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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95

        

         

       [ 현명한 아해야. 너의 행동거지는 참으로 올바른 것이었다. 이 방뿐만이 아니라 호텔 전체에 도청 장치가 깔려 있느니. ]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속삭인다.

       아니, 귓가가 아니라 머리에 속삭이는 것 같다….

         

       [ 그나마 이곳은 나은 것이다. 평범한 객실의 경우에는 아예 CCTV가 설치되어 있기도 하니, 과연 이곳의 공안은 너희가 외국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나름의 대접을 한 것이나 다름이 없음이다. ]

         

       머릿속에 직접적으로 말을 전달하는 듯한 그러한 느낌.

       환청이라기에는 너무나 선명하고, 가위에 눌렸다기에는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는 상황.

       차이네는 지금 이 목소리가 실제로 들려오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 다만 너희의 행동거지가 좋지 아니하였다면 이러한 배려도 무용지물이 되었을 것이다. 손님을 배신하는 주인만큼이나 혐오스러운 것이 주인을 배신하는 손님이 아니겠느냐? 대접하였음에도 불만을 늘어놓고 불평을 털어놓았다면 너희에게 가졌던 일말의 호의는 산산이 조각나고 날카로운 증오와 혐오가 되어 너희를 덮쳤을 것이니. 과연 너희의 행실은 올발랐다 할 수 있을 것이다. ]

         

       [ 주인이 손님에게 내온 식사를 맛있게 먹고 만족을 표하는 것만큼 주인을 흡족하게 만드는 것이 어디에 있겠느냐? 몸을 뉠 수 있으면 마구간도 괜찮다며 겸손하게 말하는 손님이 주인이 내어준 훌륭한 침실을 보고 기뻐하며 감사를 표하는 것만큼이나 주인을 흡족하게 만드는 것이 어디에 있겠느냐? ]

         

       [ 이곳은 호텔이고, 너희는 이 호텔의 소유주에게 직접적으로 대접을 받지는 아니하였다. 하지만 호텔의 소유주보다도 더 힘을 가진 이들이 이곳을 실질적으로 점거하고 너희들에게 내어주었으니 마땅히 주인이라고 할 수 있을 터.]

         

       ‘골전도?’

         

       자기 행동을 칭찬하는 목소리를 들은 차이네는 문득 자신이 이 목소리를 어떻게 듣고 있는지 깨달았다.

         

       골전도 헤드폰.

       음악방송을 할 때 고막이 아니라 뼈와 피부의 진동을 통해 소리를 전달하는 헤드폰을 낀 적이 있는데, 딱 그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때와는 조금 다른 것이, 그 골전도 헤드폰은 묘하게 거슬리는 느낌이 들었는데…. 지금 들리는 소리는 정말로 몸속에서 소리가 생겨서 뼈를 통해 귓가까지 옮겨놓기라도 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느낌이었다.

       정말 머릿속에 직접적으로 말을 거는 게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말이다.

         

       ‘…아니면 전음이라는 게 이런 느낌인가?’

         

       혹시 모른다.

       차이네가 직접적으로 경험해보지 못해서 그렇지, 무인들이 사용한다는 전음이나 마법사가 사용하는 메시지 마법이 이런 느낌인 건지도 모르지.

       하지만 차이네는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이 소리는 그러한 것들과는 다르다고 말이다.

         

       [ 그래…. 하지만 아해야. 이곳에 기약도 없이 갇혀있다는 것은, 참으로 답답하지 않더냐? ]

         

       [ 밖의 풍경을 바라볼 수는 있어도 그곳에 섞이지는 못한다. 숨을 쉴 수는 있지만 그것은 바깥의 공기와 괴리가 되어있다. 먹을 수는 있어도 밖에서 먹는 것만 못하고, 주거할 수는 있으나 밖으로 나갈 자유가 없으니 이것이 감옥과 다를 것이 무엇이냐? ]

         

       [ 감옥에 갇힌 이들을 보고 사람들은 ‘참으로 훌륭한 곳에서 먹고 자는군요!’라고 감탄하지 않는다. 설령 그 감옥이 보석으로 치장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산해진미가 식사로 나온다고 한들 그러하다. 왜냐하면 그곳에서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자유가 박탈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

         

       [ 손님을 한 방에 가둬두는 것은 아무리 안전을 위해서라고는 하나 여행자의 의의를 빼앗는 것이나 다름이 없음이요, 하늘의 별을 붙잡아 항상 제자리에 유지하려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 그러하니 어찌 답답하지 않을 수 있으랴? 붙잡힌 여행자는 발길을 옮기고, 별은 제 고향을 찾아가기를 바라는 것이 순리가 아니겠는가? ]

         

       [ 그러하니 아해야. ]

         

       목소리는 차이네에게 은근하게 말한다.

         

       [ 내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나에게 약간의 도움을 준다면 너에게 자유를 주겠느니라. ]

         

       [ 대단한 것도, 수고가 드는 것도 아니니. 네가 자유를 얻는 대가로는 차고도 넘치는 것이리라. ]

         

       그것은 이곳에서 빠져나가게 해준다는 달콤한 유혹.

       약간의 노력만 기울이면 당장이라도 이루어줄 수 있다고 말하는 소리.

         

       차이네는 그 목소리의 제안에 잠시 고민하려는 듯 눈을 감았다가,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마치 잠꼬대하는 듯, 하지만 명확하게 ‘목소리’의 제안에 답하는 내용을 담고 말이다.

         

       “…싫어요.”

         

       그리곤 더 이상 듣지 않겠다는 듯 이불을 확 뒤집어쓰곤 눈을 감는다.

         

       ‘정말 말한 것처럼 주인이 손님을 대접해주고 있는 거라면, 손님이 주인을 배신해서는 안 되는 법이니까.’

         

       …

       …

       …

         

       목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 * *

         

         

         

         

       ‘과연, 현명하구나.’

         

       박진성은 자신의 제안을 거절한 차이네의 모습을 보며 허허 웃었다.

       제안을 거절당했음에도 그의 얼굴은 기분이 나쁘지 않다는 듯 미소가 띄워져 있었는데, 그것은 차이네가 이불을 뒤집어쓰면서 했던 생각과 똑 닮은 이유였다.

         

       ‘그래. 손님은 주인을 배반하지 말아야지. 주인이 손님을 배반하지 아니하듯이 말이야.’

         

       어느 곳에서나 존재하는 보편적인 불문율.

       설령 원수라고 할지라도 손님으로 왔을 때는 대접을 해주어야 하고, 감히 해하려 들어서는 아니 되는 법이다. 그리고 이는 손님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것인지라, 자신을 귀히 대접하는 이를 함부로 해하려 들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손님이 주인이 되고, 주인이 손님이 되는 세상살이에서 그러한 배반은…신용과 율법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행동이나 다름이 없으며, 금기에까지 다다를 수 있을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황금률(黃金律).

         

       자신이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

         

       차이네는 박진성의 제안을 거절하였으되 이 황금률을 철저하게 지켰다.

       끝까지 주인을 배신하지 않는 손님의 모습을 보이면서 말이다.

         

       ‘그러면 다른 방법을 써야겠지.’

         

       호텔에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가장 간단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현재 차이네가 머무르는 곳은 호텔의 고급 객실.

       바꿔 말하면, 고층 건물의 윗부분이라는 이야기였다.

         

       그곳에서 일을 벌였다면 일이 쉽게 돌아갔겠지.

       차이네가 협조하였다면 그녀를 움직여서 주술 의식을 위한 제단을 만들고, 차이네에게 미리 감염시켜놓은 기생충과 호텔 안으로 들여보낸 벌레들을 사용해 차이네를 ‘박진성의 대리인’과 같은 위치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고는 강림 의식을 뒤틀어서 박진성의 분신을 그곳에 소환한 뒤 조립하여 쉬이 호텔에 잠입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차이네는 주술 의식의 대가를 받게 되기야 했겠지만…. 그거야 뭐 대단한 수준은 아니었을 것이다. 기껏해야 전신 근육파열, 혹은 고열 상태로 일주일 정도 끙끙 앓는 정도였을 것이니…. 박진성이 말한 것처럼 중국에서 탈출시켜주는 대가로는 나쁜 것은 아니었겠지.

         

       하지만 차이네는 그것을 거부하였다.

       제대로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말이다.

         

       ‘허허. 간만에 미덕을 보니 참으로 좋구나. 그래. 주인은 손님을 존중하고, 손님은 주인을 존중해야지. 암 그렇고말고.’

         

       박진성은 흡족한 기분으로 호텔을 목표에서 지웠다.

       존중받을 사람들이 있는 곳에 어찌 해코지를 할 수 있으랴?

       저곳에는 신의가 있고 예를 아는 이들이 있으니 마땅히 대우받아야 한다.

         

       하지만 저들과는 반대되는 이들이 존재하였으니.

         

       ‘하지만 힘없는 이들의 것을 수탈하여 제 배를 불리는 이들은 어찌 탐욕스럽지 않으랴?’

         

       신의도 없고 예도 모르며 측은지심도 없으니 저것이 과연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느냐?

       그러하니 저들은 무슨 일을 겪더라도 어떠한 불평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박진성은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정지!”

         

       공안으로 보이는 남자들이 그를 제지하기 전까지 말이다.

         

       “여기는 함부로 들어와선 안 되는 곳이다. 돌아가도록!”

         

       박진성은 자신을 제지하는 공안들의 모습에 약간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공안의 말처럼 ‘함부로 들어왔다간 큰일을 당할 수도 있는 곳’에 멋모르고 발을 디딘 평범한 사람처럼 말이다. 그러고는 약간 겁먹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슬쩍 고급스러워 보이는 저택과 눈앞의 공안들을 훑어보고는 알겠다는 듯한 표정을 띄웠다.

         

       그러고는 자신은 아무런 무기도 들고 있지 않다는 듯 천천히 양손을 들어 올리고는, 몸 안의 벌레들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꿈틀거림과 함께 팔 쪽으로 모이는 날벌레들.

       날벌레로 가득 찬 팔은 박진성의 명령이 떨어진다면 풍선처럼 터져나가며 셀 수 없이 많은 벌레로 분해하여 그들을 물어뜯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주입하는 독은 순식간에 저 공안들을 무력화시키거나 죽일 테고 말이다.

         

       “제, 제가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바로 돌아가겠습니다…!”

         

       박진성은 당황한 듯 빠르게 말을 내뱉는다.

       그리고 공안이 방심하는 그 찰나, 팔을 폭파하려는 그 순간.

         

       ‘음?’

         

       스치듯 지나가는 기척.

         

       ‘이건…마력인데?’

         

       벌레로 이루어졌기에 오히려 잘 느껴지는 에너지.

       몸속의 벌레들을 어수선하게 만드는 강렬한 마력의 느낌이 고급 저택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당 고위 간부가 있는 곳이라고는 하지만, 이건…. 호위에 적합한 느낌이 아닌데?’

         

       그냥 마력이 아니다.

       피비린내가 물씬 풍기는 듯한 마력이다.

       감정을 담기라도 한 듯, 살의가 가득 녹아있는 마력이다.

       심지어 처음에는 제대로 느끼기 힘들었던 느낌이, 점점 증폭되고 있기까지 하다….

         

       “허허. 이거 참. 그 처자 덕분에 흥미로운 이와 얼굴을 또 마주하게 되겠구나.”

         

       박진성은 천천히 입을 열어 중얼거렸다.

       혼잣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또렷하고, 누군가에게 말한다고 하기에는 모호한 말을.

         

       그리고.

         

       콰아아아아앙-!

         

       …그의 말에 회답하듯, 솟구치는 마력이 고급 주택을 반으로 갈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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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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