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797

    <797 – 교수들의 흑화를 막는 법(8)>

     

    이슈타르에게 C 학점을 주는 대범한 짓을 벌인 2학년 모험학부 필수강의를 가르치는 골드슈타인 교수가 애써 의연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이슈타르 2년생. 자네의 C학점 취득에는 본 교수도 안타까운 마음을 지녔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공정한 심사의 결과였다네.”

    “어쩌다 보니 모든 학생이 시험에서 만점을 받을 정도로 쉬운 문제를 출제했고, 어쩌다 보니 저에게만 주어진 어려운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보인 순간의 망설임으로 학습태도점수가 깎이고, 어쩌다 보니 공평한 경쟁의 결과 C학점을 받았다는 말이죠?”

    “그래. 모두 어쩌다 보니 일어난 우연일세.”

     

    같은 교수들도 이게 사람새낀가 싶은 얼굴로 무언의 비난을 날렸지만, 애초에 교수직함 달고 사람같지 않은 짓거리를 하는 놈들은 인면수심의 짐승새끼였다.

    사실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 할 짓이라는 뜻도 실제로 사람과 짐승이 반반 섞인 수인들이 듣거든 화를 낼 비유였다.

    수인이 무슨 죄가 있어서 저런 끔찍한 교수와 비교하며 모욕을 당해야 하느냐는 이유에서 말이다.

     

    “저건 짐승만도 못한 교수다냐! 당장 우리 던전에서 나가라냐!”

     

    마을을 지키려는 의지가 너무 투철한 나머지 마을을 습격하러 온 몬스터부터 구조비로 식량을 뜯으러 온 기사.

    멀쩡히 공생관계를 구축한 필드보스를 처단하는 대가로 마을의 보물을 강탈하러 온 용사.

    마을에 퍼진 전염병에 당할 걱정이 드는 성녀까지.

    마을에 온 모든 존재에게 우리 마을에서 썩 나가라며 소리치는 마을 주민처럼 제냐가 격하게 화를 내는 이유도 그런 이유에서 비롯되었다.

    교수들이 쓰레기 짓만 하면 짐승만도 못한 새끼라고 수인들에게도 광역 딜이 들어오는데 평소에도 수인이라고 얻어터진 기억밖에 없는 불쌍한 수인들은 평소에 쌓이던 화가 이럴 때 터지는 것이다.

     

    “학생 여러분의 노고에는 언제나 미안하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네. 쌓인 오해가 있다면 풀고 넘어가는 것이 어떻겠나? 상황이 상황인 만큼 말이네.”

     

    사방팔방에서 털리고 몇 안 남은 제국파 교수의 화해 신청에 이슈타르의 반듯한 자세가 삐딱해졌다.

    짝다리를 짚고 눈깔은 불순하게 뜨며 손이 근질근질한지 괜히 허공에 대고 성검을 몇 번 휘두르며 홀리미러에 검기 충전까지 한다.

     

    “할 말이 있으면 이의신청기간에 하셨어야죠. 그땐 저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이젠 없는데.”

    “자네들이 무슨 절대갑이라도 된 것처럼 굴지 말게! 던전에서 사투를 벌이거든 이득을 보는 건 고블린용사뿐이야. 어쩌다 이곳까지 왔는지는 몰라도 서로 살아서 돌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왜 교수님들과 같은 처지라고 생각하시죠?”

     

    교수들은 지난 관계를 떠올리며 매달렸지만, 오크노디 덕분에 많은 이벤트를 경험한 학생들은 전과 같은 약한 위치에 속하지 않았다.

     

    “애초에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는지는 생각해 보셨나요?”

     

    학생은 교수에게 절대복종 해야 한다.

    학점이 있으니까.

    졸업이 걸렸으니까.

    졸업 이후의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달라지니까.

    엘리트 사회에서 어디까지 높은 곳으로 날아오를지가 결정되니까.

    관계 하나, 교수 한 명에게도 절박하게 매달린다.

    이런 관계의 우위를 이용하는 교수들도 적지 않았다.

    누군가는 금품을 받았다.

    누군가는 마도구를 무기한 대여받았다.

    누군가는 가문의 지원을 약탈했다.

    누군가는, 학생의 몸을 탐하기까지 했다.

    물론 그 정도 수준의 쓰레기는 이미 이슈타르에게든, 고블린용사에게든 생을 마감한 지 오래다.

    교수들도 눈치가 있다.

    자신들과는 격이 다른 쓰레기까지 한 패거리로 받아주느니 은근슬쩍 손절하고 모두들 자연도태 당하도록 유도했다.

    이제 와서 남은 제국파 교수는 한줌.

    실제로 이 자리에 나타난 교수들 중 반 이상은 변방교수들이며, 제국파 교수들이 무슨 개고생을 하며 자비를 간청하나 멀뚱멀뚱 서서 구경하고 있다.

    서로의 처지가 다르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네들, 설마… <차원문>을 연 건가? 천체의 대격변으로 인해 변동된 좌표를 포착했다고?!”

    “느리긴 해도 이해는 하셨네요. 이제 저희의 관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깨달으셨나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교수들은 더 이상 학생들의 갑이 아니다.

    하물며 제국파 교수들은 더욱 그렇다.

     

    “우, 우리도… 부디 우리도 데려가다오!”

    “어디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

     

    변방파 교수들이라면 선뜻 받아줄 수 있다.

    괴팍한 교수들이긴 해도 ‘교육’에 기반을 둔 괴롭힘이니까.

    제국파 교수들은 배울 것도 없다.

    그저 ‘괴롭힘’ 자체가 목적인 괴롭힘이니까.

    금품, 후원, 순결.

    재단이나 다를 바 없는, 아니 재단보다도 더한 쓰레기들이었다.

    이슈타르가 떠올리는 재단은 오크노디의 재단이다.

    장학생이 되었다고 말도 안 되는 지령에 시달릴 미래를 예상했으나, 정작 그녀가 겪은 지령은 모두 성장에 도움이 될 뿐이었다.

    오크노디와는 다른 경로로 주어지는 지령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깔끔하게 무시해도 별 탈이 벌어지지도 않았다.

    애초에 가족이라고 부를만한 관계나 약점이 아카데미 바깥에는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건전하고도 담백한 재단과 달리, 제국파 교수들은 감히 이슈타르에게도 상납을 요구했다.

    이슈타르는 묵살했고, 학점에는 펑크가 생겼다.

    그 원한을 갚을 상황이 찾아왔다는 사실에 희열을 느끼지 못한다면 인간도 아니지.

     

    “학점을 올려주겠네.”

    “포인트를 주지.”

    “마도구를 원하는가?”

    “필요한 인력이 있다면 조교를 마음껏 차출하게.”

     

    찔리는 구석이 많은 교수들은 주섬주섬 하나씩 패를 꺼냈지만, 이슈타르의 얼굴에 떠오른 것은 차가운 비웃음이었다.

     

    “교수님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기프트 아카데미의 교수씩이나 되는 분들이 이런 하찮은 교섭을 하시다니요.”

     

    교수들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 건방진 계집, 면박을 줄 작정이었구나.’

    ‘용사라고 으스대기는.’

    ‘하지만 결국은 그 나이대의 소녀.’

    ‘자존심 부리느라 실리를 챙기지 못했군.’

    ‘면박이야 기꺼이 감수해 주지. 이곳을 나가기만 하면 네 성적은 앞으로 개박살이야!’

     

    악의로 똘똘 뭉친 교수들이 본심을 감추고자 비굴한 미소를 짓거나 결연한 표정을 연기했다.

     

    “그런가. 미안하게 되었네. 내 생각이 짧았어. 돈을 대가로 목숨을 구걸하다니, 분명 조건 없이 사람을 구하는 용사를 모욕하는 행위겠지.”

    “자네의 숭고한 영웅심이 이 늙은 교수에게도 감동과 깨달음을 선사하였네. 이곳을 나가거든 앞으로는 사람을 돕는 착한 교수로 다시 태어나겠어!”

     

    이슈타르가 헛웃음을 지었다.

     

    “무슨 말씀들이십니까? 말씀하셨던 것들은 전부 ‘기본조건’이잖습니까.”

    “응?”

    “뭐?”

    “학점, 포인트, 마도구, 조교해방. 전부 당연히 제공하고 이행해야 하는 기본이죠. 저는 그 이상으로 뭘 더 해주실 수 있냐고 묻는 겁니다.”

    “…!”

     

    아이는 어른을 보고 배운다.

    애 앞에서는 욕도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말이 왜 나왔는지를 알려주듯, 이슈타르는 교수들의 악행을 고스란히 보고 배웠다.

    아이라기엔 이미 어른에 더 가까운 나이의 이슈타르였지만 사람을 돕는다는 순수한 직종에 종사하는 경력이 이슈타르에게 내면의 순수함을 허락했다.

    어른들에 의해 짓밟히고 유린당하기 딱 좋을 순수함.

    그 순수함이 오늘만큼은 힘이 되었다.

     

    “카멜라. ‘펫 계약서’는 가져오셨나요?”

    “물론. 오랜만에 옛날처럼 불공정계약을 주관할 생각에 솔직히 신이 나는걸? 교수 중의 하나는 루소를 진급하지 못하게 막았던 교수기도 하고.”

     

    980기에 계약사기꾼 벨로카시오가 있다면 981기에는 펫들의 여왕이자 사랑전도사 카멜라가 있다.

    오크노디와의 결투 이후, 교관 루소와 맺어지며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노는 감정술사의 과거를 청산하고 사랑계약을 주관하던 그녀였지만…

    오늘만큼은 내면의 빗장을 풀고 한동안 잊고 지냈던 사악한 불공정 계약을 다시금 발휘할 때가 되었다.

     

    “강의시간에 강의를 듣지 않아도 전원 학점을 부여. 불필요한 괴롭힘 없는 지식만 교사용 교본의 요약본으로 전달. 포인트와 마도구 지급 및 강의재료 채집 및 몬스터 토벌에 필요한 조교 인력공급. 여기에 추가로 ‘학생회장’ 지지선언 및 용사활동후원을 별도로 부탁드리죠.”

     

    핵심은 뒤의 두 가지다.

    학생회장 지지선언.

    용사활동후원.

    전자는 교내의 강력한 선배들과 척을 진다.

    그들의 배후에 있는 가문들과도 사실상 적대관계에 돌입한다.

    기반이 싹 사라진 이들에게는 적잖이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후자도 그렇다.

    같은 제국파 내에서도 무슨 개짓거리냐는 욕을 먹고 몇 안 남은 파벌 속에서도 멀어질 짓이다.

    아카데미 안팎으로 희박하게나마 남은 권력을 모조리 잃어버릴 위험천만한 짓을 강요당하는 셈이지.

    하지만 알빤가?

    교수들도 학생의 사정은 봐주지 않았는데.

    이슈타르만 교수들의 사정을 봐줄 이유는 없다.

     

    “어리석군. 조건이 적당했다면 받아줄 의향도 있었지만 선을 넘었어. 너희가 게이트를 열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부터 우리에게는 제 3의 선택지가 열렸다는 사실을 몰랐나 보군.”

     

    ━━━

    <통신> + <연결> + <잠복> + <역산> + <돌파> + <전송> + <마나제어술>

    7위계 통신연계기 <위상접속>

    ━━━

     

    교수 한 명이 기습적으로 마나를 발현하며 이슈타르와 차원문 사이의 희미한 연결을 통신전달의 샛길로 삼아 의지를 전달했다.

    수신자는 제국의 새로운 황제, 매스각키 여제였다.

     

    “여제이시여, 제국의 교수들이 당신께 복종하기를 자처하니, 우리를 굽어살피시옵소서!”

    “응? 암흑마나도 없는 허접 필요 없어♡”

     

    통신이 뚝 끊겼다.

    제국파 교수들과 이슈타르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뒤에서 멀뚱멀뚱 서있던 변방파 교수가 말했다.

     

    “바쁘니까 빨리 사인하고 비켜주지 않을래?”

     

    제국파 교수들은 침울한 얼굴로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이슈타르의 앞에 계약작성을 위한 대기줄을 만들었다.

    물론 이슈타르는 계약서에 괘씸죄를 반영하여 새로운 조건을 추가했고, 교수들은 사인할 수밖에 없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갑을역전세계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