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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

       

       태양을 숨긴 달.

       대한민국 방송 3사 중 하나로 꼽히는 KMB에서 준비한 가상 사극이다.

       가상 사극은 간단히 말해 일반적인 역사에 가상의 배경을 섞은 것으로, 보통 젊은 층과 중년층을 모두 사로잡고자 만든 가상 역사 드라마라 할 수 있었다.

       

       ‘그만큼, 잘 만들어야 하지.’

       

       태양을 숨긴 달의 프로듀서, 하태오는 업계의 베테랑으로, 몇 개나 되는 사극을 연출한 경험자였다.

       가상 사극은 이번이 두 번째.

       그 첫 번째였던 ‘여우 이슬’은 대박은 아니어도 그럭저럭 괜찮은 수준은 되었다.

       

       ‘어설프게 만들면, 젊은 층과 중장년층을 전부 놓치게 되니까.’

       

       그러니 배우진도 최대한 칼을 갈았다.

       주어진 예산도 일반적인 가상 사극의 두 배!

       

       KMB의 입장에선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되는, 그런 작품이라는 뜻이다.

       

       “이야, 아역도 아주 쟁쟁하다, 쟁쟁해.”

       

       그런 하태오를 향해, 캐스팅 디렉터 김기웅이 놀랍다는 듯 말했다.

       

       “온갖, 에이전시와 아카데미. 거기에 엔터에서 이름 좀 있다 싶은 아이들은 거의 다 들어온 것 같은데요?”

       “다들 아는 거겠죠. 이번 드라마에 얼마나 KMB가 칼을 갈았는지.”

       

       아역은 못해도 쪽박을 찰 일은 없었다.

       일반적으로 아역이 등장하는 화수는 드라마의 극초반.

       

       짧으면 1화, 조금 길다 싶으면 5화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중요하지 않냐?

       

       라고 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

       결국 드라마의 첫인상을 결정해주는 만큼 아주 중요하다.

       

       그러니 최근엔 어린 시절을 아예 빼는 경우도 많았다.

       연기력이 불안한 아역이 실수라도 한다면, 드라마의 이미지도 덩달아 애매해지니까.

       

       “어린 윤서일의 배역은, 이미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겠어요.”

       “예, 아무래도 그쪽은 어렸을 때부터 워낙 유명하지 않았습니까?”

       

       남자 아역의 프로필을 훑어보던 하태오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처음 연기를 시작했던 다섯 살부터, 그 연기력을 인정받아 벌써 5년 차.

       

       대배우 박선웅의 아들인 박정우.

       열 살의 박정우는, 이번 태양을 숨김 달의 남주인공 ‘어린 윤서일’ 역할에 누구보다 어울리는 아이였다.

       

       “이거, 어린 이혜월을 아무나 뽑을 수 없겠는데요?”

       “박정우는 연기력이 워낙 좋은 아이이니, 자칫하면 상대가 순식간에 잡아먹힐 겁니다.”

       

       대배우 박선웅의 재능을 그대로 물려받은 아이.

       그런 아이를 상대로 한다면, 여주인공 역할을 맡을 아이도 신경 써서 고를 수밖에 없었다.

       

       “아, 이거…….”

       

       그때 김기웅이 탄식을 내뱉었다.

       그의 손에는 방금 본 듯한, 어떤 여자아이의 프로필이 쥐어져 있었다.

       

       “드라마에 첫 출연에…… 그마저도 CF 꼴랑 두 개찍은 아이인데, 이번 오디션에 포함되어 있네요?”

       “아, 그 아이요?”

       

       하태오도 힐끗 김기웅의 손에 쥐어진 프로필을 보았다.

       

       “조방우 감독이 추천한 아이라고 합니다. 듣기론 그 아들이랑 같이 CF를 찍었던 아이라고 하나봐요.”

       “어휴. 아들 CF에 나왔던 애라고 찔러줬나? 잘만 되면 아들도 주목받을지 모르니.”

       “에이, 설마요.”

       

       그들은 프로필에 적힌 ‘주서연’이라는 이름을 보고 짧게 혀를 찼다.

       사진만 보면 얼굴을 썩 괜찮았다.

       나이는 여섯 살.

       조금 어리긴 했지만, 드라마 배역인 어린 이혜월의 나이가 여덟 살이니 연기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확실히 마스크는 좋은데.’

       

       무슨 CF였더라? 그래, 두유 CF였던 것 같다.

       

       “뭐, 두유 CF에서 보여준 모습은 썩 나쁘지 않았지만…….”

       “그런 발랄한 아이의 모습은 연기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거니까요.”

       

       거기다 CF에서 하는 연기와, 드라마는 전혀 다르다.

       우선 대사를 제대로 외울 수 있는 지부터가 문제였다.

       

       “낙하산도 정도가 있지…….”

       

       하태오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서연의 프로필을 대충 던져놓았다.

       겨우 CF 두 개 찍은 아이가 이번 오디션에서 붙을 일은 없을 테니까.

       

       ***

       

       태양을 숨긴 달.

       일명 ‘태숨달’의 오디션장.

       

       ‘와, 뭐야.’

       

       서연은 이걸 과연 오디션장이 맞는지 묻고 싶었다.

       그냥 촬영을 위한 세트장이 아닐까.

       

       안으로 들어가자, 간단한 인적 사항을 확인 후, 스태프가 이번 오디션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이어 한 장의 서류를 꺼냈다.

       

       “이번 오디션 내용은 메이킹 필름이나 광고 등, 여러 형태로 방송에서 나갈 수 있다는 점, 양해 부탁드리며 그에 대한 부분을 동의하시면 여기에 사인해주시면 됩니다.”

       “아, 네네.”

       

       수아는 떨리는 손으로 차분히 사인했다.

       아직 미성년자인 서연은 이런 부분에서 반드시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했다.

       

       “이번 오디션은 확실히 뭔가 다르네…….”

       

       안으로 들어가며 수아는 그런 말을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서연 또한 그런 수아의 말에 동의했다.

       

       그 말처럼, 주변은 죄다 매니저나 에이전시를 잔뜩 끼고 온 아이들이 많았다.

       이전처럼 학부모가 따라온 아역은 보이지 않았기에, 서연과 수아는 외딴 섬에 표류 된 느낌을 받았다.

       

       “쟤는 누구지?”

       “잘못 들어온 거 아니에요?”

       

       덕분에 시선도 배로 끌리는 상황.

       오디션을 위한 복장을 입거나, 메이크업을 하는 애들도 있었다.

       

       “서연아, 우리 뭐 해야 하니?”

       “모르겠는데요.”

       

       여태 CF를 딱 두 개 찍은 여섯 살 어린애에게 뭘 물어보는 건지.

       물론 서연이 수아의 입장이었어도 똑같은 상태였을 것이다.

       

       “서연이 어머님, 이쪽입니다.”

       

       점차 우리에게 향하는 시선이 늘어나기 시작했을 때, 구원자가 나타났다.

       

       “조 감독님!”

       

       수아가 감격한 얼굴로 서연의 손을 잡고 다가가자, 그는 안심하라는 듯 싱긋 웃었다.

       

       “제가 추천하여 넣었는데, 도와드려야죠.”

       “아, 정말 감사해요.”

       “그리고 여기선 그냥 조민태 씨라고 불러주세요.”

       

       꾸벅, 하고 배꼽 인사를 하는 서연에게 조 감독은 웃으며 말했다.

       

       “나름 욕심도 있었습니다. 서연 양이 드라마에서 연기를 하면 어떤 느낌일지 보고 싶었거든요.”

       

       그는 그렇게 말했지만, 서연은 이게 얼마나 특별한 경우인지 알고 있다.

       CF 감독인 그가 타인인 서연을 위해 이렇게 까지 도와줄 이유는 없었으니까.

       이런 오디션 자리를 마련해준 것만으로, 다른 아역들은 기함을 토할만한 상황이었다.

       

       서연은 따가운 시선에 슬쩍 주변을 보았다.

       

       ‘낙하산이지, 이거.’

       

       조민태의 등장으로 슬슬 몇몇은 우리를 보고 눈을 찌푸리는 이들이 있었다.

       아무래도 내부 관계자가 데려온 아이로 생각한 모양이다.

       

       “그런데, 원래 드라마 오디션은 이런가요?”

       

       서연은 작은 목소리로 조민태에게 물었다.

       그러자 조민태는 고개를 저었다.

       

       “오디션을 보는 경우도 있고, 감독이나, 캐스팅 디렉터를 통해 선정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크게 오디션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죠. 아마, 홍보용 메이킹 필름을 위해서 일 겁니다.”

       “아하.”

       

       메이킹 필름.

       서연은 문득 과거의 일을 떠올렸다.

       

       생각해보면 태양을 숨긴 달은, 방영 전부터 다양한 영상을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거기에 아역 오디션도 분명 끼어있었었지.

       

       “아아, 다들 오신 것 같으니 슬슬 시작하겠습니다.”

       

       그때, 오디션장에 덥수룩한 수염이 난 남자가 말했다.

       

       “기획 프로듀서인 하태오입니다. 우선 오디션 내용에 대해 간략히 말씀드리자면…….”

       

       조민태의 말로는 이번 오디션의 프로듀서가 앞으로 나왔다.

       기획 프로듀서는 말 그대로, 이 드라마의 기획 총괄이다.

       

       작품의 방향을 이끄는 인물로, 감독을 매칭하거나, 배우를 캐스팅을 주도하는 역할을 맡는다.

       거기에 드라마 작가와 함께 극의 방향을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이끄는 인물.

       

       말하자면, 이번 드라마 캐스팅에 가장 큰 힘을 쥐고 있는 존재였다.

       

       “오디션은 2인 1조. 남자 아역과 여자 아역이 함께 연기를 펼치게 됩니다. 대본은 이제 나눠드릴 테고…… 리딩 시간은 대략 2시간 정도 드릴 생각입니다.”

       

       2시간이면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사전에 대본을 주지 않았던 만큼 아역들에겐 상당히 벅찬 느낌이 있었다.

       

       “혼자가 아니라고? 이게 무슨…….”

       “2인 1조면 상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잖아요. 이거 좀 형평성이 맞지 않는 것 같은데요.”

       

       주변에서 작은 목소리로 수군거리는 이들이 있었다.

       

       ‘보통은 이런 식으로 오디션을 하지 않나보네.’

       

       태양을 숨긴 달이 메이킹 필름부터 화제가 된 건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다.

       

       ‘2인 1조 연기.’

       

       CF랑은 분명 다르겠지.

       거기다 대본부터 다르다. 

       보다 시각적인 느낌이 강한 CF 대본에 비해, 드라마 대본은 마치 소설 같았다.

       

       “이런 연기는 다른 분들 말처럼 상대 배역이 중요합니다.”

       “사, 상대가 연기를 못하면 문제가 되는 건가요?”

       

       조민태의 말에 수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음. 그렇죠. 정확히는 상대가 자신보다 아주 못하든, 아주 잘하든 둘 다 문제입니다.”

       “잘하면 좋은 거 아닌가요?”

       “이건 CF가 아니라 드라마니까요. 연기가 부족하면…… 상대에게 존재감을 잡아먹히죠.”

       

       배우에겐 절대 피해야 하는 일이다.

       특히 ‘주연’이라면 더더욱.

       

       상대의 연기에 눌려, 존재감이 사라진다면 주역의 자격이 없다.

       

       “우선, 서연 양. 옷부터 갈아입죠. 리딩 시간은 2시간이니 서둘러 준비해야 합니다. 저쪽에 보이는 의상실에서 환복하시면 돼요.”

       “아! 네네!”

       

       수아는 서연의 손을 잡고, 빠르게 준비된 의상실로 향했다.

       

       “응? 뭐야?”

       

       의상실에 가자, 마침 막 옷을 갈아입은 아이가 나오고 있었다.

       새침한 눈매에 어여쁜 아이.

       다른 아이들과 달리, 그 자태와 아우라가 달랐다.

       

       ‘아, 얘다.’

       

       서연은 이 아이를 보자마자 떠올렸다.

       

       ‘여주인공 이혜월의 아역.’

       

       전생의 드라마에서 봤던 기억이 있다.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상당히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줬었지.

       

       이름은 아마 ‘조서희’였을 것이다.

       

       ‘윤서일 역의 아역만큼은 아니었다만.’

       

       혼자 있을 때는 박수를 칠만한 연기 실력이었지만, 윤서일 역할의 남자아이와 함께 할 때는 묘하게 존재감이 적었다.

       그 탓에 아역 파트는 딱 2화만 나오고 지나가게 됐던 걸로 기억한다.

       

       ‘뭐, 그것만으로 충분히 존재감은 어필했지.’

       

       이후에도 꽤 승승장구 했던가…….

       서연은 그 부분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아, 얘에요?”

       

       그때 조서희가 여자 매니저에게 무언가를 들었는지 피식 웃었다.

       

       “낙하산?”

       

       그렇게 말하며 웃는 꼴이 꼭 드라마 악역 같았다.

       서연은 그 모습을 보고 감탄했다.

       

       ‘애가 언어 능력이 높네.’

       

       역시 이래서 배우인가?

       나이는 자신보다 한두 살 밖에 많아 보이지 않는데 ‘낙하산’ 같은 말도 알 줄이야.

       

       “뭐어, 잘 해봐?”

       

       그 아이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감 넘치게 밖으로 나갔다.

       어찌 보면 이지연의 상위호환 같은 아이였다.

       주로 나쁜 의미로.

       

       “으으. 서연아. 쟤 한테는 절대 지면 안 된다?”

       

       물론 수아는 방금 지나간 밉살맞은 아이가, 본래 ‘태숨달’의 주인공으로 선발되는 실력자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의 입장에선, 자신의 소중한 딸을 비웃은 망나니일 뿐이었다.

       

       “……노력해볼게요.”

       

       수많은 아역을 꺾은 태숨달의 여주인공을 이기라니.

       이제 CF를 딱 두 개 찍은 초보 아역에겐 너무나 높은 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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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nt to Be a VTu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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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efinitely just wanted to be a VTuber... But when I came to my senses, I had become an a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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