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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94

    <794 – 교수들의 흑화를 막는 법(5)>

     

    어둡고 축축한 지하에 티토소가의 조명대가 빛을 발산하니 소녀들의 울적한 얼굴이 드러났다.

     

    “우리 이제 어쩌지?”

     

    누군가가 훌쩍거리며 눈물을 삼키는 소리가 들리자 모두의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교수들을 구하기 전에 자신들도 피난민 신세가 된 까닭이었다.

    간간이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과 쏟아지는 흙더미가 적막에 공포 한 스푼을 더하는 도중, 한 사람이 문득 고심 끝에 입을 열었다.

     

    “잠시만. 나 아까 아카디아 얘기를 듣다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어.”

    “뭔가요, 이사벨?”

    “고대문명의 <황금의 상인>에 대해서는 나도 에소니아 모험단과 함께 유적발굴 활동하면서 드문드문 접한 기억이 나.”

     

    황금의 상인.

    그는 한 시대에 이름을 떨친 고대의 삼대거악이었다.

     

    “황금의 상인은 황금으로 전 세계를 지배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려던 고대문명에 기록된 삼대거악이야. 고대의 기록물에 따르면 인류를 지배하기 위한 대인류지배병기를 개발하던 걸로 알고 있었는데 설마 고블린월드에서 그 흔적을 찾아보다니…”

    “잠깐만. 그거, 재단의 차기 수석장학생 후보였던 <황금의 마법소녀 아발론>과 관계있는 거야?”

    “수상하네요.”

    “수상하지…”

    “수상하다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너무나 신경 쓰이는 ‘황금’의 타이틀.

    안 그래도 의심이 가던 참에 아예 쐐기를 박는 증언까지 있었다.

     

    “아! 이제 기억났어. 황금의 상인의 이름은 아발론이라는 기록물이 있어!”

     

    이사벨의 진술은 확정타였다.

     

    “중간계의 신비를 수집하던 재단이 고대의 삼대거악을 부활시켰구나! 교수들을 고블린월드로 납치해서 극한의 환경에 굴복시키고 수하로 받아들이려던 사악한 흉계가 틀림없어!”

    “에엣? 그건 이상해… 고블린용사는 재단이 아니라 오크노디와 내가 밤새도록 함께 땀 흘려가며 열심히 만든 아이인걸!”

    “저기, 티토…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알겠는데 표현이 이상하니까 그만두지 않을래?”

     

    당시, 오크노디는 이사장과 분명히 척을 지고 있는 사이였다.

    실제로 이후에 벌어진 결전에서 오크노디의 화신체들이 도움을 가했던 것을 떠올리면 고블린용사로 이사장을 도울 의도는 분명히 없었을 것이다.

     

    “물론 과거의 역사에 기록된 아발론은 여자가 아닌 남자이고, 소녀가 아닌 아저씨라는 차이가 있지만…”

     

    살짝 자신감이 없는 이사벨의 첨언에 점점 살이 붙으며 급물살을 타던 추측이 와장창 무너졌다.

     

    “장난해?”

    “완전 다르잖아.”

    “동명이인이었다니, 김 빠지네…”

     

    김이 샌 얼굴로 푸념하는 학생들 사이에서는 괜히 설레발을 치게 만든 이사벨을 원망하는 시선도 섞여있었다.

    힘들고 무서운 환경에 시달리는 것도 서러운 마당에 이런 몹쓸 장난이나 치고 싶냐는 시선이었다.

    조금 억울한 기분이 든 이사벨은 자신의 의견을 뒷받침할 새로운 가설을 제시했다.

     

    “하지만 재단에는 사람의 영혼을 추출하는 기술이 있어. 실제로 오크노디도 나약한 본심이 되살아날 때마다 영혼이 찢어지고 우리가 아는 어딘가 고장 난 아이로 돌아오잖아.”

    “헉?”

    “그건… 일리가 있어!”

    “기대컨 미쳤다!!”

    “역시 에소니아 모험단의 부단장이야. 우리의 감정을 들었다 놨다 하는 재주가 엄청나!!”

     

    갑자기 태세전환을 하는 학생들 사이로 심각한 얼굴로 추측에 신빙성을 더하는 이도 있었다.

     

    “오크노디는 영혼이 여러 차례, 그것도 과하게 찢어진 탓에 갖추어야 할 상식도 없는 상태가 된 건가. 그럼 황금의 마법소녀 아발론이 교수의 조교가 된다는 잘못된 선택을 저지른 이유도…?”

    “상식이 없으니까!”

    “잘했어, 이슈타르. 아주 날카로운 추리였어!”

    “하긴 상식이 있으면 교수의 조교 따윌 할 이유가 없지. 안 그래?”

    “그럼 우리 아카데미에 있는 교수님들 조교들은 다 뭐야?”

    “재단장학생이겠지. 그것도 영혼이 뜯어진.”

    “그렇구나!”

    “영혼이 뜯어지지 않고서야 제정신으로 교수의 조교 노릇을 하는 미치광이들이 실재할 리가 없긴 해!”

     

    981기 여학생들 사이에서 이제 교수의 조교는 재단에게 영혼이 찢겨져 교수의 조교가 된다는 비상식적인 행동을 상식의 부재로 인해 무심코 저질러 버린 안쓰럽고 불쌍한 선배들이 되었다.

    원래도 어쩌다가 저런 짓을 했을까 싶어 불쌍한 선배들이었지만 그 이유를 추측하고 나니 두 배는 더 불쌍한 선배들이 된 것이다.

     

    “조교가 그렇게 불쌍한 건가?”

     

    발언자는 카시아.

    융합생명체의 신분으로 외부활동이 엄격히 금지되었지만, 아카데미 일정이 중지되며 일시적으로 자유의 몸이 된 소녀였다.

    실험실에 끌려와 정령체와 융합되는 융합생명체의 인생을 살아온 카시아에게는 조교나 교관이나 귀찮고 성가신 사람들일 뿐이었다.

     

    “조교는 아무래도 좋아. 그보다 모순이 남아있잖아.”

    “무슨 모순?”

    “재단이 교수들을 납치해서 굴복시키고 수하로 받아들이려는 사악한 흉계를 꾸미고 그 실행역으로 아발론이 선출되었지만, 정작 교수들을 위기에 빠뜨린 고블린용사는 오크노디와 티토소가가 만들었다던 티토소가의 이야기.”

    “아.”

     

    아발론에 대한 모두의 이해도와는 별개로 상황 자체에 대한 의구심이 아직 남았다.

     

    “그걸 안다고 뭐가 달라지기는 해? 우린 지하에 갇혔어. 교수님들처럼 또 구출대의 구출대가 도착하기만 기다려야 하는 신세라고.”

     

    냉소적이고 현실주의자적인 기질이 있는 용사파티의 성녀 유피의 지적에 모두가 울적한 얼굴로 땅바닥의 흙더미를 손가락으로 쿡쿡 쑤셨다.

    집단유아퇴행이 찾아와서 흙장난에 빠져도 이상하지 않을 절망감이 엄습한 영향이었다.

     

    “유피. 네 생각은 틀렸어.”

     

    이슈타르는 이런 우울한 분위기가 싫었다.

    기껏 인류의 안전을 위협하던 재단의 이사장도 토벌당했다.

    인류에 희망이 생겼다.

    그런데 정작 희망이 찾아온 시대에 동기들은 낯선 차원에서 울적하게 흙이나 들쑤시고 있다니.

    용사로서 이런 분위기는 납득이 가지 않았다.

    오크노디의 파파다.

    한 아이의 파파를 죽이면서 얻은 평화라면 좀 더 기뻐하고 소중히 여기며 쉽게 굽히고 무너지지는 말아야 할 것 아닌가.

     

    “가령 오크노디가 이사장을 이용해서 교수들을 역으로 길들일 생각이었다면 어때?”

     

    용사가 제시한 새로운 시각은 모두의 희망이 무너져 가던 희망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카시아. 내가 알기로 오크노디는 트로이 왕국을 부흥시키면서 널 제작한 비밀연구소도 매입, 불법실험을 모두 중지시켰다고 들었어. 내 말이 맞아?”

     

    이는 카시아의 부정적 이벤트 제거와 호감도 상승을 위한 포석이었지만, 은혜를 입은 당사자에게는 그저 친구를 위하는 성실한 행동일 뿐이었다.

    모순을 제기했던 카시아조차도 한결 부드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니, 오크노디 흑막설은 동기들 사이에서 큰 지지를 얻었다.

     

    “와… 그럼 오크노디는 재단이 교수들을 데려가봤자 힘 빠진 교수들은 이슈타르가 극복할 수 있고, 반대로 남은 교수는 우리가 여유롭게 회수할 수 있다고 큰 그림을 그린 거야?”

    “오크노디 그림 짱 잘 그려! 영혼도화지에 그린 거 내가 다 봤어!”

     

    티토소가의 해맑은 외침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는 않았지만, 이 모든 것이 오크노디의 큰 그림이었다는 생각은 혼란에 빠졌던 학생들에게 마치 오크노디가 곁에서 함께 하는 기분을 들게 했다.

     

    “분명 오크노디도 우리라면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보낸 걸 거야.”

    “오크노디의 안배가 있다면 우리로도 충분히 해볼 만하지 않을까?”

     

    자신감을 얻은 학생들은 작전을 바꿨다.

     

    “지하 어딘가에 숨어있을 교수님들부터 찾자.”

    “우리가 지저에 들어온 건 도망치기 위함이 아니야. 지하에 숨은 교수들을 찾기 위한 큰 그림일 뿐이야!”

    “그건 정신승리가 아닐까?”

    “오크노디가 만일 우리가 정신승리를 할 것도 예측했다면? 이것도 오크노디의 큰 그림 아니야?”

    “정신 차려. 그건 병이야.”

     

    아무렴 어쨌건, 희망과 용기를 되찾은 학생들의 고블린월드 지하대탐험이 시작됐다.

     

     

    * * *

     

     

    “오크노디. 여학생들을 죄다 고블린월드로 보낸 그거 정말 괜찮은 거냐?”

     

    같은 시각, 여학생들이 잔뜩 떠난 아카데미에서 그늘 속에 몸을 감춘 싱이 우려를 드러냈다.

     

    “아하. 싱도 이젠 여학생인데 같이 어울리고 싶지만 정체가 드러나면 부끄러우니까 수치심 때문에 차마 어울릴 수 없었던 용기 없는 행동이 후회됐나요?”

    “전혀 아니다! 난 남자다. 지금은… 그냥 여자의 형태로 있으면 강의를 듣지 않으면서 네 호위를 계속할 수 있고, 덤으로 여자의 형태로 오른 영역 4단계의 유지도 더욱 손쉬우니까 이렇게 있을 뿐이다. 결코 여학생이 되고 싶은 게 아니다!”

    “암암, 그 마음 이해해요! 갑자기 여자가 되면 뭔가 좀 부끄럽고 치마를 입어서 다리 사이로 바람이 부는 것도 거슬리고, 다리를 벌리고 편하게 앉으면 몸가짐이 나쁘다고 아카디아한테 막 때찌때찌 당하고 거슬리는 구석이 한둘이 아니긴 하죠!”

     

    싱은 조금 감동받았다.

    여학생인 오크노디가 남자에서 여자의 몸을 빌리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이렇게 잘 이해하다니.

    마치 원래는 남자였다가 여자가 된 사람처럼 불편한 부분을 정확히 짚어내는 공감 발언은 오크노디가 싱 자신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를 재확인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아무래도 여학생들이 처한 위기는 꽤 심각해 보였다.

     

    “괜찮다고 생각해요!”

    “교수들이 위험에 처할 정도로 심각한 차원계인데?”

    “애초에 티토소가는 고블린용사의 창조주인걸요?”

     

    영혼의 도화지를 그린 사람은 영혼의 창조주나 다름없다.

    하물며 현재 고블린월드의 고블린들은 티토소가에 의해 변종이 잔뜩 탄생한 상황.

    티토소가를 보기만 해도 한눈에 그녀가 자신들의 창조주임을 혼의 계위에서 깨닫고 넙죽 엎드려 절하거나 창조주를 목격한 감동에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

     

    “창조주를 해치는 피조물은 없어요!”

     

    물론 이런 생각은 원격으로 교수급 강자를 초장거리에서 저격하는 인간말살포 중계시스템이 정착된 시점에서 깔끔하게 글러먹었다.

    감동도 뭐가 눈에 보여야 하지, 인지하지도 못하는 곳에서 인류말살포에 얻어맞는 티토소가의 사정은 오크노디도 고블린용사도 알 길이 없었다.

     

    “모종의 이유로 티토소가가 고블린용사의 눈에 띄기 전에 다른 요소로 습격을 받을 수도 있지 않냐.”

    “뭐 그렇기야 한데… 그거야 지하로 내려가는 짓만 안 하면 괜찮겠죠!”

    “지하? 어째서?”

    “티토소가는 기본적으로 빛나잖아요!”

    “엄청 빛나긴 하지.”

    “번쩍번쩍하면 멀리서도 잘 보이잖아요?”

    “눈을 감아도 눈부심이 느껴질 정도기는 하지. 마나감지기관은 아예 마비가 될 정도로.”

    “그런 빛을 가지고 지하로 들어가서 눈에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지진마법을 맞으면 눈에 보이기도 전에 생매장을 당해서 곤란하겠지만, 겁 많은 티토소가가 설마 지하로 내려가기야 하겠어요? 사다코 교수님 강의를 그렇게 많이 들었는데!”

     

    툭하면 땅 밑에서 스켈레톤이 해골 손뼈다귀를 뻗고, 좀비들이 질척한 썩은 살점을 들이민다.

    그런 강의를 몇 번이고 듣다보면 없던 지저공포증이 생기는 것이 정상이었다.

     

    “그러니까 티토소가는 무사히 고블린용사의 눈에 들어오고 사이좋게 협상한 다음에 남은 교수들도 건져올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요!”

     

    오크노디의 생각에 오산이 있다면, 여러 사건을 겪으며 티토소가의 깡따구가 늘었다는 점이다.

    분명 처음에는 지저공포증이 있던 티토소가도 이제는 거침없이 조명대를 들고 지하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갈 정도까진 아니어도 인류말살포를 피해 뒷걸음질로 지하에 들어갈 정도로는 공포증이 경감되었다.

    그 결과는…

     

     

    * * *

     

     

    우르릉, 뇌성처럼 울려대는 땅에서 흙더미가 마구 쏟아지기 시작했다.

     

    “으앙, 지진이야!”

    “마, 마력방벽 켜! 천장을 막아!”

    “지상은 인류말살포에 지하는 지진이라니, 여긴 지옥인가?!”

     

    여학생 일동의 미친 듯이 가혹한 고블린월드 생존투쟁기는 이제 막 1일차에 접어들었을 뿐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으앙앙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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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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