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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96

        

         

       강물에 색색의 페인트를 푼 것만 같은 색채.

       서로 섞이지 않는 화려한 색깔의 기체는 자신을 과시하듯 하늘로 피어오른다.

       수증기처럼 덧없이 끝이 흩어지며 허공에 녹아드는 것도 같고, 허공에서 생겨나 땅으로 솟구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아름다운 색채여.

       무지개보다는 더럽고, 기름 막에서 피어오르는 색채보다는 깨끗한, 한 겹 기름을 둘러 빛을 반사하는 것만 같은 더러운 마력의 기척이여!

         

       쿠와아아아앙-!

         

       무지갯빛 마력은 색채를 뽐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물리력을 발산한다.

       대기를 일그러뜨리며 주변 사물마저 왜곡시키고, 제 몸에 톱날이라도 달린 것처럼 강렬한 소음과 함께 저택을 갈라버린다.

         

       그러고는 마치 무언가가 빨아들이기라도 하는 듯 한 점으로 수축하며 구체의 형상을 이루고는.

         

       콰드드득!

         

       제 몸을 단단히 굳혀 사방에 가시를 만들어, 성게와 같은 형상으로 저택을 부순다.

         

       그 가시의 크기는 얼핏 보아도 10m는 훌쩍 넘어 보이는 거대한 크기였으며, 콘크리트를 두부처럼 뚫어버리고 철근을 간단하게 휘게 만든다.

       당연하게도 그 가시에 찔린 이들 역시 몸이 철보다 단단한 것이 아닌 이상에야 멀쩡할 도리가 없어서, 그래서 가시에 조금이라도 스치면 몸이 포탄이라도 맞은 것처럼 터져나가고, 꿰뚫리면 거대한 구멍이 뚫리고, 때로는 몸의 일부가 삭제되듯 사라져 몸을 가누지 못해 비틀거리다가 풀썩 바닥에 쓰러진다.

         

       재앙.

       어지간한 폭탄 테러를 아득히 능가하는, 강렬한 재앙이다.

         

       고급 주택 하나를 날려버리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자르고 꿰어서 죽여버렸으니, 이것을 재앙이 아니라고 한다면 무엇이라고 하겠는가?

         

       그리고 그러한 재앙의 중심부.

       파괴되어 먼지가 뭉게뭉게 솟아오른 그곳에서 한 사람의 그림자가 보인다.

       구두를 신고 있는 듯 저벅거리는 소리로 돌덩이를 밟고, 바닥에 흐르는 핏물을 인주로 삼아 발자국으로 도장을 찍으며 제 흔적을 남기고, 이윽고 몸에서 찬란히 빛나는 무지갯빛 선을 선보이며 그 남자는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다.

         

       푸쉬익-

       푸쉬익-

         

       입에 쓰고 있는 방독면에서는 거친 숨소리가 흐른다.

       파란색의 빛나는 액체는 방독면의 통로를 핏줄 삼아 빠르게 흐르고, 마치 산소마스크라도 되는 양 남자의 입가에서 기화되어 푸르스름한 연기가 되어 남자의 폐에 스며든다. 잘게 쪼개져 연기처럼 형상을 이룬 마력은 마력 중독이라도 일으키려는 양 남자의 몸에 빠르게 스며들고, 남자의 몸에 흐르는 오염된 형질을 품고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연기를 밖으로 내보낸다….

         

       푸쉬익-

       푸쉬익-

         

       정장을 입었음에도 숨길 수 없는 마력의 빛.

       들어간 것은 분명 파란색 마력이건만, 들어온 마력은 마치 저 남자의 색에 물들기라도 하는 듯 몸의 일부를 지날 때마다, 몸을 돌아다닐 때마다 점차 다르게 물들어간다….

         

       그것은 오염.

       덧칠이라기에는 너무나 이질적이고, 조화라고 하기에는 어우러지지 않으니.

       저것은 오염이다.

         

       “화가 납니다.”

         

       그리고 그러한 오염된 마력을 풍기는 남자는 말한다.

       마력을 한계치까지 운영하고 있음을 알려주듯 푸르스름한 안광을 발하며, 방독면이 전해주는 마력을 감로수라도 되는 듯 한껏 들이켜며 남자는, 오염운반자는 말한다.

         

       “강렬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음에도 이러한 반응을 보인다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입니까? 커튼콜을 마다하고 굳이 앙코르를 바라며 행패를 부리는 사람들에게, 저는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분노를 꾹꾹 담아 읊조리는 말 한마디 한마디.

       그리고 말이 이어질수록 피어오르는 마력의 선….

         

       마력으로 이루어진 선은 눈 깜짝할 사이에 입방체를 만들고, 그 입방체는 분열하듯 사방으로 선을 뻗치며 확장된다. 확장된 선은 서로 붙으며 각을 이루고, 그렇게 만들어진 입방체는 수축하듯 줄어들었다가 늘어나며 모양을 다채롭게 바꾸기 시작한다.

       길게 늘어진 형상은 마치 전개도를 만들려는 듯 모양을 바꾸어가며 십자가와 비슷한 형상을 이루고, 그리곤 다시 움직이며 4차원 초입방체(hypercube)의 형태를 만든다.

         

       4차원 마력설계도(魔力設計圖).

       점, 평면, 공간을 넘어서 ‘시간’을 마법에 도입하려 드는 마법사의 마법진.

         

       저런 형태의 마법진을 사용하는 이들은…경지에 발을 걸쳐있거나, 경지를 넘은 이들이다.

         

       ‘정팔포체(正八胞體)…?’

         

       박진성은 터질 듯 진동하는 정팔포체 형태의 마력 구조물을 바라보며 머리채에 손을 올렸다.

       그리곤 힘껏 자신의 머리채를 바닥으로 잡아끄는 듯 아래로 내렸고.

         

       ——–!!!

         

       그와 동시에, 대기가 일그러졌다.

         

         

         

        * * *

         

         

         

       마법사(魔法師).

       ‘마력’이라 불리는 에너지를 사용하는 이능력자다.

         

       하지만 ‘마력을 사용하는 이능력자를 마법사라 칭한다’고 정의를 하였음에도 마법사의 이미지는 모호한 면이 있었다.

       공장 같은 곳에서 양산형 아티팩트를 만드는 노동자도, 아티팩트 설계 도면을 붙잡고 낑낑거리는 장인도, 마력 전지를 사용해 돌아가는 마도 과학 기계를 만지는 엔지니어도, 인공위성에 마법진을 새기는 연구원도, 대학에서 돈을 퍼부어가며 마법 연구를 하는 교수도, 공격 마법을 주로 익혀서 경호원이나 용병 일을 하는 전투마법사도.

       전부 이 ‘마법사’라는 분류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얼핏 본다면 이 ‘마법사’라는 존재의 분류는 마치 주술사를 분류해놓은 것만큼이나 애매하기 짝이 없는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특히 마법사들이 마력을 사용하는 방식들을 살펴본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심장에 마력을 모아서 사용하는 방법, 무인이 내공을 모으는 가상의 기관인 ‘단전’을 만드는 것처럼 마력을 모으는 ‘단전’을 만드는 방법, 몸 안에 고리를 만들어 계속 회전시키는 형태, 층층이 쌓아 올려 탑과 같은 형상으로 만드는 방법, 내장에 마력을 쑤셔 넣어서 강제로 변이시켜 마력을 받아들이는 기관으로 바꾸는 방법, 피에 마력을 저장하는 방법, 몸에 그냥 무식하게 마력을 때려 박는 방법, 외부의 아티팩트에 마력을 축적해서 사용하는 방법, 회로 같은 형태로 가상의 통로를 만드는 방법 등등….

         

       마력을 사용한다는 공통점만 있을 뿐.

       학파에 따라서, 비전에 따라서 마력을 다루는 방법이 천차만별이다.

         

       게다가 마법을 사용하는 방법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이는 옛날부터 전해 내려온 종교적, 주술적 상징을 결합한 형태- 예를 들어서 룬어나 상형문자 같은 것을 사용한 방식으로 힘을 발산하고, 어떤 이들은 아티팩트를 통해 마력의 형태와 성질을 변형시켜서 사용하며, 어떤 이들은 아예 몸에 저장되는 마력을 변질시켜서 사용하기도 한다.

         

       어쩌면 이렇게 다양한 방식이 존재하는 것은 ‘마법의 과도기’이기에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능이 전면에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독특한 방식의 마력 운용 방법이 난립한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렇게 어지러이 퍼져있는 수많은 방법은 서로 부딪치고 깨져가며 효율적이고 안정된 형태로 귀결되겠지.

         

       실제로 최근들어 ‘마력 회로’라고 불리는 가상의 통로를 회로의 형태로 짜 올려서 특정 마법에 특화해서 사용하는 방법이 유행한다는 것을 본다면 더더욱 그러했다.

       마력 회로는 다재다능한 이보다 한 분야에 통달한 전문가를 요구하는 현대문명과 궁합이 잘 맞는 방법. 어쩌면 이 마력 회로야말로 비효율적이고 규격이 통일되지 않은, 난립하고 있는 수많은 마력 운용 방식 중에서 현대문명에 가장 적합한 형태일 수도 있다. 특히 마도 과학이 발전하고 있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더더욱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알아야만 한다.

       그 방식이 어찌 되었건, 효율성이 어찌되었건, 마법은 마력을 다루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마력을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는 한, 그 경지에는 공통분모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점. 선. 평면. 입체. 그리고 시간.”

         

       마법은 외부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힘이다.

       그리고 외부에 힘을 투사하기 위해서는 형태를 이룰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마력을 어떻게 운용하든, 어떻게 활용하든 힘을 투사하는 방식은 차원의 개념을 벗어날 수 없다.

       점을 찍고, 수많은 점으로 이루어진 선을 긋고, 선으로 평면을 만들고, 평면을 모아 입체를 형성한다.

         

       경지에 따른 차원의 상승.

       차원이라는 것은 마력을 담아두는 그릇이며, 활용할 수 있는 한계다.

       그리고 그 한계를 뛰어넘으면…전의 차원과는 차원이 다른 어마어마한 위력의 마력을 어마어마한 효율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물감으로 점을 아무리 찍어도 선을 긋는 것만 하겠는가. 물감으로 아무리 도형을 만들고 속을 채워도 그것이 통에 담긴 물감을 들이붓는 것만 하겠는가?”

         

       그렇기에 3차원으로 마력을 활용하는 마법사는 전술 무기라 불려도 손색이 없다.

       2차원으로 마력을 활용하는 마법사들이 ‘넓이’의 개념으로 마력을 사용할 때, ‘부피’의 개념으로 마력을 활용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것은 그 크기가 커질수록 차이가 벌어져서,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어지간한 시간과 노력으로도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이 된다.

         

       하지만 이러한 3차원조차도 컵에서 물탱크처럼 부피를 늘린다고 할지라도 그 이상 활용할 수 없다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그렇기에 마법사들은 이 3차원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 공간에 하나의 요소를 더하려 하였다.

         

       “공간에 시간을 더하였으니. 하나의 공간에 여럿이 중첩된 것과 같음이니 과연 효율적이로다.”

         

       인간의 감각으로는 인지할 수 없는 것을 접목하여 3차원의 한계를 넘는 것.

         

       이것이 바로 마법사들이 말하는 ‘경지를 넘어서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 그 경지를 바라보는 이가 있다.

         

       “…너는.”

         

       그는 폐허가 된 곳에서 박진성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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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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