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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

소녀가 사찰에서 머문지 며칠이 흘렀다.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소녀와 스님들 역시 이제는 어색하게나마 대화를 나눌 정도가 되었는데.
     
   쫑쫑쫑쫑- 휙!
     
   소녀의 푸른 머릿결이 뜀박질에 따라 물 흐르듯 이리저리 흩날린다.
     
   여전히도 허락하지 않는 한 가지의 선을 넘지 않기 위한 발악이었다.
     
   “꼬맹아. 아무리 싫어도 공부는 해야지.”
     
     
   이교도의 방식을 배우는 건 안 돼!
     
   안 그래도 지옥에 떨어질 몸인데, 여기에 더한 죄를 얹고 싶진 않아!
     
   자그마한 인영이 잽싸게도 이리저리 나타났다가 사라지길 반복한다.
     
   몸집도 작은 주제에 열심히도 돌아다니며 숨으려 하니.
     
   스님들 사이에서는 이 술래잡기가 하나의 일과로 자리 잡을 정도였다.
     
   다만… 소녀의 도망이 늘 마음처럼 성공하는 경우는 없었다.
     
     
   소녀가 달려 나가자 얌전히 팔을 괴고 누워 있던 누렁이가 벌떡 일어나 꼬리를 흔든다.
     
   컹컹! 컹!
     
   덩달아 신난 백구가 후다닥 소녀의 뒤를 따라 달리며 짖어대고.
     
   짹짹! 짹-!
     
   새집에 들어가 있던 참새 가족 역시 뒤지지 않겠다는 듯 소녀의 머리맡을 빙빙 돌아댄다.
     
   살아 있는 위치 추적기가 두 개나 있으니, 스님들이 소녀를 놓치는 게 더 이상할 정도였다.
     
     
   바스락-!
     
   “찾았다! 우리 꼬맹이 여기 있구나!”
     
   이리저리 열심히도 숨어 다니던 소녀가 결국, 풀숲 뒤에서 포획된다.
     
   양 옆구리를 잡힌 채 번쩍 들어 올려진 소녀.
     
   “으아아! 나쁜 참새! 나쁜 강아지!!”
     
   팔다리를 휘적이며 저항해 보지만 ‘축! 신장개업!’ 따위의 문구가 달린 공기 인형이 흩날리는 수준이다.
     
   안 그래도 앙상한 팔다리를 흔들어봤자 얼마나 힘이 세겠는가.
     
   “놔… 놔주세요….”
     
   소녀는 순순히 한계를 인정하고는 방법을 바꿔 본다.
     
   안경을 쓴, 누가 봐도 깐깐해 보이는 인상의 명진 스님을 바라보며 눈을 마주치고.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히이잉 우는 소리를 낸다.
     
   명진은 고양이처럼 동그란 눈동자에 순간 힘이 풀릴 뻔했지만.
     
   “어허, 눈알 굴리는 거 다 보인다.”
     
   소녀의 눈동자가 시시때때로 힐끔대며 그의 뒤로 향하는 걸 눈치채고는 힘겹게 마음을 다잡았다.
     
     
   이 교육은 모두 소녀를 위한 일.
     
   그간 열심히 밥을 먹였는데도 몸무게는 통 늘어날 기미가 안 보이는구나.
     
   괜히 씁쓸해진 명진 스님은 소녀의 머리에 붙은 풀잎을 떼어낸다.
     
   정작 그런 다정한 행동조차-
     
   “힉! 이, 이단 싫어요….”
     
   소녀에겐 지극히 이단적인 행동처럼 느껴질 뿐이다.
     
   그야 선생이라 하면 일단 몽둥이로 두들겨 패는 게 기본이었으니까.
     
     
   “어허. 그런 말 함부로 쓰는 거 아니라 했지.”
     
   대체 그간 어디서 무슨 교육을 받고 자랐는지.
     
   명진 스님은 애써 한숨을 삼키며 소녀의 머리에 딱콩- 손가락을 튕긴다.
     
   “아파요….”
   “네게 이단이라 매도당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아플 거다.”
     
   “죄송해요….”
   “그래, 그러니까 가서 수업은 제대로 들어야겠지?”
     
   “네에….”
     
   뼈 한 곳이 부러질 때까지 얻어맞은 적은 수도 없이 많지만, 왠지 모르게 이 딱콩만큼은 눈물이 찔끔 새어 나왔다.
     
   대체 무슨 차이일까?
     
   역시 이단이라 뭔가 나쁜 수를 쓴 거려나?
     
   소녀는 속으로 쉽게 넘어가지 않으리라, 흥흥 콧김을 불며 명진 스님의 뒤를 따른다.
     
     
   얼마나 열심히 도망 다녔는지 하얀 법복이 얼룩덜룩 풀물이 들어 있었다.
     
   그나마 이조차 처음 만났을 때보단 훨씬 나아진 상태였다.
     
   그들의 반들반들한 머리만 보면 악마가 깃들어 있다고 기절하질 않나.
     
   목탁 소리를 들으면 악마를 부르는 사특한 주술이라며 기겁하질 않나.
     
   그놈의 악마, 악마.
     
   산전수전 다 겪은 스님들조차 불교를 이렇게 대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도망 다니는 소녀를 설득하겠답시고 바닥을 기어다니다 보니 시주님들의 이상한 시선을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저기… 스님? 혹시 새로운 기도법인가요?”
   “아, 하하하. 아닙니다. 잠깐 떨어뜨린 물건을 좀 찾느라…”
     
   “…애 앞에서 그러고요?”
     
   이렇듯, 소녀에게 올바른 상식을 알려주기 위한 교육 시간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아무래도 날이 아닌 모양이었다.
     
   “아! 명진아. 마침 잘 됐구나. 자명 스님께서 찾으시더구나.”
     
   멀지 않은 곳에서 시민들을 맞이하던 무애 스님이 이리 오라는 듯 손을 흔든다.
     
   그 역시 상당히 바쁜 듯, 줄지어 기다리는 사람이 한가득해 보였다.
     
   “그럼, 오늘 수업은 어찌…”
   “음, 아마 내일로 미뤄야 할 게다. 자명 스님께서 며칠 전부터 아가가 천재라고 노래를 부르고 다니시더니, 기어코 사람들을 데려온 모양이더구나.”
     
   이런.
     
   어쩐지 오늘따라 외부에서 들어오는 차들이 많은가 싶더라니.
     
   안 그래도 수업을 듣기 싫어 도망 다니는 아이라 꾸준한 습관을 들여줘도 모자라건만.
     
   주지께서는 대체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었다.
     
     
   소녀를 가르칠 생각에 싱글벙글하던 명진 스님의 표정이 시무룩하게 가라앉고.
     
   반대로 소녀의 표정은 자유 시간을 받았을 때처럼 환하게 밝아졌다.
     
   사람을 만나는 건 싫지만, 이단의 방식을 배우는 건 더 싫다.
     
   그런 단순한 생각에서다.
     
   “강연장을 준비하시는데, 우리가 전자기기를 만지는 게 좀 서툴잖으냐. 아가는 잠깐 놀도록 두고 어서 가서 도와드리거라.”
   “예, 그리하겠습니다.”
     
   쩝.
     
   하기야 일흔, 여든 먹은 노인들이 뭘 알겠는가.
     
   그나마 불교학과를 나온 엘리트인 그가 있으니 천만다행이었다.
     
   금세 자신감에 취한 명진 스님이 사람들을 피해 강연장을 향해 떠나가고.
     
   “저, 스님? 저희 제사 얘기는 언제…”
     
   시민들의 등쌀에 밀린 무애 스님이 다급히 소녀를 향해 얘기를 덧붙인다.
     
   “아가, 점심시간은 놓치지 말고. 오늘은 놀고 싶은 대로 놀다가 두 시까지만 돌아오거라.”
     
   그야말로 인간의 파도가 따로 없는 상황.
     
   “네에….”
     
     
   괜히 이 사람 중에 교단에서 절 찾으러 온 자가 있진 않을까.
     
   휘휘 주변의 눈치를 살피던 소녀가 후다닥 다급히 자리를 벗어난다.
     
   그런 소녀가 찾은 곳은 참새 가족의 새집 아래였다.
     
   얼마 전 근육질의 해인 스님이 ‘참새들도 우리 꼬맹이를 좋아하나 보다!’라며 이참에 원효사의 두 번째 마스코트로 만들겠다며 지어준 조잡한 새집인데.
     
   짹짹-!
     
   “으응…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희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판자 몇 개 붙여둔 집이 그렇게 좋은지, 매번 소녀의 몸에 찰싹 달라붙어 있던 참새들이 찾아오는 일이 드물어졌다.
     
   안 그래도 절에서 살기 시작한 뒤 미아도 통 나타나질 않아서 서운했는데.
     
   “이리 와! 안 오면 절교할 거야!”
     
   소녀의 협박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짹-
     
   참새 가족이 느릿하게 다가와 소녀의 몸 위로 앉는다.
     
     
   아참이는 제가 가장이라는 걸 자랑하듯 소녀의 정수리 위로.
     
   엄참이는 왼쪽이 좋은지 왼쪽 어깨 위로.
     
   새참이는 소녀의 가슴 앞을 얼쩡거리다가 앉을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오른쪽 어깨 위로 자리를 잡는다.
     
   합체 완료!
     
   이걸로 산에서 두 달이나 버텨왔던 소녀는 완전체가 되었다!
     
   이 익숙한 느낌.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전능함!
     
   “오늘도 너희 도움이 필요해! 스님들이 자꾸 독버섯을 먹으면서 독버섯이 아니라고 우긴단 말이야? 그래서 오늘은 산에서 진짜 버섯을 따 오려고 해.”
     
   소녀가 방향을 틀어 나무 가득한 산 위를 향한다.
     
   슬쩍 시계를 보니 아직 점심까지는 4시간이 넘게 남은 상황.
     
   이 정도면 스님들이 한 입씩 먹을 버섯을 구하기엔 충분하다.
     
     
   “히히, 아참이 출동!”
     
   짹-!
     
   소녀의 손짓에 힘차게 날아오른 아참이가 숲속으로 향한다.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알아서 버섯의 위치로 안내해 줄 것이다.
     
   물론, 소녀 역시 가만히 기다리고 있지만은 않는다.
     
   이런 때야말로 직접 나서서 본인의 유용함을 보여줘야 한다.
     
   그렇게 이교도들에게 전능신을 따르게 해야 한다.
     
   의욕에 앞선 소녀가 오도도 달려나가 커다란 나무 아래 자란 이끼를 쿡쿡 누른다.
     
   “녹색 버섯!”
     
   이 녹색 버섯은 먹어도 탈이 나지 않았다.
     
   심지어 부가적인 효과까지 있었다.
     
   “속이 안 좋을 때 먹으면 토가 나왔어!”
     
     
   소녀가 헤헤 웃으며 한 움큼 집어 든 이끼를 검은 쓰레기 봉지 안에 집어넣는다.
     
   그러고도 부족한지 아참이가 돌아오길 기다리지 않고 다음 목표를 향해 달린다.
     
   이번에 발견한 건 조금 독특한 모양의 흰 버섯이었다.
     
   “이, 이건…!”
     
   갓 위로 깨를 뿌려놓은 것처럼 하얀 점이 박혀 있어서 구분하는 건 간단했다.
     
   효과는?
     
   “스님들도 엄마랑 아빠를 보고 싶어 할 거야. 가져가자!”
     
   놀랍게도 이 버섯을 먹으면 잠에 든다!
     
   의식이 팍 꺼지면서, 엄마와 아빠가 나타나 돌봐주는 꿈이 몇 번이고 이어진다.
     
   때문에, 소녀가 가장 많이 찾아다니던 버섯 중 하나였다.
     
     
   이후.
     
   짹짹-!
     
   소녀는 되돌아온 아참이를 따라 스님들이 맛보지 못했을 ‘진짜’ 버섯을 채취했는데.
     
   “어라? 불이 났었나…?”
     
   산속,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가자 왠지 모르게 주변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소녀가 가장 먼저 느낀 건 오소소- 소름이 돋을 정도의 한기였다.
     
   “하아…. 이거 봐! 입김도 나!”
     
   참새들이 오들오들 떨고, 입김이 나올 정도의 급격한 기온 변화.
     
   이를 무시하고 더 깊숙이 들어가자, 땅과 나무의 색이 급변했다.
     
   온통 검은색투성이다.
     
   말라비틀어진 나무에서 쉴 새 없이 버석거리는 나뭇잎이 떨어지고.
     
   들려오는 생명의 소리라고는 어깨에 앉은 참새 가족의 지저귐뿐이었다.
     
   “…이상해. 돌아가야겠어.”
     
   버섯?
     
   한 개를 찾긴 했는데, 수염처럼 긴 촉수 다발을 꿈틀대는 게 누가 봐도 ‘이건 못 먹는 거’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다.
     
   결국 소녀는 쓰레기봉투를 반쯤 채운 것으로 만족하며 다급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찰을 향해 돌아 달렸다.
     
     
   두근, 두근, 두근.
     
   미친 듯이 박동하는 심장.
     
   마치 죽어가는 사람을 마주했을 때와 같은 죽음의 기운.
     
   당황한 채 도망가기 바쁘던 소녀는 그제야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자연이 죽었어.”
     
   소녀에게 있어 현세는 속죄를 위한 지옥이라고 하지만.
     
   방금 본 그 땅은….
     
   행복해야 할 사람들에게조차 지옥인 곳이었다.
     
   -“곧 이 땅에 지옥이 도래할 것이야. 그러니 너는, 네 부모와 함께 천국에 가고 싶다면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해 속죄해야만 한다.”
     
   선각자님의 말이 옳았다.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서서히, 이 세상에 지옥이 도래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다급해진 소녀는 미친 듯이 달린다.
     
   첫날, 총성을 들었을 때처럼 뒤에서 뭔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듯이.
     
   뒤 한 번 돌아보지 않는다.
     
   그저 빨리 돌아가 스님들에게 도망쳐야 한다고 말해 줄 생각뿐이었다.
     
   짹짹-! 짹!
     
   소녀의 마음을 이해한 듯, 참새 가족 역시 앞장서 소녀에게 길을 안내했다.
     
   그러나 그렇게 다급히도 사찰에 도착했을 때.
     
   늦지 않게 자명 스님의 모습을 발견했건만.
     
   “차 안 빼?! 내가 누군지 알아?!”
     
   자명 스님이 누군지 모를 사내에게 연신 욕을 들어 먹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내일은 11시다음화 보기

소녀가 사찰에서 머문지 며칠이 흘렀다.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소녀와 스님들 역시 이제는 어색하게나마 대화를 나눌 정도가 되었는데.

쫑쫑쫑쫑- 휙!

소녀의 푸른 머릿결이 뜀박질에 따라 물 흐르듯 이리저리 흩날린다.

여전히도 허락하지 않는 한 가지의 선을 넘지 않기 위한 발악이었다.

“꼬맹아. 아무리 싫어도 공부는 해야지.”

이교도의 방식을 배우는 건 안 돼!

안 그래도 지옥에 떨어질 몸인데, 여기에 더한 죄를 얹고 싶진 않아!

자그마한 인영이 잽싸게도 이리저리 나타났다가 사라지길 반복한다.

몸집도 작은 주제에 열심히도 돌아다니며 숨으려 하니.

스님들 사이에서는 이 술래잡기가 하나의 일과로 자리 잡을 정도였다.

다만… 소녀의 도망이 늘 마음처럼 성공하는 경우는 없었다.

소녀가 달려 나가자 얌전히 팔을 괴고 누워 있던 누렁이가 벌떡 일어나 꼬리를 흔든다.

컹컹! 컹!

덩달아 신난 백구가 후다닥 소녀의 뒤를 따라 달리며 짖어대고.

짹짹! 짹-!

새집에 들어가 있던 참새 가족 역시 뒤지지 않겠다는 듯 소녀의 머리맡을 빙빙 돌아댄다.

살아 있는 위치 추적기가 두 개나 있으니, 스님들이 소녀를 놓치는 게 더 이상할 정도였다.

바스락-!

“찾았다! 우리 꼬맹이 여기 있구나!”

이리저리 열심히도 숨어 다니던 소녀가 결국, 풀숲 뒤에서 포획된다.

양 옆구리를 잡힌 채 번쩍 들어 올려진 소녀.

“으아아! 나쁜 참새! 나쁜 강아지!!”

팔다리를 휘적이며 저항해 보지만 ‘축! 신장개업!’ 따위의 문구가 달린 공기 인형이 흩날리는 수준이다.

안 그래도 앙상한 팔다리를 흔들어봤자 얼마나 힘이 세겠는가.

“놔… 놔주세요….”

소녀는 순순히 한계를 인정하고는 방법을 바꿔 본다.

안경을 쓴, 누가 봐도 깐깐해 보이는 인상의 명진 스님을 바라보며 눈을 마주치고.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히이잉 우는 소리를 낸다.

명진은 고양이처럼 동그란 눈동자에 순간 힘이 풀릴 뻔했지만.

“어허, 눈알 굴리는 거 다 보인다.”

소녀의 눈동자가 시시때때로 힐끔대며 그의 뒤로 향하는 걸 눈치채고는 힘겹게 마음을 다잡았다.

이 교육은 모두 소녀를 위한 일.

그간 열심히 밥을 먹였는데도 몸무게는 통 늘어날 기미가 안 보이는구나.

괜히 씁쓸해진 명진 스님은 소녀의 머리에 붙은 풀잎을 떼어낸다.

정작 그런 다정한 행동조차-

“힉! 이, 이단 싫어요….”

소녀에겐 지극히 이단적인 행동처럼 느껴질 뿐이다.

그야 선생이라 하면 일단 몽둥이로 두들겨 패는 게 기본이었으니까.

“어허. 그런 말 함부로 쓰는 거 아니라 했지.”

대체 그간 어디서 무슨 교육을 받고 자랐는지.

명진 스님은 애써 한숨을 삼키며 소녀의 머리에 딱콩- 손가락을 튕긴다.

“아파요….”

“네게 이단이라 매도당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아플 거다.”

“죄송해요….”

“그래, 그러니까 가서 수업은 제대로 들어야겠지?”

“네에….”

뼈 한 곳이 부러질 때까지 얻어맞은 적은 수도 없이 많지만, 왠지 모르게 이 딱콩만큼은 눈물이 찔끔 새어 나왔다.

대체 무슨 차이일까?

역시 이단이라 뭔가 나쁜 수를 쓴 거려나?

소녀는 속으로 쉽게 넘어가지 않으리라, 흥흥 콧김을 불며 명진 스님의 뒤를 따른다.

얼마나 열심히 도망 다녔는지 하얀 법복이 얼룩덜룩 풀물이 들어 있었다.

그나마 이조차 처음 만났을 때보단 훨씬 나아진 상태였다.

그들의 반들반들한 머리만 보면 악마가 깃들어 있다고 기절하질 않나.

목탁 소리를 들으면 악마를 부르는 사특한 주술이라며 기겁하질 않나.

그놈의 악마, 악마.

산전수전 다 겪은 스님들조차 불교를 이렇게 대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도망 다니는 소녀를 설득하겠답시고 바닥을 기어다니다 보니 시주님들의 이상한 시선을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저기… 스님? 혹시 새로운 기도법인가요?”

“아, 하하하. 아닙니다. 잠깐 떨어뜨린 물건을 좀 찾느라…”

“…애 앞에서 그러고요?”

이렇듯, 소녀에게 올바른 상식을 알려주기 위한 교육 시간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아무래도 날이 아닌 모양이었다.

“아! 명진아. 마침 잘 됐구나. 자명 스님께서 찾으시더구나.”

멀지 않은 곳에서 시민들을 맞이하던 무애 스님이 이리 오라는 듯 손을 흔든다.

그 역시 상당히 바쁜 듯, 줄지어 기다리는 사람이 한가득해 보였다.

“그럼, 오늘 수업은 어찌…”

“음, 아마 내일로 미뤄야 할 게다. 자명 스님께서 며칠 전부터 아가가 천재라고 노래를 부르고 다니시더니, 기어코 사람들을 데려온 모양이더구나.”

이런.

어쩐지 오늘따라 외부에서 들어오는 차들이 많은가 싶더라니.

안 그래도 수업을 듣기 싫어 도망 다니는 아이라 꾸준한 습관을 들여줘도 모자라건만.

주지께서는 대체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었다.

소녀를 가르칠 생각에 싱글벙글하던 명진 스님의 표정이 시무룩하게 가라앉고.

반대로 소녀의 표정은 자유 시간을 받았을 때처럼 환하게 밝아졌다.

사람을 만나는 건 싫지만, 이단의 방식을 배우는 건 더 싫다.

그런 단순한 생각에서다.

“강연장을 준비하시는데, 우리가 전자기기를 만지는 게 좀 서툴잖으냐. 아가는 잠깐 놀도록 두고 어서 가서 도와드리거라.”

“예, 그리하겠습니다.”

쩝.

하기야 일흔, 여든 먹은 노인들이 뭘 알겠는가.

그나마 불교학과를 나온 엘리트인 그가 있으니 천만다행이었다.

금세 자신감에 취한 명진 스님이 사람들을 피해 강연장을 향해 떠나가고.

“저, 스님? 저희 제사 얘기는 언제…”

시민들의 등쌀에 밀린 무애 스님이 다급히 소녀를 향해 얘기를 덧붙인다.

“아가, 점심시간은 놓치지 말고. 오늘은 놀고 싶은 대로 놀다가 두 시까지만 돌아오거라.”

그야말로 인간의 파도가 따로 없는 상황.

“네에….”

괜히 이 사람 중에 교단에서 절 찾으러 온 자가 있진 않을까.

휘휘 주변의 눈치를 살피던 소녀가 후다닥 다급히 자리를 벗어난다.

그런 소녀가 찾은 곳은 참새 가족의 새집 아래였다.

얼마 전 근육질의 해인 스님이 ‘참새들도 우리 꼬맹이를 좋아하나 보다!’라며 이참에 원효사의 두 번째 마스코트로 만들겠다며 지어준 조잡한 새집인데.

짹짹-!

“으응…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희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판자 몇 개 붙여둔 집이 그렇게 좋은지, 매번 소녀의 몸에 찰싹 달라붙어 있던 참새들이 찾아오는 일이 드물어졌다.

안 그래도 절에서 살기 시작한 뒤 미아도 통 나타나질 않아서 서운했는데.

“이리 와! 안 오면 절교할 거야!”

소녀의 협박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짹-

참새 가족이 느릿하게 다가와 소녀의 몸 위로 앉는다.

아참이는 제가 가장이라는 걸 자랑하듯 소녀의 정수리 위로.

엄참이는 왼쪽이 좋은지 왼쪽 어깨 위로.

새참이는 소녀의 가슴 앞을 얼쩡거리다가 앉을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오른쪽 어깨 위로 자리를 잡는다.

합체 완료!

이걸로 산에서 두 달이나 버텨왔던 소녀는 완전체가 되었다!

이 익숙한 느낌.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전능함!

“오늘도 너희 도움이 필요해! 스님들이 자꾸 독버섯을 먹으면서 독버섯이 아니라고 우긴단 말이야? 그래서 오늘은 산에서 진짜 버섯을 따 오려고 해.”

소녀가 방향을 틀어 나무 가득한 산 위를 향한다.

슬쩍 시계를 보니 아직 점심까지는 4시간이 넘게 남은 상황.

이 정도면 스님들이 한 입씩 먹을 버섯을 구하기엔 충분하다.

“히히, 아참이 출동!”

짹-!

소녀의 손짓에 힘차게 날아오른 아참이가 숲속으로 향한다.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알아서 버섯의 위치로 안내해 줄 것이다.

물론, 소녀 역시 가만히 기다리고 있지만은 않는다.

이런 때야말로 직접 나서서 본인의 유용함을 보여줘야 한다.

그렇게 이교도들에게 전능신을 따르게 해야 한다.

의욕에 앞선 소녀가 오도도 달려나가 커다란 나무 아래 자란 이끼를 쿡쿡 누른다.

“녹색 버섯!”

이 녹색 버섯은 먹어도 탈이 나지 않았다.

심지어 부가적인 효과까지 있었다.

“속이 안 좋을 때 먹으면 토가 나왔어!”

소녀가 헤헤 웃으며 한 움큼 집어 든 이끼를 검은 쓰레기 봉지 안에 집어넣는다.

그러고도 부족한지 아참이가 돌아오길 기다리지 않고 다음 목표를 향해 달린다.

이번에 발견한 건 조금 독특한 모양의 흰 버섯이었다.

“이, 이건…!”

갓 위로 깨를 뿌려놓은 것처럼 하얀 점이 박혀 있어서 구분하는 건 간단했다.

효과는?

“스님들도 엄마랑 아빠를 보고 싶어 할 거야. 가져가자!”

놀랍게도 이 버섯을 먹으면 잠에 든다!

의식이 팍 꺼지면서, 엄마와 아빠가 나타나 돌봐주는 꿈이 몇 번이고 이어진다.

때문에, 소녀가 가장 많이 찾아다니던 버섯 중 하나였다.

이후.

짹짹-!

소녀는 되돌아온 아참이를 따라 스님들이 맛보지 못했을 ‘진짜’ 버섯을 채취했는데.

“어라? 불이 났었나…?”

산속,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가자 왠지 모르게 주변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소녀가 가장 먼저 느낀 건 오소소- 소름이 돋을 정도의 한기였다.

“하아…. 이거 봐! 입김도 나!”

참새들이 오들오들 떨고, 입김이 나올 정도의 급격한 기온 변화.

이를 무시하고 더 깊숙이 들어가자, 땅과 나무의 색이 급변했다.

온통 검은색투성이다.

말라비틀어진 나무에서 쉴 새 없이 버석거리는 나뭇잎이 떨어지고.

들려오는 생명의 소리라고는 어깨에 앉은 참새 가족의 지저귐뿐이었다.

“…이상해. 돌아가야겠어.”

버섯?

한 개를 찾긴 했는데, 수염처럼 긴 촉수 다발을 꿈틀대는 게 누가 봐도 ‘이건 못 먹는 거’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다.

결국 소녀는 쓰레기봉투를 반쯤 채운 것으로 만족하며 다급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찰을 향해 돌아 달렸다.

두근, 두근, 두근.

미친 듯이 박동하는 심장.

마치 죽어가는 사람을 마주했을 때와 같은 죽음의 기운.

당황한 채 도망가기 바쁘던 소녀는 그제야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자연이 죽었어.”

소녀에게 있어 현세는 속죄를 위한 지옥이라고 하지만.

방금 본 그 땅은….

행복해야 할 사람들에게조차 지옥인 곳이었다.

-“곧 이 땅에 지옥이 도래할 것이야. 그러니 너는, 네 부모와 함께 천국에 가고 싶다면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해 속죄해야만 한다.”

선각자님의 말이 옳았다.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서서히, 이 세상에 지옥이 도래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다급해진 소녀는 미친 듯이 달린다.

첫날, 총성을 들었을 때처럼 뒤에서 뭔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듯이.

뒤 한 번 돌아보지 않는다.

그저 빨리 돌아가 스님들에게 도망쳐야 한다고 말해 줄 생각뿐이었다.

짹짹-! 짹!

소녀의 마음을 이해한 듯, 참새 가족 역시 앞장서 소녀에게 길을 안내했다.

그러나 그렇게 다급히도 사찰에 도착했을 때.

늦지 않게 자명 스님의 모습을 발견했건만.

“차 안 빼?! 내가 누군지 알아?!”

자명 스님이 누군지 모를 사내에게 연신 욕을 들어 먹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Don’t Die, It’s Not Your Body

Don’t Die, It’s Not Your Body

죽지 마, 네 몸이 아니야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Don’t worry, you deserve to be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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