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798

        

         

       갈기갈기 찢겨나간 육체.

       벌레로 이루어졌던 몸은 이제는 형체조차 찾기 힘들 지경이 되었고, 벌레가 사람의 흉내를 내기 위해 입고 있던 양복은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

       믹서기에 들어간 것이나 다름이 없었기에 박진성의 분신은 그대로 다른 인간들과 섞여 한 줌 핏물에 녹아들었고, 아마 그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는 그 핏물 속에서 벌레 성분을 노력해서 찾아내야 ‘이곳에 주술사가 있었구나’라고 확신할 수 있겠지.

         

       다만 큰 노력 없이도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주술사가 살아있다는 것.

       어떠한 기기괴괴한 방식을 사용해서라도, 주술사는 목숨을 부지했으리란 것이다.

         

       특히나 그 몸뚱이가 분신이라면 더더욱 그러하였다.

         

       꿈틀.

       꿈틀.

         

       육신이 옷과 같으니 어찌 그것에 연연하랴?

       헤지면 수선하고 누더기가 되면 다시 입으면 되는 것을.

       옷을 다시 입는 것이야 쉽고도 쉬우니, 다시 물질을 만드는 것이 무엇이 어렵겠는가.

         

       박진성의 분신은 다시 나타났다.

         

       다만 그것은 마법사가 있었던 곳과는 조금 거리가 떨어진 곳.

       차이네가 묵고 있던 호텔에서였다.

         

       어째서 그곳이냐고 한다면…그곳에 기준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준.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차이네의 몸에 심어두었던 벌레.

       그것이 몸의 재료로 쓰일 벌레들이 사방에서 모이게 만들고, 그들을 부릴 수 있게 만드는 하나의 기준점이자 리모컨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래.

       차이네는 중국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쓸모를 다하고 있었다.

       괜히 그녀가 속해있는 연예기획사의 사장, 야사키 토키타카(矢崎敏高)에게 명령해서 차이네를 중국으로 보낸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본래라면 이것보다는 더 쓰임이 있어야 했으나.’

         

       물론 단순히 기준점만 잡기 위해서 차이네를 보낸 것은 아니다.

         

       야사키 토키타카가 차이네뿐만 아니라 함께 가는 이들 모두에게 주물을 들려 보내거나 기생충을 심게 하는 등의 안배도 해놓았으며, 야사키 토키타카와 연락을 주고받을 때 자연스럽게 그 정보가 박진성에게까지 전달될 수 있도록 해놓은 상태였다.

         

       박진성의 계획대로였다면, 차이네는 훌륭하게 중국 내부로 파고든 뒤 정보를 건네줬으리라.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현재 중국 내부의 상황이 어떤지, 어떤 곳이 주술 의식을 행하기 쓸만한지, 어디쯤 연구소가 있을지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줬겠지.

       거기다가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접촉하고, 몇몇 쓸만한 이들에게 벌레나 기생충을 옮김으로써 또 다른 숙주를 만들고. 그렇게 중요한 인물까지 도달해서 박진성이 정보는 물론이고 그들을 사용해서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게 해줬을 것이다.

         

       캐리어(Carrier).

       차이네의 역할은 캐리어의 뜻처럼, ‘병원체 보균자’나 다름이 없었다.

         

       그래.

       그랬어야 했는데….

         

       ‘변수가 있었지.’

         

       변수가 있었다.

       그것도 좋지 않은 타이밍에 갑자기 튀어나온 변수가.

         

       도대체 누구와 접촉을 한 것인지.

       차이네의 몸에 있던 벌레가 싹 다 사라져버린 것이다.

       몸에 달라붙어 있던 벌레는 죽었고, 차이네의 몸 안에 있던 해롭고 이질적인 것들은 모조리 사라졌다. 심지어 차이네가 몸에 두르고 있던 주물에도 영향이 갔는데, 중국에 들키지 않기 위해 미약하게 만들었기 때문인지 멀쩡한 것이 단 하나도 남지 않았다.

         

       ‘쯧. 그리 나쁜 것들이 아니었거늘….’

         

       박진성으로서도, 차이네로서도 그리 좋지 않은 일이었다 하겠다.

       벌레나 주물이라고 해서 꺼림칙해서 그렇지, 그 효과는 이로운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중국에서 혹여 일이 잘못될까 봐 행운과 관련된 것들을 넣어두었으니, 그것을 지니고 있었다면 일이 이상하게 꼬여서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는 일만큼은 피했을 것이다. 미약하기는 하되 그 정도만으로도 꽤 큰 도움이 되었겠지.

         

       게다가 극성팬에게 습격당하거나, 성질 더러운 부자가 차이네에게 개수작을 벌일 때를 대비해서 호신과 관련된 안배도 해두었었는데.

         

       그것이 어떠한 변수 때문에 싹 다 사라져버린 것이다.

         

       ‘피에르….’

         

       박진성은 차이네와 접촉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변수의 이름을 떠올렸다.

         

       차이네의 몸뚱이에는 분명 다른 주술사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기껏해야 하나나 둘 정도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다른 이능력자와는 다르게 여러 에너지를 사용하고 때로는 조합하기까지 하는…말 그대로 ‘주술사의 흔적’이라고 불리는 그러한 흔적이 분명히 존재했다.

         

       그러니 높은 확률로 박진성이 마주친 영술사, 피에르 마틴이 그 주인일 수밖에 없다.

         

       아, 물론 피에르 마틴이 범인이 아닐 가능성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 경우는….

         

       ‘허허. 이 도시 하나에 주술사 셋에 마법사 하나가 얽혀있다? 골치가 아픈 일이겠어.’

         

       …별로 상상하고 싶지도 않을뿐더러, 설령 상상한다고 하더라도 어찌 대처할 방법이 없다.

       당장 마법사 하나와 주술사 하나가 개판을 치는 것만으로도 도시 하나가 지금 결딴이 나고 있는데, 거기에 또 한 명이 추가된다면…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찌 알겠는가?

       혼란을 틈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움직일지도, 아니면 그냥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고 조용히 제 할 일만 하고 있을 수도 있겠지.

         

       ‘목적.’

         

       자신의 목적이 아니면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게 주술사. 그러니 그들의 행동은 목적을 알고 있으면 읽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지만…목적을 모른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무슨 일을 할지 예측할 수가 없다.

         

       예측할 수도 없고, 예측해봤자 대책을 세울 수도 없는 변수에 매달리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

         

       떠나가려는 걱정을 붙잡아 가두어놓고는 괴로워하는 거만큼 어리석은 행동이 어디에 있겠는가.

       현명한 것은 그저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뿐일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일이 아니겠느냐. 차이네 본인의 것은 망가졌으되, 매니저의 것은 망가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변수가 끼어들기는 했으되, 최악은 아니다.

       매니저라는 보험이 훌륭하게 작동했으니까.

         

       이런 것을 생각해본다면 세상이란 참으로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온갖 공을 들여 차이네에게 붙인 것들은 망가졌지만, 그저 보험처럼 생명력을 질기게만 만들어서 몸속에 기생시킨 기생충은 멀쩡히 살아서 그에게 도움을 주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것 또한….

         

       ‘어찌 보면 변수라고 할 수 있겠지.’

         

       그래.

       현재와 미래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과거에서 비롯된 일이 얽히고, 변수가 되어서 알 수 없는 미래를 만드는 것.

       그렇기에 미래는 고정되어 있지 아니하고, 예언자가 직접 목격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대로 이루어지는 일이 별로 없는 것이다.

         

       그러하여 모래알만 보고도 세상을 전부 통찰할 수 있다는 것은 그저 비유에 불과한 것이리니.

       그것은 초월자도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소망을 품고, 집착을 가지고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곳에서 생각보다 고생할지도 모르겠어….’

         

         

         

        * * *

         

         

         

       중화인민공화국 광둥성 근처의 바다.

       아름다운 바다가 있어서 그런지 그곳에는 관광지가 잘 발달해 있었다.

       푸른색 물빛은 사람들에게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수영하도록 허락해주었고, 바람에 실려 오는 짠 냄새를 맡으며 풍경을 보고 감탄을 계속하는 해변에 놀러 온 관광객이 북적북적 모여서 이곳의 소감을 토해낸다.

       하늘에는 새들이 날아가고, 때로는 사람들에게 돌진해 그들이 손에 들고 있는 음식을 뺏어 먹기도 한다.

         

       평화로운 풍경.

       문명과 떨어져 있기에 매력적인 장소.

       발전이 덜 되어있기에, 자연의 안에서 쉴 수 있기에 오히려 문명 속의 고단한 삶에 지친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제 마음을 치유하려 드는 것이리라.

         

       하지만…이 천혜의 자연경관을 가지고 있는 장소에도 분명히 문명이 들어와 있었다.

       그것도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최첨단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법한 시설이 말이다.

         

       『 敖閏 』

         

       중국의 전설에서 나오는 용왕의 이름을 딴, 데이터 센터가 말이다.

         

       그것도 무려 광둥성 근처 바다를 가득 메울 기세로 증축에 증축을 거듭하여, 축구장 수십 개 크기가 되어버린 대규모 데이터 센터가 말이다.

         

       남방적룡 오윤(敖閏)의 이름값을 하기 위해 데이터 센터로 용궁이라도 만들려는 것인지, 아니면 ‘IT 굴기’라면서 당에서 퍼주는 지원금을 한계까지 빨아먹기 위해 그런 것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이 있다면, 수많은 원통이 박힌 이 넓디넓은 데이터센터는…그야말로 장관이라는 표현이 부족하지 않은 것이라는 것이겠지.

       거기에 굳이 하나만 더 더하자면, 데이터 센터가 뿜어내는 열기로 인해 광둥성 근처 바다의 생태계가 파괴되는 것조차 아랑곳하지 않는 것 역시 대단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삐이이이이이이—!

       우우우우우우웅-!

         

       윙윙거리는 진동 소리.

       때로는 사람의 귓가에 들릴락 말락 높게 치솟는 고주파 음.

       수많은 서버를 담고 있는 원통.

       

       아마 지금 육지에서 난리를 피우고 있는 어떤 테러리스트가 이 장관이라 표현해도 부족하지 않은 환경파괴의 현장을 본다면, 이곳 역시도 표적으로 삼아 마법을 날릴 가능성이 농후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지극히 낮은 확률일 것이다.

       

       < 변수 ‘오염운반자’가 활동을 감지하였습니다.

       현재 도시를 파괴 중입니다. >

         

       < 변수 ‘영술사’가 ‘제3451 생물연구소’ 인트라넷에 접속한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

         

       < 임시 코드 ‘벌레술사’의 활동을 감지하였습니다.

       …

       …

       Q. 사마엘일 가능성이 있습니까?

       A. 아직 알 수 없습니다.

       …

       …

       …분석을 계속합니다. >

         

       그 데이터 센터에는, 오염운반자를 중국으로 부른 당사자가 있었으니까.

         

         

         

       

         

       

       

    다음화 보기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