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799

        

         

       “하나.”

         

       또르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나무를 깎아 만든 주사위가 구른다.

       투박하게 깎은 주사위는 모서리의 끝이 죄다 뭉툭하게 되어있었고, 그 때문인지 정사각형보다는 원에 가까운 형상을 하고 있었다.

       다만 모서리와 면에는 엄격한 구분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문양이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하나.”

         

       하나의 면에 하나의 문양.

         

       눈, 코, 입.

       팔, 다리, 몸통.

         

       척 보기에도 ‘원시적’이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를 만큼 투박한, 하지만 그렇기에 묘하게 섬뜩한 느낌이 드는 주사위.

         

       “하나.”

         

       박진성은 방 안에서 그것을 굴린다.

       이름 모를 짐승의 가죽을 깔고, 그곳에 피로 뾰족뾰족한 칸을 그리고, 마치 주사위에 새겨져 있는 것이 숫자라도 되는 듯 그렇게 계속해서 말이다.

         

       또르르륵.

         

       박진성이 하나를 외치면서 주사위를 굴릴 때마다 일정한 소리를 내면서 그것은 구른다. 마치 돌덩이를 힘없이 던지기라도 한 것처럼, 그러다가 마치 무언가에 부딪치기라도 한 것처럼 급격하게 툭 하고 세워지면서 말이다.

       그렇게 멈춰 선 주사위의 가장 윗면에 있는 것은 눈 문양.

         

       “흐음.”

         

       주사위를 굴리기 시작한 이래 3번 연속 나온 문양이다.

         

       가장 윗면에 있는 눈알은 마치 땅이 흔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묘한 진동을 보여준다. 그러고는 그 진동으로 말미암아 잔상을 일으키고, 기이함을 느껴 그것에 집중하다 보면 이리저리 양쪽으로 흔들리다가 또르륵.

       주사위가 굴러가는 환청과 함께 눈동자가 자신 쪽으로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주사위의 눈알과 박진성의 눈알.

       그 둘의 시선이 부딪치고, 교환된다.

       피를 머금은 그 시선은 아무리 생각해도 달가운 것이라고는 할 수가 없어서, 그래서 마치 코끝에 옅은 피비린내가 꽃내음처럼 살며시 다가왔다가 개미 떼가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처럼 사라져버리는 감각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

         

       또르르륵.

         

       눈알은 굴러가면서도 박진성을 빤히 바라본다.

       움직이는 와중에는 시선이 이리저리 흩어지기도 하고, 잔상과 주사위가 굴러가는 속도가 일치해 마치 고정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지만, 그런데도 눈동자는 잠시간 길을 잃었을지언정 박진성을 바라보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설령 시선을 잃더라도 눈을 굴려 사방을 훑어보는 한이 있더라도 박진성을 바라보고자 하는 의지를 꺾지 않는다.

         

       그곳엔 박진성이 있다.

       눈이 간절히 잦고, 바라보려 하는 존재가 있다.

       그렇기에 눈알은 바라본다.

       계속해서, 위에 있는 채로 박진성을 바라본다.

         

       그러고는 환청과도 같은 속삭임을 박진성의 귓가에 내뱉기를.

         

       —-.

         

       그것은 언어가 되지 못한 소리.

       하나의 공동체가 사용하기로 합의한 ‘언어’가 아닌, 그 이전의 단계.

       어떠한 특수한 목적을 위하여 사용하기로 합의한 하나의 신호.

       저 멀리에서 귀를 쫑긋하게 만드는 함성, 나무를 일정한 규칙에 따라 때리는 소리, 소름을 돋게 만드는 높은 소리, 낮고 멀리 퍼지는 울리는 소리와도 같은 그러한 신호가 마치 환청처럼 그의 귓가에 속삭인다.

       심장의 고동 소리가 귀를 스치고 지나갈 때 느끼는 느낌이 이럴 것인가.

         

       “점괘가 그리 좋지는 않군.”

         

       박진성은 그 소리를 듣고 주사위를 굴리는 것을 멈추었다.

       그리곤 옆에 주사위와 말판을 만들 때 사용했던 사람의 피가 담긴 주머니를 열고는 그대로 주사위와 말판에 뿌렸다.

       마치 더 이상 너희가 필요 없다는 것처럼 말이다.

         

       촤아아악!

         

       물이 끼얹어지는 소리와 함께 피비린내가 풍긴다.

       그러고는 그것들은 주사위에 새겨진 문양을 덮기라도 하겠다는 듯 새빨갛게 물들이고, 말판에 그려진 규칙적인 그림 역시도 그대로 덮어버린다. 마치 해변에 밀려온 파도가 그전의 모래사장에 새겨두었던 그림 전부를 가차 없이 지워버리는 것처럼.

         

       그렇게 주술 의식은 끝을 맺는다.

         

       원시적인 형태의 점괘.

       문명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을 당시에도 존재했었던 어떠한 놀이를 기반으로 만들어낸 것 같은 점술이 끝난 것이다….

         

       그리고 그 점술에서 나온 점괘는 그리 좋지 않은 것이었다.

         

       눈.

       눈.

       눈.

         

       오직 눈의 반복.

         

       누군가가 그를 지켜보고 있음을 알려주는 눈알 표식만 계속해서 나왔다.

       그 점괘가 뜻하는 것은 마치 야간에 홀로 야영하는 와중 어둠 저 멀리에서 수많은 불꽃이 피어오르는 것과 같다. 한 쌍의 불꽃이 귀신이 피워낸 것처럼 어둠 속에서 피어오르고, 기다렸다는 듯 수없이 많은 빛나는 눈동자가 야영하는 이를 주시한다.

       그러고는 다가올 생각도, 멀어질 생각도 없이 그것은 또렷하게 시선을 자신에게 보내오는 것과 같음이니.

         

       그것은 자신이 사냥감으로 노려지는 것일 수도, 사냥감인지 물러나야 할 상대인지 가늠하기 위해 관찰하는 것일 수도. 혹은 조력할지 적대할지 알 수가 없어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그것이 어둠 속에 존재하고, 몸이 어둠에 파묻혀 제 형상을 숨긴 채 존재하는 한 미지의 위협이라는 분류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야영을 하는 이의 입장에서는 그것을 한껏 경계하면서 잠조차도 자서는 안 된다는 사실일 것이다.

         

       점괘가 의미하는 것은 경고.

       앞서 말한 비유처럼, 미지의 위협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음을 알리는 경고다.

         

       ‘주시…라.’

         

       서로가 서로를 인지했다.

       영술사가.

       오염운반자가.

       박진성이.

         

       ‘하지만 무언가가 더 있다.’

         

       하지만 점괘에서는 말하고 있다.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것이 하나가 아니라고.

       이 휘몰아치기 시작하는 흐름 속에 있는 것은 박진성이 인지하고 있는 존재뿐만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들은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조용히, 조용히 박진성을 바라보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나무 위에 우뚝 서서 별빛이라도 되는 것처럼 별꽃이 흐드러진 밤하늘에 제 안광을 파묻고, 눈을 감고 귀에 집중하면서 박진성의 일거수일투족을 알아내려 하고 있기도 하고, 또는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기에 박진성과 그저 눈이 마주치지 않았을 뿐일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이곳에 수많은 시선이 집중되어 있다.

       세상의 흐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존재들로만 말이다.

         

       ‘그리고 흐름이란 바로 전쟁이다.’

         

       박진성은 그 ‘흐름’을 안다.

       시간이 뒤틀리기 전, 몸소 체험하지 않았던가.

         

       불이 피어오르고 피가 흐르는 전쟁.

         

       단순히 미사일과 총탄만이 오가는 것이 아닌, 온갖 비윤리적인 실험으로 탄생한 무기들이 돌아다니던 곳. 윤리와 도덕은 바닥을 뚫고 나락까지 떨어지고, ‘윤리와 도덕의 최저선’이라고 일컬어지던 법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사람들끼리 힘을 모아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시대가 되었었다.

         

       ‘그리고 중국은 그 불길이 피어오르던 곳 중 하나지.’

         

       거듭되는 확장.

       일찍이 평화로운 시절부터 제 3세계라 불리던 신생국들의 맏형이 되고자 하였던 중국은 마침내 그 야욕을 드러내었고, 과거 제국주의가 판치던 시절 모든 나라가 그러했듯이 식민지를 만들기 위해 모아두었던 힘을 뻗어나가기 시작하였다.

       도광양회(韬光养晦)를 하던 와중에도 역사를 왜곡시켜서라도 만들어내었던 명분은 중국에 있어서 거침없이 칼을 휘두를 수 있게 해준 칼자루가 되었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쌓아 올린 부와 기술력은 날카로운 칼날로 벼려졌었다.

         

       ‘그래…. 사람들을 탄환처럼 소모하였었지….’

         

       중국은 자신들에게 가장 넘쳐나는 자원인 사람을 아낌없이 사용했다.

       평범한 사람들은 총을 들려보내 총알 분무기 겸 총알받이로 소모하였고, 때로는 더 귀한 자원을 위한 재료로 사용하였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재료로 사용하였다.

         

       마공(魔功).

       사악한 무공으로 분류되는 것들을 연성하기 위한 재료로 사람들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중국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혹세무민하는 무리가 있어 사람들을 현혹한 뒤 마공을 연성하기 위한 재료로 사용한 것이다.’, ‘천인공노할 범죄자들이 세상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사악한 짓을 행하고 있다.’라고 말하며 그저 개인의 일탈, 혹은 사이비 종교나 범죄자 집단이 출현한 것뿐일 것이라고 그저 일축하였지만…그 말을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외국은 물론이고, 중국 내부에서조차 말이다.

         

       소설 속에 나오는 천마신교(天摩新敎)가 현실에 있다면 그런 광경이었을까.

       사람의 핏물을 받아먹고 자란 광전사들은 거침없이 전장을 누비며 사람을 학살하였고, 잠깐 피어났다가 져버리는 꽃처럼 순식간에 죽어 나갔다.

         

       ‘어쩌면 그것 역시도 장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 몸을 불태워서 불을 지르고 사라져버리니 장작이라 하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사악한 무공이 아니라 평범한 무공을 익혔어도 어느 정도 경지까지는 나아갔을 인재들은 그렇게 허무하게 소모되어갔다. 사람을 재료로 하는 마공-

         

       아니.

         

       인신공양 주술 의식과 결합한 무공을 익히고 말이다.

         

       ‘…복제인간을 만들기 위한 연구소라.’

         

       박진성은 영술사와 마주했던 연구소를 떠올렸다.

       사람을 복제하고 만들어내기 위한 연구소.

       중국이 자신의 강점을 더 극대화하기 위해 선택한 비윤리적인 연구.

         

       그래.

       그것은 분명히 효과가 있었다.

       비윤리적이고 끔찍한 방법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3차 세계대전이 제대로 불이 붙어 세계가 본격적으로 불타오르기 전까지는 나름의 효과를 보기는 했었으니까 말이다.

       ‘진짜 사람’을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죄책감을 던 채로 거침없이 사람을 재료로 온갖 짓을 했을 것이고, 인신공양 주술도 행했을 것이다. 어쩌면 복제인간이 인신공양 주술에 ‘사람’으로 인식되기 위한 조건이나 공식 같은 것을 발견했을지도 모르지.

       박진성으로는 그리 알고 싶지도 않고, 알 필요도 없는 것이지만- 중국으로서는 아주 쓸만한 내용이었을 테니…분명히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인종을 분류하고, 재능을 분류하고, 유전자를 분석해서 디자이너 베이비를 만들어서 ‘더 뛰어난 인간’으로 나라를 가득 채우려 하기도 하였고-

         

       ‘음. 그렇지.’

         

       박진성은 과거를 회상하다가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어 생각을 멈추었다.

         

       ‘그러고 보니 회귀 전 중국의 수뇌부들은 죽여도 죽여도 다른 인재가 그 자리를 메꾸면서 공백이 거의 없었는데.’

         

       그것은 경험으로 인해 생긴 ‘고정관념’에 대한 것이었다.

         

       ‘또한 습격하더라도 죽는 일이 별로 없기도 하였으니, 수뇌부를 우선으로 노리는 것은 그리 효율이 높지는 않았었다….’

         

       회귀 전에는 동서고금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던 머리를 치는 전략이 중국에 잘 먹히지 않았었다. 큰돈과 힘을 들여서 머리를 잘라도 대체할 머리가 생겨나거나, 머리를 반쯤 파괴했음에도 죽지 않았으니…확실히 비효율적인 일이었지.

         

       진상이 밝혀지지는 않았었지만 많은 사람이 추측하기로는 끊임없이 머리를 재생하는 그 전략이 ‘복제인간’이나 ‘디자이너 베이비’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하였었는데….

         

       하지만 말이다.

       지금은 시간이 뒤틀려서, 과거로 돌아오지 않았는가.

         

       ‘연구소를 보니까 그리 많이 진행된 것은 아니었었지?’

         

       열매를 맺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꽃이 피기 전에 잘라내면 그만인 법.

         

       ‘지금은.’

         

       박진성은 확신했다.

         

       ‘목을 자르면, 머리가 그때처럼 쉽게 생겨나지 않는다.’

         

         

         

        * * *

         

         

         

         

       전쟁이 불꽃이라면 모든 부산물은 연기에 불과할 것이다.

         

         

       

         

       

       

    다음화 보기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