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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

       ※전략기획부의 명칭이 안보전략국으로 보다 정보기관스럽게 변경되었습니다.

         

         

         

       

       

       

       

        

       

       루터스는 말없이 술잔을 비웠다.

         

       어렴풋이 눈치채곤 있었다지만 실제로 듣자하니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제국 최고 사령관에 올랐던 저번 회차에서도 총통의 견제는 어김없이 들어왔다.

         

       아니, 애초에 최고 사령관직에 앉을 수 있었던 이유도 루터스 에단이 총통의 편에 확실하게 서서 그의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정적들을 반드시 제거해주겠다 약속했다.

         

       제국의 승리- 나아가 인류의 구원이라는 막대한 공을 총통에게 바치겠다고 천명했다.

         

       그렇기에 총통이 최고사령관이라는 영예를 루터스에게 안겨주었던 것이다.

         

       “…담배 한 대 괜찮겠습니까?”

         

       “자유롭게 하게. 여긴 자네의 요새잖나.”

         

       찰칵.

         

       루터스가 연기를 깊게 빨아들였다.

         

       이번에는 총통과의 접촉을 최소화했으니 그럴만도 했다.

         

       총통에게 충분한 신뢰를 주지 못했고, 그것도 모자라 군 내에서 돌출되는 행동을 여러번 하기도 했으니.

         

       그의 입장에서 루터스는 거슬릴 듯, 거슬리지 않는 인물이었을 터.

         

       빌어먹을.

         

       루터스가 다 태운 담배를 재떨이에 꾸깃, 짓이겼다.

         

       티탄을 몰아냈더니 이제는 인간들끼리인가.

         

       어째서 단 하루도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그러나 이미 명령이 떨어진 이상 해야만 했다.

         

       언젠가 오토가 말했던 것처럼.

         

       까라면 까야 하는 것이 군인이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그 때 2년이라고 말했던 것은… 대강 그 정도 시점에 군의 장악이 완료되리라 판단하셨다는 뜻입니까?”

         

       “부정할 수 없군.”

         

       “쉽지 않을 텐데요.”

         

       당장 동부군관구만 하더라도 그렇다.

         

       루터스 에단의 임관 이전부터 티탄과 싸워오던 제국이었다.

         

       그 과정 속에서 군인들의 입지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향상됐다.

         

       남녀노소가 모두 군사 훈련을 받은 경험이 있는데 당연한 일이지.

         

       그들 모두가 총통의 뜻에 동의할 리가 없을뿐더러, 대놓고 적대시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전쟁 특수라는 상황으로 시민들과 군 내의 불만을 억누르는 건 불가능해진 것이다.

         

       그러나 아서는 한 마디로 루터스의 질문을 일축했다.

         

       “그건 총통께서 하실 일이지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니야. 나는 사령관이지 정치인이 아니니 말일세.”

         

       “….”

         

       루터스는 아서가 항상 입에 달고 살던 말을 떠올렸다.

         

       -루터스, 군인이 잘 싸우기만 하면 되는 시대는 진작에 지났어.

         

       -만약 이 전쟁이 우리의 승리로 끝난다면 그 빌어먹을 정치라는 거, 나도 한번 해볼 생각이 있다.

         

       최고 사령관 직을 자신에게 맡기면서 그런 전언을 남겨놓았던 아서 필리아스다.

         

       뼈가 있는 말이었다.

         

       루터스가 아는 아서 필리아스는 과연 곰처럼 강인하면서도 늑대처럼 영리한 군인이었으니까.

         

       “…그렇습니까.”

         

       “어쨌든 그런 상황이었네. 자네의 의견은 물어보지도 않고 강행한 것에 대해서는… 내 진심으로 사과하지. 선택의 여지가 없었네.”

         

       유능한 전쟁 영웅을 고작 그깟 의심병의 제물로 바칠 수는 없지 않은가.

         

       최고 사령관이 덧붙였다.

         

       경우에 따라서는 총통을 모욕하는 말로 들릴 수도 있는 발언.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역시 어지간히도 총통을 맘에 들어하지 않는 남자다.

         

       루터스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어떤 말씀이신지 알았습니다. 오히려 감사할 따름이죠.”

         

       “뭐… 비단 그런 이유가 전부는 아니지만 말일세.”

         

       아서가 비워진 술잔을 다시 채우며 말했다.

         

       “제국의 승리가 확정되던 그 날, 나는 은퇴를 원한다는 자네의 눈동자에서 깊은 공허함을 볼 수 있었지. 정말 죽으려던 생각이 단 추호도 없었던 건가?”

         

       “….”

         

       “숨길 생각 말게. 나도 올해로 예순이 다 되가고 있어. 그동안의 삶을 흝어보았을 때, 제 묫자리를 찾으러 가는 사람들만이 그런 분위기를 풍겼거든.”

         

       루터스는 몇 달 전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확실히 그랬다.

         

       정리되지 않아 지저분한 수염.

       거친 머리카락과 후줄근한 복장.

       공허한 눈빛까지.

         

       실제로 자살 충동을 느낀 것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몇 번의 회귀를 거듭하면서 자신의 죽음에 무뎌진 탓일까?

         

       “그렇기에 더더욱 자네를 밀어붙였던 거야. 자살을 하든, 총통 각하에게 처분당하든. 어느 쪽이든 인류를 구원한 영웅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비참한 최후 아닌가.”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루터스에게 있어 다른 이들처럼 죽음은 마지막 도피처가 될 수 없었다.

         

       그에게 있어 죽음은 실수를 만회하기 위한 재도전.

         

       마흔 번에 달하는 회귀동안 쌓아온 모든 실수를 만회하고 마침내 그레이브야드를 떠나온 지금.

         

       루터스는 고통과 땀으로 빚어 올린 탑을 제 손으로 무너트릴 정도의 머저리가 아니었다.

         

       물론 걱정해주는 것과 자살하지 않는 것은 별개였기에, 루터스는 아서를 향해 진심으로 감사했다.

         

       확실히 포비든 레이크에 부임하면서 좋지 않은 생각은 하지 않게 되었으니까.

         

       그레이브야드의 요새사령관 루터스 에단은 이미 공동묘지(Graveyard)에 묻고 왔다.

         

       “덕분에 많이 좋아졌습니다. 이제는 딱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듯 합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아서 필리아스가 하하 웃었다.

         

       “하여튼 총통 각하께서는 요새의 보수도 막바지에 이르렀으니, 본격적으로 안보전략국을 활용하실 생각이야.”

         

       아서는 그렇게 말하며 품 속에서 서류더미를 내밀었다.

         

       펜과 총이 함께 그려진 처음보는 로고와 함께 총통의 직인이 찍혀져 있다.

         

       안보전략국(Security Strategic Agency)

         

       통칭 안전국(SSA).

         

       회귀 가운데에서 단 한번의 접점도 존재하지 않았던 조직.

         

       루터스는 사소한 이질감을 느끼며 천천히 서류를 읽어내려갔다.

         

       가장 첫 페이지에부터 떡하니 박혀있는 루터스의 얼굴이었으나, 그곳에 적힌 이름은 루터스 에단이 아니었다.

         

       안보전략국 국장 베르너 그라임 중령.

         

       루터스가 고개를 들어올려 아서를 바라보자 그가 손가락을 탁 튕기며 대답한다.

         

       “서류상의 가명일세. 자네 말대로 이곳에서야 무슨 이름으로 불리던 상관 없겠지.”

         

       베르너 그라임이라.

         

       나쁘지 않은 이름 같았다.

         

       원래도 은퇴하면 루터스 에단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생활할 생각이었으니까.

         

       “그리고 자네 휘하의 병사들도 다 장교로 특진되었네.”

         

       그 말대로였다.

         

       하긴 나름 총통 직할의 특수기관인데 데리고 있는 이들이 하나같이 장교도 아닌 일반병일 수는 없지 않은가.

         

       존 홉스 소위는 존 홉스 대위로.

         

       에드워드, 단테, 오토는 중위가 되었다.

         

       카린은 소위였는데 그녀의 경력이 제일 짧기 때문이었다.

         

       하루아침에 일반병에서 위관급 장교로 올라가게 된 것이다.

         

       “이제 대충 구색은 맞춰져 보이지 않는가? 안전국용으로 직접 맞춘 정복도 있네.”

         

       “정복은 뭐… 됐습니다.”

         

       “아니, 왜 그러나? 내가 장담하건데 우리 그 칙칙한 진녹색 정복과는 궤가 다르다니까?!”

         

       루터스는 대답 대신 서류를 테이블 위에 다시 올려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꼭 입어보게! 최고 사령관으로서 명령이야! 딱 봐도 잘 어울려서 여군들이 뻑가게 생겼구만!”

         

       “기왕 이렇게 된 거, 함께 저녁 식사나 하시죠. 조금 이르긴 하지만 어떠십니까?”

         

       루터스가 가벼운 미소를 띄우며 물었다.

         

         

         

       ===

         

         

         

       “지휘도 잘해, 전투도 잘해, 작전도 잘짜, 눈치도 빨라, 미남에 몸도 좋아, 근데 요리까지 잘한다고?”

         

       아서 필리아스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런 남자가 왜 아직까지도 품절되지 않았는지 의문이 들 정도군.”

         

       배를 통통 두드리는 모습으로 미뤄보아, 꽤나 만족스러운 저녁식사였으리라.

         

       루터스는 말없이 어깨를 으쓱이며 입에 담배를 물었다.

         

       호수와 맞닿은 하늘 너머로 붉은 노을이 넘실거렸다.

         

       “역시 옥상에서 바라보는 에메랄드 레이크의 풍경은 절경이지.”

         

       그 모습에 아서 역시 덩달아 담배를 물었다.

         

       쓰으으, 치지지.

         

       숨을 들이키자 담뱃불이 끔뻑이며 연기를 내뿜었다.

         

       이내 침묵이 옥상을 감싼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발 밑에 떨어진 꽁초가 둘 셋씩 늘어날 즈음, 최고 사령관이 침묵을 깨트렸다.

         

       “루터스 에단, 자네는 이제까지 해온 결정들을 후회하나?”

         

       “….”

         

       루터스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후회하지 않기로 결심한 이상,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오로지 회귀자 루터스 에단으로서의 의지만을 관철했다.

         

       그 결과, 인류는 승리했고 그가 지키고자 했던 이들은 모두 살아남았다.

         

       그러나 이제까지 해온 결정들이라 한다면, 모든 것이 후회로 점칠되어 있었으니.

         

       후회하지 않는다고 하기도 뭐한 것이다.

         

       하지만 루터스의 대답과는 무관하게 아서 필리아스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사실 이 이야기를 꺼낼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네. 하지만 자네에게도 알려주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 말이지.”

         

       “…?”

         

       아서는 그렇게 말해놓고서도, 몇 초를 뜸들이더니, 결국 하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레이브야드의 사령관 직무대리, 아르헨 오르카 준장이 자네를 비리 혐의로 고발했네.”

         

       “비리 혐의 말씀이십니까?”

         

       “그래, 군의 전략 자산을 비롯한 각종 군수품들을 멋대로 횡령하고 장부를 조작했다는 혐의를 제기했더군.”

         

       루터스는 그 내용들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어떻게 따지고 보면 비리로 엮을 수 있는 것들이긴 했다.

         

       티탄 상대로 탁월한 효과를 보이는 프로토타입 수소원자탄만 하더라도, 할당된 수량보다 더 많이 비축해두기 위해 장부를 거짓으로 보고해 올리기도 했었으니까.

         

       “그렇습니까, 아르헨이….”

         

       “부하들에 대한 평가가 박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만… 특히 아르헨 준장은 자네를 정말 죽일 듯이 싫어하더군.”

         

       “그럴 만도 합니다.”

         

       하지만 루터스는 의외로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정말이지.

         

       아르헨 오르카는 한번 하겠다고 결심한 것은 어떻게든 이루는 사람이었으니.

         

       울고불고 후회하게 만들어주겠다는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인정하는 건가?”

         

       “작전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행위이기는 했지만, 엄연히 따지면 비리에 해당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외에도 딱히… 호감을 받을 만한 일은 하지 않았거든요.”

         

       “뭐? 그래서, 수사라도 받겠다는 말인가?”

         

       “아뇨. 그렇게 될 거였다면 애초에 아서 사령관께서 이렇게 혼자 방문하시진 않으셨겠지요.”

         

       “…허. 하기야 그렇군.”

         

       일말의 동요조차 보이지 않는 모습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린다.

         

       제 입으로 비리를 저질렀다고 말해놓고서도 저래 뻔뻔한 태도라니.

         

       아서는 눈앞의 영웅이 보기보다 교활하면서도 능글맞다고 생각했다.

         

       “자네 생각대로일세. 루터스 에단의 인사정보는 이미 제국군에서 말소되었어. 제국군의 전쟁영웅이자 전 그레이브야드 요새 사령관 루터스 에단은 존재하지 않네, 새롭게 신설된 안보전략국의 국장 베르너 그라임 중령만이 있을 뿐이지.”

         

       그 말인 즉슨.

         

       어떠한 처벌이 가해지더라도 현재의 루터스에게는 아무런 지장도 없다는 말이었다.

         

       “다만 군사비리는 중대사인만큼 전쟁영웅 신분일지라도 자유롭지 않겠지. 군 검찰이나 수사단에 해당 정보가 넘어가기는 할 걸세.”

         

       “결론은 그 모든 것들이 영향이 없을 거라는 말씀이시지 않습니까.”

         

       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루터스는 푸우,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대답했다.

         

       “아르헨 준장이 저에 대해 무슨 말을 하건 이젠 딱히 저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참, 특이해. 직속 부하, 그것도 부사령관과 사이가 이렇게 나쁘기도 쉽지 않은데.”

         

       쿡.

         

       아서의 말이 다시금 그날의 기억을 상기시켰다.

         

       -정말 역겨워.

         

       이곳에 올라와 호수를 볼 때면, 항상 따뜻한 목소리만이 들려왔건만.

         

       오늘만큼은 심장을 후벼파는 듯한 차가운 목소리였다.

         

       “…여러 사정이 있었습니다. 그녀야말로 제가 사람들에게서 잊혀지고 싶은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으니까요.”

         

       “다들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딨겠나. 이해하네.”

         

       아서는 그렇게 말하며 뒤로 돌아섰다.

         

       “걱정은 하지 말도록. 나 역시 확실하게 처리해둘테니까. 혹시나 해서 전해준 거였어.”

         

       “총통께서는 알고 계십니까?”

         

       “물론이지. 그 분께서 직접 그녀의 고발을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하라고 지시하셨네.”

         

       “감사합니다, 아서 필리아스 사령관님.”

         

       “나야말로 고맙지, 루터스 에단 준장.”

         

       아서 필리아스는 그렇게 말했다가, 곧 자신의 말을 바로잡았다.

         

       “아니… 베르너 그라임 중령.”

         

       루터스 에단.

         

       아니, 베르너 그라임은 옥상에서 내려가는 최고 사령관을 바라보았다.

         

       지지직.

       어느새 다 타버린 담배꽁초를 버리듯.

         

       베르너 그라임은 자신의 옛 이름을 오늘, 이 옥상에 묻어두었다.

         

       “베르너라. 이름부터 다시 입에 익혀야겠군.”

         

       조금은 착잡한 목소리로 읊조리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기획전략국 Strategic Planning Agency는 줄이니까 SPA가 되더라구요

    어떻게 제국의 정보기관 이름이 온천에 목욕탕?

    그래서 바꿨습니다. 안보전략국. 뭔가 MI5같아서 멋지네요. 이니셜도 SSA고.

    그리고 추가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사실 지금까지가 프롤로그입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다음화 보기


           


A War Hero With No Regrets

A War Hero With No Regrets

후회 안 하는 전쟁영웅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victory earned after forty regressions.

It was now my turn to leave their side.

Not by anyone else’s will, but by my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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