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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9

       

       

       

       

       

       79화. 검은 역병 ( 2 )

       

       

       

       

       

       여인을 등에 업고 빠르게 달린 로한. 어느새 그들이 머무는 야영장에 가까워졌다.

       작은 마을에는 그들이 머물 숙소가 없어 천막을 설치해 만들어둔 야영장이다.

       

       로한이 크게 소리치며 뛰어들었다.

       

       

       “사제님들ㅡ!! 환자입니다, 환자!!”

       

       

       환자라는 외침에 천막을 젖히고 뛰쳐나오는 사제들. 그중에는 핑크머리 루엘 사제도 있었다.

       

       

       “역병이 의심되는 환자입니다! 다들 코와 입을 가리세요!!”

       

       

       한스가 데이지를 품에 안고 외쳤다. 뛰쳐나오던 사제들이 도로 들어가더니, 각자 깨끗한 천으로 코와 입을 가리고 나왔다.

       

       성기사들은 신성력으로 몸을 보호할 수 있었지만, 사제들은 그리할 수 없기에 코와 입을 철저하게 가렸다.

       

       

       “이쪽, 이쪽으로 눕히면 됩니다.”

       

       

       로한이 조심스럽게 여인을 내려놨다. 창백하다 못해 새파래진 여인의 얼굴. 사제들은 침착하게 여인의 몸을 가린 천을 치워냈다.

       

       

       “어흡!”

       

       “세상에…”

       

       

       사제들의 입에서 안타까움의 탄식이 터져 나왔다. 여인의 몸은 참담했다. 

       

       겨드랑이와 오금, 팔꿈치와 목에는 붉은 붓기가 종양처럼 부풀어 올랐고, 검은 반점들은 여인의 몸을 빼곡하게 뒤덮으며 흰 살갗을 가렸다.

       

       

       “…우선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봅시다.”

       

       

       팔을 걷어붙인 사제들이 달려들었다. 여인의 몸을 훑는 신성력의 파동.

       

       

       후우웅ㅡ

       

       

       이 광경을 아이에게 보여줄 필요는 없다. 로한과 한스는 데이지의 눈을 가리며 천막을 나섰다.

       

       데이지는 제 어미의 상황을 아는지, 한스의 손을 잡으며 얌전히 뒤따랐다.

       사제 한 명이 따라 나와 한스와 로한, 데이지에게 신성력의 파동을 흘렸다. 몸 구석구석을 훑고 사라지는 신성력.

       

       사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천만다행으로, 세 분에게서 역병의 징조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 반점이나 오한 등의 증상이 나타나면 바로 말씀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제님.”

       

       

       사제가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다시 천막으로 들어갔다.

       

       

       “이제 어디로 가게?”

       

       “글쎄…”

       

       

       로한의 말에 한스는 제 손을 꼭 잡은 데이지를 내려봤다. 이대로 데이지를 집으로 보내는 방법도 있겠지만… 한스의 머릿속에는 오면서 본 주민들의 시선이 아른거렸다.

       

       너무나 선명한 악의. 그 한가운데에 힘없는 여자아이를 던져둔다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

       

       

       말 없이 제 손을 꼭 잡으며 바닥을 내려다보는 데이지.

       한스는 그 모습을 보며 로한에게 말했다.

       

       

       “우리한테 여분의 천막이 있던가?”

       

       

       로한이 입꼬리를 씩 끌어올리며 웃었다.

       

       

       “없어도 만들어야지.”

       

       

       잠시 후, 한스와 로한은 그들의 천막에서 살짝 떨어진 곳에 천막을 만들고 있었다.

       

       

       “좀 더 올려!!”

       

       “흐짜!”

       

       

       어떻게 알고 왔는지, 다른 부대원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하나, 둘, 셋!”

       

       “으럇!”

       

       

       제법 많은 수의 인원이 힘을 보태자 천막은 순식간에 완성됐다. 데이지는 눈을 반짝이며 새로 생긴 천막을 구경했다.

       

       조심스레 천막 안으로 들어가서는, 벽을 툭툭 치고 간이침대를 쓰다듬었다.

       

       

       “침대… 정말 여기서 자도 돼요?”

       

       “그래, 꼬맹아. 한동안은 여기서 먹고 자는 거야.”

       

       “뭐 필요한 거 있으면 편하게 말해.”

       

       

       부대에 새로 들어온 작은 손님에 관한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작고 귀여운 꼬마 손님이 생겼다는 소문에 너나 할 것 없이 데이지를 구경하러 오기도 했다.

       

       그날부터 데이지는 야영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다녔다.

       

       

       “방패. 닦아드릴게요.”

       

       

       프리가에게 대련이라는 명목하에 복날 개처럼 맞은 이스칼의 방패를 천으로 조심스럽게 닦기도 하였다.

       

       

       “설거지. 제가 할게요.”

       

       

       부대원들의 더러워진 그릇을 가져가서, 얼음처럼 차가운 물에 첨벙거리며 설거지를 하기도 했다.

       

       

       “청소, 제가 했어요.”

       

       

       자신의 천막은 물론이요, 다른 이들의 천막도 쓸고 닦으며 청소하기도 했다.

       

       데이지의 이런 행동은 기특하기도 했지만, 부대원들은 안쓰러움을 먼저 느꼈다.

       데이지의 행동은 뭐랄까… 마치 스스로의 쓸모 있음을 주장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이렇게나 일을 잘해요, 이런 일도 할 수 있어요.

       

       데이지는 이곳에서 쫓겨날까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몸보다 커다란 방패를 낑낑거리며 닦았고, 찬물에 손이 벌게지는 것도 참아가며 설거지를 했고, 바닥을 기어가며 청소를 한 것이다.

       

       보다 못한 부대원 중 한 명이 대표로 한스에게 찾아왔다.

       

       

       “한스, 네가 데려온 데이지라는 꼬마애. 도대체 어떻게 지낸 거야?”

       

       “그게…”

       

       “데이지가 하는 행동만 보면 우리가 노예로 잡아 온 줄 알겠어. 데이지가 하는 걸 봐. 저 나이대의 아이는 칭얼거리고, 떼쓰고 웃어야지.”

       

       

       부대원이 한스의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한스. 넌 데이지가 웃는 걸 본 적 있어?”

       

       

       그 말은 한스의 머리를 망치로 내려친 듯했다. 한스는 데이지가 야영지에서 지내는 동안, 웃는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저 작은 소녀는 웃거나 울지 않았다. 싫은 소리나 떼쓰지도 않았고, 하기 싫다고 칭얼거리지도 않았다.

       

       

       “내가 모험가로 지내면서, 저런 얼굴을 많이 봐서 알아. 자기 나이보다 너무 성숙해진 얼굴. 주변 환경이 데이지를 어른으로 만들어 버린 거지. 어른스럽지 않으면 살 수가 없거든.”

       

       “그런…”

       

       “그러니까 한스, 그나마 네가 데이지랑 제일 가깝잖아. 신경 좀 써줘.”

       

       

       부대원이 떠나가고 한스는 고민에 잠겼다. 자신의 행동이 무책임했다고 생각하는 걸까.

       

       한참동안 가만히 서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한스는 이내 발걸음을 옮겼다. 우선 데이지를 찾아 나설 작정이었다.

       

       

       “이거, 제가 할게요.”

       

       “이익! 안 그래도 돼요! 제발 데이지는 저기서 쉬고 있어요!”

       

       

       저 멀리서 그릇을 두고 누군가와 실랑이하는 데이지가 보였다. 데이지보다 아주 조금 더 큰 체구에 핑크 머리가 돋보였다.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지 땀도 흘리고 있었다.

       

       한스는 천천히 다가가서 데이지를 불렀다.

       

       

       “데이지.”

       

       “앗.”

       

       

       잠시 한스를 돌아본 사이에 실랑이하던 그릇을 놓친 데이지. 안타까운 한숨을 흘리더니 조용히 한스를 올려다봤다.

       

       한스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데이지, 잠깐 산책할까?”

       

       “…네.”

       

       

       아이 특유의 작고 오밀조밀한 손이 한스의 손을 붙잡았다. 작은 손은 갈라지고 찢어지고 베인 상처가 가득했다. 

       

       매일 사제들이 씻기고 상처를 치료해줘도 어디선가 다쳐서 돌아오고는 했다. 아마 일을 하다가 생긴 것이리라.

       

       한스와 데이지는 침묵 속에서 조용히 걸었다. 시끄러운 야영지를 벗어나, 조용한 적막이 내려앉은 숲까지.

       

       사박사박 풀 밟히는 소리가 들려오고, 풀벌레가 찌르르 울었다. 그렇게 걷다가 이름 모를 들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곳에 도착했다.

       

       

       “데이지, 그 꽃팔찌는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거니?”

       

       “네. 엄마가 만들어줬어요. 엄마가 아프지 않고, 건강할 때.”

       

       

       데이지의 팔에는 조금 말라가는 꽃팔찌가 있었다. 조심스럽게 팔찌를 만진 데이지.

       

       

       “엄마가 아프기 시작했을 때, 저한테 말했어요. 꼭 나아서 꽃팔찌 다시 만들어준다고. 저랑 약속했어요.”

       

       “그랬구나. 어머니가 아플 때는 힘들지 않았니?”

       

       “힘들지 않았어요. 저보다 엄마가 더 아프고 힘드니까요. 그래서 저는 꼭 엄마 곁에 있어야 해요. 엄마는 제가 없으면 안 돼요. 제가 안 보이면 슬퍼해요.”

       

       “…”

       

       

       너무나 어른스러운 생각에 말문이 막힌 한스. 그 침묵이 불안했는지 데이지가 급하게 말을 이었다.

       

       

       “…저는! 저는 어떤 일이라도 잘 할 수 있어요. 밥도 조금 먹고, 열심히 일해요. 무거운 건 못 들지만, 청소도 잘하고 그릇도 깨끗하게 닦을 수 있어요.”

       

       “데이지…”

       

       “저를 내쫓지 말아 주세요. 엄마는 제가 필요해요. 더 적게 먹고 열심히 일할게요. 잠도 조금만 잘게요. 제발, 저를 내쫓지 말아 주세요…”

       

       

       한스는 속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어린아이가 도대체 어떻게 지내왔길래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걸까. 이 작고 여린 손으로, 어떤 일을 해 온 걸까.

       

       애써 호흡을 가다듬고 허리를 숙인 한스는 들꽃을 하나둘 따서 엮기 시작했다. 기억을 더듬어가며 서투르지만 정성스럽게.

       

       그렇게 만들어진 삐뚤빼뚤하고 못생긴 꽃팔찌. 데이지의 눈이 동그래졌다.

       

       한스는 조심스럽게 데이지의 팔에 꽃팔찌를 끼웠다. 살짝 말라가는 꽃팔찌가 걸린 팔의 반대편에.

       

       

       “이건…”

       

       “데이지, 우리는 널 내쫓지 않아. 그러니까 걱정하지마.”

       

       

       한스는 조심스럽게 데이지를 품에 안았다. 무릎을 꿇고 품에 안아도, 한스의 어깨에 오는 작은 아이. 얇고 가녀린 몸은 조금이라도 힘을 주면 부서질 듯 했다.

       

       

       “아무도 너에게 뭐라고 하지 않아, 데이지. 슬프거나 힘들 때는 울고, 즐거우면 웃는 거야. 너는 그래도 되는 아이야.”

       

       

       얼마나 힘들었을까.

       

       

       “어머니는 꼭 낫게 해드릴게. 이제 그만 쉬어도 돼. 아무도 너에게 뭐라고 하지 않아. 너를 내쫓지도 않을 거야.”

       

       

       이 작은 어깨에 얼마나 무거운 짐을 올리고 지냈을까.

       어른의 손길에 한창 어리광 부릴 나이에, 누구보다 어른이 되어야 했던 아이다.

       

       

       “데이지, 지금까지 너무 잘해왔어. 많이 힘들었구나. 울고 싶고 소리치고 싶었을 텐데, 잘 참아왔어.”

       

       “…”

       

       “이제 우리가 도와줄게. 우리는 널 돕고 싶어. 데이지, 우리가 널 도울 수 있게 해주겠니?”

       

       

       데이지는 아무 말 없이 한스의 품에 고개를 묻었다. 작게 떨려오는 데이지의 등. 한스는 가슴 언저리가 조금 젖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데이지의 손이 한스의 옷자락을 꽉 붙잡았다. 한스는 기꺼이 그녀에게 옷을 내어줬다.

       작게 도리질 치며 흐느끼는 데이지.

       

       작게 들려오는 풀벌레 울음소리가 소녀의 흐느낌을 살며시 가렸다.

       

       

       

       

              * * * *

       

       

       

       

       한스에게 꽃팔찌를 받은 이후, 데이지는 조금씩 밝아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루엘과 실없는 대화를 나누며 작게 웃기도 하고, 이스칼의 방패 묘기를 보며 박수를 치기도 했다.

       

       이따금 프리가와 케니스의 대련을 보며, 입을 헤 벌리기도 하였다. 한스는 그런 데이지의 모습을 보며 흐뭇한 감정을 느꼈다.

       

       

       “한스. 뭐해?”

       

       “로한?”

       

       

       한스의 어깨를 툭 치며 나타난 로한. 한스의 시선 끝에 있는 데이지를 보더니, 이내 픽 웃었다.

       

       

       “뭐야, 저 꼬맹이가 웃기도 하네? 허, 참.”

       

       “보기 좋지 않아?”

       

       “뭐… 저번처럼 재수 없는 표정보다는 좋네. 그래도 여전히 싸가지는 없더라.”

       

       

       로한이 툭 대꾸했다. 한스는 로한이 말은 이렇게 해도, 매일 데이지에게 몰래 과일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말은 투박하고 거칠지만, 속이 깊고 여린 친구다.

       

       

       “그래도 네 신부로는 너무 어리지 않냐?”

       

       “…진짜 미친놈인가.”

       

       

       한스는 고개를 저었다. 여전히 미친놈이 분명하다.

       잠시 데이지를 바라보던 로한이 퍼뜩 떠오른 듯 말했다.

       

       

       “야. 너 이번에 그거 들었냐?”

       

       “뭔데.”

       

       “제국군이 조금 있으면 도착한다더라.”

       

       “이제서야? 너무 오래 걸린 거 아니야?”

       

       “제국에서 여기가 하루 이틀거리도 아니고, 우리가 너무 빨리 온 거지. 그것도 몰라? 이래서 촌놈이랑은 말이 안 통한다니까.”

       

       

       과장된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젓는 로한. 한스는 발끈했지만, 로한의 말대로 촌놈이었기에 반박할 수 없었다.

       

       

       “어… 그리고 또 뭐더라. 대장이 뭐 전달하랬는데. 아 씨, 뭐지?”

       

       “중요한 거야?”

       

       “어, 좀 중요했는데… 아 뭐였지?”

       

       

       잠시 머리를 벅벅 긁던 로한이 떠올랐다는 듯 외쳤다.

       

       

       “아! 아아! 생각났네. 그 마을 사람들 있잖아?”

       

       “저쪽 마을 사람들?”

       

       “어, 역병쥐들한테 공격받을 수도 있으니까 오늘부터 마을 사람들은 우리 야영지에서 지내기로 한다더라.”

       

       “…그래?”

       

       

       로한의 말대로, 야영지의 입구 쪽에는 짐을 들고 나르는 마을 사람들이 보였다. 그 중, 데이지를 노려보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을 데이지라고 생각하는 걸까.

       

       한스는 악의에 찬 사람들의 눈을 바라봤다.

       

       

       ‘…느낌이 좋지 않네.’

       

       

       기분 탓인지, 야영지의 하늘도 조금 흐리다고 느껴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타나 어색한 부분에 대한 지적은 늘 감사합니다!!!

    ㄴㅇ0ㅇㄱ!!!아닛!! 이게 무슨 일입니까!!!

    – ‘신선우’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패러디 요소는 제가 쓰면서 작중 분위기를 헤치지 않는 선에서 넣고 있습니다!! 한동안은 조금 진지한 분위기를 예상하는 바…!!! 조금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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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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