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8

       연회의 주최자와 결투를 벌이게 된 판에 형편 좋게 연회장에 머무를 수는 없었기에, 나와 마리아는 연회장에서 나와 별궁으로 향했다. 나야 낯짝에 철판 깔고 버틸 자신이 있었지만, 마리아는 상상 이상으로 우리에게 쏠리는 시선에 황급히 귀환을 택했다.

        ​

        궁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리아가 내게 따져 물었다.

        ​

        “그러니까, 왜 갑자기 욤 경과 싸우게 된 건데요?!”

        ​

        “아니, 나보고 널 협박했다 어쩐다 멋대로 떠들어대잖아.”

        ​

        “그런 건 적당히 얼버무리고 넘길 수 있는 거잖아요!”

        ​

        그녀의 말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

        “내가?”

        ​

        “…그랬지요. 당신은 그런 건 절대 그냥 두고 넘어갈 사람이 아니었지요.”

        ​

        그녀는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크게 한숨을 토할 뿐 굳이 뱉어내진 않았다.

        ​

        차라리 정치적인 중상모략이면 모를까, 이런 식으로 사람의 인격을 뭉개버리는 짓거리에 대해 내가 그냥 넘기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을 테니까.

        ​

        내가 정치판에 관련되지 않으려던 태도를 깨고 그녀와 처음 계약을 맺고 황후의 공세로부터 그녀를 지켜주었던 것도 이런 성향 탓이었다. 그녀도 그걸 아는 이상, 설령 대상이 나라 해도, 아니, 오히려 나 자신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더욱 강하게 나서리라는 걸 잘 이해하고 있을 거다.

        ​

        이상적이고 기사도적인 가치관을 추구하는 사람이 황녀를 겁박해 제 아내로 삼는다니. 그게 대체 무슨 모순이란 말인가. 그게 정설처럼 받아들여지는 순간 나 자신의 이미지가 문제가 아니라 지금껏 내가 해온 모든 일들이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었다.

        ​

        나는 그걸 용납할 수 없었다.

        ​

        마리아는 말로는 나를 말릴 수 없다는 걸 이해하고는 대화의 방향을 틀었다.

        ​

        “먼저 말해둘게요. 절대, 절대로 욤 경의 사지를 상하게 하지 마요.”

        ​

        “…날 너무 단순 무식한 놈으로 보는 거 아냐?”

        ​

        “제가 당신 싸우는 걸 한두 번 본 줄 알아요?”

        ​

        “…….”

        ​

        할 말이 없었다.

        ​

        별명이 괴물 사냥꾼이니만큼, 내 전투법이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 위주로 발전해 일단 사지부터 쳐내 움직임을 제한하는 쪽으로 발전해 있긴 했었다. 사람을 상대할 때도 굳이 그 성향을 숨긴 적은 없었다.

        ​

        마법이란 것이 어떤 면에서는 현대 기술보다 편리한 부분이 있어서, 일반적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부분에서는 굉장히 미흡한 부분이 많음에도 잘린 사지를 붙이는 쪽으로는 굉장히 발달해 있었기에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거든.

        ​

        “…역시 안 되려나?”

        ​

        “진짜 할 생각이었어요?!”

        ​

        아니 뭐, 마법으로 팔다리를 붙인다 해도 그 기능이 전보다 좀 떨어진다고는 하지만, 욤 그놈이 기사로 대성을 꿈꾸거나 하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후작을 이어받을 예정이면 상관없는 거 아닌가.

        ​

        차마 입 밖으로는 내뱉지 못하고 입술만 꾸물거리고 있으니 마리아가 이마를 짚고 한숨을 내뱉었다.

        ​

        “잘 기억해두세요. 뷔르템부르크 후작가는 수도에서 굉장히 정치적 영향력이 큰 가문이에요.”

        ​

        “엥? 영지는 남부에 있는데?”

        ​

        “남부의 주인은 따로 있잖아요.”

        ​

        “아, 그랬던가.”

        ​

        일곱 선제후가 제국 전역에 퍼져 자리를 잡고 일대의 왕처럼 군림하는 탓에, 선제후가 자리 잡은 곳 근처에서는 그 어떤 고위 귀족이라 한들 제대로 어깨를 펴기 힘들었다.

        ​

        그리고 뷔르템부르크는, 하필 남부에서 위세를 떨치는 선제후국 바로 옆에 위치한 탓에 제 영지에서는 그리 위세를 펼치지 못할 것이 분명한 위치였다.

        ​

        “그 대신, 뷔르템부르크 후작가는 중앙에서 활동하기를 택했어요.”

        ​

        “쉽지 않았을 텐데?”

        ​

        제아무리 후작이라지만, 중앙 정계란 것이 그리 만만한 놈이 아니었다. 서울에서는 눈 깜짝할 새에 코 베인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현대 한국에서조차 그럴진대, 제국이라 하더라도 귀족들의 이권이 다양하게 얽힌 아펠리아 제국에서는 말할 것도 없었다.

        ​

        “그걸 해냈으니까 후작가가 이렇게 명망이 높은 거죠.”

        ​

        “그런가.”

        ​

        나야 수도에서 누가 유명한가는 잘 모르니 마리아의 말에 뭐라 대꾸할 수가 없었다.

        ​

        “아무튼, 괜히 후작가에 원한을 살 수 있으니 조심하라 이거지?”

        ​

        “네, 공식적으로는 그들도 당신을 함부로 건드릴 수 없겠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니까요.”

        ​

        턱 밑을 긁적였다.

        ​

        팔다리를 건드리지 않고 상대하라니. 그 말은 괴물 사냥꾼으로서 내가 갈고닦아온 기술들은 사실상 봉인 당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

        “좀 귀찮아질 것 같네.”

        ​

        마리아는 내 말에 피식 웃었다.

        ​

        “그래봐야 질 생각도 없으면서.”

        ​

        “자신이 없긴 하지.”

        ​

        “질 자신이?”

        ​

        이제는 내 말장난에 익숙해진 듯 마리아는 내 대사를 빼앗고는 킥킥 웃었다. 나도 설마 겨우 딱 한 번 했던 말을 기억할 줄은 몰랐기에 어이가 없어 피식 웃었다.

        ​

        그렇게 분위기가 전환되고, 잠시 말없이 마차 바깥의 풍경을 구경하던 마리아가 물었다.

        ​

        “그러고 보면, 이번 결투는 뭘 걸고 이뤄지는 거예요? 혹시나 묻겠는데, 제 파트너가 누가 될 것인가를 두고 겨루는 건 인정할 생각 없다는 것 정도만 미리 말해둘게요.”

        ​

        “욤도 그것까지 바라지는 않았어.”

        ​

        애초에 황족의 파트너가 누가 될지를 두고 겨루는 건 제아무리 신분이 높다 해도 겨우 귀족가 자제들이 정하기에는 너무 중대한 문제였다. 그리고 욤은, 객관적으로 자신이 무얼 해도 되고 해선 안 되는지 매우 잘 알고 있었다.

        ​

        “그냥, 진 쪽이 얌전히 소문이 퍼지는 걸 두고 보기로 합의했을 뿐이지.”

        ​

        “소문이요?”

        ​

        마리아가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로 날 바라봤다.

        ​

        “당신이 절 협박해서 파트너가 되었다는, 그 말도 안 되는 소문?”

        ​

        고개를 끄덕였다.

        ​

        직접적으로 파트너의 자리를 건드리지는 않지만, 여론을 호도해 나를 쫓아내겠다는 생각이겠지. 딱 적당한 정도였다.

        ​

        마리아는 안색이 창백해진 채로 내 팔을 붙잡았다.

        ​

        “아니, 그게 무슨, 그건 그냥 당신을 사실상 탄핵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는 말이잖아요!”

        ​

        “탄핵은 무슨, 내가 뭐 공직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

        “지금 말장난하자는 걸로 보여요?!”

        ​

        나는 그녀에게 웃으며 답해주었다.

        ​

        “안 지면 되는 거잖아. 안 지면.”

        ​

        내 낙관적이기 짝이 없는 태도에, 마리아는 분통이 터지는지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말했다.

        ​

        “그럼, 당신은 무슨 소문을 퍼트릴 건데요?!”

        ​

        그녀의 질문에, 나는 내가 고심 끝에 생각해낸 답을 말해주었다. 사람의 인품과 인격을 해치진 않지만, 인망은 확실하게 조져버릴 수 있도록 고안한 내 아이디어를 듣자, 이미 창백해졌던 마리아의 얼굴이 이번엔 아예 새하얘졌다.

        ​

        “아니, 그게 무슨…?”

        ​

        “상대방을 악의적으로 모함하려고 들었으면, 자기가 모함당할 것도 각오해야지 않겠어?”

        ​

        물론, 나는 그와는 달리 그의 인생을 망쳐버릴 정도의 소문은 퍼트릴 생각이 없었다.

        ​

        하지만 장담할 수 있었다. 이 소문이 퍼지면, 욤 그놈도 아마 고생깨나 할 게 분명하다고.

        ​

        -―

        ​

        나와 욤의 결투는 연회로부터 사흘 뒤에 벌어졌다.

        ​

        처음에는 참관인 정도만 두고 작게 결투를 벌이려 했으나, 하필 서로 다툰 곳이 연회장이었던 것이 문제가 되었다.

        ​

        심지어 그 연회장이 제국 각지에서 성인식을 치를 귀족가 자제들이 몰려온 곳인 탓에 말 그대로 수도 전체의 사교계에 우리의 결투에 대한 소문이 퍼진 것 같았다.

        ​

        “빌을 내 파트너로 공표할 생각이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주목을 받을 생각은 아니었는데…!”

        ​

        뒤에서 혼자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계속 중얼거리는 마리아가 지원해준 기사단의 도움을 받으며 전투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

        “그런데, 검은 왜 새것을 쓰려 하시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원래 쓰시던 검이 더 손에 익으셨을 텐데….”

        ​

        견습 기사들이 가져온 검 중 쓸만한 걸 골라내고 있으니 기사가 내게 물었다. 그에게 내 검을 보여주었다.

        ​

        “그건 이런 결투에서 쓰기엔 좀 그래서.”

        ​

        일부러 투박하게 날을 갈고, 검의 표면을 잘 관리하지 않아 거칠거칠해진 검신이 드러나자 기사는 눈을 찌푸렸다.

        ​

        “…관리가 잘 안됐군요.”

        ​

        “일부러 이렇게 만든 거야.”

        ​

        검을 몸 앞에 바로 서게 쥔 채 마력을 흘려 넣었다.

        ​

        챙! 하는 소리와 함께 날 부분이 빛을 반짝이자 기사가 당황하며 뒤로 물러섰다.

        ​

        “이, 익스퍼트시군요.”

        ​

        “나름 나도 기사단의 부단장이니까. 실권은 거의 없지만.”

        ​

        몸 바깥으로 마력을 끄집어내는 것이 용이한 마법사들과 달리, 일반 기사들은 제 몸 안에서만 마력을 활용할 수 있었다. 그 탓에 기사들이라 하더라도 대부분 열심히 수련해 늘린 마력으로 몸을 강화하는 것이 한계였다.

        ​

        익스퍼트쯤 되면, 이제 그 마력을 몸 밖으로 방출하는 것이 가능했다. 마력을 사용해 검을 강화하는 것 역시 그 일환이었다. 대부분의 기사단에서 간부에 오르는 자격을 익스퍼트로 제한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

        물론, 그렇다고 이게 만능은 아니었다.

        ​

        “마력으로 검을 강화한다고 하지만, 검 자체가 이런 모양인 탓에 날카롭긴 해도 이 검은 베는 게 아니라 찢고 부수는 데 특화돼 있어. 몬스터들을 상대하는 데에는 역시 이런 게 유리하니까.”

        ​

        그리고 직접 검을 휘둘러 구석에 있던 갑옷 걸이를 베었다.

        ​

        으지직.

        ​

        목재가 부서지며 썩 불쾌한 소리와 함께 파편이 날렸다.

        ​

        “날은 그냥 쐐기 역할이지, 결국 핵심은 이 오돌토돌한 표면 사이로 흐르는 마력이라.”

        ​

        기사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서둘러 검을 넘겨주었다. 적당히 휘둘러보며 손에 잘 맞는 검을 골라냈다.

        ​

        그러자 딱 때맞춰 사람이 들어왔다.

        ​

        “주인님께서 준비는 다 마치셨는지 여쭈셨습니다.”

        ​

        “다 됐어. 이제 곧 나갈 거라고 전해줘.”

        ​

        “예.”

        ​

        시종이 떠나고, 전투 준비를 마쳤기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불편하긴 하지만 그래도 안전을 챙겨야 한다고 난리를 친 마리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껴입은 갑옷이 절그럭거리는 소리를 울렸다.

        ​

        “…이제 시작하는 건가요?”

        ​

        아까부터 계속 뭐라 중얼거리던 마리아가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내 곁으로 다가왔다.

        ​

        “그리 오래 기다리진 않을 거야. 금방 끝내고 올 테니까.”

        ​

        자신감 넘치게 말했지만, 마리아의 눈에 담긴 걱정은 빠질 기색이 없었다.

        ​

        “꼭 조심해요. 다치지 말고.”

        ​

        그래도 나름 검술 좀 연마했을 후작가 아들을 상대로 아예 다치지 말라는 건 좀 어폐가 있지 않나 싶었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

        괜히 여기서 걱정을 더 얹어주는 건 그리 멋있지 못한 행동이었다.

        ​

        대신 나는 되려 그녀에게 물었다.

        ​

        “그런데, 내가 이기면 넌 뭘 해줄 거야?”

        ​

        “네?”

        ​

        갑작스런 질문에 고개를 기울이는 마리아에게 다시 한번 말해주었다.

        ​

        “내가 누구 때문에 갑자기 이렇게 결투를 벌이게 됐는데~ 원인제공을 한 사람은 뭐 나한테 아무것도 안 해주나~?”

        ​

        “아니, 어차피 당신이 지더라도 그 소문은 제가 어떻게든 무마해드릴 생각이었-”

        ​

        “헉, 설마 내가 질 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거야?”

        ​

        “…이익, 진짜!”

        ​

        안 그래도 심란한 심정이었을 텐데 내가 계속 성질을 건드리니, 그녀도 살짝 열이 오른 것 같았다.

        ​

        “뭘 바라시는데요?!”

        ​

        “그건 네가 생각해줘야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

        순간 말문이 막힌 듯, 마리아는 ‘하’ 하는 소리와 함께 짧게 탄식을 뱉어냈다. 하지만 아주 잠깐의 고민이 지나자, 그녀의 얼굴에 오히려 장난기가 감돌았다.

        ​

        “좋아요. 빌, 이기기만 하세요. 그러면 제가 당신이 원하는 건 뭐든지 다 드릴게요.”

        ​

        …어라. 원래 이런 대사를 들으면 ‘지금 뭐든지라고 했겠다?’라고 해야 하는데, 내 본능이 그걸 이 악물고 틀어막고 있었다. 여기서 그걸 물었다간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 같다는 예감이 미친 듯이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

        나는 급하게 이야기를 끝마쳤다.

        ​

        “아, 알았어. 기대하고 있을게!”

        ​

        급하게 뒤돌아 결투장으로 향하니 마리아가 조금 전 그 표정 그대로 내게 손을 흔들었다.

        ​

        “건승을 빌게요.”

        ​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대충 손을 흔들어주며 움직였다. 그리고, 그 탓에 귓가에 갑옷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가득 차 마리아가 하는 말을 듣지 못했다.

        ​

        “흥, 이런 때만 쓸데없이 감이 좋은 겁쟁이.”

        ​

        아마도, 다시 물어도 그녀는 답해주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

        -―

        ​

        팔츠성 안, 황궁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 그 위치와 규모만으로도 뷔르템부르크 후작가의 위용을 드러내는 저택에는 때아닌 손님들로 인한 인파가 가득 차 있었다.

        ​

        얼마 전, 연회장에서 벌어진 빌헬름 폰 브란덴 경과 욤 폰 뷔르템부르크 경의 결투가 바로 오늘, 이곳에서 벌어진다는 소문이 퍼진 탓이었다.

        ​

        과거 결투가 사람들의 유흥거리처럼 소모되던 시절이 있긴 했지만, 제국이 국법으로 결투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을 금한 이후로, 적어도 수도에서만큼은 결투가 예전과 같은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

        여전히 지방에서는 법과 같은 사소한 문제는 신경 쓰지 않고 과거의 유산을 이어가는 훌륭한 전통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건 아무튼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지방의 이야기고, 주먹보다 법이 가까운 이곳 팔츠에서는 결투로 죽는 사람은 거의 사라졌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결투에 이토록 많은 사람이 모인 이유는, 이 결투의 이유 때문이었다.

        ​

        “아니, 황녀 전하께서 부마 후보를 낙점하셨다는 소문이 진짜였다고?”

        ​

        “네에? 욤 경께서 빌헬름 경을 질투해 황녀 전하의 파트너 자리를 두고 결투를 신청했다고요?”

        ​

        뭐, 소문이 퍼지며 이상하게 뒤틀리기는 했지만, 결국 핵심은 간단했다.

        ​

        황녀를 두고 두 남자가 결투를 벌인다.

        ​

        이제 막 성인이 되는 나이의 청춘남녀들에게, 이런 군침이 싹 도는 떡밥을 무시하라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당연히 소문은 일파만파 퍼져 겨우 사흘 만에 팔츠 성 안에서 이 소식을 모르는 귀족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

        그리고, 원래 애들 사이에 도는 꿀잼 떡밥은 그 깊이는 좀 떨어질 수 있어도 매콤함만큼은 끝내줘서, 한 번 맛본 어른들도 터져 나오는 도파민을 상대로 버티기 쉽지 않았다.

        ​

        요컨대, 시간이 남는 수도의 귀족들이 죄다 결투를 구경하기 위해 뷔르템부르크 후작저에 찾아온 것이다.

        ​

        “그런데, 브란덴이 어디 붙어있는 영지지?”

        ​

        “으음, 그러고 보면, 저 동북부 쪽에 브란덴 변경백령이 있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

        “…혹시 동부의 브란덴 선제후국을 말하는 건가?”

        ​

        특히나 어른들은, 자제들이라고는 하지만 중앙의 실세로 꼽히는 뷔르템부르크 후작가와 중앙정계와 연이 없다고는 해도 사실상 동부에서는 황제보다 더 명망 높다는 브란덴 가가 부딪힌다는 사실에서 뿜어져 나오는 도파민을 참지 못했다.

        ​

        그렇게 엄청난 수의 귀족들이 구경을 위해 몰려든 상황에서, 서로 갑옷을 갖춰 입은 욤과 빌헬름이 참관인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섰다.

        ​

        참관인이 그들에게 물었다.

        ​

        “주님께 맹세코, 두 분께서는 이 신성한 결투의 승패에 승복할 것을 맹세하십니까?”

        ​

        “예.”

        ​

        “당연하지.”

        ​

        욤은 빌헬름의 껄렁한 태도에 살짝 눈을 부라렸으나, 참관인은 이런 일이 익숙한 듯 신경 쓰지 않았다.

        ​

        “두 분께서는 이번 결투로 어떤 소문이 진실이고 어떤 소문이 거짓인지를 가려내고자 한다고 하셨지요. 맞습니까?”

        ​

        두 사람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참관인은 계속해서 절차를 이어 나갔다

        ​

        “이 전투는 주님께 바쳐진 것이니, 그분께서는 이 결투를 지켜보시며 과연 누구의 주장이 옳을지 선별해주실 겁니다. 주께서는 항상 정의와 함께하사, 그분께서는 진실을 주장하는 분께 힘을 더해줄 것이 분명합니다.”

        ​

        그는 우선 욤에게 손을 뻗어 물었다.

        ​

        “귀하가 주장하시는 바를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

        욤은 자신만만하게 답했다.

        ​

        “빌헬름 폰 브란덴이 마리아 전하를 협박해 전하의 파트너 자리를 따냈소.”

        ​

        “알겠습니다.”

        ​

        참관인은 그를 보조하는 이에게 이를 기록해두도록 하고 빌헬름에게 물었다.

        ​

        “귀하가 주장하시는 바를 말씀해주시지요.”

        ​

        욤 역시 그가 무엇을 주장할지 알 수 없었기에 주의를 기울였다.

        ​

        빌헬름은, 사악한 미소로 욤을 바라보며 말했다.

        ​

        “욤 폰 뷔르템부르크에게 여장하고 도심을 돌아다니는 취미가 있다 들었어.”

        ​

        “뭣.”

        ​

        “예?”

        ​

        구경꾼들이 모였다고는 하지만, 원래 이런 결투는 관중과는 상관없이 진행됐기에 빌헬름도 목청을 키우지는 않았다.

        ​

        하지만, 그가 꺼낸 이야기는 그 자체로 충격적이기 짝이 없었다.

        ​

        “그, 그게 무슨-!”

        ​

        당연히 욤은 이에 반박하려 했지만, 금세 당황스러움을 떨쳐낸 참관인은 그를 제지했다.

        ​

        “이미 두 분께서 주님께 신성한 결투의 맹세를 한 이상, 진실을 판별하는 것은 오직 주님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욤 폰 뷔르템부르크 경, 자리로 돌아가세요.”

        ​

        “이, 이 개자식이…!”

        ​

        욤의 욕설에 빌헬름이 눈썹을 까딱거렸다.

        ​

        “워후, 귀하게 자라신 도련님께서 왜 이리 입이 험하실까?”

        ​

        빌헬름의 도발에 눈이 뒤집힌 욤이 곧장 자세를 잡고 검에 마력을 집어넣었다. 

        ​

        ‘익스퍼트인가. 하긴, 후작가쯤 되면 가문 전통의 검술이나 단련법쯤은 있겠지.’

        ​

        빌헬름은 상대가 취한 자세와 검의 날카로움을 살피며 욤의 수준을 가늠했다. 그리고, 그 역시 자세를 잡았다.

        ​

        참관인은 두 사람 모두 알아서 전투 준비를 마친 것을 확인했다. 원래는 전투 준비부터 그가 먼저 지시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결투까지 벌일 정도로 감정의 골이 쌓인 사람들이 싸우는 데 이런 일은 비일비재했다.

        ​

        그는 한 번 어깨를 으쓱이고는 뒤로 물러나 손을 앞으로 뻗었다.

        ​

        “그럼, 지금부터-”

        ​

        사람들의 시선이 그의 손끝으로 쏠렸다. 말을 질질 끌던 참관인의 어깨가 꿈틀거렸다.

        ​

        동시에 참관인이 하늘을 향해 팔을 뻗었다.

        ​

        “전투, 시작!”

        ​

        쾅!

        ​

        굉음과 함께, 두 사람의 검이 맞붙었다.

       


           


I Wished for Romance, but it Turned Out to be a Romance Fantasy

I Wished for Romance, but it Turned Out to be a Romance Fantasy

낭만 판타지를 꿈꿨는데 로맨스 판타지였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dreamed of a life filled with romance¹ and romanticism, but I didn’t dream of a romance fantasy… —- ¹ The “Romance” here means a feeling or atmosphere of something new, special and exciting, e.g., a hero’s adventure.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