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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94

        

         

       박진성은 천천히 몸을 풀기 시작했다.

       우두둑 소리를 내며 관절 부분이 으스러지고, 고무로 만들어지기라도 한 듯 길게 늘어난 팔이 천장에까지 닿는다. 다리에는 관절이 여러 개가 있기라도 한 듯 여러 갈래로 비틀어지기 시작하고, 역관절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등 격렬한 변화를 일으킨다. 머리 역시 마치 고무찰흙처럼 이리저리 모양새를 변화시키다가 이윽고 본래의 모습으로 변화한다.

         

       ‘허허. 벌레들도 이렇게 좀 움직여주어야 관절이 녹슬지 아니하는 법.’

         

       이 기괴한 스트레칭은 그저 현재 박진성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벌레들을 위한 것.

       말이야 그들의 몸을 풀기 위하여 그랬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조금 달랐다.

         

       안을 구성하고 있는 벌레의 위치를 바꾸는 것은 물론이고-그들의 구성에 조금 변화를 주기 위한 것도 있었기 때문이다.

         

       느껴진다.

       몸 안에서 격렬하게 꿈틀거리는 것들의 움직임.

       수놈과 암놈이 서로 몸을 겹치며 알을 낳고, 그것이 순식간에 부화하는 느낌.

       박진성의 내면의 밀도는 점점 높아진다.

       앞서 피에르 마틴에게 파괴되어버린 손실을 순식간에 메꿔버릴 수 있을 정도로.

         

       물론 그것이 공짜는 아니다.

       주술에는 대가가 필요한 법.

       이것에 어찌 대가가 없을 수 있을까?

       아무리 그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일본에서 만들어낸 ‘재료’들을 이용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렇기에 대가가 적을 수 있다고 할지라도. 그런데도 대가를 아예 지불하지 않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것이 주술이었으니까.

         

       박진성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

       직원도, 투숙객도 누구도 그를 주목하지 않았다.

         

       이곳은 그런 곳이니까.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뜨내기에게 줄 것은 무관심뿐이었으니까.

         

       그러한 무관심 속에서 박진성은 너무나도 쉽게 이동을 할 수 있었다.

         

       그가 도착한 곳은 한 호텔.

       공안들이 바삐 돌아다니고 있는 호텔이다.

         

         

         

        * * *

         

         

         

       “으으…으으으….”

         

       화려한 호텔 방.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빨간색 장식들이 곳곳에 있고, 곳곳에 중국인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글자인 ‘복 복(福)’ 자가 곳곳에 있다. 전통 방식과 현대 방식을 잘 엮어서 만든 난방이 되는 최고급 침대는 잠들기 최적 온도를 항상 유지하고 있었으며, 호텔 방의 인테리어와 어긋나지 않는 아름다운 형태의 아티팩트들이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는 듯 자신의 존재감을 뽐낸다.

       끼니때마다 같이 들어오는 고급 차(茶)의 향기는 어느새 객실 안에 배어서 은은한 향기를 풍기고, 저 멀리 도시의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풍경은 볼 때마다 가슴을 탁 트이게 만드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거기에 창문으로 다가가면 느껴지는 은은한 바람.

       최상급 필터를 장착한 공기 청정 시스템이 밖의 유해 물질을 모조리 거른 뒤 깨끗한 공기만을 안에 순환시키고 있기까지 하니.

       그야말로 별을 받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최상급 호텔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으으으….”

         

       도대체 뭐 마렵기라도 한 것인지 가만히 있질 못하고 안절부절, 그러면서 입으로는 귀에 거슬리는 앓는 소리를 쉴 새 없이 내뱉고 있는 남자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시끄러워요!”

         

       그렇기에 당장 거슬리는 소리를 멈추라며 빼액 소리를 지르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겠지.

         

       하지만 시끄럽다고 한 소리를 들었음에도 남자의 안색은 좋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얼굴에는 짙은 불안감이 감돌고 있고, 한숨을 푹푹 쉬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다. 정작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을 해결할 방법을 떠올리지도 못하고, 설령 떠올린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수행하지도 못할 텐데 말이다.

         

       무의미한 마음고생이다.

         

       “하, 하지만 선미야….”

         

       “하…. 오빠. 진짜 오빠 때문에 노이로제 걸리겠어요.”

         

       선미.

       그녀는 차이네라는 예명 대신 자신의 본명을 부르는 매니저를 향해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호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생활이 며칠이나 이어졌기 때문일까?

       일정이 모두 취소되어 딱히 꾸밀 일이 없었기에 그녀의 얼굴은 화장기 하나 없었다.

         

       노이로제 걸리겠다는 그녀의 말처럼 그녀의 맨얼굴에는 눈그늘이 자리 잡고 있었고, 피부는 묘하게 푸석푸석해 보이는 것이 스트레스 때문에 피부가 조금 상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게다가 중국의 음식과 물이 입에 맞지 않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다른 나라에 여행을 가면 필히 겪는 것이 물갈이인데, 중국은 물이 더럽기로 유명한 나라가 아니던가.

         

       심지어는 이상한 테러범 때문에 수원지가 오염되고 있기까지 했으니, 물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나은 편이었다.

       외국에서 온 유명인이라 그런지, 나름의 대우는 해주고 있는 편이었으니까.

         

       “선미야, 너는 진짜 간도 크다. 이런 상황에서도 별로 동요하질 않은 것 같은데….”

         

       “뭐, 그러네요….”

         

       차이네는 매니저의 말에 한숨을 살짝 쉬고는 화장실을 바라보았다.

       방금 매니저가 샤워하고 나와서 그런지 바닥에는 물이 흥건했다.

         

       “그래도 최악은 아니니까요….”

         

       그래.

       최악은 아니다.

         

       차이네는 그렇게 자신을 설득하기라도 하려는 듯, 속으로 중얼거렸다.

         

       실제로 최악은 아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만 봐도 그렇다.

       오염 운반자에 의해서 수원지가 오염된 후, 당에서는 물을 통제했다. 오염된 물이 도시 전체로 퍼지게 되면 감당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단순히 인민들이 오염된 물 때문에 죽어 나가는 것을 막으려는 것도 이유였지만, 그렇게 죽거나 병에 걸린 이들 때문에 도시에 전염병이 퍼지게 된다면 정말 끔찍한 재앙이 벌어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인민들은 반발했지만, 차이네가 보기엔 그건 아주 현명한 행동이었다.

       인민들이 당이 ‘물을 쓰지 말라’라고 말한다고 물을 정말로 사용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오염되었다고 해도 마시지만 않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다른 용도로 사용하거나, ‘에이. 그깟 오염정도야 주기율표에 있는 원소를 다 먹어보는 게 우리 중국인인데 그 정도는 버틸 수 있지!’라면서 근거 없는 자신감에 물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아니면 유사 과학이나 미신이 판치면서 이상한 방법으로 물을 정화하고 먹겠다고 덤비는 사람도 있을 테고, 평소 그랬던 것처럼 차를 끓여서 마시면 아무 문제가 없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

         

       그런 사람들을 다 통제할 수 있을까?

       테러범이 아직 잡히지도 않은 이 상황에서?

         

       차라리 처음부터 수도관을 걸어 잠그는 것이 더 편하고 확실하지 않겠는가.

         

       그래.

       여기까지는 괜찮다.

         

       하지만….

         

       ‘사람이 많네….’

         

       그렇게 잠근 뒤의 방법이 문제였다.

         

       당에서는 여러 방법을 통해 물을 정화해서 사람들에게 배급하고 있었는데, 당연하겠지만 평범한 인민들에게는 정말 적은 양만이 돌아갔다. 간신히 요리를 만들 수 있는 수준, 혹은 많이 양보해서 세수 정도나 할 수 있을법한 적은 양이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절약한 물은 당 고위 간부나 부자들의 몫으로 돌아갔고 말이다.

         

       하지만…차이네에게 있어선 그것이 오히려 행운으로 다가왔다.

       당 간부 중에 팬이라도 있었던 걸까? 아니면 외국인인 데다가 유명 연예인이라는 포지션을 가지고 있는 차이네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어떠한 목적이 있는 것일까?

         

       차이네와 매니저는 호텔의 좋은 방을 얻어서 그곳에 머무를 수 있었다.

       호텔 방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반 구금을 해놓는 형식이기는 했지만, 둘은 그것을 이해했다.

       적어도 ‘함부로 바깥을 돌아다니는 것은 위험하다’라는 이유만큼 그들의 피부에 와닿는 것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당장 창밖을 보더라도 그렇다.

       조금 으슥한 곳만 보더라도 배급받는 물을 뺏기 위해 싸움이 벌어지는 것이 보였고, 밤만 되면 집이 불타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거기에 공안이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기에 망정이지, 사람들의 눈에 독기가 올라와 있는 것이 상황이 심상치 않아 보이기도 한다.

       아마 차이네와 매니저가 호텔에서 머무르는 것을 포기하고 밖으로 뛰쳐나왔다면…그리 좋은 꼴은 보지 못했으리라.

         

       ‘그래서 가만히 있으니…. 음. 배려를 해주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

       당장 룸서비스로 오는 음식들만 해도 그렇다.

       처음에는 평범한 음식들이었지만, 그들이 공안의 배려에 감사를 표하면서 잘 협조해주자 만족했다는 듯 음식의 질이 올라가는 게 눈에 보였다. 당장 차만 하더라도 단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딱 봐도 고급 차로 보이는 것이 같이 오기까지 했고….

         

       게다가 통제하기는 하지만, 짧게나마 샤워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물을 공급해준다는 것 역시 그랬다.

         

       이 정도면 확실히 손님 대우를 하는 것이다.

         

       ‘왜 이런 대우를 해주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악은 아니란 거겠지….’

         

       그렇기에 불안감에 덜덜 떠는 매니저와는 달리, 차이네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 이유 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녀가 겪었던 일들이 면역을 만든 것일지도….

       광인과 얽히고,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연예계 인생이 아래로 내려갔다가 위로 솟구치고….

       그런 것에 비하면 이번 일 정도는…어떻게든 붙잡고 있을 수준일지도.

         

       그래.

       경험은 사람을 성장시키는 법.

         

       차이네 역시 성장했을지도 모른다.

       이제순인지 뭔지 하는 미치광이와 얽혔던 것도, 악덕 회사에 걸려서 행사 뺑뺑이를 돌았던 것도, 최악의 매니저들이 걸려서 마음고생했던 것도,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초반에 악플 세례를 받았던 것도.

       하나하나는 끔찍한 일이었고,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일이었지만…. 지나고 나니 그 썩을 일들은 정말 잘 썩어 거름이 되어 그녀를 성장시켜주었을지도 모르는 일인 것이다….

         

       “오빠.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이런 과분한 대접을 받으면서 그렇게 불안해하면 예의가 아니라고요.”

         

       “…그러네.”

         

       “저는 잘 거예요. 오빠는요?”

         

       “…나도 자야지. 근데 잠이 오려나 모르겠다. 음…. 그래도 저 차 향기 때문에 좀 진정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혼자서 느긋하게 차 좀 마시다가 자면 되겠네요.”

         

       “그래. 고급 차인 것 같은데…. 음. 우리가 불안해할까 봐 진정 효과가 있는 걸 준 건가? 이거 고마운데….”

         

       차이네와 매니저는 그렇게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곤 의미심장한 눈빛을 슬쩍 교환하고는, 차이네는 그대로 자신이 방으로 사용하고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폭신한 침대에 몸을 뉘고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잠자리에 들기 위해서….

         

       …

       …

       …

         

       눈꺼풀이 감기며 어둠이 자리를 잡는다.

       귀가 예민해지고, 밖의 소리가 들린다.

       차를 따르는 소리, 매니저가 차를 홀짝이는 소리, 방 내부에 있는 가전제품이 내는 자그마한 소음…그리고.

         

       [ 현명하군. 도청을 당하는 것을 알고 그렇게 공산당과 공안을 찬양하는 대화를 나눈 것이냐? ]

         

       …낮은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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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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