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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90

        

         

       피에르 마틴(Pierre Martin).

       아프리카 대륙의 공포로 자리 잡은 자.

       회귀 전 3차 세계 대전이 터진 후 언제부턴가 소식이 끊겨버렸던 주술사.

       회귀로 시간이 뒤틀린 후, 박진성은 지금 그와 마주하고 있다.

       비록 둘 다 진실한 모습은 아니라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기묘한 만남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모든 것에는 다른 면이 존재하는 법. 모든 방향에서 사물을 바라볼 수 있는 신과 같은 시야가 없다면, 전지(全知)의 권능이 존재하지 아니한다면 어찌 하나의 것을 보고 ‘이것은 무엇이다’라고 자신할 수 있겠는가? 둥그런 돌덩이라고 할지라도 선 곳에 따라, 각도에 따라 모습이 다르게 보이는 것이 세상의 이치일 것이니. 허상 또한 그와 같음이로다.”

         

       “과연…. 그렇지…. 빛과 함께 모습을 바꾸는 것이 그림자의 성질이라면 그것 또한 무슈가 말한 것과 같은 것이니…. 나 역시 그렇기에 그림자의 시작점, 원본, 그 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볼 수 있는 것이 그림자밖에 없다면, 그 원본의 형태가 무엇이든 무슨 상관이 있을 것이냐?”

         

       피에르 마틴은 낮은 웃음소리를 내더니 박진성을 바라보며 물었다.

         

       “무슈가 끌고 온 벌레를 보라…. 그들의 시야는 사람과 다르고, 사람과 같을 수도 없다. 설령 같은 눈높이로 날아오른다고 할지라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것은 태생에서 비롯된 것인가? 종의 차이인가? 격의 차이인가? 그렇다면 벌레와 사람의 시야가 같지 않다면, 무엇이 위에 있고 무엇이 아래와 같으냐? 사람의 것이라고 우월하고 벌레의 것이라고 우월하다 할 수 있는가?”

         

       그의 목소리가 점차 또렷해지기 시작한다.

       갈라진 것 같은 목소리는 그대로였지만 무저갱에서 울려 퍼지는 메아리 같았던 목소리는 점차 귀에 또렷하게 들리기 시작하였고, 그의 말투 역시 힘이 들어가기 시작하는 것인지 어조가 강하게 변화하였다.

         

       “사람은 벌레가 볼 수 없는 것을 본다. 벌레는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을 본다. 같은 세계에 살고 있음에도, 같은 세계를 보고 있음에도 그러하다. 같은 곳을 보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아도 느끼는 게 다르고 해석하는 것이 다르다면, 과연 그것은 같은 세계인가, 다른 세계인가?”

         

       번들거리는 광기.

       하지만 그 안에 자리 잡은 현기(玄機).

         

       “하나의 것을 보아도 보고 느끼는 것이 이와 같다면. 그러하다면 그 실체라는 것은 과연 실존하는 것인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감각에 지배당하고, 오직 감각으로만 받아들이고 인지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만 머릿속에 그것을 그리고 현실에 존재함을 깨달을 수 있다면 과연 그 실체의 진실한 모습은 무엇인가? 그것이 실존하기는 하는 것인가?”

         

       흐흐흐흐….

         

       “무슈. 우리는 그림자를 보고, 그림자 속에서 산다…. 그러하다면, 평생 그림자 속에서 벗어날 일이 없다면.

       …우리가 그림자와 다를 것이 무엇이 있는가?”

         

       “과연 그러하다.”

         

       박진성은 피에르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광기와 현기가 뒤섞여 있었고, 깨달음과 허무함이 소용돌이치며 기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어쩌면 잠시간의 평화이자 질서일 수도 있었다. 저 남자가 아프리카에서, 유럽에서 벌였던 일들을 생각해본다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피에르 마틴이 입에 담은 소리가 광인의 헛소리가 되지는 않는다.

       광기가 깃들어있기는 하되 그것에는 고뇌로 흉이 진 생각에 파고든 것이었고, 그곳에는 분명히 현기가 깃들어있었다.

         

       “피에르 마틴, 피에르 마틴. 너에게 묻나니. 세상을 감각으로만 인지할 수 있다면 우리는 감각의 감옥에 갇혀있는 것이냐? 감각이 우리의 한계를 규정짓는다면 우리는 그 한계를 초월해야 하는가, 그 한계를 수용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가?”

         

       “무슈. 감각이라는 것은 우리가 살아있기에 필연적으로 맞이할 수밖에 없는 벽이다.

       하지만 감각이란 무엇이냐?

       영혼의 존재를 보고 느낀다고 할지라도 그것 또한 감각, 시공간을 인지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 또한 감각, 사람이라는 종의 한계를 뛰어넘어 다른 동물의 것을 이식한다고 할지라도 그것 또한 감각이다.

       감각의 한계를 뛰어넘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사람이라는 하나의 종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을 말하는가? 몸 안에 잠들어있을 사념과 영혼을 일깨워 주변을 인지하는 것인가? 그것 또한 감각이라 말한다면.

       …그렇다면 감각을 초월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감각이라는 것이 한계라 규정한다면, 과연 그 감각은 무엇인가?

       부단한 노력이나 어떠한 재능으로 인해 다른 무언가를 느낄 수 있게 된다면 그것 또한 감각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인지하는 순간, 인지할 수 있게 되는 순간 그것이 감각으로 편입된다고 한다면, 그러하다면 감각이라는 것을 과연 한계라고 규정할 수 있는가? 끝없이 팽창하고 확장하는 개념을 한계라고 한다면 과연 그것을 초월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무슈. 이곳에 그 실마리가 있네…. 우리를 규정하는 것, 우리를 그림자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것. 우리의 인식, 그 인식에서 비롯되는 실존감. 이곳에는, 이곳에는 내가 그리도 찾았던 것이 존재하고 있어….”

         

       피에르는 흐흐 웃으며 팔을 쫙 펼쳤다.

       이곳을 둘러보라는 듯이.

       마치 자신이 이곳의 주인이라도 된 듯이 말이다.

         

       “이 원통을 보게…. 불과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SF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물건이야…. 사람을 복제할 수 있는 원통…. 심지어 숙련된 과학자만 있다면…. 유전자를 편집한 아기까지도 만들 수 있지.

       원통과 연결된 이 관이 보이나? 원통 안에 있는 톱과 칼들로 ‘폐기처분’을 하고 나면 ‘폐기물’이 이 원통으로 빨려 들어가지…. 그리고 유체역학에 정통한 이들이 설계한 구조에 의해 세척액이 두 번만 왕복하면 깔끔하게 세척이 되고…. 그 후에는 위에 있는 이 관에서 배양액이 내려오고, 카트리지로 넣은 세포를 토대로…. 혹은 들어가 있는 사람을 토대로 해서 새로운 사람이 형성되는 것이지….”

         

       피에르는 기쁜 듯 눈웃음을 쳤다.

         

       “저기 있는 것도 보이나…? 뭔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저 원통…. 저것도 대단하지. 안에 있는 존재를 부작용을 감수하고 형성시키는 원통이네. 실패하거나 기형이 만들어질 확률이 높다는 것을 깨달은 후, 과학자들이 그것마저 어떻게든 활용하기 위해 지혜를 짜내서 만든 원통이야…. 일종의 프로토타입이라고 할 수 있지.

       보이나? 저 날카로운 칼과 정, 봉합 도구와 레이저가? 기형이라면 어떻게든 성형해서 본래의 형상과 닮게 만들고…. 사람과 먼 형상이라고 할지라도 어떻게든 사람 형상으로 만들고…. 고깃덩어리 수준이라면 어떻게든 안에 내장 기관을 만들어서라도 ‘생존’시키기 위한 집념의 도구…. 하하하.”

         

       정말 멋지지 않은가?

         

       “나는 감탄하였네. 솔직히 아프리카에서 중국인들이 행패를 부리는 것을 너무 많이 봐서 그리 감정이 좋지는 않았어…. 하지만 이곳에 오니 나는 개안을 할 수밖에 없었지. 그래…. 괜히 세계 3대 상인으로 유대인 상인, 중국 상인, 아랍 상인이 들어가는 게 아니었어. 중국만큼 상인에 특화된 민족이 없다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구나 하고 깨달았다 이 말이지….

       경제적이지 않은가…!

       다른 나라였다면 그저 실패 확률을 줄이고, 기형이 생기지 않게 만들려고 애를 썼을 텐데…. 이들은 애초부터 발상을 달리하였어…! 기형이 문제라면 성형하면 된다고, 하자가 있다면 어떻게든 숨만이라도 붙어있게 만들면 된다고…! 이건 정말로 들어가는 돈을 어떻게든 아끼고 이익을 뽑아내려 궁구하지 않는 한 나올 수 없는 발상이라네…!”

         

       진심으로 감탄이라도 한 듯 피에르 마틴의 말에는 기쁜 감정이 묻어나왔다.

         

       “무슈. 들어올 때 드럼통을 보았는가?”

         

       “그러하다.”

         

       “그 드럼통에 무엇이 있을지 짐작하였는가?”

         

       박진성은 그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폐기물이 있겠지.”

         

       “그래…. 폐기물이 있지….”

         

       폐기물.

       흔히 쓰이는 말이지만, 사람을 복제할 수 있는 시설에서 사용하기에는 너무나 의미심장한 단어다.

         

       “잘게 조각난 사람의 신체. 한 번 사용해서 더는 사용할 수 없게 되어버린 배양액. 전염성 암의 위험성이 있는 개체 등…. 저 드럼통 안에는 그러한 것들이 가득하다네…. 그런데 그거 아는가?

       이 놀라운 상인 민족의 사람들은, 저것들을 돈으로 바꿀 궁리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저것을 돈으로? 아, 과연.”

         

       박진성은 피에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식인풍습이 사라진 지는 그리 길지 않았다.

       중국 지역의 식인풍습은 중국의 문헌에 기원전 약 21세기 정도에 존재했다고 기록된 하나라에서부터 시작된 유구한 것이었는데, 이는 공포를 부르기 위한 행위이거나 복수를 위한 행동과도 관련이 되어있는 것이었다. 중국인이 미덕으로 여기는 ‘복수’와도 크게 관련이 있는 문화였다.

       그렇기에 이러한 문화는 길게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청나라가 멸망한 후에도 식인풍습의 잔재는 한참이나 남아있었으며, 인육을 돈으로 거래하는 일이 기록으로 남아있기까지 하다. 심지어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인육 장사를 하다가 걸린 적도 있었는데, 그게 불과 1900년대 초반에 있었던 일이다.

       중국 공산당이 중국의 모든 인민을 감시하기 시작한 지금에야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감시체계가 부실했던 몇십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범죄자가 많은 지역이나 치안이 좋지 않은 시골에 가면 납치되어서 인육을 파는 음식점에 팔려나간다는 괴담이 널리 퍼져있었다.

       그렇기에 몇몇 학자들은 중국 공산당의 치적 중 하나로 이러한 미개한 악습을 사라지게 만든 것을 꼽기도 하였다.

         

       하지만 감시한다고 안 한다면 그게 어디 사람이겠는가.

       금기라는 것은 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동시에 깨뜨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으며, 그렇게 깨뜨린 다음에는 배덕감이라는 미주에 취해서 헤어 나올 수 없게 되는 법이다.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사치와 향락에 접어드는 것처럼, 더 높아지는 쾌락의 역치를 만족시키기 위해 비정상적이고 금기에 맞닿아 있는 행위에 접어들게 되는 것처럼…중국에도 그러한 이가 있었을 뿐인 이야기다.

         

       다만 그것이 금기에 한없이 맞닿아 있는.

       현대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식인’이라는 끔찍한 행위라는 것이 차별화될 뿐이었고.

         

       “나는 그들에게 감탄하였고, 기꺼이 그들이 입에 담은 정보의 값을 치렀지….”

         

       박진성은 피에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얼굴 가죽 몇몇 개를 바라보았다.

         

       “어떠한 소원이었는가?”

         

       “부와 명예.”

         

       “어찌 들어주었는가?”

         

       피에르는 박진성의 물음에 답했다.

         

       “그것이 허상과 같음을 깨닫게 해주었지….”

         

       고생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어 보이는, 고운 피부의 얼굴 가죽들.

       그것들은 그 주인에게서 뽑은 것으로 추정되는 갈비뼈에 꿰여 있다.

         

       “그러하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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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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