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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

       트롤의 인자가 이한에게 경이적인 회복력과 강한 완력 등을 주었다면 놀의 인자는 인간 이상의 ‘후각’과 ‘본능’을 주었다.

       본능에 대해선 설명할 게 많으니 그냥 넘어가고, 후각은 말 그대로 후각이었다.

       사냥개 정도의 후각은 아니지만, 보통 사람보다 세 배는 더 예민한 후각은 그에게 신묘한 힘을 주었다.

         

       다름 아닌 후각만으로 사람을 기억하는 능력.

         

       눈이 좋지 않은 개들이, 후각만으로 제 주인의 냄새를 기억하여 몇 년 이후에 만나도 반갑게 맞이하며 주인을 알아보는 것처럼.

       그리고 본의 아니게도 이한 또한 사람을 얼굴로 기억하는 것보다 냄새로 기억하는 방식을 터득하게 되었다.

         

       …익숙해지니까 나름 편리하긴 하더라.

         

       “…먼저 갈게.”

       “일당은?”

       “늘 주던 대로 은행에 넣어줘. 아, 빼먹으면 알지?”

       “내가 다른 놈들은 모르겠는데, 리한 네놈 건 후환이 두려워서라도 안 뺏어먹는다. 오히려 두 배로 더 주지. 대신 다른 일터로 가지 마라. 그건 약속해야 해!”

       “알아.”

         

       토목 반장의 말에 대충 호응해주며 이한은 간단히 우물 안에서 물을 퍼 자신에게 끼얹었다.

       간단히 땀과 먼지 등을 깔끔히 없애주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주니 그나마 깔끔함은 유지하는 정도가 되었다.

       옷도 나름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가니….

         

       “‘그분’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아.”

         

       노련한 집사로 보이는 이가 그를 마중하듯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고, 그를 보며 이한은 한숨부터 나왔다.

       안면 있는 얼굴이고, 이한은 이 영감이 영 껄끄러웠다.

         

       “영감님도 고생이 많으십니다.”

       “하하, 고생이랄 게 뭐가 있겠습니까. 자자, 가시지요.”

       “후우….”

         

       이 양반이, 알버트 집사가 껄끄러운 점은 많고 많지만, 특별히 손꼽는 세 가지가 있으며, 그 중 하나는 이 집사가 남작 작위를 가진 귀족이란 점이다.

       그냥 귀족도 아니고 왕실에 충성을 바친 명망 높은 가문의 남작이며, 저보다 높은 작위에 있는 자라 할지라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남자였다.

         

       비록 귀족의 눈치 따윈 보지 않는 이한이지만, 이만한 거물은 상대하기가 영 껄끄러웠다.

       한데 그런 높으신 분 주제에 평민이든 거지이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정중히 대하며 신사적이고, 고아원까지 운영하는 아주 모범적인 분이다.

         

       이게 이한이 그를 대하기 어렵게 하는 두 번째 이유였다.

         

       대놓고 시비를 걸거나 그에게 차가운 시선을 보내면 그도 무시하면 그만인데 그럴 수가 없을 정도로 바른 분이셔서.

       그리고 마지막.

       이 사람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호오, 한데 근질(筋質)이 더 좋아지셨군요. 꾸준히 발전하는 모습이 아주 보기 좋습니다, 허허.”

       “아, 예에.”

       “그 정도면 언젠가 발타르에게 한 방 먹일 수 있지 않을까 싶군요. 힘내십시오.”

       “……하하.”

         

       이 양반이 왕국에도 얼마 없는 세 명의 오러 유저 중 한 명이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발타르는 3기사단의 단장이자 이한을 기사단에 끌어들인 장본인의 이름이었다.

         

       ‘이 양반도 상당히 미친 양반이지.’

         

       인격자인 건 분명한데, 초인 소리 듣는 양반이 뭐가 부족해서 집사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

       …뭐, 그렇게 따지면 발타르 그 양반도 군부 총사령관도 아니고 한직과 다름없는 3기사단장에 머물러 있는 걸 보면 이상한 건 마찬가지.

       나머지 한 명의 경력도 특이한 걸 떠올리면, 오러 유저란 것들은 하나같이 괴짜가 아닐까 싶다.

         

       이를 대놓고 표정에 드러내지 못하는 이유는, 표정 관리 잘못하다가 자칫 맞을 수 있음을 알아서다.

       이 양반이랑도 한 번 싸워본 적이 있는데.

         

       ‘살벌하드만.’

         

       평상시엔 천생 신사인데, 무기만 잡았다 하면…!

         

       “-늦었군.”

         

       ……아아.

         

       재차 생각을 이어가기도 전, 그는 어느새 적막한 골목길에 자리 잡은 어느 고급스러운 마차 근처까지 와 있는 상태였다.

         

       “늦긴요. 일부러 늦은 것이 아니옵니다.”

       “말은 번드르르하구나, 알버트. 어차피 내 험담이나, 그도 아니면 잡담을 떨다가 늦은 것이겠지.”

       “허허, 오해가 상당히 심하군요. 너무하십니다, 공주님.”

       “흥! 웃기지도 않는 소리.”

         

       언뜻 말투만 보면 오만하기 이를 데 없고, 공격적인 말투였으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숨길 수 없는 기품과 기세는 최상의 품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고귀함이 물씬 풍기는 상대의 기운을 느끼며 이한은 영 떨떠름한 표정과 함께 알버트를 보았다.

       ‘이 마차 안으로 꼭 들어가야만 하냐?’고.

         

       “오르시지요.”

         

       알버트는 답변 대신 정중히 문을 열어주었고, 그를 억지로 밀어 넣었다.

         

       …잔인한 양반.

         

       마차 안에는 시녀 둘을 비롯하여 각종 보석과 마법물품이 장식된 화려함이 돋보였다.

       바깥에서 본 것은 빙산의 일각이었다는 것 마냥 대단한 내부.

       허나 면사를 쓴 여인이 내뿜는 고귀한 기품에 비하면 보석의 빛조차 빛바랠 수밖에.

         

       이한은 쓰게 웃으며 장정 다섯 사람이 누울 정도로 큰 넓이를 자랑하는 마차 내부에서 고개를 조아렸다.

         

       “간만에 뵙습니다.”

       “흥, 무정한 것. 친구라는 이가 어찌 이리도 소식이 없더냐.”

       “사는 게 바쁜지라.”

       “헛소리. 네 녀석이 내 후원만 받아들였어도 여유가 넘쳤겠지.”

       “하하.”

       “또 웃음으로 무마하려고 하는구나.”

         

       상대는 이한을 향해 ‘친구’란 단어를 썼다.

       언뜻 전혀 맞물리지 않은 단어였다.

       상대가 내뿜는 고귀함만 봐도 그녀가 최상위권 귀족임을 알 수 있는데, 아무런 기품이나 비범함조차 보이지 않는 이한과 친구라는 게 믿기지 않을 노릇이니.

       허나 놀랍게도 이한과 여인은 친구가 맞았다.

         

       …신분에는 반딧불과 태양의 밝기만큼의 차이가 있다는 게 흠이지만.

         

       “왕태녀께서도 한가하진 않았을 거 아닙니까? 그러니 피장파장이지요.”

       “여전히 건방진 혓바닥이로다. 당장 잘라버리고 싶구나.”

       “농담도.”

       “농담이 아니니라.”

       “……죄송합니다.”

       “흥, 여전히 가벼운 허리로다.”

         

       탁.

         

       여인, 팬드래건 왕가 계승서열 1위에 빛나는 아이시스 이레인 드 팬드래건이 손부채를 손에 부딪치며 오만하게 코웃음 쳤다.

         

       ─40대라곤 믿기지 않은 놀라운 미모를 엿보이며.

         

       * * *

         

       왕태녀, 과거에 만났을 때는 왕녀에 불과했으나, 불과 3년 사이 범접할 수 없는 권력을 손에 쥐게 된 그녀는 명실공이 왕가의 후계자인 왕태녀가 되었다.

       여인이 왕이 될 수 있나 하는 구시대적인 발언을 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그러한 발언을 한 이들은 아마 지금쯤 저 드넓은 강바닥에서 빠져 물고기 밥이 되었거나, 그도 아니면 땅속에 거름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참으로 무서운 여인.

       불과 20대 시절에 권력의 일각을 차지하고, 오러 유저인 알버트마저 포섭한 수완을 발휘한 여성은 이미 차세대 군주의 품격을 몸에 두르고 있었다.

         

       …이런 무서운 여인과 그가 친구가 된 것이 우연의 일치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인생 참 아이러니하다 싶지만.

         

       “왕태녀 전하. 오늘은 어찌 이리 행차하셨습-”

       “되었다. 그딴 낯간지러운 호칭으로 부르지 말고, 평소 부르는대로 부르거라.”

       “아니, 그래도 입장이 이제 다른데….”

       “여(余)에게 두 번 말하게 할 셈이더냐?”

       “─누님! 의동생이 인사 박겠습니다!!”

       “호호, 이제야 좀 마음에 드는구나.”

         

       그의 재롱이 마음에 든다는 듯 활짝 웃는 아이시스였고, 일순 꽃봉오리가 피어난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40대임이 분명한데, 여전히 그 미모가 빛을 발한다.

       하긴, 듣기론 팬드래건 왕실의 사람은 젊음을 100세까지 유지한다고 했으니 이상할 건 없다.

       수명조차 평균 150인데.

         

       ‘스트레스랑 과로만 없으면 200살까지 살 수 있다고 했던가?’

         

       …왕실의 사람에겐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기억해라, 이한. 그대는 여의 목숨을 구한 은인이다. 그러니 그 대가로 그대는 여의 동생이 될 영광을 얻었으며, 이를 평생의 영광이자 자비로움으로 여겨야 할 것이야.”

       “…누님도 참 사람이 변함이 없습니다.”

         

       3년 전, 막 전쟁이 끝났을 때 병사들을 격려하랴 주둔지에 방문했던 아이시스는 암살자의 습격을 받았다.

       한데 다행스럽게도 그녀를 구해준 용감한 병사가 있었는데, 그 병사의 이름은 이한이었고, 그때부터 아이시스와 이한의 인연은 시작됐다.

         

       …인연이 시작됐다고 해서 괜한 이상한 착각은 마라.

       로맨스는 전혀 없으니까.

       아니, 도리어 로맨스가 있으면 그것도 심각하다.

       왜냐하면.

         

       “호호, 그래도 과거보단 많이 유해진 편이지.”

       “애는 잘 큽니까?”

       “보겠느냐?”

       “우우?”

       “…….”

       “도저히 떨어질 생각을 안 하더구나.”

         

       그녀는 유부녀였으니까, 그것도 애를 낳은.

         

       “…….”

         

       이한은 입을 쩍 벌렸다.

       저 애가 누군지 안다.

       막 태어난 신생아 무렵 먼발치에서 본 적이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이한은 불경하게도.

         

       “…누, 누님, 이런 말하면 안 되는 거 아는데, …미치셨습니까?”

         

       타박하듯 그녀를 꾸짖고 말았고, 아이시스는 이한의 말이 기껍다며 웃음이 짙어지며 사내대장부 못지않은 멋진 웃음을 보일 뿐이었다.

         

       “정상이다. 도리어 내 사람들을 믿기에 이렇게 데리고 다니는 것이지.”

       “……가만 보면 한 번씩 이상적이십니다그려.”

       “여도 안다.”

       “우우!”

       “호호, 그래. 대범하게 웃는구나. 하긴, 여의 자식이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대범함이지.”

       “으음….”

         

       전생의 친구 녀석이 그랬던가, 정치하는 인간들은 하나같이 다 나사 하나씩 빠진 것들이라고?

       아무래도 친구의 말은.

         

       ‘정확했네.’

         

       아이시스 왕태녀의 유일한 아들이자, 왕실의 적손은 그렇게 헤실거렸고, 이한은 배가 아팠다.

       이 자리에서 당장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인지라.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 더 서글펐지만.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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