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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

모험가 길드의 접수원 샐리는 옛 자료 하나를 꺼내 들었다.

100년 전의 S급 모험가, 마검사 아이. 그가 주로 이용했던 지부는 다른 곳이지만 S급쯤 되면 어디에나 기록은 다 있다.

[마왕군 간부, 글라디우스 단독 토벌]

[엘프 국가 베지테리어와 필리아 제국 간의 국교 체결에 기여]

[만취한 전승의 네필리아 제압]

·

·

·

뒤로도 쭉 이어지는 주요 행적.

하나같이 S급 중에서도 독보적이라 할만한 수준의 위업들로 가득했다.

‘그 신입 모험가, 무의식적으로 썼다가 아차 싶은 기색이었지.’

-“아, 죄송합니다. 잘못 적었네요. 혹시 새로 주실 수 있나요?”

이를 찾아보게 한 원인을 회상하고. 샐리는 이어서 자료를 들여다봤다.

그러다 도달한 마지막 문단.

[실종]

의뢰를 맡던 중도 아니다. 애초에 마왕군 간부도 혼자서 상대하는 존재 아닌가.

무엇보다 그는 죽어도 약간의 페널티만 떠안고 되살아났다는 기적의 세대. 그 와중에도 단 한 번의 죽음을 보여준 적이 없다던 사내다.

그런 그가, 시자쿠마우르로 향하는 모습을 끝으로 완전히 종적을 감췄다.

‘기적의 세대 전원이 실종되긴 했지만.’

보통은 제국에서 새로운 정책을 발표했을 때 서로 약속하듯 단체로 사라지는 게 일반적이었다.

아니면 장비가 깨졌다거나, 크게 사기를 당하는 등. 실종을 극단적인 선택으로 치부하면 납득은 갈 징조 정도는 있었다.

‘시자쿠마우르···마리아가 최근 갔다 온 곳이야.’

이렇듯 행적도, 실종 경위도 평범하지 않은 이와 같은 이름을 쓰는 자가 나타났다.

-“이 오빠 모험가 등록해 줘.”

그의 마지막 발자취를 방문한 소녀와 합류하여.

‘이게 정말 우연일까?’

샐리는 자신의 촉이 나름 뛰어나다고 자부한다. 이는 파보면 분명 무언가는 나온다.

시자쿠마우르에 방문해 보자. 그리 결심한 샐리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의뢰 완료 처리해 주세요.”

고객을 응대해야 했기에.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진상 들추기에 돌입하기에는 아무래도 제법 시간이 소요될 듯싶었다.

휴가를 쓸 수 있기까지는 앞으로 못 해도 다음 주. 그녀는 오늘도 야근이 일상인 블랙 기업을 속으로 한참이나 씹어댔다.

* * *

허수아비 같은 비천한 몸으로 살아남기 위해선 남들을 앞지를 특별한 무언가가 필요하다.

누구도 선택하지 않는 길로 내디딜 대담함. 좋은 것만 쏙쏙 빼먹을 안목 같은 것이.

[호위 의뢰 (디스포제행)]

[요구 인원:4명 이상 (*A급 이상 최소 1명 必)]

[예정 소요 시간:2일]

그런 의미에서 이 의뢰. 겉보기에는 여타 의뢰들과 다를 바 없이 평범해 보이지만.

상단도 아니면서 비싼 A급 이상 인선을 반드시 요구하는 점이나, 다른 용무 없이 딱 목적지만 찍고 돌아올 거라고 시간으로 예고하는 점을 들어. 귀족이 의뢰한 거라고 단정 지어도 좋다.

그것도, 모험가를 동경하는 귀족 집 아가씨의 현장 체험.

“우리 이걸로 하자.”

“응. 마리아는 뭐라도 좋아.”

재고할 것도 없이 접수했다. 이는 귀족과의 연줄이 생길 좋은 기회.

귀족 자체와의 인연만으로도 충분히 이득이고, 운이 좋으면 한두 다리 건너 황실이나 휘하 기사단과도 접촉할 길이 열린다.

본캐 키울 때는 최상위 랭커나 돼서야 겨우 연이 닿았던 것을.

‘황실이라면 빙의에 관한 정보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모든 권력과 모든 정보가 모이는 장소.

멀지 않은 과거에 질리도록 드나들던 황궁의 자태를 머릿속에 그리며. 장갑을 꼬나쥐었다.

* * *

나를 황실로 이끌어줄 첫 계단의 아침이 밝았다.

예상대로 집합 장소에서 모험가들을 기다린 건 호화로운 마차. 그것도 가격을 바가지 씌우기로 유명한 대여용이었다.

“자, 여러분. 전부 모였는지 체크하겠습니다.”

인원 체크의 선언과 동시에 나도 주변 면면들을 둘러보았다.

우선 중심의 사내, 알렉산더. 등급은 A. 전형적인 전사 타입. 등급과 경력에 의해 자연스럽게 조장을 떠맡은 인물.

“루키우스 씨.”

“넵.”

“케니 씨.”

“예.”

“토모에 씨.”

“네에~”

이어서 순서대로 C급 종군 사제 남성, D급 도적 소년, C급 마법사 소녀.

저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솔직히 눈에 잘 안 들어왔다.

그치만 게임에서도 C급 이하는 퀘스트 중에 만났다 싶으면 곧잘 죽어서 본능적으로 정감이 안 가는걸.

“아이 씨.”

“네.”

“마리아.”

“있어.”

“다 모였군요. 그럼 출발합시다.”

이상, 호위 인원 6명은 목적지로 인도해 줄 마차에 올라탔다.

길드에서 의뢰 성사를 위해 일찍이 알렉산더를 지명했다가, 우리가 뒤늦게 꼈다 보니 일반 호위 의뢰에 자그마치 A급만 두 명.

명백한 오버 파워였지만 의뢰인 측에서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래, 기왕 체험하는 거 모험가가 많은 게 좋지. 어차피 돈은 썩어 넘치겠다, 만약의 안전도 기하고.

“드디어 가는 거야? 모험하는 거지?!”

마차에 다가서자마자 요란하게 맞이해주는 금발 머리 소녀. 그녀가 이번 임무의 의뢰인인 듯했다.

‘나 산만해요’ 하고 광고하는 행동거지에. 이리저리 관심과 흥미를 발산하는 활발함.

또래인 마리아의 완전한 정반대 버전이었다.

옆에 동반한 집사님, 평소에 고생 꽤나 하시겠다. 정년퇴직이 코앞이신 거 같은데.

‘금발에 이 정도 재력이면 헌드레드 백작가 영애나 피콕 공녀려나. 100년 전 기준이라 확실치가 않네.’

“어서 가자. 기대돼서 잠도 제대로 못 잤어!”

가문별 상대법이야 버젓이 머리에 들어있으니, 가까워질 계기만 잡아내면 될 터.

“마리아, 있잖아.”

“응.”

그 첫수로 사용될 계획을 마리아에게 귓속말로 전했다.

“알겠어. 마리아한테 맡겨.”

원래부터 그럴 생각이었는지, 마리아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든든할 따름이었다.

* * *

달그락- 달그락-

쉽사리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가곤 하지만, 막상 떠오르고 나면 문득 궁금해지는 한 가지.

마법도 부리는 녀석들이. 어째서 이동 수단으로 기껏해야 마차 정도밖에 없는가?

“저기, 원래 이렇게 평화로워? 막 갑자기 나타난 몬스터하고 싸운다든가···뭐 그런 거 없어??”

이에 대해 슈퍼에고 온라인에서는 제법 그럴듯한 이유를 제시했다. 바로 몬스터란 존재로.

이놈들은 육해공 가릴 것 없이 넘쳐나고, 마나에 발광하다시피 반응한다. 한낱 짐승인 참새도 좋다고 밀을 먹어댄 거에서 말 다 했지.

“몬스터라면 저기 원 없이 나오고 있네요, 꼬마 아가씨.”

그렇다고 이 세계에서 기름이나 전기를 쓰겠는가. 여기 사람들한테 기름은 튀김 재료고, 전기는 공격 수단에 불과하다.

그러니 주요 에너지원은 당연히 물보다 흔한 마나. 자동차라도 만들었다간 그대로 광범위 어그로 아티펙트행이다.

마차 끌고 유유자적 나아가는 우리도 틈만 나면 습격을 당하는 마당에. 마나와 엔진 소리를 흩뿌리며 붕붕 달려대면 오죽할까.

거기다 아무런 구애를 받지 않을 수준쯤 되면 애초에 자기 발이 더 빠르고 편하니, 뭐 하러 차를 타겠나. 사방이 막혀서 답답하기만 하지.

“그건 아는데에···!!”

의뢰인 소녀의 불만 섞인 외침이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이는 내가 대뜸 이동 수단에 대한 고찰이나 하게 만든 원인과도 맞아떨어져, 일부 공감의 심정을 가졌다.

“나오는 족족 웬 인형이 나타나서 한 방에 끝내버리잖아. 재미없게!”

말했다시피 몬스터가 나오기는 많이 나온다. 그리고 이를, 마리아가 죄다 앉은 그 자리에서 싹쓸이해 버렸다.

보나 마나 모험가를 동경해서 이런 자리를 마련한 걸 텐데. 상위 모험가가 가만히 앉아서 딸깍거리고만 있으면 확실히 실망스러울 만하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35 ▶ 36]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저쪽 사정이고. 나는 대만족이다.

최고다 파티 자동 사냥. 여태 쩔을 해주는 입장이었는데, 받는 것도 의외로 나쁘지 않네.

“···저기, 있잖아.”

“나?”

‘시작됐다.’

참다못한 의뢰인 소녀가 마리아에게 말을 걸었다. 이는 필시 호위 의뢰에 연쇄적으로 따라붙는 관계 진전 이벤트의 조짐.

원래라면 화살표가 어디를 가리킬지는 순전히 랜덤이지만. 귀찮아서 가급적 상대를 안 하려 드는 모험가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거야 쉽지. 내가 상대 안 해본 종류의 NPC가 없는데.

“좀 더 박진감 넘치게 싸워주면 안 돼? 나 그거 보려고 의뢰한 거란 말야···!!”

이대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저 둘이 친구 사이로 발전하면 성공이나 마찬가지다.

마리아 친구가 내 친구고, 내 친구가 마리아 친구지 뭐. 아무렴.

“의뢰서엔 그런 내용 없었어. 마리아가 봤어.”

“그 의뢰를 낸 내가 요청하는 거잖아!”

“이제 와서 딴소리나 하고. 애 같아.”

···작위적으로 보일까 싶어 친구가 되라고까진 말 안 하긴 했는데. 그렇다고 싸울 건 없지 않니···?

“그, 그러는 너도 애면서···! 우씨이···넌 몇 살인데!”

“마리아 9살.”

“끄윽···”

‘얌마.’

뭐어···아직 저 정돈 괜찮을 거다. 치고받고 싸우는 것도 아니고, 고작 나이 한 살 올려 치는 것쯤이야.

그리고 관계를 본격적으로 발전시켜 줄 이벤트도 기다리고 있을 테니. 거기서 잘 풀면 된다.

‘무슨 이벤트가 뜨려나.’

슬슬 무슨 일이 벌어질 타이밍이라 예상하고 감각을 열었다.

주로 벌어지는 갈래는 대표적으로 3가지.

중간에 길을 잘못 들거나, 가족의 유품을 잃어버린다거나, 도적 떼가 출몰하는 것.

“도적이다!!”

정답은 도적이군. 셋 중에 가장 쉬운 편이다.

이런 데서 어슬렁거리는 놈들은 대체로 누가 지나가기만 하염없이 기다리는 어중이떠중이.

큰물에서 노는 진짜 위험한 놈들은 저기 무역로에서 대형 상단 같은 걸 노린다.

‘그래도 이거면 꼬마 의뢰인한테 모험가다운 모습을 보여줄 수는 있겠네.’

가벼운 마음으로 몸을 일으켰다. 불쌍하게도, 하필이면 A급 모험가가 둘씩이나 탄 마차를 노리냐.

의뢰 도중 만난 도적은 자기 손으로 잡은 놈 주머니에서 보수를 챙기는 게 관례. 다들 마리아가 또 싹쓸이하기 전에 뭐라도 챙기려고 허둥지둥 움직였다.

서걱-

“···어?”

마차의 천장이 날아갔다. 문짝이, 벽면이 뜯겨 나갔다.

마리아가 소녀와 나를 다급히 바닥에 눕혔고. 그 앞으로 툭- 무언가가 떨어졌다.

방금까지 멀쩡히 살아 숨 쉬며, 도적 소년과 떠들던 마법사의 머리. 표정은 살아생전의 그것에서 조금도 변치 않은 채였다.

무언가, 단단히 잘못됐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여러분은 나이를 거짓말로 말해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저도 초등학생일 때는 일부러 6학년인 척을 하고 그랬었는데, 어른이 되고 나니 만 나이까지 동원하며 어떻게든 낮춰보려는 제가 있네요.

물론 그걸 떠나서라도 우리 귀여운 마리아가 영영 자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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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ame a Tutorial Scarecrow

Became a Tutorial Scarecrow

튜토리얼 허수아비가 되었다
Status: Ongoing Author:
Due to lack of content, I died to a tutorial scarecrow. [Your character has died.] [Hidden Achievement Unlocked! ‘Lost to the Weakest Monster~♡︎’] And then, I possessed that 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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