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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92

        

       머리들이 춤을 춘다.

       목련꽃을 머금은 이상한 열매가 흔들리는 것처럼, 자신을 파먹을 까마귀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것들은 움직인다. 썩은 살점의 냄새도 없고, 한껏 풍기는 피비린내도 없이 그것들은 사람을 유혹하는 향기를 내뿜는 것처럼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감각의 혼동을 불러일으킨다.

         

       감각을 교란하는 힘.

         

       그것이 바로 저 열매에 깃들어있는 힘이었다.

         

       아니, 지금 피에르가 취한 형태의 힘이라고 하는 것이 옳으리라.

         

       “광인이여. 너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그림자를 집어삼켜 왔는가?”

         

       박진성은 그러한 피에르의 모습을 보며 차갑게 말한다.

         

       “말하기를 그림자는 사람의 영혼이요 정신. 네가 아무리 그것을 허상이라 주장하고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한들 그 상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평생을 그림자를 다루어왔다면 그것을 너는 익히 알고 있었을 터.

       묻나니, 너는 어찌하여 그림자를 포식하였느냐?”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림자는 사람의 영혼이나 정신에 비유되는 것이다.

       당장 짧게만 생각하여도 악마에게 그림자를 팔아넘긴 사람의 이야기, 뱀파이어 이야기, 귀신은 그림자가 없다는 것 등 수많은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는가. 그림자라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서 떼어놓을 수 없는 ‘어떠한 무언가’를 대변하는 역할을 해왔으며, 그것이 없다는 것은 무언가가 결여된 것을 뜻한다.

         

       당장 자기 모습을 보기 위해서도 그렇다.

       물이나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도 그림자가 아니던가?

       그림자라는 것은 자신이 자신으로서 존재할 수 있게 만드는 것, 혹은 자신을 자신으로 인식할 수 있게 만드는 어떠한 요소를 말한다.

         

       거울을 보았을 때 그곳에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있다면 과연 자기 모습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을까? 그렇게 자기 모습조차 인식할 수 없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가 정말로 제대로 된 존재라고 할 수 있을까?

         

       일찍이 현인이 말하기를 내가 존재하고서야 세상이 존재한다고 하였다.

       내가 인지했을 때야 세상이 비로소 존재할 수 있고, 내가 인지하지 못하면 세상 역시 존재할 수 없다면. 그렇다면 내가 인지할 수 없는데 세상이 존재한다면, 내가 존재하지 않는데 세상이 존재한다면 이 얼마나 비극인가?

       내가 없이 다른 것들로만 판단해야만 하고, 다른 이들의 시선으로만 존재할 수 있는 존재….

         

       무언가가 떠오르지 않는가?

         

       “피에르 마틴. 너는 신이 되고자 하였느냐?”

         

       신앙을 받아 존재하는 존재.

       초월종과는 다른, ‘신적 존재’로 숭배받는 무언가.

       일본에 수없이 존재하는…신앙과 신력으로 제 몸을 구성하는 것들이 떠오르지 않은가.

         

       “내가 없이 타인의 인식으로만 존재하는 것은 공허하다. 네가 아무리 어느 지역에 커다란 나무가 있다 떠들어댄다 한들, 설령 그 이야기가 널리 퍼지게 된다 한들 그러하다. 그곳에 방문한 이들은 그곳에 아무것도 없었음을 알게 될 것이고, 기록을 살펴본다면 그곳에 정녕 아무것도 존재하지 아니하였으며 모든 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쉬이 깨닫게 될 것이거늘.

       너는 어찌 그러한 물거품에 집착하느냐?”

         

       피에르 마틴은 그의 물음에 답한다.

         

       “물거품이 무엇이냐?”

         

       “우리는 안다. 신으로 추앙받으며 신력을 내어주는 이들이 초월자와는 다른 무언가라는 사실을. 인간의 무의식이 모여 힘을 주고, 인간의 무의식에서 비롯된 그릇으로 형태를 입고, 그렇게 그릇이 차올라서 만들어진 것이 그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인간의 그 힘을, 인간의 인식이 만드는 힘을 똑똑히 알고 있다.

       그 누가 신력을 ‘존재하지 않는 힘’이라고 하느냐?

       그 누가 그 반쪽짜리 신들을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느냐?

       그들이 존재하듯이 인식이란 헛된 것이 아니다.”

         

       “감히 내가 말한다. 허상과 실체는 인식에 관계되어 있고, 그것은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음이다. 그러하니 정신이 무슨 상관이냐? 영혼이 무슨 상관이냐? 애초에 그것이.”

         

       “의미가 있기나 하였던가?”

         

       이목구비가 그려진 열매들.

       사람 얼굴 가죽을 뒤집어쓰고, 과육으로는 그림자가 채워진 그것들의 눈알이 움직인다.

       그것들은 박진성을 바라보며 말한다.

         

       “정신이라는 것이 개체를 구분하는 하나의 기준이라면 집단 무의식의 존재는 무엇인가?”

         

       “영혼이라는 것이 개체를 구성하는 요소라면 악귀와 악령의 존재는 무엇인가?”

         

       “수많은 사유를 들었다. 수많은 사유를 보았다. 하지만 무엇 하나 맞는 것이 없다. 차라리 이능이 존재하지 않으면 모르되 이능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그것은 하나같이 모순을 품고, 오류를 끌어안고 있으니. 개중에 과연 정답은 무엇이냐?”

         

       “깊게 들어갔다고 여기면 그곳은 막다른 길이거나 잘못된 길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리하여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온다. 그 시작점조차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여 다시 뒤를 후퇴하고 보면 그것은 사유를 하기 시작한 뿌리가 되어버린다.”

         

       “그 뿌리조차 잘못되었는가 의심하면서 다시 앞으로 나아가 사유를 하려고 마음을 먹으면 그것에 또 다른 오류가 발견되고, 그 오류를 벗어나 어찌 답을 내리면 이전에 내렸던 답과 어긋나 서로서로 거짓이라 손가락질한다. 모순처럼 같이 존재할 수 없기도 하다.”

         

       “남아있는 것은 오직 최초의 것. 순수한 의문.”

         

       “하지만 그 의문조차도 정말로 순수하고 순결한 것이라 할 수 있는가?

       그것이 무오하고 무결한 것이라 할 수 있는가?

       나는 모른다. 나는 알 수가 없다….”

         

       “그 모든 것이 감각의 혼동 때문이라면, 그 모든 것이 인지와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면. 그러하다면 나는 평생 그 해답을 얻을 수 없는 것인가? 아무리 그것에 매달린다 한들 그 지혜의 편린조차도 알 수 없는가? 그러하다면-”

         

       광기(狂氣)가 맴돈다.

         

       “-인과조차 뒤틀려 있는 너는 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형체를 이룬 그림자가 움직인다.

       나무처럼 부풀어 올랐던 몸이 순식간에 뒤틀리며 그 형체를 바꾸어가고, 나뭇가지처럼 날카롭게 뻗었던 것들은 문어나 오징어의 촉수처럼 이리저리 휘며 박진성을 향해 쇄도한다. 그러면서 바닥에 늪처럼 번졌던 그림자에서는 날카로운 가시가 삐죽삐죽 솟아나고, 그림자 몸체에 생긴 거대한 균열에는 뾰족한 입이 가득 달린다.

         

       쩌억 벌어지는 입.

       그것은 마치 거북이가 먹이를 낚아챌 때 그러는 것처럼 목을 쭈욱 늘리며 박진성을 향해 나아가고,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입을 닫는다.

         

       침묵과 함께 닫히는 입.

       입이 닫히는 소리도, 무언가가 씹히는 소리도 없다.

       소리 없이 닫힌 입은 그 자리에 서 있었을 한 사람을 지워버렸다.

         

       마치 그곳에는 원래 아무도 없었다는 듯이.

       처음부터 허상이었고 신기루였다는 것처럼.

         

       “아…. 허상이 사라졌구나.”

         

       “그림자가 사라졌다. 벌레로 만들어지고, 정신을 연결하고, 영혼이 어딘가에 존재하였을 그림자가 사라졌다….”

         

       “육체와 정신과 영혼이 가득하다 한들 저것이 그림자라면. 내가 저것을 허상으로 인지하고 있기에 저것이 허상이 되었을 것이라면, 저 허상을 만들어낸 이가 저것을 허상으로 인지하고 있기에 저것이 본체가 되지 아니하였다면…그러하다면.”

         

       “복제되어 다시 태어나는 것들을 보고 사람들이 진짜라고 인식하였을 때, 그것이 진짜가 되지 않을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아아….”

         

       남은 것은 텅 비어버린 공간.

       점점 쪼그라드는 머리통으로 하는 혼잣말.

         

       “…그림자를 만들고, 빚어내야겠지….”

         

       음울하게 울려 퍼지는 한 주술사의 중얼거림.

         

         

         

        * * *

         

         

         

       중국의 한 허름한 호스텔에서 박진성은 눈을 뜬다.

       그가 있는 곳은 외국인은 숙박할 수 없는 곳.

       외국인이 중국인의 서민과 얽히지 않게 하려고 공산당이 강제로 분리해놓은, 그렇기에 필연적으로 가난하고 돈이 없거나 숙박비를 아끼고 대충 잠만 자기 위해 몸을 누이는 그러한 공간이다.

         

       곳곳에 기운 흔적이 있는 때가 탄 이부자리.

       푹 꺼져있는 싸구려 베개.

       곳곳에 기어 다니는 벌레들의 기척.

         

       굳이 호텔을 놔두고 이런 곳에서 묵어야 하냐는 의문이 절로 들게 만드는 풍경이다.

         

       하지만 이곳에는 분명히 장점이 존재한다.

       시공만은 양심 있는 사람이 하였는지, 방음은 철저히 되어있어 다른 방의 소리가 잘 들리지 않고, CCTV를 놓을 돈도 없어 감시에서 안전하며, 가난한 뜨내기들이 자주 들락날락하는 곳이기에 필요 이상의 관심을 받지 않는다. 심지어는 숙박 시간만 철저하게 지키고 강력범죄 같은 짓거리만 벌이지 않는다면 안에서 무엇을 하든 무관심하기까지 하다.

         

       잠시 머무를 은신처로는 참으로 적당하다 할 수 있다.

         

       그렇게 눈을 뜬 박진성은 그 싸구려 방 안의 풍경을 한 번 훑어보고는, 피식 웃었다.

         

       ‘허허. 성질머리 한번 고약하군.’

         

       안의 시설을 때려 부수려 했던 것도 아니고, 탈취하려는 의도를 보인 것도 아니고.

       그저 평범하게 대화를 나누려 하였을 뿐인데 다짜고짜 공격하다니.

       정말 성질이 고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 아닌가.

         

       물론 박진성이 그곳에 관광하기 위해 간 것은 아니다.

       그 시설 좀 살펴보고, 연구자료도 좀 보고, 필요하다면 그 시설들을 이용해 벌레와 기생충들을 잔뜩 배양하고 늘려서 뿌릴 수 있으면 뿌리고. 그러한 용도로 사용하려 할 생각이 분명히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다짜고짜 눈이 뒤집혀서 공격하는 것은 너무한 일이 아닌가.

         

       ‘인식과 관련해서 실험하려는 것 같던데, 그렇다면 그 육신을 조금 같이 쓸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둘이 충분히 공존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닌가.

       어차피 피에르가 필요한 것은 겉껍데기고, 박진성은 그 겉껍데기 안에 있는 것을 조금 사용하면 되었을 것을. 그러하다면 둘 다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 될 수도 있었을 터인데.

         

       ‘하기야 심마(心魔)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듯 보이니, 이 정도로 대화를 한 것도 기적이라 할 수 있겠지….’

         

       박진성은 광기가 번들거리는 피에르 마틴의 얼굴을 떠올렸다.

         

       광기와 현기의 공존.

       통제하지 못하는 감정의 격류와 널뛰는 논리.

       하나의 화두에 과하게 집착하는 모습….

         

       그것은 분명히 심마(心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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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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