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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9

       

       “정령들을 모아서 비처럼 물을 뿌리면 안되는 거야?”

        ​

        많은 수의 엘프들이라면 가능할 지도 모른다.

        ​

        땅을 솟아 올려 성벽을 만드는 종족이지 않은가.

        ​

        하지만 세레나의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

        “좁은 구역이라면 가능하지만 산 전체는 불가능 해요.”

        ​

        “너무 넓어서 그런가?”

        ​

        “네, 계속 비를 뿌리려면 들어가는 물의 양도 많아지거든요.”

        ​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다.

        ​

        이 산 전체에 한두방울 씩만 뿌려도 양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스윽 –

       ​

       고개를 들어보니, 하늘도 맑았다.

       ​

       새하얀 구름들 사이로 내리쬐는 햇빛도 눈부셨다.

       ​

       비가 올 건덕지가 없는 상황.

       ​

       먹구름이라도 있었으면 부담이 덜 했을 텐데.

       ​​

       뭉게구름이라도 있는게 다행이었다.

       

        “이거 뭘 어떻게 빌어야 하려나…”

        ​

        기우제를 지내는 대상이 무려 정령왕이다.

        ​

        엘프들조차 직접적으로 만나보지 못하는 존재.

        ​

        나와의 접점 또한 없었던 존재이기 때문에 걱정이 되기는 했다.

        ​

        “접점이 없지는 않지.”

        ​

        기대를 걸어보는 것이 하나 있기는 하다.

       

       지금까지 정령들과 만날 때마다 있었던 일들.

       

       분명히 일반적인 현상은 아니었으니까.

        ​

        “엘프들은?”

        ​

        “이제 곧 산을 오를 거에요.”

        ​

        “아직 오르지 말라고 전해줘.”

        ​

        지금도 나쁘지 않지만 조금 더 좋은 때가 있다.

        ​

        운기들이 흐르다 서로 맞물리는 순간이 있을것이다.

        ​

        상황으로 보건데 그때는 아마….

        ​

        “먹구름이 끼기 시작하면 올라가야해.”

        ​

        “바로 전할게요.”

        ​

        “피리는 안불어도 괜찮아.”

        ​

        세레나의 고요한 눈이 나에게로 향했다.

        ​

        또 내가 힘들어 할까봐 걱정을 하는 기색이었다.

        ​

        피리야 불어주면 좋겠지만, 세레나는 할 일이 있다.

        ​

        “대신 물의 정령을 소환해 줄래?”

        ​

        끄덕.

        ​

        세레나가 허공으로 손을 뻗으며 목소리를 냈다.

        ​

        “운다인.”

        ​

        스르륵 –

        ​

        물이 모여들며 한 형체를 만들어 냈다.

        ​

        조그만 크기를 가졌던 운디네와는 다르게 사람과 비슷한 크기.

        ​

        반투명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은 운디네와 비슷한 기운을 풍기는 정령이었다.

        ​

        꾸벅 –

        ​

        우아한 동작으로 나에게 인사를 건넨 운다인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내가 올리는 제사가 정령왕에게 닿을 것이라 확신 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

         “나한테 계속 인사를 한다는 건, 너희들은 이미 나를 알고 있다는 거지?”

        ​

        싱긋 –

        ​

        운다인이 만들어낸 미소 하나로 대답이 되었다.

        ​

        정령들이 나에게 인사를 하는 이유를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어찌되었든 신의 시선이 닿아 있다는 증거이리라.

        ​

        세레나가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

        “정령왕의 이름은 엘라임이에요. 혹시 정령왕을 소환하시려는 건 아니죠?”

        ​

        엘프도 소환 못하는 정령왕을 내가?

        ​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

        나는 마나조차 다루지 못하는 사람이니까.

        ​

        “기우제는 그런게 아니야. 지극한 정성과 마음으로 하는 거지.”

        ​

        신령님께 도움을 청할때는 항상 저 두가지를 염두해 두어야 한다.

        ​

        이곳의 마법이나 정령술 처럼 힘을 쓰는 것이 아니다.

        ​

        간절한 마음으로 신을 감격시키는 것에 더 가깝다고 해야 할까.

       

       ‘신이 감동하여 눈물을 흘렸다.’라고 표현하면 얼추 비슷할 것이다.

        ​

       “운디네들도 더 소환해줘.”

       

        물의 정령은 그자체가 물이기도 했으니 정수를 떠놓는 것 보다 효과가 확실할 것이다.

       

       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는 것이다.

        ​

        “루나도 잠깐 내려가자.”

        ​

        도리도리 –

        ​

        “꺄우…!”

        ​

        “착하지?”

        ​

        루나가 싫다는 듯 팔을 벌려서 등에 붙어 버렸다.

        ​

        포옥 –

        ​

        곤란한 상황이다.

        ​

        이렇게 되면 모양새가 굉장히 이상해진다.

        ​

        아기를 등에 업고 한손에는 방울을.

        ​

        그리고 한손에는 성검을 들고 춤을 춰야 하는 상황.

        ​

        칼춤치고는 상당히….

        ​

        “하부…!”

        ​

        “알겠어, 알겠어!”

        ​

        “아우으! 하부…!”

       

       루나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듯 했다.

       

       조금 있으면 일리아의 시선이 이곳에 닿을 것이라는 걸.

        ​

        등을 몇번 움직여 둥기둥기를 해준 나는 방울을 들어 올렸다.

       

       기우제를 시작해야 할 시간이었다.

       

        딸랑 –

        ​

        “신령님께 비나이다.”

        ​

        딸랑 –

        ​

        “부디 제를 들어주소서.”

        ​

        스으으 –

        ​

        한 줄기 바람이 촛불을 휘감았다.

        ​

        화르륵 –

        ​

        그 옆으로 촉촉한 냄새가 느껴졌다.

        ​

        맑고 깨끗한 물의 냄새.

        ​

        안이 들여다 보일 듯 투명한 존재감.

        ​

        물을 타고 기도가 전해질 것이다.

        ​

        “물을 다스리는 신령님이시여.”

        ​

        힘차게 몸을 띄워 올리며 팔을 휘둘렀다.

        ​

        딸랑 –

        ​

        딸랑 –

        ​

        의식이 내려 앉았다.

        ​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되뇌었다.

        ​

        이곳으로 출발하기 전에 봤던 얼굴들을.

        ​

        그들의 사주와 기운들을 계속해서 내뱉었다.

       

       전부 살리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도 한껏 섞여 있었다.

       

       그와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이 반응들이 터져 나왔다.

        ​

        번쩍 –

        ​

        방울 소리 사이로 파고드는 빛.

        ​

        내 등에서 시작해 성검으로 뻗어나간 빛이 주위를 가득 메웠다.

       

       휘리릭 –

       

       세레나가 소환 한 운디네들 또한 내 주변을 날아다녔다.

       

       방울 소리에 맞춰 흔들리는 것이 꼭 같이 굿판을 뛰어다니는 느낌.

        ​

        찰팍 –

        ​

        마른 땅임에도 발이 닿는 부분이 진흙이라도 된것 마냥 소리를 내었다.

        ​

        동시에 비릿한 흙냄새가 올라 왔지만 여전히 말라있는 땅.

        ​

        이 기사는 대지의 신이라 불리는 일리아가 보내는 화답이었다.

        ​

        “하부!”

        ​

        딸랑 –

        ​

       사아아아 –

        ​

        이번에는 살랑이는 바람이 불어왔다.

        ​

        아까와는 다르게 촉촉함을 품은 바람.

       

       운디네들이 바람에 밀려나며 물의 기운들이 살랑거렸다.

        ​

        사아아아 –

        ​

       잎사귀들이 비벼지며 소리가 들려왔다.

        ​

        세계수가 보내는 가지의 흔들림이었다.

        ​

        딸랑 –

        ​

        “우으…. 나무?”

        ​

        우뚝.

        ​

        뛰어오르던 내 몸을 멈춰 세우며 가만히 섰다.

       

       신들이 찾아 왔으니, 인사라도 올려야 하지 않겠는가.

       

       “할머니를 모시는 이름없는 제자입니다.”

        ​

       나를 소개하기 무섭게 입에서 기름진 맛이 퍼져나갔다.

       

       몸주신의 취향이 나에게도 나타난 것이다.

       

       발복이 생겨난 것이다.

        ​

        등 뒤에서 반가워 하는 듯한 루나의 옹알이가 터져 나왔다.

        ​

        “하무!”

        ​

        세레나의 목소리도 함께 들렸다.

        ​

        “크리스? 루나가 왜 갑자기…”

        ​

        평소의 루나는 조금 조용한 편이라면, 지금은 장난을 치는 듯 방긋거리며 웃고 있었다.

        ​

        즐거워 하는게 당연할 것이다.

        ​

        성녀가 신을 만났으니.

        ​

        “신이 난거야.”

        ​

        “네?”

        ​

        “원래 신기가 있는 사람이 처음 굿판에 들어가면 신나서 춤추고 그래.”

        ​

        생각해보면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

        신내림을 받을때는 주체할 수가 없을 정도였으니.

        ​

        세레나가 당황한 듯 말을 내뱉었다.

        ​

        “저는 왜 아무렇지도 않은거죠? 가지의 흔들림 말고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요.”

        ​

        세레나 역시 원래는 흠칫거리며 몸을 떨고는 했었다.

        ​

        하지만 지금의 경우엔 조금 다르다.

        ​

        세레나가 끼기에는 큰신들이 너무 많이 와버렸으니까.

        ​

        세계수의 배려이지 싶었다.

        ​

        “기를 못편다고 그래. 지금은 촛불도 못 붙일 걸?” 

        ​

        “…”

        ​

        뭔가 석연치 않아 하는 기색이 다분했지만 어쩔 수가 없다.

        ​

        세레나의 역할은 굿을 주관하는게 아니었으니까.

        ​

        “기우제는 벌써 끝난 건가요?”

        ​

        “아니, 이제 시작이야. 도와 주실 분들께 먼저 인사 올린거야.”

        ​

        루나의 웃음소리가 연신 울렸다.

       

       작은 손가락이 여기저기를 오가며 대상들을 가리켰다.

        ​

        “무! 하무! 나무!”

        ​

        푸르르 –

        ​

        “꺄르륵!”

        ​

        푸르르 –

        ​

        다시 한번 방울을 흔들었다.

        ​

        딸랑 –

        ​

        직접적인 공수는 내려오지 않았다.

        ​

        입이 벌어지지도 머릿속에 스치는 장면들도 없었다.

        ​

        점을 보는 자리이기보다는 치성을 드리는 자리에 가까워서 그런 것이다.

       

        딸랑 –

        ​

        물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

        피부로 느껴지는 바람들이 축축히 젖어들었다.

       

       제라는 것은 마음을 담아 기도를 올리는 것이다.

       

       굿이라는 것은 대신 놀아주는 의식이고.

       

       지금은 그 두개가 합쳐진듯 공존하고 있었다.

       

       물의 정령들과 함께 뛰어놀고 있다는 것이 어울릴 것이다.

       

       기존의 기우제와 비교한다면 이상한 형식의 제사.

       

       하지만 상관은 없었다.

       

       물의 정령들이 곧 그 대상이니 저들이 즐기고 있다면 충분하리라.

       

       사아아아 –

       

       번쩍 –

       

       딸랑 –

        ​

       세 신의 시선을 한번에 받으니 압박감이 엄청났다.

       

       나 조차도 어깨가 움츠러드는 느낌.

       

       내 속이 낯낯히 파헤쳐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

       

       하지만 그 속에 분명히 다른 것이 끼어 있었다.

       

       맑고 정순하며 깊은 시선.

       

       바다가 하늘에서 나를 내려다 보는 것만 같은 존재감.

       

       스윽 –

       

       기도 대신에 팔을 들어올려 방울을 휘저었다.

       

       손에 쥔 성검이 저절로 내려가며 바닥을 가리켰다.

       

       굳이 말을 할 필요도 없었다.

       

       무당이 방울을 흔들때는 온 정성이 그곳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닿아있는 시선이 그것을 읽기에는 충분할 터.

       

       지금 흔드는 방울은 내가 정령왕에게 보내는 인사이기도 했다.

       

       휘익 –

       

       온몸이 물에 잠겨 있는 듯 느릿하게 움직였다.

       

       어깨를 흔들었지만 그 이상의 속도는 나오지 않았다.

       

       겨우 만들어 낸 한번의 움직임.

       

       손끝에서 방울이 진동했다.

       

       딸랑 –

       

       그리고 그 순간.

       

       나를 내려다 보던 하늘에 파도가 일기 시작했다.

       

       “…..!”

       

       분명히 구름이 변했다.

       

       새하얗던 뭉게구름의 끝부분이 회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

        ​

        ​

        ​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사실 요즘 슬럼프가 왔는지 글이 잘 안써졌었는데 이번편 끝날때 느낌이 잡혔습니다!

    세상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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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세계의 무당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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