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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

    아 이건 꿈이다.

    나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서울 숲에서 돌아와서 세희 연구소의 안락한 침대에 누워서 잠들었는데, 빗속을 터덜터덜 걷고 있으니 말이다.

    익숙한 광경이었다.

    공포에 빠진 채 비 내리는 숲속을 하염없이 걷는 1년 전의 나의 모습이었다.

    그때의 나는 물리적으로 상처 입지 않는 몸을 가지게 되었어도 끝없이 몰려드는 죽음의 공포에 정처 없이 걷고 있었다.

    죽음이 다가오고 있었다.

    숨이 차지 않는데, 숨이 가빠왔다.

    물리적으로 구속받지 않는 유령화를 얻었음에도 죽음을 피할 순 없었다.

    다른 오브젝트의 죽음과 달리, 내 죽음의 조건은 보이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죽음이 다가왔다는 건 알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해결방안이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심장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는 주먹만 한 불꽃은 어느새 티끌보다 작게 불타고 있었다.

    오브젝트 특유의 직감일까? 

    이 불이 사라지면 죽는다는 것은 다시 태어난 순간부터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다만 불은 조금씩 조금씩 줄기만 할 뿐 다시 타오르는 일은 없었다.

    불을 먹어봐도, 산불 속에 몸을 던져도 아무 변화가 없었다.

    속이 타는 것처럼 답답해져서 입을 벌리고 빗물을 입속에 집어넣었다.

    그때 태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거기 지나가는 오브젝트. 여기서 나를 꺼내주지 않겠어?”

    말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보니 창살 너머로 한 여자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철창 너머에서 목소리의 주인이 팔짱을 끼고 태연한 목소리를 나를 부른 것이다.

    그때의 나는 자포자기였다.

    어차피 죽을 거 사람이나 돕다가 죽자.

    ***

    평범한 감옥처럼 보인 그곳은 사실 상당한 크기의 오브젝트였다.

    간단하게 끝날 것 같던 구출은 며칠이나 걸렸고, 상당히 소란스러운 그녀와 같이 다니는 동안은 죽음의 공포를 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 길고 긴 던전 같은 토굴도 끝은 있었고, 던전의 끝에 도착하는 것과 동시에 나의 생명도 역시 끝에 도달한 것이다.

    세희는 탈출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을 때, 나는 천천히 죽음을 준비했다.

    ‘적어도, 목숨 하나는 살리고 죽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말이다.

    불씨가 이젠 한계에 달했다.

    곧 찾아올 죽음을 그렇게 기다렸다.

    그늘진 토굴의 어둠 속에 기대어, 태양 빛 아래서 양손을 벌리고 환호하는 세희를 바라보면서 말이다.

    ‘아 이젠 정말 끝이다.’ 라고 생각이 들 때 세희가 토굴 안으로 돌아와서 나를 껴안고는 말했다.

    “정말, 정말 고마워!”

    기쁨의 눈물이 살짝 맺힌 채 활짝 웃는 세희는 그렇게 말했다.

    그 순간 몸속의 불꽃이 맹렬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마치 몸속에서 폭탄이 터진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제야 나는 내 몸 안에 도사린 불꽃을 이해할 수 있었다.

    희극과 비극을 연료로 타는 불꽃.

    호기심의 불꽃.

    나는 그렇게 세희처럼 내 불꽃의 장작이 되는 사람들을 찾아다니게 되었다.

    나름 의미가 깊은 날의 기억이다.

    뜻깊은 기억이지만, 역시 너무 힘들었으니까 굳이 분류하자면 나는 이걸 ‘악몽’이라고 분류하겠다.

    꿈에서 깨는 건지, 시야가 점점 흐릿해졌다. 

    누군가 내 볼을 쿡쿡 찌르는 것이 느껴지자, 어느새 나는 편안한 연구소의 침대 위로 돌아와 있었다.

    ***

    그리운 꿈을 꾸었다.

    아마 비슷한 상황에서 탈출하게 돼서 그런 꿈을 꾸게 된 게 아닐까 싶었다.

    죽음의 위기에서 사신이가 구해주는 그런 상황말이다.

    한 치 앞을 보기 힘든 비 내리는 한밤중.

    반딧불처럼 미약한 안광을 흘리는 사신.

    지금 사신의 모습이랑 비교하면 동일 오브젝트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분위기가 달랐었다.

    호기심도 부족했고, 주변에 거의 관심이 없어 보였으니까.

    지금은 눈에 확들어오는 타오르는 듯한 안광도 그때는 가끔 꺼진 걸로 보일 정도였다.

    그래도 처음 봤을 때는 묘하게 무서웠지. 

    미약하지만 타오르는 안광이 이상하게 공포심을 자극했다. 

    지금이랑 비교하면 애들 장난 수준으로 약한 빛이었는데도 그랬다.

    무서워서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려고 애써 태연한 척하면서 말을 걸었지.

    거의 도박에 가까웠다.

    갑자기 창살너머로 나타난 인간형 오브젝트. 

    인간형이라고 해도 말을 알아듣는다는 보장도 없다.

    알아듣는다고 해도 알아듣는 오브젝트는 인간을 기만하는 녀석들이 대부분.

    도박에 가까운 생각으로 말을 걸었다.

    이판사판이었다.

    갑자기 나를 삼킨 동굴은 출구도 없고, 위험한 흙인형들이 돌아다니고 있었으니까.

    굶어 죽든 흙인형에게 맞아 죽든 죽음의 위기였다.

    실제로 내 눈앞에서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다.

    다행히도 사신이는 인간의 의사는 대충 느끼는 듯했고, 인간에게 적대적이지도 않았으니까.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때 사신은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도 꾸역꾸역 동굴의 깊숙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표 가까운 곳에서 길을 찾아보자고 손을 잡아당겨도 요지부동이었다.

    혼자 돌아다닐 때는 죽음의 위기가 가득한 곳이었는데, 사신과 같이 다니니 방탈출 어트랙션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게다가 사신이는 방탈출 공략을 알고 있는 것처럼 해야 할 일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오브젝트끼리는 통하는 무언가라도 있는 걸까? 라고 생각했다.

    숨겨진 상자에서 열쇠를 찾고, 그 열쇠에 맞는 문을 열었다. 

    사신이 하는 행동을 관찰하니 이곳은 단순한 동굴이 아니라 퍼즐같은 오브젝트의 일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제야 왜 사신이 동굴의 심부를 목표로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런 던전은 클리어 해야만 나갈 수 있으니까.

    토굴 최심부의 무한히 재생하는 골렘을 숨겨진 스위치로 무력화하자 밖으로 향하는 길고 긴 토굴이 나타났을 때의 그 감격이란, 다시 맛보지 못할 그런 감동이었다.

    정말, 정말로 긴 계단을 오르는데 전혀 힘들지 않을 정도로 정신적으로 고양된 상태였다.

    숲 한가운데 뚫린 출구에서 환호를 지르고 있을 때, 돌아보니 한층 어두워진 사신이가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점점 어두워지던 사신은 마지막엔 흙으로 만든 인형처럼 푸석푸석해 보일 정도였다.

    언제나 딱딱할 정도의 무표정이었던 사신의 입가에는 자조적이기도, 만족스러운 것 같기도 한 작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어째서인지 그 미소는 너무 슬퍼서, 환호하던 것도 잊고 달려와 사신이를 끌어안았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반사적으로 고마움을 있는 힘껏 표현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사람 말을 알아듣지 못할 텐데 말이다.

    그 인사에 영향을 받은 걸까. 사신이는 안고 있던 내가 깜짝 놀랄 정도로 번쩍 빛나더니 현재의 사신이의 모습으로 변화했다. 

    나른한 표정이지만 언제나 호기심이 가득한 눈을 가진 사신이로 말이다.

    그때의 깜짝 놀란 사신의 표정은 잊을 수가 없다.

    무표정한 사신이 그렇게 극적인 표정을 지을 줄 알았다니!

    ***

    코르크 보드에는 오래된 신문 기사가 하나 꽂혀 있었다.

    [서울 광장에 갑자기 나타난 오브젝트 수십 명의 사상자를 낸 뒤에 사살, 사설 연구소의 관리 시스템 이대로 괜찮은가?]

    “서울 광장에서 신나게 날뛰던 ‘아귀’가 살아 있다고? 중연놈들 제정신이 아니구만?”

    “…”

    어두운 방 안, 코르크 보드를 쳐다보는 남자가 중얼거렸다. 남자옆에는 조그마한 여성의 그림자가 수첩에 무언가를 끊임없이 적으면서 달라붙어 있었다.

    신기하게도 여성의 그림자는 있었지만, 여성의 모습은 방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신문 기사가 꽂힌 밑으로는 누군가가 자필로 작성한 서류가 잔뜩 달라붙어 있었는데, 어떤 연구소의 이직자 목록과 예산 추이등을 예상한 서류들이었다.

    그 문서를 대충 훑어본 남자는 휘익하고 휘파람을 불었다.

    “이직자가 너무 많아도 너무 많네. 이러면 ‘사상자 0명의 최고로 안전한 국립 연구소!’ 라는 캐치 프레이즈가 너무 수상하잖아.”

    수상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에는 빨간색으로 잔뜩 강조 표시가 되어 있었는데, 그 표시가 너무 많아서 서류가 빨간색으로 보일지경이었다.

    “이야, 이번 사건은 후배가 맡기에는 너무 위험한 녀석인데, 후배 녀석이 우는 소리하기 전까지는 묵묵히 지켜봐주는 것도 선배의 역할이지.”

    서류들을 바라보는 남자는 낄낄 웃으며 돌아섰다.

    희미한 가스램프의 불빛으론 방을 충분히 밝히지 못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코르크 보드 앞의 인영의 모습은 흐릿하게 밖에 보이지 않았다.

    “바쁘다, 바뻐. 이번에는 전자기기를 쓸 수 없는 서울 숲으로 출장이라. 아날로그한 탐정도 좋지.”

    단정한 양복을 입은 모습의 남자는 파이프 담배에 불을 붙이며 코르크 보드를 정리했다.

    “그럼 왓슨, 나는 가볼 테니까. 잘 있어.”

    가스램프에 어렴풋이 비친 그림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노란색 코트를 걸친 남자는 가스 램프의 불을 끄고는 방을 나섰다.

    ***

    남자가 떠나고 가스램프가 꺼진 방에서 램프는 혼자서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핏빛으로 물든 여성의 그림자가 다시 나타났다.

    핏빛으로 물든 여자의 그림자는 피처럼 붉고 질척질척한 액체로 벽과 책장을 칠하기 시작했다.

    [이번 홈즈는 완벽해? 완벽해? 완벽해?]

    [아직은 완벽해.]

    [미결 사건 없음.]

    [사건을 고르는 건 아니야? 고르는 건 아니야? 고르는 건 아니야?]

    [다행히 그건 아냐.]

    팟, 소리와 함께 램프가 꺼지자 벽과 책장을 가득 메우던 핏빛 문구들도 같이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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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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