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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97

        

         

       머리가 없는 인간.

       아니,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벌레의 집합체.

       그런데도 방독면을 쓴 마법사에게 말을 걸고 있는 기묘한 형상.

         

       “다만 그 색채는 물에 쉬이 섞이지 않는 기름과 같은 형태인지라. 셀 수 없이 잘게 쪼개져 허공으로 흩날리는 물이 자아내는 무지개의 빛깔이 아닌, 그저 둥둥 뜬 채로 물을 분리하는 하나의 막과 같은 형상인지라. 그것은 마치 물에 젖지 아니하는 연꽃을 닮았음에도 물에 흠뻑 젖어 제 색채를 잃어버린 것과 같음이니, 과연 조화롭지 못한 색상이라 할 법하다.”

         

       박진성은 천천히 몸을 재생시키면서 남자에게 말을 꺼낸다.

         

       “그러한 색채로 너는 무엇을 하려 하느냐? 그것을 물 위에 덮어 빛이 온전히 물 아래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려 하느냐? 혹 그것을 온 세상에 칠해 알록달록 보기에는 이쁘나 실상은 먹지도 살지도 못하는 곳으로 만들려 하느냐?”

         

       그렇게 질문을 던지며 재생한 박진성의 몸이 온전한 형상을 이루었을 때.

       오염운반자는 방독면의 바깥으로 쉬익- 하며 강하게 숨을 뱉고는 말했다.

         

       “내 일에 끼어들지 마십시오, 주술사.”

         

       그것은 질문에 대한 답변이 아닌 경고.

         

       “나와 척지려 하는 것이 아니라면 사라져줬으면 좋겠습니다만.”

         

       그것도 온건한 형태가 아닌, 지극히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형태의 경고였다.

         

       따악-!

         

       오염운반자는 자기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 듯 아티팩트의 방아쇠를 당겨서 다시 마력을 허공에 뿌리며 입체를 만들어내었다.

       이번에는 수많은 삼각뿔을 겹쳐서 만든, 가시 가득한 공과 같은 형상이었다.

         

       “빠르고 정교하다. 하지만 규격을 뛰어넘는 파격(破格)은 보이지 아니한 것으로 보아 경지를 뛰어넘지는 못한 듯하다. 그러하지 않으냐?”

         

       “내 말에 대답하지 않는군요?”

         

       오염운반자는 자신의 경고에 대답하지 않고 딴소리만 해대는 박진성을 노려보았다.

       그러고는 언제든 자신이 손에 띄운 마법진을 발동시킬 수 있다는 듯 마력을 불어넣기 시작하였는데, 3차원 마력설계도로 만들어낸 입체 마법진이 덜덜 떨리는 것이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아 보였다.

         

       “그럴듯하나 당신의 말에는 핵심이 들어있지 않습니다. 사람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지만, 그 본질은 그저 말 돌리기에 지나지 않지요. 주술사. 당신은 정말로 저와 척지려고 하는 것입니까?”

         

       “허허. 본래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이것저것 말을 하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요, 그것이 본론과 먼 이야기인 것 역시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니. 인류의 역사 속에서 유구하게 사용되었던 화술을 어찌 별것 아니라 규정하느뇨? 마법사여, 참으로 급박하고 여유가 없도다….”

         

       박진성은 그렇게 재촉하는 마법사를 향해 타박하듯 말을 하고는, ‘진짜 질문’을 던졌다.

         

       “내 재촉에 이기지 못할 것 같아 본론에 들어가고자 하니. 마법사여. 이곳을 공격한 이유가 무엇인고?”

         

       “이자가 오염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그 오염이란 무엇이냐?”

         

       “전염성 암을 전 세계에 퍼뜨리려 하였으니 죽어 마땅한 일이었습니다.”

         

       대화가 이어지는 듯하지만 묘하게 이어지지 않는 느낌.

       마법사는 박진성의 질문에 답해주고는 있되 ‘어서 당장 이곳에서 꺼지고 나와 얽히지 말라.’는 태도를 계속해서 유지하며 말에 경고의 의미를 담고, 박진성은 그러한 마법사의 경고를 이리저리 흘려가면서 자신의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한다.

       그것은 진짜로 대화라기보다는, 서로를 이리저리 찔러보면서 파악하는- 전쟁 직전 서로를 염탐하는 것에 가까운 행동 같아 보였다.

         

       짐승 둘이 원을 그리면서 서로를 관찰한다면 이러한 모습이지 않을까?

         

       “제대로 폐기를 하였으면 모르되 그것을 멋대로 방류하는 짓거리라니. 심지어 그것이 방사성 폐기물처럼 처리가 어려워서 그런 것도 아니고 그저 돈이 들어간다는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 너무나 역겹지 않습니까? 심지어 그렇게 버리고 난 뒤 그 여파는 전 세계 사람들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더더욱 그렇습니다.

       공유지란 모두의 것이기에 누구의 것도 아닌 법. 그렇기에 공유지에 쓰레기를 버리는 것도, 공유지를 마구잡이로 쓰는 것도 죄책감이 들지 않는 행동임은 이해는 합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용서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요.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더더욱 그들은 자기 행동에 책임을 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과연.”

         

       “주술사여. 당신은 나와 척을 져서는 안 됩니다. 이 나라가 환경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아십니까? 얼마나 오존층을 파괴하고, 바다를 오염시키고, 생태계를 황폐화하고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전 세계가 노력해서 다시 복구시킨 오존층이 이 나라 때문에 파괴될 뻔했습니다. 이 나라 때문에 바다 생태계가 개판이 되고, 희토류를 이용하겠답시고 독한 화학 약품을 뿌리고 파헤치느라 토양이 오염되었습니다.

        그래요. 그것은 생계와 관련이 있으니 그렇다고 칩시다.

       하지만 약간의 금액만 들이면 되는 것을 돈이 아깝다면서 그대로 방류한 것은 선을 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오염운반자의 목소리에 분노가 담겼다.

       그러다가 문득 과거에 있었던 무언가를 기억 속에서 떠올리기라도 하는 듯 눈동자가 좌측으로 움직였다.

         

       “주술사. 당신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는 알 것 같습니다. 예,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은 항상 같은 질문을 던지곤 했지요. 중국이 무슨 잘못이 있냐, 그저 ‘세계의 공장’이라는 별명을 얻은 것답게, 선진국이 그저 외주를 준 것에 지나지 않는가. 환경을 오염시키고 값싼 노동력으로 부려 먹히는 한이 있더라도 발전하여 잘 살고자 한 것이 크게 잘못은 아니지 않느냐 하는 의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말대로 중국의 오염은 선진국- 과거부터 세상을 어지럽혔던 유럽의 잘못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놈들이 더 역겹기도 하지요. 인도나 중국 같은 곳에 공장을 유치하고 환경오염 같은 것은 나 몰라라 하면서, 저들 나라에서는 친환경이니 환경 보호니 하는 말을 외치면서 위선을 떠는 꼬락서니는.

       그 빌어먹을 위선자들은 정말로 역겹기 짝이 없습니다.”

         

       이어질수록 말에 묻어나오는 증오의 감정.

         

       “그렇다고 다른 나라들이 괜찮냐 하면 그건 또 아닙니다. 다른 나라들이 환경을 위해 노력하게 만들면서 저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쓰레기를 버리고, 땅에 묻는 짓거리를 하는 미국. 선진국이 그랬던 것처럼 환경을 오염시켜서라도 발전해야겠다고 소리치는 개발도상국들. 그리고 그들을 보면서 자신은 깨끗하고 너희는 잘못되었다면서 목 놓아 외치는 위선 가득한 유럽까지.

       주술사.

       이 세상은 잘못되었습니다.

       잘못 돌아가고 있습니다.”

         

       “흐음.”

         

       “그렇기에 저는 이 미쳐버린 세상 속에서 하나의 기준을 가지고 움직일 뿐입니다. 예. 불가항력이 아님에도 하찮은 이유로 오염시키는 자들에게 철퇴를 내리기로 한 것입니다. 하지만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중국은 더러운 짓거리를 하기는 했으나, 그래도 반성한다면 봐주고 끝낼 생각은 있습니다.

       그러니 이번 일에 얽힌 이들을 쳐 죽이고, 수원지 몇 곳을 오염시키는 정도로 교훈을 주고 끝낼 생각입니다.”

         

       오염운반자는 그렇게 말하곤 박진성을 바라보았다.

         

       서로 짜기라도 한 듯 입을 꾸욱 닫은 채 서로를 빤히 바라보는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히고, 오염운반자가 허공에 띄워놓은 입체 마법진이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기라도 하려는 듯 윙윙거리는 소리와 함께 천천히 회전한다. 그리고 그러한 입체 마법진을 눈에 담고 있음에도 박진성은 그 어떠한 동요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은 해가 없는 존재라고 알리기라도 하려는 듯 가만히 서 있을 뿐.

         

       그렇게 침묵이 얽힌다.

       그 고요한 분위기는 마치 폭풍전야와 같은 느낌인지라, 저 멀리에서 들려오는 고함과 비명조차도 그 침묵을 넘지 못해 주변에서 맴돌다가 사라져버리는 것만 같다.

       메아리의 잔향이 귓가를 어지럽히다가 사라져버리는 것처럼, 솜사탕이 물에 들어가기 무섭게 흩어져서 형체를 잃어버리는 것처럼….

         

       그리고 마법사는 그 침묵을 깨는 한마디를 던진다.

         

       “눈치채고 있었지요?”

         

       그리고 박진성은 주어가 없었음에도 충분히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그렇지.”

         

       박진성은 허허,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경계하고, 경고를 보내고. 그런데도 내가 물러나지 않자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하고.”

         

       얼핏 과격한 사상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응어리를 풀어내는 것처럼도, 혹은 광인이 헛소리를 지껄이기 시작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 혹은 평범한 중국인의 외형을 한 박진성을 향해 분노와 증오를 쏟아내는 것처럼 보이는 광경.

       하지만 찬찬히 살펴본다면 그것은 감정적으로 갑자기 행한 것이 아닌, 명확히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행한 것임을 알 수가 있다.

         

       경계하고, 경고한다.

       하지만 그런데도 물러나지 않는다면.

       적일 가능성이 현저히 높다면.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겠는가?

         

       “이보게, 마법사. 시간을 끄는 것임은 눈치채고 있었네.”

         

       그렇다.

       오염운반자는 적대적인 존재일 가능성이 높은 박진성을 상대하기 위해 시간을 끌고 있었다.

       빠르게 사용할 수 있는 3차원 마법으로 위협을 하고, 그 뒤로는 은근히 마력을 끌어올리고 조합해서 어떠한 무력을 가지고 있을지 알 수 없는 주술사에게도 충분히 먹힐 수 있을 만한 마법을 짜고 있었던 것.

         

       오염운반자는 박진성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 움직임과 동시에, 슬쩍 손가락을 움직인다.

         

       ———!!!!!

         

       그 순간, 오염운반자가 미리 준비해두었던 마법이 발동하며 주위를 다시 한번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마력의 폭거.

       압축되어 있던 마력이 순식간에 풀려나가며 몸집을 불리고, 유형화된 마력이 칼날처럼 사방을 헤집는다. 그리고 그렇게 부서진 것들을 제 안으로 끌어당겨서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갈아버리기 시작하고, 일종의 와류를 형성한다.

         

       콰드드드득!

         

       거대한 굉음과 함께 전개된 오염운반자의 마법은 안에 있는 것을 으깨고, 뭉개고, 갈가리 찢어버리는 믹서기가 되어버린다.

         

       사람이 만들었다고는 믿기지 않는 이 거대한 재앙.

       마력으로 만들어진 허리케인이 있다면 이러한 모습이 아닐까 싶은 이 끔찍한 광경 속에서, 마법사는 얼굴을 찡그렸다.

         

       “…후.”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폭풍에 삼켜지기 직전, 주술사가 했던 말.

       전개되는 마법의 소음 속에서 파묻혀버리기는 했지만, 그 말은 분명히….

         

       ‘자네와 내가 원하는 것은 비슷하다네.’

         

       …였었다.

         

       오염운반자는 미소를 짓고 있던 주술사의 얼굴을 떠올리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쯧. 주술사라는 족속들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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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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