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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9

       

       어둠 속에서 안광을 내뿜는 눈동자를 보며, 올리비아는 마른침을 삼켰다. 어두침침한 시야 사이로 리브가의 손이 천천히 움직였다.

         

       ‘……망했다.’

         

       리브가가 반나절만에 정신을 차릴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키엘도 하루 종일 기절했었는데.’

         

       뭐가 되었든 간에, 이는 명백히 올리비아의 실수였다. 하다못해 리브가가 일어날 기색을 보였을 때 바로 다시 기절시켜……아니, 재웠어야 했다.

         

       -툭.

         

       하지만 리브가의 손은 올리비아의 얼굴에 닿기 전에 힘을 잃고 무너져내렸다. 올리비아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지었다. 잠시 후, 리브가가 몸을 뒤척이며 말했다.

         

       “언니……저 두고 가지 마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리브가는 올리비아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참회동 내부에 울려퍼졌다.

         

       ‘시, 식겁했네…….’

         

       올리비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마음 편하게 얼음 속에 집어넣을까도 생각했지만, 몸이 여린 리브가가 버틸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그냥 계속 옆에서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 내 팔자에 두 명을 동시에 진행하기는 무슨. 일단 리브가부터 끝내고 보자.’

         

       괜히 그랬다가 탈만 날 것 같았다.

         

       아직도 12년하고 반년이나 남았다. 1년에 한 명씩 진행한다고 해도 반년이나 남는…….

         

       “…….”

         

       올리비아의 고개가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아으……아으으…….

         

       가슴팍이 축축해졌다. 무엇이 그리 서러운지, 리브가는 자면서도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그것은 단순히 ‘울음’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오열, 그래. 오열에 더 가까웠다.

         

       짐작하고 싶지 않았지만, 대마법사의 두뇌가 그를 가능케 했다.

         

       그만, 그만…… 제발 그만…….

         

       귓가에 리브가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단서의 사용을 중간에 그만두면 어떻게 되는가?]

         

       만약 멜리나에게 첫 번째 편린만 건네준 채로 단서의 사용을 종료했더라면……멜리나는 높은 확률로 폐인이 되었을 것이다.

         

       다음 편린을 내놓으라고 ‘올리비아’를 겁박했을 것이다.

       그리고 진리에 다가갈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고 절망했을 것이다.

       아무리 강한 사람도, 한 가지 기억 때문에 무너진다.

         

       올리비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작금의 리브가가 얼마나 끔찍한 절망 속에 빠져 있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야 겨우 의지할만한 가족이 생겼는데, 그 가족이 악마에게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다. 그리고 성녀인 자신은, 그 사실을 앎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 아득한 무력감. 무력감에서 나오는 절망. 가족을 또 잃는다는 공포.

       올리비아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내장 깊은 곳에서 죄책의 한숨이 올라왔다.

         

       “…….”

         

       필요 이상으로 정을 줘서는 안된다. 죄책감을 가져서도 안된다.

       이 세계에 떨어진 순간 그렇게 다짐하지 않았던가.

       반드시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다짐하지 않았던가.

         

       [메인 퀘스트]

       클리어 조건 : ????

       보상 : ????

         

       클리어 조건은 아직 알지 못한다. 마신을 잡는 것인지, 불살(不殺)인지, 또 다른 새로운 것인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만약 몰살(沒殺)이라면…….

         

       버티지 못한다. 정든 사람을 죽이고도 견뎌낼 재간이 있을 리가 없다.

         

       ‘……좆같다. 진짜.’

         

       올리비아는 피를 토해내듯 중얼거렸다.

         

         

       *****

         

         

       해수면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리브가는 경이로움을 느꼈다.

         

       ‘……아이테르 님.’

         

       자연스레 손이 모아진다.

       아침 기도를 마친 리브가는 모래사장을 가로질러 걸었다. 이곳, 동부 카니스 왕국에 온지도 벌써 한 달이 넘었다.

       이곳에 오기까지 교황 성하를 비롯한 수많은 높으신 분들에게 들었던 잔소리를 생각하면 골이 조금 아파왔지만, 그래도 충분히 감수할 만 했다.

         

       – 성녀. 자네 한 명이 타국으로 나가면 얼마나 많은 성기사들과 사제들이 수행원으로 따라붙어야 하는지 아시오?

       – 예, 압니다.

       – ……그런데도 굳이 가려는 이유가 무엇이오?

       

       형식상으로는 카니스 왕국에 아이테르의 말씀을 전도하기 위함이었고, 실질적인 목적은 이카일의 파도잡이, 에스티와 접선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이카일에 머문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리브가는 에스티를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거대한 파도들이 춤을 추듯 일렁거리는 모습을 멀찍이서 지켜본 게 전부였다.

         

       등대지기가 방언이 섞인 말투로 말했다.

         

       “죄송해유.”

        “……또 안 계시나요?”

       “오늘 새벽에 바다로 나갔슈. 조금만 더 일찍 오시지.”

       “…….”

         

       리브가는 구차한 사연을 덧붙이는 대신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등대지기에게 부탁했다.

         

       “이카일의 수호자께서 찾아오시면, 꼭 말 좀 해주세요.”

       

       등대지기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었다.

         

       “쇤네가 귀하신 분께 이런말 드리기는 뭐하지만, 에스티 그 아를 만나기는 힘들겁니다. 저도 이 일을 이십 년도 넘게 했지마는, 그 아랑 직접 얘기한 본 건 세 번도 안됩디다.”

       “……그래도 전 만나야 되는걸요.”

         

       올리비아의 고통을 이해하려면 이 방법 뿐이었으니까.

         

       “전 그분과 꼭 이야기를 나눠야 합니다.”

       

       영원을 살 수 없다면, 최소한 목적만 남은 채 살아봐야 했다.

       그래야, 올리비아를 구할 수 있다.

         

       “그러니 꼭 말 좀 해주세요.”

         

       리브가는 별 소득 없이 등대 바깥으로 나왔다.

       대양 너머, 수평선이 위 아래로 울렁거리고 있었다.

         

       “프란츠.”

        “예, 성녀님.”

       “프란츠는 삶의 목적이 뭐에요?”

       “목적……말씀이십니까?”

       “예.”

       

       프란츠가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죽는 그날까지 약자를 수호하며 아이테르님의 뜻을 만국에 설파하는 것입니다.”

       “……그 어려운 목적을, 본인의 의지 없이 이뤄낼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신께서 도우신다면…….”

       “아이테르님의 도움 없이요.”

         

       프란츠가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은 리브가와 같은 곳을 향해 있었다.

         

       대양 너머.

         

       “……어렵지 않겠습니까?”

         

       성국에서도 우직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프란츠도 어렵다고 말할 정도다.

         

       인간에게 의지란, 그만큼이나 중요했다.

       아무리 뛰어난 무기를 가지고 있어도, 싸울 의지가 없다면 승리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리브가는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저 사람은, 지킬 의지가 없는데도 어떻게 지키는 걸까.

         

       리브가는 입술을 짓씹었다. 요즘 들어 입술이 성한 날이 없었다.

         

       시간이 약이라고 하였는데, 왜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급해지는 것일까.

         

       그 이유를, 리브가는 이미 알고 있었다.

         

       – 네놈은 아무것도 모른다. 죽었다 깨어나도, 네년은 이해할 수 없을거다.

         

       아스모데우스는 요즘 잠잠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 사실이 리브가를 불안하게 했다.

       악마들은 절대로 잠잠하지 않다. 그저 ‘잠잠해 보일’뿐이다.

         

       분명 올리비아의 정신을 침식시키고 있겠지.

         

       “……올리비아님은 지금 어디 계시죠?”

         

         

       *****

         

         

       [단서 #3]

       [993년 4월의 기억]

       [남은 시간 : 160분 00초]

         

       낯선 천장이었다. 성국 특유의 흰색 천장도, 금탑 특유의 화려한 천장도 아니었다.

         

       딱히 의미를 알 수 없는 무늬들이 아무렇게나 나열되어 있었다. 하지만 올리비아는 그 불규칙성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었다.

         

       “……카니스.”

       

       정확히는, 카니스 왕국의 수도. 항구도시 이카일.

         

       다행히 이번에는 단서가 별 문제 없이 사용된 모양이었다.

         

       상황을 파악한 올리비아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팔 다리를 살펴보는 일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신성 주박은 모두 해제되어 있었다.

       리브가의 심성 상, 풀어주지 않고서는 못 배겼을 테니.

         

       올리비아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창가에 걸터앉았다. 아득한 수평선이 시야 끝까지 펼쳐져 있었다.

         

       락테아에서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은 단 두 곳 뿐.

       동쪽의 이카일과, 서쪽 군도 마보르.

       땅은 평평하지만 행성은 둥글기에, 저 수평선 너머로 일직선으로 나아가다 보면 마보르에 도착한다.

         

       마보르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무법지대(無法地帶).

       쉽게 말해, 대륙에서 쫓겨난 범죄자들이 터를 잡은 땅이다.

         

       아무튼.

         

       “……진짜로 이카일에 왔네.”

       

       본래 993년은 리브가와 에스티, 그리고 아쉐 발타르의 호감작을 시작하는 년도였다.

       다만 셋 중 리브가가 가장 호감작 우선순위가 높았기에, 리브가의 호감도를 90까지 올릴 때까지 성국 바깥으로 나가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지금 이곳은 이카일이었다.

       성국에서 도보로 두 달도 더 걸리는,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항구 도시 이카일 말이다.

       몰살 회차가 기억하던 것과 달라진 것은 확실했다.

         

       “……언니.”

       

       어느새 리브가가 곁에 와 있었다.

       슬픔을 숨기고 있는 눈빛.

       올리비아는 캐묻는 대신 리브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일찍 일어났네.”

         

       다정한 말투에, 리브가가 안도하는 듯한 얼굴을 했다.

         

       “어디 아픈 데는 없으세요?”

         

       츠츠츳.

         

       [‘성녀 리브가’가 ‘거짓 간파’를 사용합니다.]

         

       리브가의 눈동자가 옅은 흰색 빛을 머금었다.

       망설임 없이 거짓 간파를 사용하는 모습에서, 리브가가 지난 한 달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알 수 있었다.

         

       괜스레 마음 한켠이 무거워졌다.

         

       “괜찮아. 아픈 데 없어.”

         

       [당신의 말은 ‘진실’입니다.]

         

       리브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프면 숨기지 말고 바로 말해주세요.”

       

       타다다닥!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익숙한, 물 찰박이는 소리.

         

       [경고! 경고! 경고!]

       [단서 속에서는 오직 1명의 회귀자와만 접촉할 수 있습니다!]

       [곧 이용이 강제 종료됩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Ilham Senjaya님!

    오늘 늦은 이유에 대해 변명을 조금 드리자면…썼다가 갈아엎어서 그랬습니다. 맘에 안들어서요.

    리브가의 엔딩도 멜리나 키엘만큼 유열덩어리여야 하는데…왠지 모르게 그걸 벌써 담아버렸습니다. 자고로 유열은 빌드업이 8할인데 말이지요.

    그래서 갈아엎고 쓰느라 늦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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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세계를 멸망시킨 마녀가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destroyed the world to see its Annhiliation Ending.

And I possessed my Character Olivia in the game.

However… … .

[The world is rebuilt.] – NPCs killed by you return.

– Princess Aria hates you.

– Sword Saint Kiel wants to slit your throat.

… … Isn’t that a bit of a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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