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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

     오직 어머니만을 바라보는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는 불륜을 저질렀다.

     잘못이 누구에게 있는가?

     일단 못을 박고 들어가자면, 불륜을 저지른 어머니에게 결과적으로 잘못이 있다.

     아무리 아버지가 원인을 제공했다고 하더라도.

     “어머니. 최근 아버지와 함께하신 날이 거의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 아이가 할 말이 아니란다…!”

     “예. 하지만 아이가 개입하지 않으면 안 될 지경에 이르렀죠.”

     이건 분명 어른들끼리 나눠야 할 일이다.

     “저는 그저 아무것도 모른 채,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만….”

     하지만 내가 지금이라도 약간 수습하지 않으면, 상황은 더 악화되겠지.

     “그래서 후회하고 있습니다.”

     내게, 그리고 나리아 공주에게 안 좋은 방향으로.

     “아버지를 어떻게 설득했다면, 어머니께서 순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을 테지요.”

     “이…!”

     짜ㅡㅡ악.

     “아, 아아…! 그, 그레이…!”

     “괜찮습니다, 어머니.”

     좀 아프기는 해도, 미래에서 고문당하고 그랬던 때보다는 훨씬 덜하다.

     “맞을 소리를 했으니 맞는 게 당연하죠.”

     “…….”

     “하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습니다. 저는 두 분의 자녀이므로.”

     나는 가볍게 차를 한 번 홀짝여, 목을 축였다.

     “어머니께서는 아버지와의 부부생활에 만족하고 계십니까?”

     “다, 당연하단다. 사랑해서 결혼했고, 나는 그이를 사랑해.”

     “예. 사랑하시죠. 그렇기에 왕세자였던 세인트 지오 현 국왕의 프러포즈를 거절했었죠. 제가 태어나기 이전에.”

     “…….”

     어머니의 젊은 시절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제국식 로맨스 소설의 여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삼각관계에서 남들에게는 차갑지만, 나에게는 따뜻한 철혈의 변경백을 선택하여 해피엔딩을 맞이한 여주.

     그런데 그건 10대 후반과 20대 초, 한창 사랑이 불탈 시기의 이야기고.

     “어머니께서 지금 나이가 서른하나. 아버지가 아마…서른다섯? 여섯? 그 정도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다섯.”

     “아,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제가 이건 좀 헷갈려서.”

     회귀해서 그런지, 숫자 감각이 살짝 애매하다.

     “하여튼 어머니는 아버지를 사랑해서 결혼하셨지만,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아이가 셋이나 생기고 30대 중반에 가까워진 이 시점,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한 가지 괴리감이 있었다.

     “제 분석에 따르면…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사건이 터지기 전, 약 두 달 사이에 키스했던 적이, 한 번뿐이었습니다.”

     “!!”

     “입맞춤. 사랑을 나누는 행위.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행위. 그렇게 책에서 배웠습니다. 그렇지요?”

     나는 당연히, 알건 다 안다.

     

     하지만 어머니가 ‘내 아들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린애이기를’이라고 바라는 이상, 그에 맞춰 줄 필요가 있다.

     “…너는 키스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그야 당연히, 사랑하는 남녀 사이에 하는 행동이지요. 연인 사이에.”

     “…….”

     “저도 다 압니다. 남녀가 키스하고 밤에 한 침대에서 자면 아이가 생긴다는 걸.”

     어머니의 눈썹이 살짝 내려간다.

     살짝 안도하고 마음을 놓은 기색이 역력하다.

     아직은 어린애, 정도로 생각하겠지.

     “그래서 국왕과도 키스하셨습니까?”

     “……!!”

     그런데, 그렇다고 당신이 불륜을 저지른 게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

     “아버지께서 아무리 키스를 자주 안 해주셨다고 한들, 그렇다고 다른 남자와 키스한 건 선을 넘으셨습니다.”

     “읏….”

     “아버지께 진솔하게 상담을 나눠보신 적 있으십니까? 만일 그랬다면, 아버지께서는 기꺼이 어머니께 하루에도 일곱 번은 키스해주셨을 겁니다.”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다.

     사랑에 미친 인간.

     “하지만 제가 보기에, 어머니는 그러지 않으셨죠.”

     “…….”

     “물론 어머니께서는 국왕에게 스스로 몸을 허락하셨을 리는 없습니다. 국왕이 술에 취해서 강제로 끌어안았고, 이야기를 하자며 방에 따로 데려갔겠죠.”

     “그. 잠깐.”

     어머니가 내 말을 가로막았다.

     “너는 어떻게 그 방의 존재를 알고 있는 거니?”

     “…후.”

     왕실, 세 번째 침실.

     제1 왕비를 위한 방이며, 동시에 현재 카르멘 왕비는 이 방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 방은 국왕이 결혼한 뒤로 계속 비어있던 방이었습니다.”

     “…….”

     “카르멘 왕비께서도 아는 거죠. 그 방이 누구를 위한 방인 건지.”

     여인의 자존심.

     누군가의 대체가 되기 싫다거나, 누군가를 위해 준비한 방에 들어간다거나.

     그러기에는 카르멘 왕비도 한 자존심 하는 여자다.

     “왕은 분명 어머니를 그곳에 데려갔을 겁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키스하셨겠죠. 아마, 강제로. 술에 취해서.”

     “…….”

     “아마도 어머니는 결국 몸을 맡기셨을 겁니다.”

     “…….”

     어머니는 뭔가 반론을 펼치지도 않았다.

     다른 사람에게, 특히 아들에게 말하기 어려운 감정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겠지.

     “제가 말씀드려볼까요?”

     “…그래. 더 이상, 아이로서 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으니.”

     어머니는 다소곳하게 자세를 바로잡았다.

     “나는 너를 지금부터 어른으로 대하고 이야기를 할 거란다. 그래도 괜찮겠니?”

     “오히려 바라던 바입니다.”

     “…그럼, 한번 맞춰보렴. 내 지금 심정을.”

     “사랑이 식었다고 생각하셔서, 여전히 뜨거운 사랑을 가지고 있는 국왕에게 흔들리게 되셨겠죠.”

     “…….”

     어머니는 침묵했다.

     “그래서 저항하지 않으신 거 아닙니까? 그래서 진실을 숨기신 거 아닙니까?”

     왜냐하면, 그게 정곡이었으니까.

     “왕도에 초대받은 순간부터 그러셨을 겁니다. 과거의 추억이, 국왕과 애틋한 기억이 어머니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겠죠. 그래서 허락한 겁니다. 입술을.”

     “…….”

     “일은 벌어졌고, 왕도 정신을 차리고 나니 벌어진 일에 아차 싶었겠죠. 아무리 무능왕이니 뭐니 그래도, ‘저질렀다’라는 건 알고 있을테니.”

     본인도 이 상황이 알려지면 큰일 난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카르멘 왕비에게도 알리지 않았을 테지.

     카르멘 왕비가 알았다면, 아마 왕비가 이곳에 머물며 어떻게든 이혼을 종용하도록 했을 테니까.

     둘 다 이혼하고, 아버지와 재혼하기 위해서.

     “그저 뒤에서 껴안았다. 몸을 만졌다. 술에 취해서 실수했다 정도로 끝날 수도 있었겠지만…설마, 아버지께서 그렇게 화를 내실 줄은 어머니도 모르셨을 겁니다.”

     “……그래.”

     어머니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반역을 꿈꾸고, 나라를 제국에 넘길 생각을 하고, 그렇게 국왕을 시해…할 거라고, 작정했다고 생각했어.”

     “예. 시종들을 전부 죽여버리면서까지.”

     

     한 마디로 상스러운 표현을 좀 쓰자면 ‘ㅈ됐다’ 싶었겠지.

     “그런 의미에서 제가 알고 있는 것이 곤혹스러우셨겠지만, 한 편으로는 제가 어머니 편이라는 것에 안심하셨겠죠.”

     “……너는, 끝까지 비밀을 지켜줄 수 있니?”

     “비밀이라. 그건, 어머니 하시기에 따라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완벽한 비밀은 없다.

     회귀 전, 아버지가 처형장에서 어머니의 부정을 들었던 것처럼.

     ‘아마도 황제가 국왕을 죽이면서 들었겠지.’

     황제도 참, 대단한 인간이구나 싶다.

     그 비밀을 수년 동안 숨기다가 아버지를 죽이기 전에 말하다니.

     “저는 아버지를 도울 겁니다만, 전쟁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

     “중간에서 박쥐처럼 교묘하게 움직이면서, 제 나름대로 아버지를 최대한 억제하고 설득해보려고 합니다. 전쟁 이외의 방법으로, 아버지가 만족할 수 있게.”

     “그게 반정이라는 거니?”

     “지금 당장은 생각나는 게 그 정도로군요.”

     아버지에게 지금 ‘폐위 정도로 끝내자’라고 하면 씨알도 안 먹히겠지만.

     “어머니.”

     미래에도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야기하는 대상은 아버지가 아니다.

     “그래도 첫사랑인데, 살리고 싶으신 거죠? 아버지로부터.”

     “…….”

     어머니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대답으로 충분합니다. 그러면 이제, 편지를 써주십시오.”

     나는 탁자 위에 올려진 잉크와 깃털 펜을 가리켰다.

     “편지를 쓰시고, 봉투에 인장을 넣으십시오.”

     “네가 직접 전하는 거니?”

     “예. 계획서를 전하는 것도, 편지를 전하는 것도 제가 직접 할 겁니다. 제가 왕도로 가서.”

     “아무리 네가 백작가의 장남이지만, 독대한다거나 그럴 상황은….”

     “제가 만들겠습니다. 그건.”

     “…정말이지.”

     어머니는 손을 파르르 떨었다.

     “내 아들이지만, 너무 똑똑한 것 같아.”

     “이런 아들이 지금은 필요하실 거라 생각하여, 어쩔 수 없이 이러는 겁니다.”

     “…만일.”

     어머니는 서랍에서 작은 편지지를 꺼내며 내게 물었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너는 계속 이전처럼 지냈을 거였니?”

     “음, 적어도 어머니께서 바라시는 ‘순하고 착한 아들’은 계속 보여드렸을 것 같습니다만.”

     “……그렇구나.”

     어머니는 묵묵히 깃털 펜을 들었다.

     “잠시만. 그래도 좀 부끄러우니까, 혼자서 썼으면 하는데….”

     “안 됩니다.”

     “뭐?”

     “밀봉 전에, 제가 좀 봐야겠습니다만.”

     “…뭐?”

     “‘아들이 알고 있다’라고 적으면 곤란하잖습니까? 저는 어머니의 아들이지만, 동시에 지브롤터 변경백의 아들이기도 하니.”

     왕도에 가고 싶기는 하지만.

     “국왕에게 살해당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비밀 유지를 위해서, 국왕은 저를 죽일 수도 있습니다.”

     “…….”

     치켜 올라갔던 어머니의 눈썹이 살짝 내려왔다.

     “너무 밉살스럽기는 하지만, 친아들이 내연남에게 살해당하는 건 바라지 않으시죠? 그럼, 아버지가 바로.”

     쓱싹.

     “어느쪽이든, 진실이 퍼지면 다 죽는 겁니다.”

     “…….”

     “어머니?”

     “…어머니라는 말이, 너무나도 무겁게 들리는구나.”

     어머니는 떨리는 손을 꾹 움켜쥐며, 깃털 펜에 잉크를 묻혔다.

     “그래. 적을게.”

     30분 뒤.

     “…이거면 되겠니?”

     편지를 받았다.

     내용에 큰 문제는 없었다.

     “감사합니다, 어머니.”

     붉어졌던 얼굴은 어느새 가라앉았고, 나는 편지의 내용을 확인한 뒤-

     “나중에 출발할 때, 한 편 더 써주시죠.”

     “…앗?!”

     촛불에 태웠다.

     “뭘 놀라십니까. 제가 가지고 갈 줄 아셨습니까? 지금 바로?”

     “아, 음, 그렇구나. 하긴. 당장 왕도로 가는 것도 아니니.”

     “예. 나중에 따로 제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때 저를 불러서 적어주시길.”

     “…보는 거구나.”

     “당연하죠.”

     내용은 그때 한 번 더 확인할 거다.

     “…알았어.”

     어머니는 재로 타들어 가는 종이를 보며 깊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많이 컸구나. 정말이지, 마냥 어린아이인 줄 알았는데.”

     “…….”

     “왕도에 간다면, 카르멘 왕비를 조심하거라. 그녀는…나를 좀 많이 싫어하는 편이니.”

     

     당연하지.

     자기 첫사랑을 빼앗아 갔는데.

     ‘어쩌면 왕국 입장에서는 반대로 맺어지는 게 진짜 행복 아니었을까?’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다.

     ‘아니지. 그러면 나리아 공주가 태어나지 않았잖아.’

     음.

     그냥 이미 지나간 역사는 흘러가는 대로 두되, 지금부터 바꿔나가는 것이 답이겠지.

     “어머니.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무, 무엇이니?”

     “오늘부터 아버지와 같은 방을, 같은 침대를 쓰십시오.”

     “…….”

     어머니의 표정이 굳었다.

     “싫으십니까?”

     “아니, 그, 백작님이…싫어하지 않을까?”

     백작님.

     백작 부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어머니는 아버지를 간혹 백작님이라고 부른다.

     나름의 애칭 같은 것.

     “오히려 좋아할 겁니다. 혹시 모르죠. 이번 일을 계기로 잠깐 멀어진 사이가 다시 가까워질지도.”

     “…….”

     “제가 아버지께 가서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머니께서 어른의 키스를 바라신다고.”

     “아, 아니, 그!”

     어머니가 펄쩍 놀라며 소리쳤다.

     “…내가 전할 테니, 너는 이만 가서 자렴. 시간이 많이 늦었단다.”

     “…하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군요.”

     저녁 8시.

     동생들인 누아르와 레타르는 슬슬 잘 준비를 할 시간이다.

     “그, 정말 미안하구나. 네게 큰 상처를 준 것 같아서.”

     “상처요?”

     “그래. 그리고 나중에 또 상처를 입을지도 모르고.”

     “괜찮습니다.”

     사랑에 미치면,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어머니. 하나, 개인적으로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뭐니?”

     “아버지와는 왜 소원해지신 겁니까?”

     “…….”

     어머니가 처음으로,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짜증을 보였다.

     “어머니께서 충동적으로 그런 일을 저지를 분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충동….”

     “무언가, 쌓였던 게 있습니까?”

     “쌓여? …후. 그래, 쌓였지. 어쩌면 쌓였던 것이 폭발했을지도 모르고.”

     어머니는 창밖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너도 어른이 되면 알 거란다. 내가 왜 그때…그렇게 행동했는지. 경솔했지만, 참을 수 없었어.”

     “어른이 되면.”

     “그래. 내가 부정을 저지르기는 했지만….”

     까득.

     “삼 년.”

     “…예?”

     “삼 년 동안, 키스 한 번 제대로 못 했어.”

     “……예?”

     잠시, 나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게, 무슨?”

     “키스도 단순한 입맞춤이 있고, 어른의 키스라는 게 있단다.”

     어머니는 살짝 귀기 어린 눈빛으로 눈을 뜨며, 몸을 일으켰다.

     “네가 성인이 되면, 그때 알려주마.”

     “…….”

     참으로 어른다운 변명이었다.

     ‘어쨌든 불륜하셨잖아요.’

     그렇게 변명해봐야, 결국 불륜을 저질렀다는 건 바뀌지 않기에.

     ‘어른이란 참 이기적인 존재야.’

     어머니는 끝까지 아버지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내 앞에서라도, 그 말 한 마디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냥.

     조금, 씁쓸했다.

     그저.

     아버지의 앞에서 빈 말이라도 하기를 바랄 뿐이다.

     이유야 어찌됐든, 미안하다고.

     3일 뒤.

     “가볼까.”

     계획서가 준비되었고, 왕도로 향하는 마차가 준비되었다.

     “합의금 뜯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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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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