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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

       문득 눈에 들어온 건 낯선 천장이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주변을 살피려 했지만, 머지않아 손가락 하나조차 움직일 수 없는 상태라는 걸 깨달았다.

         

       의식을 되찾음과 동시에 마치 신경을 후벼파는 듯한 고통 또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나마 눈동자를 굴리는 건 아무 문제가 없었다. 팔에 꽂힌 주삿바늘과 길게 늘어진 수액 줄을 봤을 때는 병원이 아닐까 싶은데.

         

         

       “무슨 소리가…어머!”

         

       내 인기척을 들었는지 간호사가 찾아왔다. 소스라치게 놀란 간호사는 병실을 빠져나가 누군가를 데리고 다시 돌아왔다.

         

       간호사가 불러온 사람은, 예전에 나에게 완전무감응자 판정을 내렸던 그 의사였다.

         

         

       “세상에…어쩐지 낯이 익더라니…자네였구만…”

         

       나는 의사에게 진통제를 주입 받은 뒤에야 어느 정도 정신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의사는 그간의 사정들을 대강 정리해 나에게 알려주었다.

         

       이곳은 우리 마을의 상위도시에 있는 병원이며, 내가 깨어난 건 무려 일주일만의 일이었다.

         

       마을을 습격한 마족들은 얼마 전 장벽을 넘어 침입해 들어온 무리의 잔당이었다.

         

       본대는 국군에 의해 분쇄되었지만, 워낙에 규모가 컸던 탓에 일부 무리가 포위망을 빠져나갔다고.

         

       그 탓에 우리 마을을 포함한 몇몇 변두리 마을들이 그 화를 입은 거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궁금했던 건 마족이 습격한 이유 따위가 아니었다.

         

         

       “허, 참…”

         

       나는 머뭇거리는 의사를 계속 재촉했다. 의사는 영 내키지 않는 눈빛으로 계속 대답을 피하려 들었다.

         

       그리고 결국, 나는 다른 마을 사람들은 전부 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미안하네. 유감일세.”

       

       더 캐물을 필요는 없었다.

         

       엄마와 진호, 이나 역시 그 범주에 들어가 있다는 건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었으니.

         

         

       ‘아들~오늘 집에 들어오기는 할 거지? 언제 이렇게 다 커서는…’

         

       ‘…자기 아들한테 그런 말 하는 엄마가 어딨어?’

         

       하지만 이 짧은 대화가 엄마와 나눈 마지막 대화라는 사실은…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더욱 불행하게도, 나는 그들의 시신조차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다.

         

       현장이 워낙에 참혹했던 탓에 수습에도 상당히 애를 먹었다고 한다.

         

       그나마 멀쩡한 시신들마저 구울의 발생 가능성 때문에 화장 처리가 된 지 오래였다.

         

         

       “아…으으…”

         

       “묘소는 자네가 살던 거주 구역 옆에 마련되었다고 들었네. 몸이 회복되면 찾아가 볼 수 있을 게야…”

         

       의사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위로했다.

         

         

       “그래도 자네가 깨어난 것만 해도 엄청난 기적이라네…”

         

       의사의 말에 따르면, 내 몸의 뼈와 장기들은 온통 엉망진창으로 상해 있었다고 한다.

         

       강한 충격을 반복적으로 받아 심한 내상을 입었고, 부러진 뼈들이 2차로 장기들을 찔러대 과다출혈을 일으킨 상태였다고.

         

       거기에 마족의 손톱에 있는 독에 중독되기까지 했으니, 처음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도저히 살아있는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일단 의식을 되찾기는 했지만, 뼈가 붙고 독의 영향을 완전히 치유하려면 최소한 두 달 이상의 입원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도 현실은 차갑고 비정했다.

         

       졸지에 고아가 된 나에게 막대한 입원비를 감당할 여력 같은 건 없었다.

         

         

       “…저에게는 그만큼의 치료비를 내야 할 여력이 없습니다. 죄송하지만…”

         

       나는 그런 사정을 의사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그러고는 병원비는 신경 쓰지 말고 치료나 잘 받으라는 말을 남기고 병실을 나섰다.

         

       당분간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몸이었기에, 나는 그저 누워있는 일상을 한동안 반복해야 했다.

         

       그러나 몸과 달리 멀쩡한 정신은 오히려 내게 독이 되었다.

         

       나는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잃은 슬픔에 젖어 매일을 고통 속에 보내야 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한 가지 의문만은 계속해서 떠올랐다.

         

       연이의 존재가 그야말로 감촉같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간호사들은 아예 아는 게 없었으며, 의사는 공식적으로 그 마을의 생존자는 나뿐이라는 대답만을 반복했다.

         

       그리고 병원에 입원한 지도 어느덧 몇 주의 시간의 흐른 뒤.

         

       슬픔과 답답함, 고통과 무기력의 늪에도 어느덧 익숙함을 느끼게 되었을 때쯤.

         

       한밤중의 병실로 갑자기 연이가 찾아왔다.

         

         

         

       ***

         

         

       은은한 달빛이 들어오는 새벽의 병실.

         

       아직 나를 괴롭히는 통증 때문에 문득 잠에서 깬 참이었다.

         

         

       “…안녕.”

         

       “연…아?”

         

       맥락도 소리도 없이, 연이는 내 병상 옆에 서 있었다.

         

       꿈인가 싶어 몇 번이고 고개를 저어봤지만, 눈앞의 풍경은 틀림없는 현실이었다.

         

         

       “…많이 힘들어 보이네.”

       

       “…이 정도는 별거 아니야. 너…는…?”

         

       “…보는 것처럼 멀쩡해.”

       

       달빛을 받은 연이의 머리카락이 반짝반짝 빛났다.

         

       반쯤 어둠에 가려진 모습이 되려 타고난 아름다움을 부각했다.

         

       말처럼 다친 곳이 없어 보여 안도했고, 또 언제나처럼 연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짐싯 허세를 부렸다.

         

       하지만 나는 곧, 연이의 상태가 어딘지 평소와는 다르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

       

       말투는 무감정했고, 눈빛은 어두웠다.

         

       촉새처럼 조잘대며 나를 타박해야 할 입술은 굳게 닫혀 있었다.

         

       표정은 웃음도 울음도 없이 그저 고요했다.

         

       다정하게 사랑을 속삭이던 평소의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분명 연이에게 묻고 싶던 말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차였다.

         

       내가 정신을 잃어버린 후에 무슨 일이 있던 건지.

         

       그동안 어떻게 지낸 건지.

         

       왜 진작 나를 찾아와 주지 않은 건지…

         

       하지만 연이의 차가운 모습은, 그런 내 말들을 모두 꽁꽁 얼려버렸다.

         

         

       “…연아. 혹시 내가 정신을 잃은 뒤에…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려줄 수 있어…?”

       

       나는 억지로 목을 쥐어짜 겨우 질문을 내뱉었다.

         

         

       “…네가 기절한 뒤에 곧바로 군인들이 도착했어. 마족들은 전부 소탕했고, 너는 그대로 이 병원으로 실려 온 거야.”

       

       연이가 고저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랬구나. 미안해. 하마터면 나 때문에 네가…”

         

       “그래. 너 때문이야. 네가 내 만류를 듣지 않고 멋대로 행동했기 때문이야. 군인들이 단 30초만 늦게 왔어도, 나도 지금쯤 차가운 재가 되어 있었겠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무모한 짓을 한 거야?”

         

       “…”

       

       연이가 내뱉는 거센 비난이 바늘처럼 내 심장을 찔러왔다.

         

       딱히 변명을 하려 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매도를 바란 것도 절대 아니었는데.

         

       그런 연이의 낯선 태도는, 이제는 기억조차 제대로 나지 않는 예전의 그 모습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그보다 네게 할 말이 있어. 시간이 없으니까 용건만 빨리 끝내고 갈게.”

         

       연이는 차분한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어갔다.

         

         

       “내가 오늘 온 건, 과거를 확실히 매듭짓기 위해서야.”

         

       “과…거?”

         

       “그래. 과거.”

         

       연이의 말을 듣는 순간. 정체 모를 불안감이 나를 휘감기 시작했다.

         

       심장은 미칠 듯이 쿵쾅거렸고, 겨울처럼 차가운 오한이 몸 곳곳에서 느껴졌다.

         

         

       “나, 마법사로 개화했어. 원래는 내년이 예정이었지만, 이런저런 일들로 좀 빨라졌다나 봐.”

         

       “그…래? 정말 잘 됐…”

         

       “그리고 지금은 다시 가문으로 받아들여졌어. 가주님의 공언을 받은 덕분에 이제 예전처럼 목숨의 위협을 받을 일도 없거든.”

       

       “…”

       

       “있지. 나 수도에 돌아간 뒤에 곰곰이 생각해봤어. 그리고 깨달았지. 이게 나의 원래 삶이고 마땅히 누렸어야 할 영광이라는 걸. 변방에서의 지난날들은 그냥 악몽이나 마찬가지였다는 걸.”

         

       “악몽…이라고…?”

         

       “그래, 악몽. 정말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싶을 정도로 기분 나쁘고 불쾌한 기억이랄까. 그런 것들과 내내 몇 년을 붙어서 살았다니. 지금 생각하면 정말 역겨움이 차올라.”

       

       “그게…무슨 말이야…”

       

       “그래서 나는 그 악몽을 지워버리기로 했어. 알아? 우리 가문쯤 되면 그 정도는 일도 아니란 거.”

       

       “…”

       

       “나는 처음부터 그 마을에 없었어. 가주님의 극진한 사랑을 받는 딸이고, 그 탓에 애지중지 키워지느라 한 번도 수도 바깥을 빠져나간 적 없는 사람이지.”

         

       “무슨…말을…”

         

       “내 행적을 아는 사람들은 다 죽었고 네가 떠들어본들 믿어주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을 거야. 그야 당연하지. 너 같은 시골뜨기의 허풍을 누가 믿어주겠어?”

         

       이어지는 연이의 말은 내 정신을 계속 혼미하게 만들었다.

         

       그 말을 더 듣지 못하게 그저 귀를 꽉 막고 싶었다.

         

       나는 의사가 했던, ‘공식적’인 생존자는 나밖에 없다는 말의 의미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온 사람들이 나를 보면 극진한 예를 표해. 하지만 너는 그런 이들에게조차 고개를 숙여야 하는 처지지. 알겠어? 이게 우리의 차이야. 처음부터…말도 안 되는 관계였던 거야.”

         

       “연아…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

         

       울음 섞인 내 애원에도, 그 눈길은 여전히 차갑고 건조할 뿐이었다.

         

         

       “그럼 우리는…대체 뭐였는데…?”

       

       “당연히 아무 사이도 아니었고, 앞으로도 아무 사이도 아니겠지.”

         

       더는 참지 못하고 터져 나온 항변이었지만, 연이는 너무나 싱겁고 간단하게 자신의 말을 확언했다.

         

       그 목소리는 호수의 밑바닥처럼 여전히 잔잔했다.

         

         

       “연아…이상해…무슨 일이라도 있던 거야…? 맞아, 혹시 너희 아버지한테 협박이라도 받은…”

       

       “하아…”

         

       겨우 짜낸 내 물음마저, 연이가 귀찮다는 듯 내뱉는 한숨에 허무하게 흩어지고 말았다.

         

         

       “일? 무슨 일이 있기는 했지. 바로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갔다는 일.”

         

       “…”

         

       “인정할게. 한때는 나 역시 철없고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걸. 생존을 위해 남의 비위를 맞출 필요가 있었다는 걸. 하지만 이제는 아니야. 나는…현실을 깨달았어.”

         

       “연아…”

         

       “나는 의지할 수 있는 남자가 좋아. 하지만 너는 아니야. 나를 지켜주기는커녕 죽음의 구덩이로 함께 끌고 들어갈 뻔했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아직도 이해를 못 하겠어? 너는 강하지도 않고 믿음직스럽지도 않아. 그나마 얼굴 하나는 봐줄 만했는데 그마저도 이제 쓸모없게 되어버렸지. 너는…내 곁에 있을 자격이 없어.”

         

       “…”

         

       한바탕 연이가 쏟아내는 사형 선고에, 나는 그저 고개를 푹 숙일 수밖에 없었다.

         

         

       “안 좋을 때 이런 말을 전한 건 미안하게 생각해.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너도 나처럼 이제 현실을 깨달아줬으면 했거든.”

         

       “…”

         

       “…가야겠어. 나는 이제 바쁜 몸이라서 말이야. 그럼…”

         

       말을 마친 연이가 몸을 돌려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 군더더기 없는 일련의 과정에는 어떠한 미련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럼 마지막, 마지막으로 딱 하나만 물어보게 해줘…”

         

       “…뭔데?”

         

       나는 온 힘을 다해 목소리를 짜내 연이를 겨우 붙잡았다.

         

       고개를 돌리는 연이의 얼굴에서는 이제 약간의 귀찮음마저 묻어났다.

         

         

       “마을에서의 일들은…우리의 지난 추억들은…정말 너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었어…? 정말로…”

         

       “그런 건 당연하잖아. 그저 자리만 차지하는 폐기물인 게.”

         

       “…”

         

       “그럼.”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듯, 연이는 즉답을 한 뒤 곧장 병실을 떠나갔다.

         

       고요한 병실에는 이제 물망초의 잔향만이 옅게 흘렀다.

         

       그리고 나는 인정해야 했다.

         

       내 유년기는, 이렇게 최악의 형태로 끝나버렸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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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recting the Villainess of the Academy

Correcting the Villainess of the Academy

아카데미 악당영애 교정하기
Score 3.8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reunited with the girl who left me when I lost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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