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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9

       “졸리구나, 오늘도 신세 좀 지러…… 흐야아아악!?”

       

        어느 날 아침.

        평소처럼 비적대는 걸음으로 사감실에 들어온 아녜스가 기함을 내질렀다.

        데워 둔 이불 속에 이미 선객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린아이가 양팔을 벌린 것만큼 커다란 고깔모자를 쓴 금발의 소녀가 침대에 누워 있다.

        아녜스는 곧장 방문을 걸어잠그고 내게 물었다.

       

        “목격자는 없었겠지?”

        “네?”

        “클락아, 나도 네가 언젠가 작은 탈선을 할 때가 오리란 걸 알았다. 너는 못돼 먹은 다른 녀석들과는 반대로 지금껏 착실히 살아왔지만 살다 보면 누구나 실수를 저지르기 마련 아니냐.”

        “전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요.”

        “하지만 납치는 좋지 않으니 빨리 원래 있던 곳에 돌려놓는 편이 낫겠다. 필요하다면 내가 같이 가서 부모에게 사과를 하마.”

       

        오늘도 무사히 밤샘 갤질을 끝마친 내게 슬픔이 섞인 연민의 시선이 꽂힌다.

        아무래도 아녜스는 내가 그녀를 유괴했다고 여기는 듯 했다.

        당연히 이는 터무니없는 소리였고, 단지 자기가 대현자 메릴린이라 주장하는 정신나간 꼬맹이를 재워줬을 뿐이었다.

        미아가 부모를 찾을 때까지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도 사감의 의무이니까.

       

        “터무니 없는 소립니다 스승님! 어찌 해주학파의 칠현자께서 순수한 제자의 진의를 의심하실 수 있습니까!”

        “그, 그렇구나! 허면 저 녀석은 대체 뭐란 말이냐?”

        “일주일쯤 전에 우연히 만났습니다. 행색도 남루하고 머리도 나빠 보이는 게 아무래도 버려진 아이인 모양입니다. 우선 치안부에 연락을 넣어두었으니 조만간 집으로 돌아가게 될 겁니다.”

        “누구 머리가 나쁘다고?”

       

        시끄러워서 깼나?

        소회의실에서 만난 이후 줄곧 잠만 자던 메릴린은 어느새 몸을 일으킨 채 우리 두 사람을 노려보는 중이었다.

       

        “그리 긴 시간 잠든 것도 아니건만 마탑의 권위는 어지간히 추락한 것 같네. 자랑스런 칼레이도스의 기숙사장을 듣도 보도 못한 변방 학파 출신 따위가 차지하고 있을 줄이야.”

        “…….”

       

        입꼬리가 비틀릴 때마다 완전히 자취를 감추어 버린 동상 대신 기숙사 입구에 세워놔도 전혀 위화감이 없을 정도로 꼭 닮은 전투적인 미소가 드러난다.

        번개라도 맞은 듯한 부스스한 머리카락, 로브에 달린 브로치는 세 줄기 뇌전을 뜻하는 초기 칼레이도스 학파의 문양이었다.

        비정상적으로 커다란 모자 역시 수백 년 전, 마탑이 세워질 당시의 마법사들의 복식 그대로였다.

        당시에는 위계가 높을수록 챙을 높게 만드는 게 유행이었다나.

       

        그러나 나는 그녀가 정말로 대현자 메릴린과 동일인물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마탑이 탄생한 시절 활동했던 전설적인 마법사라기엔 그 위엄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해주학파라고 했나? 거기에 뭐? 칠현자아~? 마력의 편린조차 느껴지지 않는 이딴 꼬맹이가?”

        “무, 무어라고!? 그런 네 녀석도 신장은 나보다 아주 조금 클 뿐이지 않느냐!!”

        “뭐야, 마력이 아니라 키 얘기에 발끈한 거야? 안타깝네, 지금은 비록 수명을 늘린 부작용 때문에 이 꼴이지만 본래 나는 ‘장신의 메릴린’이라 불릴 정도로 엄청 컸거든!”

        “아~ 과거의 영광을 꺼내는 것이냐. 허면 본인은 저주로 키가 작아지기 전까지 저 정수기 두 대를 이어붙인 것보다 눈높이가 위였다!”

       

        그건 좀 아니지 않나.

        악의의 층에서 과거의 아녜스를 본 적 있는 나로서는 쉬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이었다.

       

        “말로는 안 되겠네, 한번 해보자는 거지!? 증류된 구름 속에서 태동한 번개의 심장이여…… 아악!”

        “어리석구나, 나는 지금껏 제자와의 베개싸움에서 이 무기를 쥐었을 때 져본 적이 없다. 이래 봬도 목침보다 단단한 니플헤이르의…… 기햐아악!?”

        “미, 미친 년이 다짜고짜 얼음 덩어리로 사람 머리를 후려쳐!? 넌 안 되겠다. 에잇, 에잇!!”

        “으악! 따갑다! 손에서 정전기를 뿌리지 말거라! 클락아, 이 녀석을 좀 말려 주거라!!”

       

        먼저 선빵을 쳐놓고 추하게 도움의 손을 뻗는 스승의 모습.

        물론 같은 해주학파로서 어디서 굴러먹다 온 줄도 모르는 칼레이도스 따위를 도와줄 이유는 없었다.

       

        “이기시는 분께는 상으로 따뜻한 코코아와 커피과자를 드리겠습니다.”

        “클락아!?”

        “어떠냐, 아프지? 아프지이~?”

       

        그러나 나는 사악한 마법사를 찌를 창 대신 마법제 때 사용했던 응원봉을 꺼내었다.

        본래라면 슬슬 수면에 들어갈 시간이었지만 짜리몽땅 현자들의 싸움을 구경하는 재미에 피곤함이 싹 날아갔다.

       

        두 사람 다 마력을 제대로 쓸 수 없는지 침대에서 뒤엉켜 서로를 물고 뜯었다.

        나는 승자에게 하사할 검과 트로피를 찾기 위해 사감실을 뒤적거렸다.

        마침 학회의 수상자에게 주기 위해 만든 견본품이 서랍 구석에서 튀어나왔다.

       

        [대상 : 니플헤이르의 설화수 / 수상자 : 비나 네타니아, 클락 데스몬드]

       

        투명한 눈송이가 담긴 유리잔 모양의 트로피 아래에 비나와 나의 이름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이름은 비나가 ‘최강비나얼음물’이라고 지으려던 것을 치맛자락을 잡고 매달려 바꾼 것이었다.

        실제로 대상과 황실의 투자를 받을지 여부는 별개이지만 의외로 장사수완이 있는 니플헤이르이니만큼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싶었다.

        이걸로 내가 비나와 붙어다닐 때마다 노심초사하는 크리스티나도 걱정을 한시름 덜어 최근엔 극지에 잠깐 다녀오지 않겠냐는 제안도 받은 상태였다.

       

        “항복해 항복, 가짜 칠현자 주제에…… 악! 무, 물었어!?”

        “아으아가으아그으!”

        “놔아, 놔 이 자식아! 으득, 안 되겠다. 그 녀석에게 쓰려고 아껴둔 거지만 이렇게 된 이상……!”

        “기햐아아악!?”

       

        박빙으로 치닫던 승부는 메릴린이 갑자기 자기 가슴에 손을 얹자 마무리 되었다.

        갑자기 몸에서 샛노란 전류가 파지직 튀더니 아녜스를 감전시켜버린 것이었다.

        기숙사의 전기가 픽! 하고 나가며 상시 커튼을 쳐 놓고 있는 방 안이 어두워졌다.

        동시에 칼을 찾던 나는 청소 도구함에서 튀어나온 한 자루의 은빛 장도를 발견했다.

       

        꽤 오랫동안 잊고 있던 녀석이었다.

       

       

       

        *

       

        “프아, 나쁘지 않네. 예전에 여긴 모험가 조합이 들어와 있었는데 언제 카페로 바뀌었담?”

        “한 이백 년쯤 된 것 같네요. 저기 벽에 새겨진 낙서들을 보니까.”

       

        나는 기절해버린 패배자(아녜스)를 침대에 눕혀놓고 승자와 함께 바깥으로 나왔다.

        카페에서 코코아로 입술을 적힌 메릴린은 조금 전보다 한층 성숙해져 있었다.

        땅에 질질 끌리던 로브 자락은 새하얀 허벅지의 시작부분까지 올라왔고, 어깨까지 닿던 머리카락도 어느새 허리춤으로 내려와 있었다.

        나는 품에서 꺼낸 머리끈으로 그것을 두 가닥으로 묶은 그녀에게 트로피와 살살이를 건네 주었다.

       

        “이게 뭔데?”

        “제 1회 칠현자 호소인 배틀에서 승리하신 보상입니다. 아, 칼은 나중에 회수할 거에요. 나름 중요한 노예, 아니 물건이라서.”

        “……참 재미있는 녀석이네 너는. 그리고 칠현자 호소인이라니, 난 진짜 칠현자야.”

       

        몸이 좀 자라긴 했지만 동상으로까지 만들어진 사람이 현재까지 살아있다고는 믿기 어려운 노릇이었다.

        수명이 일반인보다 긴 순혈 마법사라 해도 노화로부터 자유롭기란 불가능하니까.

        다행히 내겐 갤러리에서 수많은 컨셉충들을 상대하며 몸으로 체득한 노하우가 있었다.

        나는 따뜻한 코코아 한 잔을 더 주문하며 그녀의 손을 잡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네, 맞아요. 그러니까 저희 이거 다 마시면 부모님을 찾으러 가볼까요?”

        “내 말을 듣질 않잖아!”

        “치안부가 못마땅하시면 칼레이도스 학파를 연결시켜 드릴게요. 분명 제가 부리는 노예 중에 하나가 그쪽 학파였거든요.”

        “넌 무슨 노예상이야……? 아무튼, 나는 지금 네가 건네준 이 검이랑 비슷한 상태였던 거야. 바보처럼 공역의 재화를 탐낸 건 아니지만.”

        “어떻게 아셨죠?”

        “미세한 생체전기가 느껴지거든. 거기에 나 정도 되는 마법사면 전기 속 마력을 해석해서 정보로 가공하는 것도 가능하지. 만상의 스크롤에 여자…… 그리고 자꾸 누굴 찌르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아마 나인가 보군.

        솔직히 말해 비아지오의 마법에 당해 고장난 살살이를 그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변명을 해보자면 학회 때문에 바빴고, 내가 알고 있는 지식으론 녀석을 고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부품은 본래 수명이 다하는 법…….”

        “응?”

        “아뇨, 아닙니다. 뭐라고 하셨죠?”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고 했어. 원래 좀 더 오래 잠들어 있으려고 했는데 바깥이 소란스러워서 깨어났거든.”

        “소란이요?”

        “몇 주일 전부터 마력장에 불특정 다수의 마력이 얽히더라고. 분명 동상은 사람이 최대한 적은 곳에 두라고 했는데 어쩌다 여기에 와 있게 된 건지.”

       

        학회 때 크로네 팀이 원활한 전파 수신을 위해 동상을 가져다 쓴 영향인 듯 했다.

        자신은 어디까지나 스스로의 의지로 잠들어 있었다고 설명하는 메릴린.

        확실히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해 보니 아무렇지도 않게 살살이의 비밀을 꿰뚫어보는 걸 보니 영 못 믿을 발언은 아니다 싶었다.

       

        코코아를 두 잔째 비운 그녀는 새초롬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너, 이름이 클락이라고 했지?”

        “네, 그렇습니다.”

        “나를 일주일 간 간호한 것도 그렇고, 자기 스승 앞에서 편 들지 않은 것도 그렇고, 마법사 중에서도 보기 드물게 선하거나 최소한 머리회전이 빠른 편인 것 같네. 그러니 제안을 하나 할게.”

        “어떤 제안인가요?”

       

        딱히 칼레이도스 학파의 창시자에게 잘 보이려는 의도는 없었다.

        깨어나서 줄곧 잠만 자기에 침대에 박아두고 갤질에 몰두했을 뿐이었으니까.

        그러나 인사불성 상태였던 자신의 티끌 하나 건드리지 않은 것이 제법 기꺼웠는지 메릴린은 가벼운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나를 30층으로 데려다 줘. 그러면 검 고쳐줄게.”

        “30층이요? 어째서죠?”

        “이유는 승낙하면 말해줄 테니까 결정만 해. 아까 소중한 거라며? 이거.”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검을 도로 받아들었다.

        위치노트를 확인해보니 아픈 녀석의 ‘사, 사…….’라는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마침 30층의 시련은 내가 이번에 도전해야 하는 것이기도 했기에 조건은 맞아 떨어졌다.

        당장이라도 고개를 끄덕이려던 순간, 주머니에서 멜이 준 통신 수정이 잡혔다.

       

        ‘그러고 보니 마지막 불가사의를 보면 연락해달라고 했었지.’

       

        아마 메릴린이 멜이 그토록 찾아다니던 마탑의 유산일 것이다.

        잘은 몰라도 그녀에게 연락하면 살살이를 고칠 기회는 물 건너가거나, 최소한 시기가 멀어질 터.

        하지만 황실과 직통으로 연결된 라인인 만큼 어마어마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뭘 그렇게 오래 고민해?”

        “…….”

        “희한한 녀석이네. 나 이거 한 잔 더 마신다?”

       

        그날 카페의 매출은 다른 날에 비해 30퍼센트나 더 나왔다.

        살살이는 아주 오랫동안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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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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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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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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