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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

   

    웨엥-

   

    얼굴에서 느껴지는 간지러움에 눈이 떠졌다. 눈이 마주쳤다. 좆같은 겹눈. 온몸을 털며 단숨에 기상했다.

   

    “아오.”

   

    파리가 다급히 도망친다. 하지만 예전의 자신이 아니다. 재빠른 파리에게 굴복하던 나약한 이서준은 없다.

   

    “아카.”

   

    무라사키. 

   

    딱밤을 조준해 그대로 튕기자 탄지공에 얻어맞은 파리가 사지분해되어 생을 다했다.

   

    “휴.”

   

    이놈의 벌레들은 멸종 안 하려나? 괜히 간지러운 것 같은 팔뚝을 벅벅 긁으며 주변을 살폈다.

   

    시체. 파리. 그리고 춘봉이.

   

    운기조식을 무사히 끝낸 듯 벽에 기대 잠든 춘봉이의 모습이 보인다. 호법 서다 잠들면 안 됐었는데. 별일이 없어서 다행이다. 

   

    “하이고, 집이 그냥 씹창이 났네.”

   

    세간살이고 뭐고 죄다 박살났다. 안 그래도 건물 호소체에 가까웠는데 이제는 호소도 못 하게 생긴 수준이다.

   

    아무래도 이사를 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머릿속 한켠에 박아두며 춘봉이의 어깨를 흔들었다.

   

    “이봐, 금 씨. 작업 나가야지.”

    “으으…. 지랄 말고…. 오 분만….”

   

    영 피곤한가 보다. 

   

    우선 주변 시체들에서 돈이 될 만한 것들을 챙기고, 찌뿌둥한 몸을 풀며 검의 상태를 점검했다.

   

    ‘괜찮은 건가 이거.’

   

    일단 이는 다 나갔고, 날도 무뎌진 것이 이런 검으로 잘도 사람을 죽였다 싶다.

   

    대충 들었던 기억을 되살려 숫돌로 검을 갈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잠이 깼을까? 춘봉이가 눈을 비비며 다가와 툭 내뱉었다.

   

    “하암….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니가 해주든가 그럼.”

   

    검과 숫돌을 내밀자 춘봉이가 눈으로 욕을 한다. 그래도 또 받아서 해주는 게 딱 츤데레다. 귀여운 놈.

   

    스윽- 스윽-

   

    검 손질하는 소리를 배경으로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 이사는 무조건 가야겠고. 흑호문이었나 흑호파였나 그 친구들에 대해서도 좀 알아봐야 한다.

   

    “춘봉아, 흑호파 얘네 이게 다는 아니겠지?”

    “어. 흑호문은 알고 있어. 흑도 문파 중에서는 꽤 큰 놈들이야.”

    “흑호문이었구만.”

   

    머리를 벅벅 긁으며 잠시 검을 가는 춘봉이의 모습을 지켜봤다. 어린 놈이 손끝이 야무지다. 문득 드는 의문에 물었다.

   

    “근데 너 몇 살이냐?”

    “빨리도 물어본다.”

    “그래서 몇 살인데.”

    “열여섯.”

    “뭣?”

   

    초딩이 아니었다고? 저 몸으로? 누가 봐도 초딩인데?

   

    “이 새끼 눈빛이 이상하다?”

    “어…, 뭐. 아무것도 아니야.”

   

    한숨을 내쉰 춘봉이가 검을 옆에 치워두고 뒤 돌아 앉았다. 눈빛이 차분하다. 뭔가 싶어 가만히 눈을 마주하고 있으니 그녀가 입을 열었다.

   

    “다른 건 안 물어보냐? 더 궁금한 거 많을 텐데.”

    “아니 뭐 굳이.”

    “진짜?”

    “때 되면 알려주겠지.”

   

    굳이 말하고 싶지 않은 걸 물어보는 건 실례다. 동방예의지국의 청년 이서준은 예의를 아는 남자. 쿨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춘봉이가 비웃었다.

   

    “병신.”

    “아니 왜!”

   

    뾰로통하니 서준을 쳐다보던 춘봉이 말을 이었다.

   

    “나 사실 신검금가神劍金家 출신이야.”

    “어.”

    “그게 다야? 안 놀라?”

    “신검금가가 뭔데.”

    “뭐?”

   

    춘봉이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원시인이라도 보는 듯한 눈빛이다.

   

    “너 진짜 설정이 너무 과해.”

    “뭔 설정 새끼야.”

    “너도 뒷골목 출신 아니지? 어디 세가 출신 같은데.”

   

    그건 또 무슨 헛소리니. 표정을 구긴 서준이 답했다.

   

    “뭔 세가 타령이야. 뒷골목 출신은 아니긴 한데.”

    “그러면?”

    “이세계 출신인데.”

    “지랄 진짜.”

   

    한숨을 내쉰 춘봉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그러더니 혀를 차며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뭐, 말하기 싫으면 말고. 아무튼 나는 신검금가의 생존자야.”

    “생존자라….”

   

    무슨 사고라도 있었던 걸까? 묘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니 그녀가 손질이 끝난 검을 던져줬다.

   

    탁-

   

    검을 받은 서준이 방바닥에 엉덩이를 붙였다.

   

    “너 무공 쓰면 피 토하는 것도 연관 있는 거냐?”

    “어. 도망칠 때 음한지공陰寒之功에 당했거든.”

    “음한지공이면 얼음 쓰는 무공 그런 건가?”

    “비슷해.”

   

    춘봉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어떤 종류의 음한지공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보통 무공이 아닌 건 분명했다.

   

    “내상으로 그치지 않고 기맥을 아예 틀어막아버렸어. 후천적으로 절맥이 생긴 셈이지.”

    “구음절맥 그런 거?”

    “그 정도로 심각한 건 아니고.”

   

    구음절맥은 강한 음기가 체내 기의 순환을 틀어막아 단명한다는 희귀병이다. 일단 서준이 가지고 있는 무협 상식으로는 그랬다.

   

    그리고 춘봉이 역시 그 비슷한 절맥을 가지고 있다는 것. 서준이 조금 진지해진 태도로 물었다.

   

    “그러면 양기를 품고 있는 영약 같은 걸로 치료해야 되는 거냐?”

    “뭐…, 그렇지.”

   

    다른 치료법은 없었나? 온갖 무협지에 흔히 등장하는 게 구음절맥인 만큼 그 치료법은 생각보다 다양했다.

   

    물론 그게 여기서도 통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양기만 충분하면 되는 거지?”

    “이론상으로는 그렇지.”

    “그럼 이런 걸로도 되냐?”

   

    서준이 한 손으로 고리를 만들고 다른 손의 검지를 그 사이로 슉슉 통과시켰다.

   

    “그게 뭔….”

   

    잠시 그걸 빤히 쳐다보며 고민하던 춘봉이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미, 미친놈 아니야!”

    “아니, 그래서 되냐고.”

    “되겠냐!? 그런 걸로 뭔 양기를 얻어!”

    “되지 않나?”

    “안 된다고 씨발아! 된다고 해봐야 존나 조금이겠지!”

   

    존나 조금이라…. 고민하던 서준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관련 무공 익혀서 하면 되는 거 아니냐? 그런 거 있잖아. 뭐라 하더라. 방중술? 채음보양이었나?”

    “미친 새끼….”

   

    아니, 진짜 진지하게 물어본 건데 자꾸 꼽주네. 서준이 인상을 와락 구겼다.

   

    “확 덮쳐버린다 인마?”

    “뒤져 병신아.”

   

    얻어맞았다.

   

   

    *

   

   

    덮침 선언 이후 서준을 벌레 보듯 바라보던 춘봉은 잠시 끙끙 앓더니 서준의 옆구리를 푹푹 찔렀다.

   

    “악…!”

    “야.”

    “아 왜!”

   

    여전히 고민의 색이 짙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뜬 끝에야 말을 꺼내들었다.

   

    “너, 삼재검법 말고 다른 무공 배워볼 생각 있냐?”

    “다른 무공? 뭔데?”

    “황운신검黃雲神劍.”

    “황운신검? 이름이 구린데.”

   

    춘봉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우리 가문 독문무공이야.”

    “어…. 아니, 구리…, 구릿빛이 날 정도로 완전 멋진 이름이네!”

    “지랄 말자 제발….”

    “응.”

   

    가만히 입을 다물자 춘봉이의 고민이 더 깊어진 듯 보였다. 진짜 이 새끼한테 알려줘도 되는 걸까? 하는 듯한 생각이 훤히 읽힌다.

   

    그래도 마음을 굳혔는지 그녀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쉽게 하는 말 아니야. 우리 가문 독문무공이라고. 원래였으면 가주랑 소가주 말고 아무도 못 익히는 무공이야.”

    “그런 거 알려줘도 되냐? 난 그냥 삼재검법으로 충분한데.”

    “내가 괜찮다는데 뭔 상관이야. …이제 내가 가준데.”

   

    춘봉이가 울적해진 표정으로 방바닥을 툭툭 두드렸다.

   

    “삼재검법은 삼류 무공이야. 대성해도 일류에나 오르면 다행이지. 그 무공에 담긴 뜻이 딱 거기까지거든.”

    “하늘에 오르니 천인이니 하더니 별거 없네.”

    “창시자가 허풍이 좀 심했나 보지.”

   

    춘봉이가 깊게 한숨을 내쉬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다 어지러워졌는지 다시 털썩 주저앉았다.

   

    좀 바보 같았지만 그냥 가만히 입 다물고 있었다.

   

    “…따, 딱히 널 믿어서 알려주는 건 아니고. 그냥, 곁에서 날 지켜줄 사람이 있으면 좋으니까 알려주는 거야. 착각은 하지 마.”

    “내가 받아먹고 튀면?”

    “…….”

   

    춘봉이의 시선이 매섭다. 얼굴까지 시뻘게진 게 금방이라도 칼로 쑤실 것 같은 표정이었다.

   

    “…안 알려줘 개새끼야!”

   

    유감.

   

   

    *

   

   

    황운신검은 황운신검이고, 일단은 자리부터 옮기기로 했다.

   

    당장이야 시간이 많이 지나지 않아서 괜찮지만 시체가 썩기 시작하면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닐 터였다.

   

    “어디로 가는 거야?”

   

    서준이 주변을 연신 두리번거렸다. 말 그대로 뒷골목 같던 집 주변과는 달리 지금은 분위기가 꽤 달라졌다.

   

    사람도 꽤 많고, 붉은색 등이 거리에 가득한 것이 분위기 자체가 끈적거린다.

   

    “쉿. 이 근처에서는 괜히 눈에 띌 짓 하지 마.”

   

    춘봉이 눈만 굴려 주변을 살폈다.

   

    “여기 사창가 절반이 흑호문 소유야. 자칫하면…, 뭐 하냐 미친 새끼야…?”

   

    춘봉이 입을 쩍 벌렸다. 아무리 이 새끼가 제정신이 아니라 해도 그렇지,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어…. 이러면 안 되는 거였나?”

   

    서준이 명치를 얻어맞아 바닥에 널브러진 여자를 당황스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물론 당황스러운 건 춘봉이 더 했다.

   

    “아, 아니 진짜 왜…?”

    “갑자기 달라붙길래.”

    “와 씹….”

   

    춘봉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시선이 잔뜩 쏠렸다. 지금 바닥에 쓰러져 있는 싸구려 기생이 소속된 듯한 기루에서는 덩치들이 급하게 달려나오고 있었다.

   

    서준이 변명했다.

   

    “아니, 혹시 모르잖아. 붙어있다 갑자기 칼로 찌르면 아무리 나라도….”

    “그래, 니 잘났다.”

   

    춘봉이 서준의 뒷통수를 후리고는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일단 뛰어 미친놈아! 이 새끼는 뭔 고자 새끼도 아니고!”

    “멀쩡한데? 아침마다 아주 난리도 아니야.”

    “아오! 씨빨!”

    “금춘봉 이 어리석은 동생아. 원래 여자라는 건 믿을 수가 없는 생….”

    “닥치고 뛰라고!”

   

    존나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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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무공 뭐 별거 없더라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fell into a phony martial world. But they say martial arts are so hard? Hmm… is that all there is t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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