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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

       삼장로를 쓰러트린 후에도 튜토리얼은 이어졌다.

       

       대충 듣기로 게임 시스템에 관한 설명이 이어졌는데 나는 그걸 모두 넘겨버렸다.

       

       게임보다 중요한 것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소름끼칠 정도로 명확하게 내 과거를 묘사한 게 이 게임이다.

       

       만일 내 과거에 대한 내용을 더 담고 있다면 분명 여러 가지를 볼 수 있을 터.

       

       희미해져버린 어머님의 얼굴이나. 죽는 그 날까지도 웃기만 하던 스승의 목소리 같은 것들을.

       

       그 일념 만으로 내달린 나였으나 빠르게 뛴 만큼 실망도 빠르게 날 찾아왔다. ‘아피스’에는 스토리 모드가 없었다.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소름이 돋을 정도로 내 과거를 잘 묘사해 놓고는 그 이상을 말 할 생각이 없다고?!

       

       짜증이 치솟았다. 화풀이를 위해 무얼 하나 박살내고 싶었다. 무림에 있을 적엔 이럴 때 돌 산을 손으로 박살내며 분을 풀었는데. 현대에서 그런 짓을 벌이면 안 되겠지.

       

       참. 이 아피스라는 게임은 캐릭터와 캐릭터가 싸우는 게임이었지.

       

       이 안에서라면 타인에게 화풀이를 해도 문제없는 것 아닌가.

       

       나치고는 괜찮은 생각이었다.

       

       설명을 다 건너뛰어서 생각나는 건 몇 없지만 그 와중에 기억에 남은 문구가 하나 있었다.

       

       ‘1:1 모드는 서로의 체력을 먼저 깎은 쪽이 승리하는 모드입니다.’

       

       1:1모드라는 것은 사람과 사람이 서로 대련하는 형식으로. 한정된 공간 내에서 서로의 무예를 겨루는 것이라 말했다.

       

       거기에 복잡한 규율 따위는 없을 터.

       

       좋다. 1:1이란 걸 해보자꾸나. 게임 속 육신은 현실의 육신보다 형편없으나 이런 몸으로 무를 펼치는 것도 나름의 재미 아니겠는가.

       

       시스템 창에서 [1:1 일반 게임]을 선택하니 몇 초 기다리지도 않았는데 상대가 결정되었단 메시지가 떠올랐다.

       

       일견 북소리와도 닮은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의식이 점멸하더니 풍경이 바뀌었다.

       

       주홍색의 거친 흙으로 된 바닥과 대회의 관중석마냥 원 모양으로 세워 진 하얀 색의 벽. 이 곳은 서국에 있는 콜로세움이라는 건물과 닮아 있었다.

       

       “아이고. 또 뉴비 분이랑 매칭됐네.”

       

       가벼운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나의 반대편에 한 남성이 서 있었다.

       

       [매치가 준비되었습니다.]

       [천마 VS 검성]

       [20초 뒤에 전투가 시작됩니다.]

       [20]

       

       상대는 장검을 다루는 이였다.

       

       하얀 수염과 얼굴에 묻은 세월이 그가 중년의 나이임을 알렸으나 그 육신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강건했다.

       

       놀랍구나. 한 사람의 육신 전체가 검을 휘두르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니.

       

       긴 말은 필요치 않았다. 저 자는 검이었다. 검을 휘두르다 자신마저 검이 되어버린 광인이었다.

       

       “거기에 천마라니.”

       

       허나 남성은 외모와는 달리 행동과 어투가 가벼웠다. 속에 든 것과 겉에 드러난 것이 아예 다른 것처럼.

       

       생각해보면 지금 검성의 몸을 지닌 저 자도 단순히 게임을 즐길 뿐인 현대인이었다. 검성의 육신은 어디까지나 빌린 것일 뿐 그의 것이 아니었다. 다른 게 당연했다.

       

       실망스러웠다. 자신의 몸을 검으로 바꾼 광인이라면 분명 즐겁게 무를 나눌 수 있었을 텐데. 평범한 현대인이라면 저 육신을 제대로 다루지 못할 것 아닌가.

       

       아니지. 속단은 이르다. 겉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을 내리는 것 좋지 않은 일이다.

       

       “죄송합니다. 빨리 끝내 드릴게요.”

       

       저 자는 나를 앞에 두고서도 저리 자신만만하지 않은가. 분명 무언가를 숨겨뒀으리라.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게냐?”

       

       그렇지 않으면 저 건방진 발언을 용서해 줄 수 없잖은가.

       

       “누가 누굴 봐주겠다고?”

       

       감히. 본좌를 앞에 두고 그런 망발을 입에 담다니.

       

       무림의 그 누구도. 심지어 천하의 육존조차도 그 따위 말을 내뱉진 못했거늘!

       

       “오! 롤플레잉 쩌시네요! 부캐신가? 다행이다.”

       

       살기를 내뿜으려다 멈칫했다. 상대의 반응은 내가 예상한 것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그는 진심으로 내가 실력을 가졌음에 안도했다. 그리고 신기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남성의 모습 그 어디에도 공포나. 긴장이나. 분노. 무시 같은 것은 없었다.

       

       그저 천진난만함만이 남자의 목소리에 가득했다.

       

       싸움을 앞두고도 해시시 웃는 남성의 모습에 분노가 싸게 식었다. 저건 도대체 무엇인가. 저런 인종을 보는 건 처음이라 당혹스러울 지경이었다.

       

       [3]

       

       “그럼 진심으로 갈게요!”

       

       [2]

       

       “어. 어. 그러도록.”

       

       [1]

       [경기 시작]

       

       기계적인 음성이 콜로세움 안을 가득 채움과 동시에 검성이 몸을 움직였다.

       

       검에 내기를 두르며 돌진하는 그 모습은 용이 아가리를 벌리고 날 집어 삼키려 하는 것처럼 보였다.

       

       실력이 괜찮긴 하구나. 동작이 나쁘지 않아.

       

       공격의 의도가 너무 뻔한 게 문제기는 하다만 저 정도 위력이면 그런 걸 신경 쓸 필요 없었겠지. 어설프게 파훼하려다 박살나기 딱 좋은 공격이니.

       

       피할까 생각을 하다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야 재미가 없잖은가.

       

       발을 앞으로 내딛으며 내기를 점검한다.

       

       오! 방금 전 튜토리얼 할 때보다 내기의 양이 늘었다. 자세히 살피니 몸의 상태도 훨씬 좋아져 있었다.

       

       이 정도면 한창 무림을 돌아다니던 무렵은 될 것 같구나. 천마신공을 펼치는 데 전혀 무리가 없겠어.

       

       검성의 강공을 보며 어디를 찔러야 할 지를 살피다.

       

       오른 편에 틈이 보이지만 저건 일부러 내어 준 것이 뻔하고. 위를 노리자니 그건 상대가 원하는 바일 듯 싶다.

       

       흠. 용의 돌진을 본 뜬 기술이니 뚫어야 할 것은 용의 아가리 정 가운데인가.

       

       복잡한 기교는 필요 없겠군. 정면에서 부시면 그만이니까.

       

       콰앙!

       

       공기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검성의 몸이 허공을 날았다. 몇 번인가 바닥을 구른 그는 괜찮은 낙법과 함께 다시 중심을 잡았다.

       

       “아니 방금 그거 어떻게 한 거에요?”

       “어떻게가 어딨느냐. 그냥 하는 게지.”

       “와. 연기 진짜 잘하신다. 완전 천마 같아요.”

       

       연기고 뭐고 말이다. 본인은 천마가 맞다만. 그리 말했더니 검성은 웃으면서 네. 그럼요. 라고 답했다. 내가 농담이라도 내뱉은 것처럼.

       

       아니. 하. 답답하구만.

       

       “한 수 배우겠습니다!”

       “마음대로 하거라.”

       

       이제는 화풀이를 할 마음도 안 생겼다.

       

       검성은 여러모로 신기한 자였다. 동작을 취하는 것이나. 기술을 펼치는 것이나. 세세한 것들은 모두 다 고수라 부름에 손색이 없었다.

       

       문제는 다른 부분에서 튀어나왔다. 기술과 기술을 조율하는 것이 어설펐던 것이다.

       

       나름의 논리는 존재한다만 전채적인 형태가 너무 조잡하다. 상대의 의도에 맞추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도에 상대를 끼워 넣으려 하고 있잖은가.

       

       저것은 강자의 오만도 뭣도 아니었다. 그냥 무식한 거다.

       

       거기에 더해 심각한 버릇들도 몇 가지 있고. 가끔 가다 튀어나오는 기이할 정도로 어설픈 동작들도 존재했다.

       

       한참을 그에 맞추어 놀다 보니 추측이 갔다. 대개의 동작이나 기술은 시스템의 보정이리라. 그걸 조율하는 건 검성의 몸 안에 있는 사람이고.

       

       그러니 기술과 그걸 펼침에 있어 괴리가 생기는 걸 테지.

       

       상대하는 건 무척이나 쉬웠다. 기술이 뛰어나면 뭐하는가. 뻔한데.

       

       기술이 하나도 닿질 않으니 점차 검성의 움직임이 조잡해진다.

       

       급하구나. 어느 순간부터 목적이 전투의 승리가 아니라 어떻게든 한 번의 공격을 성공시키는 걸로 바뀌지 않았느냐.

       

       조언이라도 해줄 셈으로 놀아주던 중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창이 떠올랐다.

       

       [제한시간이 지났습니다.]

       [체력판정이 진행됩니다…]

       [승리!]

       

       음? 내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제대로 된 공격 한 번 한 적 없다. 한 거라고는 이 곳에 틈이 있다 알려주기 위해 툭툭 건드린 것 밖에 없잖느냐.

       

       [재전하시겠습니까?]

       

       해야지. 아직 알려주지 못한 것들이 많다. 저리 뛰어난 기술을 저렇게 밖에 못 쓰는 걸 어찌 가만 보고 있겠느냐.

       

       [재전 신청을 보냈습니다.]

       

       내가 보낸 메시지를 받을 걸까. 바닥에 쓰러져 가쁜 숨을 내쉬던 검성의 입에서 헛기침이 터져나왔다.

       

       “더 괴롭히시려고요?!”

       “무인이 되어서 패하고 도망칠 셈은 아니겠지?”

       “…알겠어요. 하면 되잖아요.”

       

       끈기는 마음에 드는 구나.

       좋다. 내 여러 모로 알려주도록 하겠다. 아주 잘 말이야.

       

       *

       

       [오늘 일겜에서 벽 느꼈다]

       

       랭크 플레티넘에 박제해 놓은 일반겜 충인데 일겜에서 쌉고수 만남.

       

       일반이고 랭크고 처음 돌리는 사람이길래. 아 또 뉴비인가 싶었는데 부캐였음.

       

       어떻게든 한 대 때려 보려고 발악을 하는 데 공격이 안 닿아.

       

       그러면서 틈 날 때마다 급소 쿡쿡 찌르면서 여기가 비었구나. 라고 그러는데 벌레가 된 기분이었음.

       

       진짜 플레는 티어도 아니더라.

       

       님 들이 한 번 봐주셈. 이 사람 티어 어딜 것 같음? 다이아 마스터 급이 이러면 나 무서워서 다시는 랭겜 못 돌릴 것 같아.

       

       [검성의 황룡격을 신권으로 깨부수는 영상]

       [검성연무를 한 대도 안 맞고 다 피하는 영상]

       [날아드는 검을 손가락 사이로 붙잡고 검을 빼앗는 영상]

       

       – 와 씹. 졸라 잘하네. 사람 새낀가?

       – 현직 마딱이인데 마스터에 저런 사람 없다. 있으면 무조건 부캐임.

       – 근데 중간중간에 롤플레잉 오진다. 진짜 천마 같음.

       – 평소에 롤플레잉 하는 애들 극혐하는 데 이 사람은 찐이라 멋있어 보인다.

       

       [천마 부캐 나도 만남]

       

       글 올라온 거 보고 혹시나 싶어서 일겜 돌렸는데 만났다.

       

       그래도 다이아 마스터 구간 망령이라서 부캐충 참교육해야지 생각했는데. 참교육 당하는 건 나였고.

       

       미친 사람이야. 진짜로. 내 기술 다 파훼하면서 한심하다는 듯이 피드백 툭툭 던지는 데 다 정곡이라 할 말이 없더라.

       

       최소한 챌이고, 어지간하면 프로 리그 들어간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 진짜 프로급임?

         – 예전에 운 좋게 프로 부캐 만난 적 있었는데 그 정도 수준은 된다고 봄.

       – ㄹㅇ 잘하긴 하나 보네.

         – 백판하면 백판 다 질 자신 있다.

       

       [천마 부캐 뉴비 같은데?]

       

       우연히 만났는데 이 사람 아피스 뉴비 인 것 같다.

       

       전투 자체는 말도 안 되게 잘하는데 게임 시스템에 관해선 아무것도 모름.

       

       맵에 따라서 특수 승리 조건이나 강화 아이템이나 필살기 아이템 같은 게 있단 사실도 모르던데.

       

       다른 게임 프로가 아피스 하러 온 거 아냐?

       

       – 그래서 이겼음?

         – 이겼겠냐. 맵에 있는 거 다 활용해서 비벼봤는데 처참하게 발림.

       

       [오. 천마 부캐. 데케이 미션하는 거 만남.]

       

       *

       

       아피스를 주로 플레이하는 방송인인 데케이 이종운은 아피스의 전직 프로게이머다.

       

       프로로서도 여러 성과를 내며 이름을 알렸던 종운이지만 그는 터렛의 방송인으로 더 유명했다.

       

       방송하는 내내 줄지 않는 텐션과 쉬지 않는 입. 그러면서도 어지간한 아마추어는 가볍게 발라버리는 실력과 프로조차도 인정하는 아피스에 대한 방대한 지식.

       

       그는 명실상부 실력파 아피스 방송인 중 하나였다.

       

       그런 종운은 지금 시청자가 낸 미션을 수행하고 있었다.

       

       랜덤 캐릭터로 일반게임에서 20연승하기.

       

       50여개가 넘는 캐릭터를 모두 다루지 못하면 클리어 할 수 없는 미션이었지만 종운은 기꺼이 미션을 받았다.

       

       잘 다루고 못 다루고의 차이는 있어도 그는 아피스의 모든 캐릭터를 할 줄 알았으니까.

       

       미션을 진행하는 과정은 여러 굴곡으로 가득했다.

       

       종운과 한 번 게임을 해보고 싶어서 저격을 하는 사람.

       

       그의 미션을 부수기 위해 찾아온 전프로.

       

       랜덤으로 아피스 최악의 캐릭인 편사가 세 번 연속으로 걸리는 등.

       

       수많은 실패의 위기가 있었지만 종운은 그 모든 악운을 극복했다.

       

       그 끝에 간신히 만들어 낸 19연승. 캐릭터를 고르는 창에서 종운은 하늘에 기도를 올렸다.

       

       “제에발 좋은 캐릭터 주십쇼! 편사 같은 쓰레기 말고 제발 내 주캐! 제발!”

       

       – 응. 아냐~ 편사야~

       – ㄴㄴ. 내가 보기엔 검무희임.

       – 도끼전사 기원 19트 째

       

       “가즈아아아아!”

       

       랜덤을 고른 순간 떠오른 초상화는 검과 방패를 든 쾌남이었다.

       

       “아자!”

       

       – 개노잼.

       

       “꿀잼이죠? 미소가 방긋방긋 지어지죠?”

       

       방패기사. 종운의 주캐 라인 중 하나. 현직 프로 2군들도 까다로워 하는 캐릭터.

       

       일반인으로 가득한 일반 게임에서 종운의 방패기사를 당해 낼 이는 흔치 않았다.

       

       현직 혹은 전직 프로가 저격을 하는 게 아니라면 미션의 성공이 확정 지어진 상황. 종운은 여태까지의 울분을 담아 시청자들을 놀리며 업보를 쌓았다.

       

       탕!

       

       매칭이 완료되는 소리가 났다.

       

       상대로 결정된 것은.

       

       천마였고.

       

       닉네임은.

       

       화령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매일 최신화 조회수가 늘어나는 걸 보면 흐뭇합니다. 분재를 키우는 심정이 이런 걸까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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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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