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령들을 모아서 비처럼 물을 뿌리면 안되는 거야?”
많은 수의 엘프들이라면 가능할 지도 모른다.
땅을 솟아 올려 성벽을 만드는 종족이지 않은가.
하지만 세레나의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좁은 구역이라면 가능하지만 산 전체는 불가능 해요.”
“너무 넓어서 그런가?”
“네, 계속 비를 뿌리려면 들어가는 물의 양도 많아지거든요.”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다.
이 산 전체에 한두방울 씩만 뿌려도 양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스윽 –
고개를 들어보니, 하늘도 맑았다.
새하얀 구름들 사이로 내리쬐는 햇빛도 눈부셨다.
비가 올 건덕지가 없는 상황.
먹구름이라도 있었으면 부담이 덜 했을 텐데.
뭉게구름이라도 있는게 다행이었다.
“이거 뭘 어떻게 빌어야 하려나…”
기우제를 지내는 대상이 무려 정령왕이다.
엘프들조차 직접적으로 만나보지 못하는 존재.
나와의 접점 또한 없었던 존재이기 때문에 걱정이 되기는 했다.
“접점이 없지는 않지.”
기대를 걸어보는 것이 하나 있기는 하다.
지금까지 정령들과 만날 때마다 있었던 일들.
분명히 일반적인 현상은 아니었으니까.
“엘프들은?”
“이제 곧 산을 오를 거에요.”
“아직 오르지 말라고 전해줘.”
지금도 나쁘지 않지만 조금 더 좋은 때가 있다.
운기들이 흐르다 서로 맞물리는 순간이 있을것이다.
상황으로 보건데 그때는 아마….
“먹구름이 끼기 시작하면 올라가야해.”
“바로 전할게요.”
“피리는 안불어도 괜찮아.”
세레나의 고요한 눈이 나에게로 향했다.
또 내가 힘들어 할까봐 걱정을 하는 기색이었다.
피리야 불어주면 좋겠지만, 세레나는 할 일이 있다.
“대신 물의 정령을 소환해 줄래?”
끄덕.
세레나가 허공으로 손을 뻗으며 목소리를 냈다.
“운다인.”
스르륵 –
물이 모여들며 한 형체를 만들어 냈다.
조그만 크기를 가졌던 운디네와는 다르게 사람과 비슷한 크기.
반투명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은 운디네와 비슷한 기운을 풍기는 정령이었다.
꾸벅 –
우아한 동작으로 나에게 인사를 건넨 운다인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내가 올리는 제사가 정령왕에게 닿을 것이라 확신 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나한테 계속 인사를 한다는 건, 너희들은 이미 나를 알고 있다는 거지?”
싱긋 –
운다인이 만들어낸 미소 하나로 대답이 되었다.
정령들이 나에게 인사를 하는 이유를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어찌되었든 신의 시선이 닿아 있다는 증거이리라.
세레나가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정령왕의 이름은 엘라임이에요. 혹시 정령왕을 소환하시려는 건 아니죠?”
엘프도 소환 못하는 정령왕을 내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마나조차 다루지 못하는 사람이니까.
“기우제는 그런게 아니야. 지극한 정성과 마음으로 하는 거지.”
신령님께 도움을 청할때는 항상 저 두가지를 염두해 두어야 한다.
이곳의 마법이나 정령술 처럼 힘을 쓰는 것이 아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신을 감격시키는 것에 더 가깝다고 해야 할까.
‘신이 감동하여 눈물을 흘렸다.’라고 표현하면 얼추 비슷할 것이다.
“운디네들도 더 소환해줘.”
물의 정령은 그자체가 물이기도 했으니 정수를 떠놓는 것 보다 효과가 확실할 것이다.
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는 것이다.
“루나도 잠깐 내려가자.”
도리도리 –
“꺄우…!”
“착하지?”
루나가 싫다는 듯 팔을 벌려서 등에 붙어 버렸다.
포옥 –
곤란한 상황이다.
이렇게 되면 모양새가 굉장히 이상해진다.
아기를 등에 업고 한손에는 방울을.
그리고 한손에는 성검을 들고 춤을 춰야 하는 상황.
칼춤치고는 상당히….
“하부…!”
“알겠어, 알겠어!”
“아우으! 하부…!”
루나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듯 했다.
조금 있으면 일리아의 시선이 이곳에 닿을 것이라는 걸.
등을 몇번 움직여 둥기둥기를 해준 나는 방울을 들어 올렸다.
기우제를 시작해야 할 시간이었다.
딸랑 –
“신령님께 비나이다.”
딸랑 –
“부디 제를 들어주소서.”
스으으 –
한 줄기 바람이 촛불을 휘감았다.
화르륵 –
그 옆으로 촉촉한 냄새가 느껴졌다.
맑고 깨끗한 물의 냄새.
안이 들여다 보일 듯 투명한 존재감.
물을 타고 기도가 전해질 것이다.
“물을 다스리는 신령님이시여.”
힘차게 몸을 띄워 올리며 팔을 휘둘렀다.
딸랑 –
딸랑 –
의식이 내려 앉았다.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되뇌었다.
이곳으로 출발하기 전에 봤던 얼굴들을.
그들의 사주와 기운들을 계속해서 내뱉었다.
전부 살리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도 한껏 섞여 있었다.
그와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이 반응들이 터져 나왔다.
번쩍 –
방울 소리 사이로 파고드는 빛.
내 등에서 시작해 성검으로 뻗어나간 빛이 주위를 가득 메웠다.
휘리릭 –
세레나가 소환 한 운디네들 또한 내 주변을 날아다녔다.
방울 소리에 맞춰 흔들리는 것이 꼭 같이 굿판을 뛰어다니는 느낌.
찰팍 –
마른 땅임에도 발이 닿는 부분이 진흙이라도 된것 마냥 소리를 내었다.
동시에 비릿한 흙냄새가 올라 왔지만 여전히 말라있는 땅.
이 기사는 대지의 신이라 불리는 일리아가 보내는 화답이었다.
“하부!”
딸랑 –
사아아아 –
이번에는 살랑이는 바람이 불어왔다.
아까와는 다르게 촉촉함을 품은 바람.
운디네들이 바람에 밀려나며 물의 기운들이 살랑거렸다.
사아아아 –
잎사귀들이 비벼지며 소리가 들려왔다.
세계수가 보내는 가지의 흔들림이었다.
딸랑 –
“우으…. 나무?”
우뚝.
뛰어오르던 내 몸을 멈춰 세우며 가만히 섰다.
신들이 찾아 왔으니, 인사라도 올려야 하지 않겠는가.
“할머니를 모시는 이름없는 제자입니다.”
나를 소개하기 무섭게 입에서 기름진 맛이 퍼져나갔다.
몸주신의 취향이 나에게도 나타난 것이다.
발복이 생겨난 것이다.
등 뒤에서 반가워 하는 듯한 루나의 옹알이가 터져 나왔다.
“하무!”
세레나의 목소리도 함께 들렸다.
“크리스? 루나가 왜 갑자기…”
평소의 루나는 조금 조용한 편이라면, 지금은 장난을 치는 듯 방긋거리며 웃고 있었다.
즐거워 하는게 당연할 것이다.
성녀가 신을 만났으니.
“신이 난거야.”
“네?”
“원래 신기가 있는 사람이 처음 굿판에 들어가면 신나서 춤추고 그래.”
생각해보면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신내림을 받을때는 주체할 수가 없을 정도였으니.
세레나가 당황한 듯 말을 내뱉었다.
“저는 왜 아무렇지도 않은거죠? 가지의 흔들림 말고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요.”
세레나 역시 원래는 흠칫거리며 몸을 떨고는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경우엔 조금 다르다.
세레나가 끼기에는 큰신들이 너무 많이 와버렸으니까.
세계수의 배려이지 싶었다.
“기를 못편다고 그래. 지금은 촛불도 못 붙일 걸?”
“…”
뭔가 석연치 않아 하는 기색이 다분했지만 어쩔 수가 없다.
세레나의 역할은 굿을 주관하는게 아니었으니까.
“기우제는 벌써 끝난 건가요?”
“아니, 이제 시작이야. 도와 주실 분들께 먼저 인사 올린거야.”
루나의 웃음소리가 연신 울렸다.
작은 손가락이 여기저기를 오가며 대상들을 가리켰다.
“무! 하무! 나무!”
푸르르 –
“꺄르륵!”
푸르르 –
다시 한번 방울을 흔들었다.
딸랑 –
직접적인 공수는 내려오지 않았다.
입이 벌어지지도 머릿속에 스치는 장면들도 없었다.
점을 보는 자리이기보다는 치성을 드리는 자리에 가까워서 그런 것이다.
딸랑 –
물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피부로 느껴지는 바람들이 축축히 젖어들었다.
제라는 것은 마음을 담아 기도를 올리는 것이다.
굿이라는 것은 대신 놀아주는 의식이고.
지금은 그 두개가 합쳐진듯 공존하고 있었다.
물의 정령들과 함께 뛰어놀고 있다는 것이 어울릴 것이다.
기존의 기우제와 비교한다면 이상한 형식의 제사.
하지만 상관은 없었다.
물의 정령들이 곧 그 대상이니 저들이 즐기고 있다면 충분하리라.
사아아아 –
번쩍 –
딸랑 –
세 신의 시선을 한번에 받으니 압박감이 엄청났다.
나 조차도 어깨가 움츠러드는 느낌.
내 속이 낯낯히 파헤쳐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
하지만 그 속에 분명히 다른 것이 끼어 있었다.
맑고 정순하며 깊은 시선.
바다가 하늘에서 나를 내려다 보는 것만 같은 존재감.
스윽 –
기도 대신에 팔을 들어올려 방울을 휘저었다.
손에 쥔 성검이 저절로 내려가며 바닥을 가리켰다.
굳이 말을 할 필요도 없었다.
무당이 방울을 흔들때는 온 정성이 그곳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닿아있는 시선이 그것을 읽기에는 충분할 터.
지금 흔드는 방울은 내가 정령왕에게 보내는 인사이기도 했다.
휘익 –
온몸이 물에 잠겨 있는 듯 느릿하게 움직였다.
어깨를 흔들었지만 그 이상의 속도는 나오지 않았다.
겨우 만들어 낸 한번의 움직임.
손끝에서 방울이 진동했다.
딸랑 –
그리고 그 순간.
나를 내려다 보던 하늘에 파도가 일기 시작했다.
“…..!”
분명히 구름이 변했다.
새하얗던 뭉게구름의 끝부분이 회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사실 요즘 슬럼프가 왔는지 글이 잘 안써졌었는데 이번편 끝날때 느낌이 잡혔습니다!
세상 행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