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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93

    <793 – 교수들의 흑화를 막는 법(4)>

     

    고블린월드와 중간계의 차원 간 거리는 본래 상당히 먼 편이었다.

    하지만 몇 가지 이슈로 고블린월드와 중간계의 차원 간 거리는 크게 좁혀졌다.

     

    에어오딜론의 침략.

    이사장의 차원방어술.

    오크노디의 분신들이 저지른 차원파괴.

     

    서로를 잡아당기고 밀어내며 고착화된 차원 간 거리가 몇 개의 차원의 증발, 다수 차원의 전력약화로 인해 재편성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잿더미가 된 차원계 몇의 소실로 인해 힘이 약한 고블린월드도 일백차원의 변두리에서 중심부로 슬쩍 눈치를 보며 가까워질 수 있었다.

    마치 고블린과 같은 은밀하고도 소심한 걸음걸이는 근처 은하벨트에서 수많은 운석덩어리를 끌어당기며 띠를 두르던 거대차원 <타락차원>에 딱 걸렸다.

    타락차원에 입이 붙었다면 고블린월드를 바라보며 이런 말을 했을 것이다.

     

    “재단 어딨어? 사람들 왜 타락 안 해? 나 이제 뭐 먹고 살아?”

     

    재단은 사람들을 타락시킨다.

    돈으로, 이성으로, 때로는 암흑마나로.

    자연스럽게 재단은 타락의 신의 힘을 가장 사용하기 쉬운 조직이 되었고, 일백차원 모두를 침략자로 간주하는 이사장의 뜻과는 달리 쓸 건 쓰자는 실용주의학파의 주장으로 음지 중의 음지에서는 몰래몰래 숨어서 타락의 신의 힘을 쓰는 이들이 많았다.

    그처럼 가장 많은 신자가 속한 와이히엠하이 재단이 하루아침에 폭삭 망해버렸다.

    타락차원에 전해지는 타락의 영성이 줄어드니, 차원 자체의 힘이 약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

    시골깡촌 변두리를 떠돌다가 얼떨결에 극태타락차원계의 손에 붙잡혀 수많은 위성과 같은 신세가 될 뻔했던 고블린월드는 간신히 타락차원을 피했다.

     

    강한 인력을 지녔으나, 지난 전쟁의 여파로 힘이 약해진 차원계들은 고블린월드를 중간계와 보다 가까운 곳으로 끌어당기되, 자신의 주변으로 고블린월드를 확실히 가두지는 못했다.

    그렇게 수많은 행성의 힘겨루기에 끌려오고 또 끌려오던 고블린월드는 어느덧 중간계와의 시간비율이 1 대 1 수준으로 좁혀졌다.

     

    “칫. 그럼 고블린월드에 다녀와도 못된 교수들이 늙어 죽거나 강한 선배들이 죄다 졸업하고 우리 세상이 찾아오는 미래는 없는 거야?”

    “하아. 뭔가 좀 아쉽네요. 세비체 백작가의 수십 년간 실종되었다가 돌아온 수수께끼의 전전대 백작영애가 될 기회가 사라지다니.”

     

    차원 간 시간비와 그에 따른 중간계의 변화를 기대했던 티토소가와 아카디아는 크나큰 아쉬움을 보였지만, 시간여행감수성이 부족한 로지니는 뚱한 얼굴로 일침을 날렸다.

     

    “무슨 소리들을 하는 거야? 그런 일에 휘말리면 잠깐 차원계를 떠돌다가 돌아오는 사이에 오크노디가 할머니가 되어있잖아.”

    “안 돼!! 오크노디가 할머니라니, 친구도 없이 혼자 고독하게 늙는 오크노디는 인정할 수 없어!!”

     

    갑자기 머리를 쥐어뜯으며 발광하는 헤스티아만큼은 아니어도 다들 어긋난 시간비가 자아낼 비극이 그리 만만한 것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린도 울적한 얼굴로 철없는 동기들에게 시간여행의 비극에 대한 지적을 보탰다.

     

    “연 4% 이율의 은행통장에 보관된 돈이 100년 뒤에는 50배로 불어나겠지만, 늘어난 군자금으로 지킬 백성들과 가족이 전부 죽으면 그 돈이 다 무슨 소용인가요.”

    “응? 해적들은 원래 하루살이라서 주점 가서 술 한 잔만 돌리면 선원이 무한대로 보충되는데?”

    “최고의 고고학자는 현재가 과거가 될 때까지 시간여행을 하는 자… 모험단 부단장으로서 좀 탐이 나기는 하네.”

     

    아카데미의 정신 나간 풍조에 정신머리가 조금씩 오염된 지고쿠와 이사벨의 감상에 주변 동기들이 흠칫 놀랐다.

     

    “정신 차려, 지고쿠. 넌 잡졸들도 해적단원이라고 아끼고 챙겨주는 모범적인 해적단 단장이잖아. 네가 없으면 밑에 애들이 얻어맞고 다니다가 유급할 거야.”

    “바다는 아카데미 밖에도 많아.”

    “백 년 동안 얻어맞다가 역사에 이름 한 줄 남기지 못하고 지고쿠해적단 전체가 사라질걸?”

    “재단에서 삥뜯은 그 커다란 배를 가지고 망할 수가 있냐?”

    “선장 없다고 팔아치우고 은퇴하면 어쩌려고?”

    “이 배은망덕한 놈들이!! 머리통에 구멍을 내버리겠어!!”

    “예를 들면 그렇다는 거지, 예를 들면!”

    “쟤 잡아!”

     

    바다에서의 성장속도가 500% 상승하는 지고쿠에게 연합군 vs 재단이라는 최고의 판까지 깔아준 지금, 지고쿠의 몸부림은 쟁쟁한 동기들이 너덧씩 붙고도 질질 끌려다닐 정도로 굉장했다.

     

    “진정해. 아무튼 이 기회에 교수님들의 어려운 처지를 이용하면 우리에게 학점은 퍼주고 과제는 내주지 않는 학점 셔틀을 만들 수 있잖아. 그런 개꿀을 놔두고 우리끼리 다툴 작정이야?”

    “오?”

    “해적이라면 모름지기 교수에게 학점 정도는 털어야지. 안 그래?”

     

    이슈타르의 설득은 지고쿠도 감쪽같이 넘어갈 정도로 설득력이 넘쳤다.

    차원문을 앞두자 보다 현실적인 걱정이 학생들을 엄습했다.

     

    “생각처럼 쉽게 될까?”

    “썩어도 준치라고 나름 교수인데 그렇게 위기에 처했을지도 의문이야.”

    “솔직히 상상이 가? 교수들이 맞고 다니는 모습.”

     

    차원문을 넘어갈 때까지만 해도 과연 교수들이 그리 순순히 넘어갈지 반신반의했던 학생들이 나란히 고블린월드로 진입했다.

    애초에 고블린 용사가 뭐라고 교수들을 그렇게 위협할 수 있을까.

    엄청난 수의 동족을 소환해서 마나가 마르도록 물량공세를 펼치기라도 하나?

    원시적인 천옷으로 급소만 겨우 가린 차림새의 고블린들을 떠올리던 학생들은 미처 생각지도 못한 강력한 마나반응이 그들을 반겨주었다.

     

    찌이잉!

     

    들어오는 순서대로 강하게 울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신음을 흘리며 주저앉는 학생들.

    급히 마나를 일으켜 신체를 보호하려 애써도 두통은 가라앉을 줄 모르고 역으로 더 커졌다.

    지고쿠도 제 허벅지에 소형탄을 쏘며 충격을 줄 정도로 괴로워하고, 아이린도 스스로 만든 얼음칼로 손바닥을 그으며 벌이는 자해.

    다른 학생들은 그 꼴을 보고 고통을 느끼는 와중에도 기겁했지만, 이슈타르는 그 행동이 광증으로 생긴 미친 짓이 아님을 알았다.

     

    “당장 자해를 시작해! 이건… 체력이 일정수치 이상인 사람에게 지속적인 고통을 주는 마나독이야!”

    “독 자체를 몰아내면 되잖아. 마나로 영역을 선포해서 독을 몰아내면…”

    “멈춰! 그런 짓을 했다간 잠복한 <감지술식>에 걸려!!”

    “?!”

     

    오직 인간종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극악무도한 독.

    그 독을 몰아내려 시도하는 순간, 곧바로 위치정보가 대륙 각지에 설치된 중계기에 전송된다.

    빠른 실행력으로 이미 사고를 친 티토소가가 힝 거리며 눈치를 봤지만 이슈타르가 한숨을 쉬기도 전에 지평선 저 너머에서 빛이 번뜩였다.

     

    ━━━

    [대인간살상병기 이지스급 10500mm 마나주포]

    <저격> + <조준> + <필중> + <급속> + <충전> + <증폭> + <말살> + <섬멸>

    8연계 대인살상연계기 <인간말살포>

    ━━━

     

    티토소가의 조명대에서부터 자동적으로 펼쳐진 특대형의 방어마법이 인간말살포의 포격을 넘쳐나는 마력의 체급으로 막아냈다.

    함선 하나를 일격에 관통할 위력을 인간 하나가 버텨내는 마나량이 경악스러울 광경이지만, 한 발의 저격이 막히자 인근 다섯 개 중계기의 마나가 모이며 다섯 문의 인간말살포가 연사를 퍼부었다.

    지표면이 녹아내리고 방패에 맞아 튕겨나간 말살포의 일부가 산 하나를 지워버리는 광경에 다른 친구들은 감히 가까이 설 엄두도 내지 못했다.

     

    “으앙, 살려줘!”

     

    두 팔로 머리를 감싸며 쪼그려 앉은 티토소가를 향해 퍼부어지는 살인적인 공세에 보다 못한 이슈타르가 성검을 휘둘렀다.

     

    ━━━

    <홀리미러> 변형기

    발동효과 : 공격 흡수 및 반사

    ━━━

     

    앞서 발사된 인간말살포를 거울에 충전하고 뒤에 발사된 인간말살포를 향해 사출하며 적의 공격으로 공격을 막아낸다.

    형편 좋은 방어에도 위험은 따른다.

    이슈타르는 거울의 통로를 유지하던 자신의 마나가 엄청난 속도로 깎여나가며 본신에까지 반동으로 충격이 누적되는 것을 느꼈다.

     

    ‘이건, 이사장과 겨루었을 때에 버금가는 충격…!’

     

    물론 그녀가 받아낸 이사장의 공격 따위, 오크노디의 화신체들을 상대하며 분산한 일부에 불과하다.

    그런 일부라고 해도 981기 동기들 사이에서 받아내고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한 손에 꼽는다.

    그만한 일격이 고블린월드 도처에서 이번에는 십여 발이 넘게 충전되는 것을 느낀 이슈타르가 다급히 여우가면의 소녀를 향해 외쳤다.

     

    “반응을 없애, 빨리!!”

     

    즈앙의 손이 티토소가의 얼굴을 슥 훑어내니 잠복술식이 발동하며 티토소가에게 잔뜩 묻은 표식이 딸려나왔다.

     

    ━━━

    <훔치기>

    발동효과 : 티토소가가 지닌 조준 표식을 인간말살포의 인식을 속여 훔친다.

    ━━━

     

    급히 힘을 맞댄 로지니와 아이린의 차원문에 조준 표식을 던지자 인간말살포가 일제히 차원문의 저편으로 날아갔다.

    파캉!

    차원문이 깨지며 로지니와 아이린이 마법파괴의 반동으로 피를 흘리며 주저앉았지만, 덕분에 간신히 한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미, 미친…”

    “으앙, 진짜 죽는 줄 알았어…!”

    “대체 방금 건 뭐야?!”

     

    일신의 부족한 전투력을 보충하기 위해 다양한 공부를 하며 마도공학에도 일가견이 있는 아카디아가 인간말살포 시스템을 간파하였다.

     

    “자동말살시스템이네요.”

    “자동말살…?”

    “인간을 감지하고, 저항의지가 있는 일정수준 이상의 강자를 자동적으로 조준하여 제거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추정되어요.”

     

    인간이라면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는 가혹한 시스템이 구축된 세계.

    초고대에서도 제작시도만으로 만인의 적으로 지정되어 그 강대한 저력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피할 수 없었던 삼대거악의 시스템이 완성되었다.

    이런 가혹한 환경에서 버텨왔을 교수들이 얼마나 험한 꼴을 겪고 있을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조심해요. 행성마나스캔을 통해 지표면의 마력생물체를 감지하는 인공적인 세계영역마저 펼쳐져 있어요. 걸리면 직전의 그것들이 또 날아올 거랍니다.”

     

    이건 재단이 아니라 어디 인류를 간식거리 삼아 잡아먹는 외신의 손도 덥썩 잡고 탈출할 지옥이었다.

    교수들의 설득이 문제가 아니라 이 미친 인간말살 시스템을 구축한 고블린용사를 설득하는 쪽이 훨씬 더 어려울 상황!

     

    “곤란하게 됐네. 이곳에 느껴지는 불길함… ‘잠복술식의 발동 트리거’가 아직 한참 더 있어.”

     

    괴수림의 길잡이 도로시가 인상을 찌푸리며 익숙한 공포에 덜덜 떨었다.

     

    “100걸음 이상 이족보행을 하면 조준당하는 트리거.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만지면 조준당하는 트리거. 도와줘를 외치면 조준당하는 트리거…? 아차!”

     

    키이잉!

    트리거를 읽다가 무심코 ‘도와줘’를 말했다고 지평선 너머에서 다시금 밀집하는 어마어마한 마력반응에 도로시가 얼어붙었다.

     

    “지저로 도망쳐!”

     

    이슈타르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겁에 질린 도로시의 다리가 풀려버렸다.

     

    “도로시가 죽겠어!”

    “바닐라, 방패를 펼쳐!”

    “넵!”

     

    지평선 저편에서 빛이 번쩍이자 근처의 학생들이 급히 도로시의 앞에 방어를 펼쳤다.

    티토소가야 마나가 많으니 버텼지만, 과연 우리가 받아낼 수 있을까?

    학생들의 긴장이 무색하게도 공격은 혼비백산한 상태에서 겨우 벗어나고 있던 티토소가를 강타했다.

     

    “으앙, 왜 나만 쏴!”

     

    조명대의 솔라빔으로 간신히 공격을 걷어내며 지저로 뒷걸음질을 치는 티토소가.

    지표면에서 티토소가의 모습이 감지되지 않고 나서야 사태는 겨우 진정되었다.

     

    “이제야 알겠네.”

     

    직전과 달리 한결 침착하게 사태를 관찰했던 아이린이 무언가를 알아차렸다.

     

    “이건 교수 저격용 마법이야. 그리고 이 자리에 교수만큼 마나가 많은 사람 1순위는 티토소가야.”

     

    즉, 감지술식에 누가 걸려도 티토소가가 공격받는 티토소가에게만 잔인한 구조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미세먼지가 미쳤어요… 테디베어 숨막혀… 살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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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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