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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

    <8 – 안 됩니다 원툴집사>

     

    전날 힘을 좀 써서 그런지 오늘은 아무도 쉽게 팔씨름을 하러 오지 않았다.

     

    “힝. 언제 다 기다려.”

     

    수련을 할 때는 시간이 가는 느낌이라도 있지.

    가만히 서서 기다리려니 아주 곤욕이다.

     

    “오, 부잣집아가씨의 여흥인가?”

    “앗, 상대가… 왔… 어어……?”

     

    고개를 들어도 들어도 끝이 없다.

    목이 꺾일 정도로 올려다보자 거인처럼 커다란 털보가 씨익 웃는다.

    키만 2m 30cm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털난 원숭이수인이 말했다.

     

    “이봐, 나랑도 한 판 하지 않겠나? 돈은 걸지 않아도 된다. 거꾸로 나한테서 이기면 금화 1매를 주지.”

    “아아 안 들린다 안 들려.”

     

    집사 등 뒤로 호다닥 숨어버리니 전날 도전했다가 대기순번이 밀린 도전자들이 “우우~” “비겁하다.” “도전을 받아라 괴력소녀!” 같은 야유를 한다.

    이 사람들도 참.

    컵이랑 수저도 가끔 떨어뜨리는 병약소녀한테 무슨 소리를 하는 거람?

    집사가 이건 좀, 하는 얼굴로 말했다.

     

    “죄송하지만 아가씨와의 체격차이가 너무 크시군요.”

    “그쪽의 아가씨는 작은 체구로도 곧잘 상대를 넘겼다던데.”

    “대기표는 몇 번이십니까.”

    “대신 돈을 건대도?”

    “돈이라면 저희도 많습니다. 집사와 메이드를 거느린 아가씨께서 자금사정이 궁할 리 없잖습니까.”

     

    원숭이수인은 아쉬워하더니 줄 저 앞의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뭘 하나 했더니 금화를 손에 넣고 양손을 좌우중단으로 마구 움직이며 섞어댄다.

    눈이 똥그래진 1순위 대기자가 자신없는 표정으로 왼손을 찍었지만 금화는 오른손에 있었다.

     

    “수련이 부족해, 젊은 친구. 하하.”

     

    가볍게 등을 손바닥으로 치며 너털웃음을 터뜨리는데 등을 맞은 사람이 줄밖으로 엎어졌다.

    금화를 걸고 순번내기를 했던 모양인데 개같이 실패한 모양이다.

    금방 여관 안으로 들어가는 원숭이수인을 보고 이거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요. 저랑도 내기 안할래요?”

    “괴력소녀? 팔씨름은 안 해.”

    “팔씨름 말고 금화맞추기요. 찍어도 50%인데 할만하지 않나?”

    “으으음…”

    “저한테 질까봐 두려워요?”

     

    허리춤에 검을 찬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1금화에 눈이 멀어서 시간을 잃었다가 시험에서 탈락하면 본말전도지.”

     

    의외로 뚝심이 있으시네.

    대신 뒤에 선 딱 봐도 20대가 넘게 생긴 아저씨가 손짓을 했다.

     

    “난 어차피 티켓 받아다가 팔려고 줄 선 사람이야. 나랑 해보자고, 아가씨.”

     

    티켓사냥꾼.

    입학시험을 치르려는 사람들에게 티켓을 팔아 돈을 챙기는 암표상 같은 인간들이다.

    게임에서는 일정 관계 상 티켓시험을 치를 여유가 없거나 기초스펙이 말도 안 되게 구릴 때 종종 이용하는 사람들인데, 이게 또 운빨을 탄다.

    일정확률로 위조티켓이라며 입학시험장에서 입구컷을 당하기도 하거든.

     

    “네, 찍기 실패~”

    “허허. 이게 안 맞네.”

     

    옆에서 내기를 지켜보던 검사가 안하기를 잘했다며 혀를 찼다.

     

    “힘만 센 것이 아니라 손도 빠르군. 뭣 모르고 덤볐다간 제대로 망신당했겠어.”

    “아까 덩치 큰 수인보다는 느린걸요.”

     

    근육양만 봐도 알 수 있다.

    아까 그 인간, 아무리 못해도 근력 40을 이미 넘긴 괴물이었다.

    의문이라면 아카데미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수인이라는 건데.

    매번 탈락을 했던 걸까?

    아니면 역시 나이제한에 걸린 걸까?

    무식하게 보이는 덩치를 떠올려보면 나이제한도 모르고 응시하러 온 가능성이 유력하다.

     

    “단체손님 나가십니다! 일단 다섯 분 더 받겠습니다. 들어오시죠.”

    “드디어!”

     

    일주일은 걸릴 줄을 이틀 만에 통과했다.

     

     

    * *

     

     

    실내로 들어오자마자 뜨뜻한 공기와 평화로운 분위기에 몸의 긴장이 저절로 풀린다.

     

    “어이쿠, 괴력아가씨가 왔구먼?”

    “방이나 주세요.”

    “4인실 둘, 1인실 둘 있는데. 어느 쪽으로 드릴까?”

    “4인실 하나요.”

     

    돈이 있는데 아낄 이유가 없다.

    곧바로 1층 테이블 하나를 잡고 메뉴판부터 들었다.

     

    “다들 상급시험관을 기다리나봅니다.”

    “그런 건 됐으니까 배부터 채울래요.”

    “먹을 것부터 챙기는 것이 참 아가씨답군요.”

     

    집사의 힐난에도 눈 한 번 깜빡하지 않았다.

    이게 다 먹고 살려고 하는 짓 아니야!

     

    메뉴판에서는 다른 곳에서는 찾기 힘든 사과호두오트밀 세 그릇을 주문했다.

     

    “이 메뉴를 고집하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여기가 아니면 다시는 못 먹을 메뉴잖아요.”

     

    게임에서 사과호두오트밀을 파는 가게는 여기밖에 못 찾았다.

    어째서인지 조나가 밥만 헤먹일 수 있으면 오트밀만 일주일은 끓여주겠다는 표정을 짓기 시작했지만 이제는 흔한 일.

    자연스럽게 무시한다.

     

    음식수집은 평상시에 부지런히 진행해야 능력치 상승으로 돌아오는 법.

    물론 두 그릇을 먹는다고 두 배로 수집효과가 발생하는 건 아니라서 한 그릇은 내 몫, 나머지 두 그릇은 조나와 리프 몫이다.

     

    “아가씨는 처음 먹는 음식을 정말 좋아하시는군요.”

    “같은 음식만 먹는 경험은 충분히 했거든요.”

    “하지만 위험한 습관이십니다.”

     

    리프는 듣기 좋은 말만 하지만 조나는 듣기 싫은 쓴소리도 아끼지 않는다.

    메이드와 집사의 차이가 이런 곳에서 드러난다.

     

    “외지에서 낯선 음식을 먹으면 그 요리에 어떤 이물질이 들어갔는지 단번에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일은 쉽게 일어나지도 않거든요?”

     

    아카데미 게임에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누가 보면 닌자 아카데미라도 들어가려는 줄 알겠네.

     

    ‘아무튼 같은 음식을 잔뜩 먹는 방향은 효율이 썩 좋지 않지.’

     

    다른 음식은 하나만 먹어도 수집효과가 나오지만, 같은 음식은 무려 일천 번은 반복해서 먹어야 한다.

    애플파이 마니아, 딸기빙수 마니아 따위의 마니아 타이틀이 그렇다.

    대신 10개 20개씩 도감수집률을 높여서 얻는 보상과 달리, 이런 마니아 칭호는 딱 하나만 얻어도 칭호효과를 받을 수 있다.

     

    ‘빙수마니아 효과가 얼음내성 1% 증가, 이 시림 방지였었나?’

     

    저딴 걸 어디다 써먹나 싶지만 모든 칭호는 다 어딘가 한 번쯤은 쓸모가 있다.

    아카데미 여름축제의 대식대결에서 빙수가 나올 때, 이 칭호를 지니고 있으면 페이스가 늦어지지 않으면서 빙수 한 사발을 뚝딱 비울 수 있다.

    이가 시린 거랑 배가 부르는 건 또 별개지만.

    그런 특정목적을 지닌 칭호습득이 아니면 대부분은 시간낭비다.

    그거 천 그릇 씩 먹을 바에야 그냥 새 음식 천 그릇을 먹는 편이 백배는 더 효율적이다.

     

    ‘오죽하면 매번 먹는 음식이 달라지는 사람은 플레이어라는 기믹이 생겼겠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낯선 음식은 쉽게 도전하지 않지만 플레이어는 낯선 음식을 더 좋아한다.

    가끔 형광치킨이나 뒤틀린황태구이 따위의 괴식음식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사과호두오트밀은 그렇게까지 망한 음식은 아니었다.

     

    “음냠냠.”

    “거 꼬맹이가 맛깔나게도 먹네.”

    “으음. 우리도 한 그릇 먹을까?”

     

    식당 겸 주점을 겸하는 여관 1층을 채운 숙박객들이 오트밀에서 나는 구수한 향기에 굴복하고 아침메뉴를 시키기 시작했다.

    여관주인이 덕분에 매상이 늘었다며 우리테이블에 서비스로 사과주스를 세 잔 주었다.

     

    “양이 왜 이리 적어? 여기 투구에 꽉 담을 정도로 퍼다주쇼.”

     

    옆옆테이블의 원숭이수인이 진상짓을 부리기는 했지만 그만큼 돈은 더 얹어준다는 말에 주인장은 신이 나서 투구를 받아갔다.

    위생이야 둘째 치고 참 호쾌한 양반이다.

     

    “안 됩니다.”

    “…아무 말도 안했거든요?”

    “절대로 안 됩니다.”

     

    집사 조나의 경계심은 오늘도 내려갈 줄 모른다.

    귀족플레이의 뜻밖의 단점 발견이다.

    자유도가 너무 낮아.

     

    쪼르륵.

    쪽쪽.

     

    불만을 누그러뜨리는 단맛에 사과주스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쪽쪽 빨아먹고 있을 때, 누군가 우리 테이블을 손등으로 똑똑 가볍게 두들겼다.

     

    “이게 누구야. 여행 동지들 아니십니까?”

    “바드아저씨!”

     

    정말 의외의 얼굴이었다.

    원숭이수인처럼 강해보이진 않았는데, 어떻게 벌써 여관에 들어온 걸까?

     

    “아저씨는 언제 들어왔어요?”

    “하하. 어제 여관 문 두들기자마자 바로 들어왔죠. 손님 말고 악사로요.”

     

    그런 방법이.

    게임에서는 이딴 똥쓰레기 직업을 누가 하나 싶었는데, 막상 현실이 되니 미친 듯이 바드가 부럽다.

     

    “안 됩니다.”

    “치. 말도 안했는데 맨날 안 된대.”

     

    집사가 조금 밉다.

     

    “세분, 티켓시험 때문에 오셨다고 했었죠?”

     

    바드아저씨가 고개를 숙이더니 다른 테이블에는 들리지 않도록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전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매일 1시간마다 한 번, 시험관이 1층에 내려옵니다. 그때 이야기를 잘 들어두시기 바랍니다.”

    “왜 이런 정보를 주는 거지?”

    “지난번에는 집사분을 많이 노하게 하기도 했고, 아가씨도 많이 놀랐겠구나 싶어 죄스러운 마음에 사과의 의미 겸 드리는 정보입니다.”

     

    집사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기횐가? 바드 전직 각?

    슬쩍 눈치를 보자 칼같이 대답이 돌아왔다.

     

    “안 됩니다.”

     

    무슨 말을 못하겠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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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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