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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9

       그 말을 듣고 순간 뇌가 정지되었다.

        

       예?

        

       뭐라고요?

        

       가출? 이수아가?

        

       왜?

        

       어, 뭐…… 그러니까, 그래. 신소희가 여기까지 온 것은 어찌어찌 이해가 된다. 원래 작품에서도 신소희는 대체 어쩌려고 저러나 싶을 정도로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긴 했다. 다짜고짜 학교에 쳐들어가서 유하늘의 손목을 끌고 나와버리거나, 학교 빠지고 같이 도피해버리거나 하는 식으로.

        

       누가 뭐라고 해도, ‘내가 좋아서 했는데 뭐 어쩌라고?’ 하는 반응을 보여주는 캐릭터였다. 학교 내에서 따돌림당하며 화영 고등학교에 깊은 회의를 느끼던 유하늘은 그런 신소희에게 끌리게 되고, 당연히 그 루트의 마지막엔 신소희와 이어지게 된다.

        

       그러니, 지금 메이드 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소희의 언행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친구가 위험하다고 판단했으니 달려왔다고 한다면 그 캐릭터성에 그럭저럭 맞아 떨어지니까. 조금 과한 감이 없지 않지만.

        

       하지만 이수아는……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이수아라는 캐릭터는 그런 캐릭터가 아니었는데……?

        

       내가 이수아 루트를 본 적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굳이 그렇지 않더라도 이수아라는 캐릭터는 거의 모든 루트를 통틀어 유하늘과 엮이는 캐릭터였다.

        

       미연시에 흔히 하나 정도 나오는, 넓은 교우관계로 많은 정보를 물어다 주어 주인공이 캐릭터를 잘 공략할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의 친구 캐릭터니까.

        

       윤다호 루트에서도, 신소희 루트에서도, 그 비중은 꽤 다르지만 이수아는 꾸준히 등장하였다.

        

       밝고, 성격 좋고, 혼자 있는 사람을 가만히 못 두고, 웃음도 많은—

        

       ……어.

        

       그러니까,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이수아와는 조금 다른, 캐릭터였다.

        

       …….

        

       어. 아.

        

       이거.

        

       “무작정 집 밖으로 뛰쳐나와서, 그냥 달렸어.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설마.

        

       “내가 길을 조금 돌아오지 않았다면 여기에 오는 와중에 잡혔을 거야.”

        

       물기를 머금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이수아를 보고, 나는 경악했다. 그렇다. 이수아 루트라면 어땠을지 몰라도, 원작에서의 밝은 이수아는 이런 표정을 지어 보이는 장면이 없었다.

        

       성격도 가라앉는 것 없이, 문자 그대로 티 없이 맑은 캐릭터였는데. 가출이니 뭐니 하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할 정도로 얌전하고 밝은, 올곧은 아가씨 같은 캐릭터였는데.

        

       지금 내 앞에 앉아있는 이수아는, 어째서인지 그 이미지가 조금 많이 달라 보였다.

        

       나 때문인가?

        

       나 때문에 이수아의 성격이 이렇게 바뀌어버린 건가?

        

       그래, 그러고 보면, 원작에선 이수아도 예사라와 딱히 접점은 없는 캐릭터였다. ‘만약에’ 이수아가 예사라에게 말을 걸었던 것이 원작 시작 전에도 있었다고 가정하면, 그때는 예사라가 거절했거나 경호원 선에서 컷이었겠지.

        

       그래서 이수아도 더 이상 예사라에게 접근하는 것을 포기하게 되었고, 그래서 친해질 이유도 없었고, 당연히 기존에 있던 친구들과 관계가 끊어질 일도 없고, 밝은 성격을 잃을 이유도 없었을 거다.

        

       그런데 이쪽에선…… 내가 그 요청을 받아들여 주었다.

        

       결과적으로, 학교 내에서 온갖 불이익을 받는 캐릭터가 되고 말았다. 심지어 나와 엮여서 양다리니, 하렘이니 하는 소리까지 듣고 있으니까.

        

       아무리 밝은 성격이었다고 해도 어두워질 수밖에 없는 전개다.

        

       이수아는 그 푸른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해진 옷에, 반창고를 여기저기 붙이고 나를 올려다보는 그 모습은, 마치 새끼 길고양이가 나를 올려다보는 것처럼 보였다.

        

       왜일까.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존재는 길고양이도 아니고 사람이었는데, 왠지 집사로 간택 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저기, 정말 미안한 부탁인데…….”

        

       이수아가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한동안, 여기서 머물러도 될까? 신세는 꼭 갚을 테니까……!”

        

       …….

        

       잠시 침묵.

        

       나는 양혜인을 슬쩍 바라보았지만, 양혜인은 그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 있을 뿐이었다. 하긴, 이 사람도 내가 불러서 다시 온 처지였다. 신소희도 마찬가지고.

        

       그러니까, 이수아의 말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온전히 내 의지에 달려있다는 말이었다.

        

       게다가, 지금의 이수아는 나 말고는 의지할 곳도 없다. 교내의 친구들이었던 아이들은 이수아와 내가 친해지자 모두 이수아와 거리를 벌렸으니까.

        

       친척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 친척 집으로 가봐야 아직 갈등이 봉합되지 않은 자신의 집으로 돌려보내질 것이다.

        

       숙박업소는 미성년자 혼자 가기에는 조금 그럴 거고, 이 시기의 아이들은 자기 돈이 아닌 부모님의 돈을 쓰는 법이니까. 아마 장소도 금방 들키겠지.

        

       “……그래, 좋아.”

        

       나는 조용히 대답했다. 이수아의 표정이 환해졌다. 언제 그렇게 우울했는지 모를 정도로. 아니, 애초에 우울했던 적이 없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하지만, 나는 조건을 붙이기로 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여기 있을 수는 없어. 가출이잖아.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부모님께서 걱정하실 거야.”

        

       예사라는 하나 있는 계모가 완전히 비상식적인 인간이었지만, 이수아는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수아의 밝은 성격을 생각해보면 적어도 예사라보다는 더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을 가능성이 크다. 아니면 적어도 어린 시절만큼은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거나.

        

       나의 선택 때문에 이수아의 가족관계가 망가지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게다가 내 선택은, 철저하게 나를 위한 것이었다. 이수아, 아니, 이수아뿐만이 아니라 하늘이나 소희도 마찬가지다. 얼굴에서 나오는 빛으로 어림짐작해서 엮였을 때 파멸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을 골라 사귄 것이다.

        

       그런 내 선택 때문에 이수아는 학교생활도 망가지고, 가족 간에도 불화가 생겨버렸다.

        

       정작 나는 생각조차 제대로 해보지 않았던 이야기다.

        

       그러니까, 내가 덧붙인 말은 무책임하다고도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응, 알았어.”

        

       내가 한 말이 마치 꾸짖는 것처럼 여겨졌는지, 수아가 다시 침울하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만약에.”

        

       그 모습에, 나는 적어도 몇 마디 말은 해 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뭐라고 해야 할까.

        

       이제 와서 사과를 할 수는 없다. 사과한다고 해도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수아 성격에 사과를 받아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니, 애초에 멋대로 끌어들인 주제에 사과 하나로만 넘어가는 것도 정신 나간 짓이지.

        

       나 때문에 망가진 부분이 있다면, 적어도 고쳐두려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아니, 시늉만 하는 게 아니라 당연히 원래대로 고쳐놔야 한다. 그게 사람을 사귈 때의 기본적인 예의니까.

        

       그렇기에, 나는 말했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 최대한의 진심을 담아서.

        

       “너희 부모님께서 쉽게 용서해주지 않으시면, 내가 함께 가줄게.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만약 도움이 된다면, 힘닿는 곳까지 도울 것이다.

        

       지금까지는 최나경의 공격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정도는 막을 수 있다. 돈이 있으면 되는 일이니까. 나에게는 충분히 많은 돈이 있었다. 수조원씩 팍팍 써버리고도 한평생을 일 한 번 안 하고 놀면서 살 수 있는 수준의 돈이.

        

       하지만, 망가진 관계, 그것도 나의 관계가 아닌 남의 관계는 그저 돈만 있다고 고칠 수 없다. 그 원인인 내가 직접 나서서 최대한 성의를 보이더라도 그 상처가 아물지 않을지 결정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직접 함께 가서, 이유를 설명하고 용서를 비는 편이 낫겠지. 수아의 부모님께서 나를 용서하지 못할지는 몰라도, 자신들의 딸인 수아는 용서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내 말을 들은 수아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눈에 생기가 돌아와서 반짝거렸다.

        

       그렇게 든든한 말이었을까. 하긴, 혼나러 가는데 혼자인 것 보다는 여럿인 편이 훨씬 마음이 놓이는 편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말이다.

        

       “응!”

        

       수아는 활짝 웃으면서 그렇게 대답했다.

        

       그 표정에서 비 맞은 고양이 같던 모습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

        

       기본적인 응급처치를 마치고, 이수아는 씻으러 들어갔다. 반창고 정도야 새것으로 다시 붙이면 되었으니까. 사실 순서로 따지면 먼저 씻고 소독하고 반창고를 붙이는 쪽이 옳았겠지만, 경황이 없기도 했고, 수아가 다시 여기서 자고 갈 거라는 말을 할 것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가출이라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밖에서 나쁜 짓이라도 당했나 싶어 가슴이 철렁했다. 물론 넘어졌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말은 절대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최악의 상상까지 했던 차라서 차라리 대화가 끝나고 나자 마음이 놓였다.

        

       “…….”

        

       쏴아— 하고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리는 샤워실을, 소희가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신경 쓰이는 거라도 있어?”

        

       “응? 아, 아니.”

        

       소희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였다.

        

       “아냐. 아무것도.”

        

       그렇게 말하면 오히려 더 의심스러운데. 설마 메이드가 되었다고 정말로 메이드스럽게 ‘손님이 왔으니……’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건 아니겠지?

        

       소희는 방 가운데 있는 탁자 의자를 하나 끌어다가 털썩 앉았다. 그리고 답답하다는 듯 검은 셔츠의 단추를 세 개 정도 순서대로 풀었다.

        

       ……그리고, 몹시 노린 것 같은 메이드 복장의 미소녀가 만들어졌다.

        

       아니, 지금의 나로선 나보다 크니 ‘소(小)녀’라고 하기는 조금 그런가?

        

       “후우, 이제 살겠네.”

        

       생각해보니 현실에 저런 애가 어디 있겠어. 현실에선 아무리 노는 애라도 교복 셔츠 앞섶을 풀어 헤치고 다니는 애들은 없었다. 안에 티셔츠를 따로 입고 그냥 단추를 다 풀고 다니는 애들이라면 또 모를까.

        

       “흐응.”

        

       내가 자신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는지, 소희는 묘한 미소를 지으면서 몸을 움직였다. 풀어져 있는 앞가슴의 모양이 살짝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이런 말을 하긴 그렇지만, 그 촉감이 여러모로 상상이 갔다. 심지어 나는 저기에 코를 박아보기까지 했으니까. 절대로 본의는 아니었지만.

        

       생각해보면 코만 박아본 게 아니었구나.

        

       “왜, 만져보고 싶어?”

        

       “…….”

        

       ……그거 여자애가 여자애한테 할 말인가?

        

       아, 그렇지. 소희는 일반적인 여자애가 아니었다. 그리고 나도 굳이 따지면 여자애는 아니었다. 아니, 애도 아니긴 했지만.

        

       이런 걸 즐기던 캐릭터던가?

        

       나는 기억을 뒤져보았다. ……그랬던 것 같기도. 게임 속의 유하늘과 놀러 가서 유혹하는 장면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게임 자체는 전연령용이라 대단한 장면이 나왔던 것은 아니지만.

        

       “메이드가 그런 소리 해도 돼?”

        

       대답하기가 애매해서 그렇게 되물었더니,

        

       “메이드가 하는 일이 이런 거 아니야?”

        

       라는 말이 돌아왔다. 물론 얼굴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그 말, 지금 수아 속옷 사러 가서 없는 양혜인이 돌아오면 다시 하게 만들어보고 싶다.

        

       무슨 야겜 메이드도 아니고.

        

       미연시이긴 했지만.

        

       내가 반박하기 위해 입을 여는데, 샤워실 문이 열렸다.

        

       그리고, 쏟아지는 하얀 김을 배경으로 이수아가 나왔다.

        

       물기가 촉촉한 생머리 모드의 이수아가, 몸에 수건만 두르고.

        

       !!!!!

        

       그 모습을 돌아본 소희의 머리 위에 보이지 않는 느낌표가 떠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아마, 내가 천장을 올려다 봐도 똑같은 것이 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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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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