유라크네의 다독임에 엘라는 간신히 숨을 고르고 진정했다.

       공정한 대결에 비겁한 속임수가 끼어들었다는 생각에 그만 자제력을 잃고 말았다.

         

       원더스타인은 생각에 잠겨 있던 마야의 눈동자에 이채가 번뜩이는 것을 감지했다.

         

       “마야 양, 이걸 정신계 마법이라 볼 수 있을까요?”

         

       모두의 시선이 마야에게 쏠렸다.

         

       그녀는 마법 아카데미에서 수석을 차지했던 학생이었다.

       비록 원하던 신비를 체득하지는 못했지만, 이론만은 아카데미 교수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뛰어났다.

         

       마야는 아카데미에서 배운 인간의 정신과 교감하는 5가지 종류의 신비에 대한 이론을 떠올려 보았다.

       표층의 상(想), 활발한 염(念), 구조화된 의(意), 투영의 정(精), 본질의 신(神).

         

       여기서 환상 마법을 전개하는 데 필요한 ‘상’은 정신계에서 가장 테두리에 있는 신비였다. 절반은 물질계에 속하고, 절반은 정신계에 속했다.

         

       환상을 띄우는 행위는 물질계 마법이었다.

       다른 사람의 상을 열고 읽는 행위는 정신계 마법이었다.

         

       상대를 유혹하는 마법은 확실히 정신계 마법이지만, 상으로 아름다운 것을 빚어서 상대를 유혹하는 방식은 정신계 마법이라 할 수 없었다.

         

       은막이 보인 이 방식은 그 경계에서 놀고 있었다.

         

       “아슬아슬해요.”

       “이걸로 실격 처리가 될까요?”

       “아니요. 적어도 당장 마법계에서 정의하는 정신계 마법에는 포함되지 않아요.”

         

       그녀는 ‘상염의정신’의 정신계 마법의 체계를 밝히고는 은막이 어떻게 상을 통해 상위 정신계에 영향을 끼쳤는지도 여러 가지 마법 이론을 가져와 설명했다.

         

       단원들 모두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뭔 개소리래.

       엘라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인상을 썼다.

         

       원더스타인 역시 그들과 같은 처지였다.

       그냥 예, 아니오의 대답이면 충분한데 이론까지 끌고와 설명하다니.

       그렇다고 물어본 입장에서 대뜸 말을 끊기도 그랬다.

         

       마침내 마야의 설명이 끝났다.

       그녀는 대답을 마치고는 원더스타인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역시 마야 양은 대단하네요.”

         

       그렇게 활짝 웃는 그를 보며 마야는 속으로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알기로 단장님은 마법 이론에 관해서라면 누구라도 따라오기 힘든 천재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처한 신분과 환경 때문에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을 뿐이었다.

         

       개막식 날, 마야는 그의 신분을 알고도 그에 대한 존경심을 거두지 않았다. 아니, 반대로 더 큰 경애심을 가지게 되었다.

         

       방금도 그는 모든 답을 머릿속에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은막 아르노의 수법을 모두 꿰뚫어 본 남자가 기본적인 정신계 마법의 형태도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그는 바로 답을 내리기보다는 그녀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그리고 문답을 통해 그녀가 직접 결론을 내리게 해주었다.

       마치 스승이 제자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듯.

         

       그러면서도 결코 자신을 앞세우지 않고, 그녀가 이론을 정리한 것처럼 공을 돌렸다.

       새로운 환상 마법을 그녀가 개발한 것으로 했던 것처럼.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신분도 보증되지 않고, 학교도 나오지 못하고, 마법도 쓸 줄 모르는 그가 마법 이론을 내세워봤자 학계에서 우스갯거리만 될 뿐이라는 것을.

       잘못하면 그대로 이론을 빼앗기고 쫓겨나기만 할 뿐이라는 것을.

         

       아니, 어쩌면 그는 그런 배신을 한 번 겪었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아예 체념한 걸 수도 있었다.

         

       그런 그가 자신에게만은 기회만 되면 뭔가를 전수해주려고 애썼다.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이 스케치북도 그랬다.

       완벽하게 그녀를 위해 준비한 물건이었다.

         

       그가 비록 그것을 거부했기에 그녀는 그를 그렇게 부를 수 없었지만, 그녀는 그를 진짜 스승으로 여겼다.

         

       “설명 들으셨죠? 그렇다는군요.”

         

       엘라는 자신을 향해 빙그레 웃는 원더스타인을 바라보며 불퉁하게 입술을 내밀었다.

       반박하고 싶었지만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없으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괜히 따졌다가 또 골머리 앓는 소리를 몇 분이나 들을 것 같아서 참았다.

         

       이론을 설명했을 뿐인 마야가 괜히 미워졌다.

       그녀의 설명은 왠지 같은 마법사라고 편드는 것처럼 들렸다.

         

       물론 거기에는 그녀의 ‘배운 느낌’에 주눅이 든 자신에 대한 분노도 한몫했다.

         

       원더스타인은 그런 그녀의 마음을 꿰뚫어 본 듯 그녀가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던졌다.

         

       “어떻습니까? 은막의 키네마와 판도라의 탈출 쇼를 비교하면? 순수하게 공연으로만 따졌을 때 말이죠.”

         

       엘라는 화내던 것을 멈췄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고 방금 본 쇼를 처음부터 끝까지 떠올려가며 모든 요소를 냉정하게 평가했다. 환상 쇼에 대한 그녀 자신의 반감조차 배제했다.

         

       그녀는 곧 눈을 뜨며 숫자 하나를 말했다.

         

       “75%.”

       “판도라 마술쇼는 아까 81%라고 했죠. 역시 판도라가 더 우수한가요?”

         

       원더스타인도 쇼를 다 보고 나서 왠지 그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교한 환상에 확실히 감탄하긴 했다.

       그러나 그것도 키네마 초반부와 순간순간뿐.

         

       결국에 키네마의 본질은 연극과 같았다.

       인물의 연기와 극본의 내용이 중요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키네마는 보통의 연극에 비해 많이 모자랐다.

       캐릭터의 표정이나 움직임이 멀리서 볼 때는 물랐는데 확대해서 보면 진짜 인간과 달리 자연스럽지 못했다.

       스토리도 좋게 말하면 보편적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좀 유치했다.

         

       인물의 표현에 한계가 있으니 자연스레 감정선을 최대한 얕게 처리하고 서사도 액션 위주로 보여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완벽하게 무대의 호흡을 장악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끌려다녔던 루이니의 쇼에 비교하면 약간 모자랐다.

         

       “그럼 이번 대결은 판도라 마술쇼의 승리로 끝날까요?”

       “은막은 방금 본 그 암시 효과가 있잖아요.”

       “핫핫, 저는 그저 내기에 이겼으면 해서 판도라의 편을 들겠습니다!”

       “글쎄……. 그것보다 더 문제는……. 아니야. 시간이 지나 봐야 알겠지.”

         

       당연히 탈출왕이 이길 거라고 장담할 줄 알았던 엘라가 왠지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가 대답을 미룬 것의 의미를 원더스타인은 3일째에 알 수 있었다.

         

       이날 탈출왕이 선보인 것은 ‘불꽃 속의 탈출’과 ‘암반 깨기 탈출’이었다.

       엘라는 조금 지친 표정으로 홀을 걸어 나오면서 말했다.

         

       “67%.”

         

       아무도 엘라에게 왜 평가가 낮아졌냐고 묻지 않았다.

       둘째 날에는 긴가민가했지만, 그들도 이제 느끼는 것이다.

       탈출왕이 지쳤다는 것을.

         

       엘라는 매점에 앉아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공연에 있어서 완성도 다음으로 중요한 게 바로 항상성이야.”

         

       그녀는 유라크네가 매점에서 사 온 음식들이 레몬 치즈 케이크와 허니 탄산수인 것을 보고 한숨을 살짝 내쉬고는 집어 들었다.

       괜히 은막의 의도에 끌려가는 것 같아 꺼렸던 음식들이었는데, 언니가 더는 참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니, 어떻게 보면 완성도보다 중요하지. 어느 곳에서, 어느 때에, 누가 연기해도 공연의 질은 일정하게 유지되어야 해.”

         

       그녀는 레몬 치즈 케이크가 맛있다는 혀의 주장을 마음속으로 부인하며 설명을 계속했다.

         

       “판도라 마술쇼는 마술사 루이니 1인의 기량에 의존도가 매우 높아. 이는 항상성에 있어서 매우 치명적이야. 루이니가 발이라도 접질리면 쇼는 끝이니까. 대체할 사람도 없고. 그래서 그는 무조건 자기 몸을 최상의 컨디션으로 관리해야 해. 그런데 이번엔 그러지 않았지. 상식적으로 하루에 10시간에 가까운 1인 독무대는 하루만 해도 지쳐서 쓰러지기 마련이야. 그런데 루이니는 그 늙은 몸을 이끌고 3일이나 반복했어.”

         

       오늘 있는 불꽃 마술도 첫날 유리관 탈출에서 보였던 ‘탈출 실패’ 연기가 들어가 있었다.

       원래는 몸에 불을 두르고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바닥을 뒹굴고 죽는 척을 하다가 펑 하고 터지고는 객석 위에 나타나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루이니는 불붙고 뒹구는 리액션을 생략하고 바로 폭발한 뒤 객석 위에 나타났다.

       그 움직임도 자연스럽지 못하고, 중간에 비는 시간도 첫날과 둘째 날과 비교해 상당히 길었다.

       허공에 나타난 그의 얼굴에도 지친 기색이 완연했다.

         

       확실히 그의 체력이 떨어진 것이 눈에 보였다.

         

       “환상 쇼는 그와 완전히 대척점에 서 있지. 인간이 감히 흉내 내기 힘들 정도로 일정한 항상성을 가지지.”

         

       일행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메모리 디스크를 가만히 재생하면 언제든 똑같은 영상이 흘러나오는 환상 쇼.

       중간에서 조율하는 단장의 역할과 변사인 부단장의 역할이 있기는 했지만, 다른 공연에 비해서는 압도적으로 일정한 질을 유지하기 편했다.

         

       원래 루이니도 제자들에게 중간 코너를 맡기는 식으로 체력을 관리했다.

       그러나 이번은 단 6일 동안의 단기 승부였기에, 루이니도 무리해서 텐션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체력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했다.

         

       루이니의 기량은 4일 째에 50%대까지 추락했다.

         

       결국에 그날 오후 공연은 판도라의 다른 곡예사들의 코너가 대신했다.

         

       온몸에 쇠사슬을 두른 남자, 사슬 꼬리는 달군 금속막대기를 이용한 유리공예를 선보였다.

       벌겋게 달아오른 물컹물컹한 슬라임 같은 것이 허공에 뜨거운 궤적을 그렸다.

         

       추첨식에 루이니와 함께 나타났던 육면체를 든 여자는 연체술의 달인이었다. 그녀는 허리를 거의 반 접듯 뒤로 꺾고는 필과 다리를 등과 허리 사이에 꼬고 쑤셔 넣어서 그녀가 들고있던 상자 안에 척 들어가는 묘기를 보였다.

         

       엘라는 각각 46%, 39%로 평가했다.

       탈출왕의 마술보다 떨어졌지만, 덕분에 루이니는 출연 부담이 줄어든 덕분에 그의 탈출 마술은 70%대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렇게 보면 은막이 우위에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꼭 그렇지 않았다.

         

       항상성이 일정하다는 게 공연에서는 무조건 플러스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은막의 키네마는 완벽에 가까운 항상성을 유지했다.

       반대로 말해서 여러 번 반복해서 볼 가치가 없다는 말이 되었다.

         

       이번 승부에 큰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은 고액 단위의 코인을 소유한 VIP 관객이었다.

       그들은 주로 6일권을 끊었다.

         

       당일권, 2일권을 끊은 사람들과 달리 그들은 쇼를 며칠째 반복해서 즐기고 있었다.

         

       은막의 키네마는 금방 지루해졌다.

       매번 시나리오를 바꿀 여력이 안 됐기에 결국 본 것을 또 봐야 했는데, 그냥 생으로 똑같았기에 다시 볼 가치가 적었다.

         

       반면, 판도라 마술쇼는 같은 종류의 마술을 해도 다시 즐기기 좋았다.

       업계에 잔뼈가 굵은 루이니의 입담과 흡입력은 매번 다른 재미를 선사했다.

         

       “이것이 바로 거장의 힘이지!”

         

       엘라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렇게 5일까지는 둘의 성적은 박빙이었다.

       근소하게 판도라 쪽이 우위라 원더스타인과 마야는 각각 200 지르코인을 내기의 대가로 내야 했다.

         

       업계의 정상에 오른 둘의 대결은 2주 차의 참가자들이 비교되는 걸 걱정할 정도로 훌륭했다.

         

       그렇게 마지막 6일째가 끝나고, 드디어 결과 발표의 시간이 다가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졸린 석상 님, 2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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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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