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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

       8. 폴리모프 (1)

       

       

       “수고하셨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혹시나 녀석들이 사고 치지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너희들 얌전히 있었구나.”

       “샤아-?”

       “아주 잘하고 있어.”

       

       마중 나온 초련이를 제외하고.

       녀석들은 사이좋게 앉아 TV를 올려보고 있었다.

       아마 초련이도 저 사이에 앉아 얌전히 TV를 보고 있었겠지.

       드래곤이라 해도 TV앞에서는 꼼짝을 못 하는 모양이다.

       

       “다들 배고프지? 밥 먹자.”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비닐봉지를 식탁에 내려놨다.

       그러자, 오늘의 저녁 메뉴가 궁금했던 걸까.

       화련이가 식탁으로 튀어 올라 봉투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샤아악-? 샤아악-?”

       “어허, 얼굴 치워. 얌전히 기다려.”

       “샤아악-!!”

       “이 인내심 부족한 자식. 가만히 있어. 곧 맛있는 거 줄 테니까.”

       

       나는 화련이의 기습 시위를 무시하고, 봉투에서 오늘의 저녁을 꺼냈다.

       오늘의 저녁 식사는 바로바로…

       

       “니들 라면 먹어본 적 없지? 먹어보면 깜짝 놀랄 거다.”

       

       라면이다.

       라면은 가격도 착하고, 양도 괜찮고, 맛도 좋고, 간편하다.

       심지어 묶음으로 사면 더 싸게 살 수 있다.

       나 같은 서민에게 아주 좋은 식량이라 볼 수 있다.

       

       ‘매일 고기만 먹일 수 없기도 하고. 당분간 돈이 생길 때까지는 라면으로 때우자.’

       

       어차피 가스랑 수도도 끊긴 마당이라 고기를 사더라도 구울 수 없다.

       생으로 고기를 먹는 미련한 짓을 할 생각도 없고 말이다.

       

       ‘라면도 맛있는 거야.’

       

       나는 인력 사무소에서 보온병에 담아 온 뜨거운 물을 냄비에 부었다.

       

       “온도 적당하고. 물양도 적당하고.”

       

       냄비에 면과 스프를 대충 때려 박고 뚜껑을 덮었다.

       계란 같은 사치품은 당연히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뚜껑을 열어보니, 나쁘지 않은 형태의 라면이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녀석들을 집중시키기 위해 박수를 치며 말했다.

       

       짝-!

       

       “와서 밥 먹어라.”

       “샤아악-!!”

       “샤아-”

       “샤아아-!”

       

       녀석들은 배가 고팠는지, 곧바로 튀어 올라 의자에 앉았다.

       저녁 식사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얼굴에 기대감이 잔뜩 피어올라 있었다.

       나는 사무소에서 몰래 횡령한 일회용 접시에 라면을 덜어줬다.

       

       “고기보다 라면이 더 맛있는 거야. 그리고, 밥을 먹기 전에는 다들 잘 먹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먹도록-”

       “샤아악-!!”

       “…아빠 말을 개무시하네.”

       

       화련이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릇에 머리를 박고 면을 흡입했다.

       

       후루룩- 후루룩-

       

       상당한 속도였다.

       나름 입맛에 맞는지, 녀석은 그릇을 비우자마자 크게 소리쳤다.

       

       “샤아악-!!”

       “더 내놓으라고?”

       “샤아악-!”

       

       고개를 마구마구 끄덕이는 화련.

       눈으로 좇기 힘들 정도의 속도다.

       화련이의 미간에 꿀밤이 마렵긴 했으나, 식탁에 있으니 참기로 했다.

       밥상머리 교육은 중요하니까.

       

       ‘나머지 애들은 잘 먹고 있으려나.’

       

       수련이는 나름 괜찮게 라면을 먹고 있었다.

       화련이와 비교해서 다른 점이 있다면, 수련이는 면을 흡입하지 않고 끊어서 먹고 있었다.

       옆에서 먹는 화련이를 자꾸 힐끔거리는 걸 봐선, 면치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먹는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초련이를 확인해 보았다.

       

       “샤아아-?”

       “잘 먹고 있구나.”

       “샤아아-!”

       

       엄청 맛있게 먹는 건 아니지만.

       초련이는 그럭저럭 소심하게 꾸물거리며 면을 쪽쪽 빨아 먹었다.

       라면이 매운지 혀를 내밀고 헥헥-거리기도 했다.

       그래도 라면을 싫어하는 것 같지 않아 다행이었다.

       

       ‘매일 고기 먹여야 하는 줄 알았네. 다들 잘 먹어서 다행이야.’

       

       갚아야 할 돈도 많은데.

       번 돈이 다 식비로 나가면 안 되는 법.

       오늘부터 드래곤의 주식은 고기가 아닌 라면으로 결정이다.

       

       “라면 더 먹을 드래곤은 말해! 더 줄 테니까!”

       “샤아악-! 샤아악-!”

       

       지극히 서민적인 식사 시간이었다.

       

       

       ***

       

       

       식사는 라면으로 해결이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다.

       

       “흠, 물은 어떡하지.”

       

       딸깍- 딸깍-

       아무리 간절하게 수도꼭지를 올려봐도 물이 나오지 않는다.

       이래서는 씻을 수도 없고, 기본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

       

       “그래도 생수는 필요하면 인력 사무소에서 구해오면 되는데…”

       

       앞날이 막막하다.

       수도 문제는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집주인을 찾아가도 어차피 집을 나가라는 소리만 듣고 오겠지.

       애초에 돈이 없으면 집을 나가야 하는 게 맞긴 하다.

       

       “혼자라면 다른 곳으로 가면 되는데. 이제는 혼자도 아니라서…”

       

       쓰읍-

       답답해 죽겠네.

       눈 딱 감고 콩팥이라도 팔고 올까.

       수도에 관한 고민이 그런 극단적인 생각까지 도달하려던 순간.

       

       “…샤아.”

       

       평소답지 않게 수련이가 앞발로 내 발목을 툭툭 치기 시작했다.

       나는 깜짝 놀라 수련이에게 물었다.

       

       “평소에는 나한테 관심도 없으면서. 수련아. 무슨 일이야. 아빠 바쁜데.”

       “샤아- 샤아-”

       

       수련이는 나를 지나쳐 화장실로 들어갔다.

       내가 가만히 서 있자, 멈추고는 나를 빤히 쳐다봤다.

       

       “샤아-”

       “왜.”

       “샤아-”

       “따라오라고?”

       

       끄덕-

       수련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화장실의 안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화장실 바닥에 굴러다니던 세숫대야 앞에 섰다.

       

       ‘얘가 뭘 하려는 거지?’

       

       무슨 짓을 하려는지 전혀 모르겠다.

       왜 나한테 따라오라 했는지, 직접 물어보려던 순간.

       수련이가 세숫대야를 향해 입을 살짝 벌렸다.

       그리고는.

       

       “샤아-”

       

       발사.

       

       솨아아아-

       수련이의 입에서 나와 쏟아지는 물이 세숫대야에 담기기 시작했다.

       그 물은 곧 세숫대야에 호수를 만들기 시작했다.

       마치 목욕탕에서 물을 내뱉는 석상처럼.

       수련이는 그 커다랗던 세숫대야를 자신의 물로 가득 채웠다.

       

       ‘…물도 내뿜을 수도 있어?’

       

       수련이의 새로운 능력을 알게 됐다.

       

       “샤아-”

       

       수련이는 내게 마음대로 사용하라는 듯이 눈짓했다.

       그리고, 쿨하게 화장실을 나가 TV로 향했다.

       화장실에 홀로 남겨지게 된 나는 수련이의 물로 가득 찬 세숫대야를 가만히 쳐다봤다.

       

       “…내가 물이 필요해 보여서, 나한테 물을 만들어준 건가.”

       

       내 손을 피하기나 하고, 나한테 관심이 없는 줄로만 알았는데.

       차가우면서도 귀여운 구석이 있네.

       

       “아버지가 곤란한 모습을 가만히 볼 수 없었던 거겠지? 역시 너도 나를 아버지라 생각했구나, 수련아.”

       

       너도 이제 완벽히 내 딸로 인정하마.

       내 마음속 호적에 수련이의 이름이 적혀졌다.

       

       ‘그건 그렇고.’

       

       내가 이 물을 사용해도 되는지가 의문이다.

       아무리 내 딸이 물을 만들었다 해도.

       

       “이건 침 아니야?”

       

       수련이의 입에서 생성되어 밖으로 나온 타액이다.

       겉으로 보기에도 괜찮고, 손으로 만져봐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 액체의 본질은 침이다.

       그것도 드래곤의 침.

       그 말은 즉.

       

       “…이거 비싸게 팔 수 있겠는데?”

       

       드래곤의 침을 판다고 하면, 구매할 사람을 줄로 세워도 지구 한 바퀴를 돌 것이다.

       드래곤의 심장을 먹은 사람은 영생을 산다고 하니까.

       각 나라의 수장들도 건강과 수명을 위해 드래곤에 관한 물품들을 수색하고 있다 듣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수련이의 침으로 만들어진 세숫대야는 꽤 비싼 가격에 팔릴 것이다.

       

       “아무런 위험 없이 팔린다면 말이지.”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고.

       드래곤에 관한 물품을 판매하면 위험에 빠지고 말겠지.

       그렇기에, 나는 이 쓸데없는 생각을 그만두기로 했다.

       

       예전과 다르게 혼자가 아니니까.

       굳이 위험을 짊어질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수련이가 준 첫 선물인데.

       내가 직접 사용해야지.

       

       “이건 씻을 때나 사용해야겠다.”

       

       그렇게 나는 화장실 구석에 수련이의 침.

       아니, 내 딸이 만들어준 소중한 물을 보관했다.

       

       “가끔 목마를 때 마셔도 되겠지? 침이 아니니까. 이건 침이 아니라 물이니까…”

       

       그 물이 내 몸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다줄지 꿈에도 모르고서.

       

       

       ***

       

       

       “다녀올게. 사고 치지 말고 얌전히 있어라. 알겠지?”

       “쿠우울-”

       “…”

       “샤아아-!”

       

       쾅-!

       이하준은 철문을 굳게 닫고, 출근을 위해 집을 떠났다.

       아침과 점심은 어제 먹고 남은 생라면.

       스프를 뿌리고 섞었기에, 과자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수련은 접시를 입에 물고 TV앞으로 가져와, 아침을 먹기 시작했다.

       

       “샤아-”

       

       와그작-! 와그작-!

       직접 씹어 먹어야 해서 귀찮았다.

       전체적으로 식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수련은 불평불만 하지 않았다.

       

       “샤아-”

       

       어쩔 수 없는 거니까.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어느 정도 알고 있기에.

       수련은 이성적으로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다.

       

       -초련. 너도 와서 먹어. 화련이 일어나면, 너 먹을 것도 없을 수 있어.

       -나는 저거 먹으면 입이 아프던데…

       -그래도 먹어. 먹을 만 하니까.

       -아라써…

       

       초련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생라면을 입에 넣고 깨물었다.

       

       아그작-!

       

       -으에, 아파! 그래도 아빠가 준 거니까 먹을 거지만… 아파…!

       

       초련은 살짝 불평하긴 했으나, 생라면을 계속해서 씹었다.

       그 직후, 씹는 소리에 잠에서 깬 화련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뭐야, 그거 치사하게 너희만 먹어? 나도 줘!

       

       와그작-! 와그작-!

       화련은 생라면을 단단한 이빨로 거칠게 씹으며 먹었다.

       그렇게 드래곤들의 가벼운 아침 식사 시간이 지나가고.

       어느 때와 같이 드래곤들은 TV앞에 모여 세상을 구경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인간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학습했다.

       서로 자신이 되고 싶은 인간적인 모습들을 머리에 떠올리며.

       드래곤이 아닌, 인간의 모습에 대해.

       점차 구체적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화련. 

       -뭐, 수련.

       -화련. 너는 남자가 되고 싶어, 여자가 되고 싶어?

       -꼭 하나만 선택해야 돼? 난 둘 다 하려고 했는데. 

       -…욕심부리지 말고, 하나만 선택해.

       -싫은데. 내가 왜! 난 여자랑 남자 둘 다 할 거야!

       -우리가 인간으로 변해도. 인간이 아니라 드래곤인 것처럼.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건.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해야 돼. 드래곤의 지식에 의하자면 그래.

       -칫, 알았어.

       

       서로 대화를 나누며 정보를 수정하기도 하면서.

       부모가 없는 사이에 드래곤은 점차 인간에 가까워지려 하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느린 다르팽이입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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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Dragon Egg

I Picked up a Dragon Egg

드래곤의 알을 주웠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picked up an Egg from the Dragon’s Nest. “Shakk!!!!” “Should I just sell?” I should have picked some other treas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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