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791

        

         

       “우리는 허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네. 형체가 없는 것, 형체가 있는 것. 그 모든 것은 존재하되 언제든 사라져버릴 수 있는 것. 그러하다면 사람의 목숨이 그러하지 않을 이유는 또 어디에 있는가? 우리의 삶이 해가 떠 있을 적 한때 드리워지는 그림자와 같다면, 반드시 찾아올 밤에 녹아드는 것은 어떠한 연유인가?

       영원할 수 없다면 그것이 과연 무슨 가치가 있는가. 영원하다고 하여 그것이 무슨 가치가 있을 수 있는가? 영원이라는 것 역시 우리의 감각으로 비롯되는 것. 개미의 한 달과 우리의 한 달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처럼, 그 가치가 다르게 되는 것처럼. 우리가 타고난 수명으로 감히 규정짓는 영원이란 참으로 가치가 없는 것이다.

       아…. 개미가 빵 한 조각을 가지고 보물이라고 끌어안고 있는 것과 부와 명예를 끌어안고 있는 인간의 삶이란 대관절 무슨 차이가 있는가…. 종이 다르고 살아가는 시간이 다르다고 한들 그것이 과연 밀도마저 다를 것인가…? 그 욕망의 농도가, 그 삶의 밀도가 과연 다르다고 자신할 수 있을 것인가…?

       기나긴 수명을 가진 이들이 인간을 바라본다면 우리의 삶은 찰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햄스터를 바라보듯 그들은 우리의 삶이 너무나 짧다고 생각할 것이고, 그보다 더 수명이 긴 이들은 우리의 삶이 짧아 탄식하는 이를 보면서도 저들의 삶이 넉넉하지가 아니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감각에 따라 같은 시간이라 할지라도 다르게 인식한다면.

       그러하다면 우주의 탄생과 소멸 역시 찰나라고 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이 있을까?”

         

       피에르는 울음이라도 섞인 듯, 혹은 울부짖음이 섞인 듯한 목소리로 말한다.

         

       “우리를 우리로 규정짓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하루를 평생으로 살아가는 미물과 우주의 탄생과 소멸을 하루로 살아가는 이들을 같은 존재로 규정지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감히 그들의 삶을 밀도로, 농도로 표현하여 그들의 가치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증명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의 감각 너머에 존재하는 그것, 감히 말로 규정지을 수도 없고 감각으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도, 인지할 수도 없는 그것의 존재는 무엇인가?

       아…. 어렵다 어려워…. 어려워.”

         

       피에르는 그렇게 탄식하듯 말하며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그러다가 무언가 생각이라도 난 듯 퍼뜩 눈을 다시 올렸는데, 그 눈에는 광기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그렇다…. 이 어려움 속에서 나는 괴로워하고 있다. 하지만 이 괴로움도 감각에 따라 달라지는 것. 우리의 감각은 통증이요 괴로움이다. 뇌가 거르고 익숙하게 하지 아니한다면 혈관을 타고 피가 흐르는 것도, 심장이 뛰는 것도, 먹고 마시는 것까지 모든 것이 끔찍한 고통과 괴로움이었을 것이다. 그러하다면 형체가 없는 이 괴로움도 허상과도 같으니, 과연 그것에는 의미가 있는가? 괴로움과 고통이 다르지 아니하다면, 그것과 정 반대에 있는 것과 같고 다름을 과연 견줄 수가 있는가?”

         

       번들거리는 눈동자.

       짐승의 울음소리에 가깝게 변해버린 음성.

       사투리가 섞였지만 나름 부드럽게 말하던 그의 말투는, 이제는 명확한 감정을 담고 있었다.

         

       “허상이여! 실존이여! 그 모든 것들은 나를 괴롭히지 말지어다!

       나에게는 이래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탐구하고 탐구한 끝에 간신히 잡은 실마리를 방해하려는 것이 어찌 정당한 일이라 할 수 있을까? 너 허상이여-!!!”

         

       감히 나를 방해하지 말지어다—–!!!!!!!!!!

         

       피에르는 울부짖으며 양손을 얼굴에 가져다 댔다.

       그러고는 거칠게 얼굴 가죽을 양손으로 찢어발기고는, 맨얼굴로 박진성을 마주 보았다.

         

       광기가 번들거리는 눈동자.

       잘려져서 흔적만이 남은 코.

       몇 번이고 쥐어뜯기며 기이하게 변해버린 귀.

       그리고 그 흉측해 보이는 몰골을 더더욱 기괴하게 만들어주는 새하얀 건치와 붉은 입술.

         

       제 광기와 괴로움을 못 이겨 스스로 코를 자르고 귀를 쥐어뜯었던 주술사의 모습이 드러났다.

         

       “무슈. 너는 부조리함이다. 너는 허상이다.

       인과에 어긋나 있으니 허상이요, 이곳에 도달해선 안 됨에도 내 앞에 있으니 너는 허상이다.

       하지만 분명히 실존하고 있으며, 벌레를 이끌고 도달하였으니 과연 너는 미물이냐? 허깨비냐? 우리는 한밤중에 깨었을 때 아무 기척도 느끼지 못했음에도 보이는 기괴한 형상을 보고 허상이나 귀신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너는 귀신이냐? 인과에 어긋났으되 너는 존재하고 있으니 귀신이냐?

       그러하다면 끌고 온 벌레는 무엇인가? 평범함을 가장하고 몸을 가득 채운 벌레로 움직이는 너는 대체 무엇이냐?”

         

       “과연 그러하다.”

         

       그의 물음에 박진성 역시 모습을 드러낸다.

         

       쩌저적.

         

       평범한 얼굴은 점점 무너져내린다.

       밀랍으로 만들기라도 한 것처럼 쩍쩍 금이 가기 시작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금 속에서는 스멀스멀 무언가가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길쭉한 벌레들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다리 달린 것들이 빠져나오며 머리를 완전히 없애버린다.

       머리카락은 꿈틀거리는 기생충으로 변화하고, 그것들은 바닥에 떨어지며 다른 형상으로 변모하기 시작한다.

         

       애벌레는 번데기로.

       번데기는 날개 달린 것들로.

       자그마한 것들은 크게.

       기생충들은 꿈틀대며 다른 벌레들에 몸을 의탁하여 사람의 몸에 들어갈 날을 기다리며 잠시간의 휴식을 취하기 시작하였으니.

         

       그것은 과연 사람 형상을 한 허상이라 할 법하였다.

         

       수많은 벌레를 두른 머리 없는 괴인(怪人).

       얼굴 가죽을 몸에 두른 광인(狂人).

         

       피에르는 수많은 얼굴 가죽의 뻥 뚫린 눈으로 박진성을 바라본다.

         

       그림자는 빛과 함께하며 그림자는 어둠 속에서 무언가에 연결된 것.

       그러하다면 뻥 뚫린 눈의 빈자리에 자리 잡은 그림자가 눈이 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 있는가. 그림자가 무언가를 흉내를 내고 무언가에 종속되어 있다면, 그것이 반대로 되지 못할 이유는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눈이 그림자를 만든다면 그림자가 곧 눈을 만들 수도 있는 법.

       허상과 실존이 의미가 없는 것이고 구분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 뿌리와 열매 역시 희석되는 법이다.

         

       눈.

       눈알이 꿈틀거린다.

       그림자로 만들어진 눈알이 꿈틀거리고, 얼굴 가죽의 입이 서서히 벌려지며 새까만 어둠을 보인다.

         

       그러고는 묻기를.

         

       “인과의 허상. 인과의 공허. 인과를 어그러뜨리며 존재하는.”

         

       “너는 꽉 차 있는 곳에 자리 잡은 공허다. 너는 보이지 않고 존재하지 않지만 어그러뜨리는 무언가다.”

         

       “너는 허상과도 같지만 동시에 존재하는, 우주로 따지면 블랙홀처럼 무언가를 왜곡시켜야 마땅하건만 빨아들이지는 아니하고. 모든 규칙을 무시한 채 기이한 어그러짐을 곳곳에 만들어지며 모든 것을 틀어버리게 만드는 무언가다.”

         

       “너는 과연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가?”

         

       “무슈. 대답해보아라. 너는 무엇이냐? 어긋나 있는, 뒤틀려 있는, 존재하지 않는, 그러나 존재하는. 그런 너는 무엇이냐?”

         

       수많은 가죽이 움직여 말을 한다.

       새까만 어둠으로 혀를 만들고, 목구멍이 없어도 소리를 내뱉으며, 공기를 빨아들일 수 없음에도 숨을 쉬는 듯 말을 토해낸다.

         

       “나는 너 같은 것을 모른다.”

         

       “너는 그림자이며 그림자가 아니다. 너는 사람이며 사람이 아니다. 너는 미물이지만 미물이 아니다. 그러하다면, 네가 그렇게 존재하고 있다면. 그러하다면 내가 지금까지 보고 느끼고 받아들여 왔던 모든 감각은 과연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그것이 정녕 의미가 있는가? 그것이 정녕 내가 인식한 감각이 맞기는 하였는가?”

         

       “전기자극으로 만들어내는 환상처럼 그것은 내가 느끼기는 하되 실체와는 떨어져 있는 것이었던가? 그러하다면 그것은 허상조차 되지 못하는, 아니면 허상에 불과한, 혹은 실존하는 무언가라고 할 수 있는가?”

         

       “영혼과 육체. 육체와 정신. 정신과 영혼. 실존과 허상. 그림자와 물체. 나를 만드는, 나를 규정짓는, 나를 가르는. 아아….”

         

       “무슈, 무슈, 무슈. 너 허상이여.”

         

       “나를 방해하지 말라.”

         

       “이것은.”

         

       “이것은 나의 것이다————-!!!”

         

       그 고성을 시작으로 이변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꽈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바람을 불어넣기라도 한 듯 부풀어 오르는 얼굴 가죽들.

       갓 베어 넘긴 머리통을 몸에 주렁주렁 달고 있기라도 한 듯, 혹은 사람 머리통이 열리는 나무라도 된 듯 피에르의 몸통에 붙어있는 것들이 제대로 된 형상을 이룬다. 쭈글쭈글한 주름은 쫙 펴지고,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처럼 한껏 늘어난다.

       그러고는 입을 쩌억 벌리고 토해내는 것은 어둠.

         

       새까만 그림자.

         

       입에서 토해내는 어둠이 공간을 가득 메우기 시작하고, 이능을 사용해서도 쉬이 꿰뚫어 보기 힘든 칠흑으로 지하를 칠하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그 어둠은 다시 피에르에게로 향하며 그의 피부를 덧칠하고, 그의 형상을 바꾸기 시작한다.

         

       갈색에 가까운 검은색이었던 그의 피부가 주위의 어둠과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새까맣게 변해가고, 그의 형체가 점점 뭉그러지기 시작한다. 감히 시각으로는 그를 판별할 수 없을 정도로 형상이 무너지기 시작하며, 어둠에서부터 그의 윤곽이 서서히 짜 올려지기 시작한다.

         

       커지는 키.

       늘어나는 팔.

       돋아나는 가시들.

       그의 개성을 증명하던 이목구비 역시 뭉그러지기 시작하고, 그가 몸에 주렁주렁 매단 머리통들 역시 어둠에 녹아들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위치가 변화한다.

       마치 열매가 매달린 나무가 급속도로 자라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풍선을 매단 무언가가 하늘로 높이 올라가기라도 하는 듯 점점 위로 올라간다. 머리통들은 점점 높게, 높게, 높게. 그렇게 점점 높게 올라가기 시작하고.

         

       이윽고 천장에 닿는다.

         

       그러고는 아래를 내려다보는 수많은 머리통은 새까만 그림자로 만들어진 눈동자로 머리 없는 남자를 바라본다.

         

       피에르는 나무가 되었다.

       그림자로 이루어지고, 사람 머리통이 열려있는 나무.

         

       기묘한 나무.

         

         

       

         

       

       

    다음화 보기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