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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

       뭐, 아까처럼 루카스가 방심하고 있을 때라면 모를까, 그렇게 정면으로 마주 보고 선 채라면 나는 몇 번을 시도해도 루카스의 머리에 총을 쏴 맞출 수는 없으리라.

        

       몇 번이 아니라 몇백 번, 몇천 번을 시도한다면 한 번 맞출 수 있을지 모르지.

        

       ……그런데 본편의 전개를 위해서는 이놈이 살아있어야 했다. 원작에서 꽤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반동 인물이었으니까.

        

       그러니 앞으로의 일을 조금이라도 예상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개고생해서 죽여버린 이놈을 굳이 시간을 다시 돌려서 살려놔야 한다는 소리다. 그게 무슨 헛짓거리란 말인가.

        

       게다가 내가 이놈을 짜증 나게 생각하고 가끔은 정말 죽여버리고 싶다고 생각해도, 진짜 증오해 마지않는 상대는 또 아니다. 나는 원작 게임의 남자 캐릭터에게는 별다른 애정을 품고 있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막 혐오하는 수준까지는 아니었으니까.

        

       지금 이런 상황도 엄밀히 따지면 내가 자초한 것도 있고.

        

       게다가 황제는 도중까지는 주인공에게 간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역할이다. 주로 황제의 아이들을 통해서 도움을 주니, 루카스도 그중의 한 명이었다.

        

       어쩌면 나도 그중의 한 명이 될지도 모르고. 지금은 클레어가 아니라 내가 그 위치에 있었으니까.

        

       원작에서 클레어는 처음부터 아카데미에 들어가지는 않는다. 처음에는 아카데미 외부인으로서 주인공 일행과 서서히 얽히다가,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뒤에나 편입생이라는 명목으로 주인공 옆으로 침투한다.

        

       사실은 황제의 끄나풀이자 감시역이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도 내가 그 클레어의 역할로 대신 들어가게 될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클레어와는 성격이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클레어가 평소에는 소악마 스타일로 여럿 홀리고 다니다가 정체를 드러내면 굉장히 까칠한 성격으로 돌변하던 입체적인 캐릭터였다면, 내가 황제 밑에서 구축한 캐릭터는 ‘어느 상황에서도 냉철한 무표정 캐릭터’였다.

        

       이건 뭐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일찍이 성우를 꿈꾸며 성우학원에 다니긴 했지만, 연기에 어마어마한 재능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니 차라리 이런저런 표정을 지으면서 상황에 맞는 반응을 보이기보다는, 그냥 무반응, 무표정으로 일관된 분위기를 꾸리는 것을 택한 것이다.

        

       그리고 ‘마치 미래를 내다보는 듯한’ 반응속도와 이런 분위기가 상당히 잘 맞아떨어지는 데다, 시간을 돌려서 상황을 이미 알고 시작할 수 있는 나의 능력과도 겹쳐서 그 분위기가 훨씬 잘 맞아떨어졌다.

        

       “오, 실비아. 그리고 루카스.”

        

       내 옆에서 속을 박박 긁는 루카스를 있는 힘껏 무시하며 빠른 걸음으로 황궁 복도를 걷고 있는데, 저 멀리서 한 사람이 걸어왔다.

        

       황궁 안에서 ‘황제의 아들’인 주제에 머리 관리도 안 하고 개망나니처럼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루카스와는 다르게, 찬란하게 빛나는 금빛 머리카락을 정확하게 2대8 가르마로 가르고, 심지어 눈썹의 잔털마저 삐져나오지 않도록 깔끔하게 정리하고 다니는 이 사람도, 루카스와 마찬가지로 ‘황제의 아이’ 중 하나였다.

        

       나를 보는 얼굴에 화색이 감돌았다가, 루카스를 볼 때 그 표정이 확 식은 것은 분명 기분 탓은 아니리라. 이 사람은 깔끔한 것을 엄청나게 좋아하니까. 루카스는 따지자면 좀 지저분해 보이는 편이고.

        

       참고로 엄청 귀족처럼 보이지만 진짜 귀족은 아니다. 황제의 자식 중에서 진짜 황족인 사람은 피를 이은 딸 하나뿐이니까. 나머지는 죄다 뒷골목에서 긁어모은 부랑아 출신이다.

        

       그 부랑아 출신들이 어째서 죄다 그런 괴물들 뿐인지는 나도 모르겠다만.

        

       “루카스, 제발 부탁인데, 적어도 황궁 안에서는 단추를 목 아래까지 제대로 잠그고 다닐 수 없겠어?”

        

       “엉?”

        

       그리고 당연하지만, 루카스도 저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만큼 상극인 사이니까.

        

       “네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냐? 내 형이라도 되려고?”

        

       “내가 너보다 몇 개월 빨리 태어나긴 했지.”

        

       그리고 키도 더 크다.

        

       지금 이 상황에서 괜히 이런 말을 했다가는 루스 성질만 더 돋우겠지만.

        

       “얌마, 제이든.”

        

       루카스는 짐짓 화난 듯한 표정으로 성큼성큼 걸어 제이든 팬그리폰을 향해 걸어간다.

        

       ……하지만 저 표정이 연기라는 것이 참 티 났다.

        

       제이든을 만날 때마다 지랄……이 아니라, 그, 시비를 거는 루카스였지만, 사실 그 이유는 단순히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만은 아니다.

        

       제이든은 이미 제국 최강의 기사다.

        

       루카스는 훗날 제국 제일검이 되고.

        

       최강의 기사와 제일검. 둘이 함께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조금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제이든이 그 명성을 얻은 것은 전장이었고, 루카스가 후에 그 명성을 얻게 되는 것은 검성을 베어버린 뒤다.

        

       그러니 그 두 호칭이 뜻하는 바는 미묘하게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제이든이 황제를 거의 신봉하며 그 명령을 목숨 걸고 따르는 군인이라면, 루카스는 언젠가 자신이 황제를 너머서 보이겠는 야망을 품은, 세상에서 가장 강한 존재가 되고 싶어 하는 미친놈.

        

       싸우는 것도 엄청나게 좋아한다. 아마 내가 진심으로 덤볐다면 오히려 좋다고 달려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아까는 방심한 나머지 그것조차 하기 전에 머리에 총을 맞아버렸지만.

        

       “내가 전에도 말하지 않았냐? 나한테 명령하고 싶다면 일단 검으로 나를 꺾으란 말이다. 네가 나보다 확실하게 강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면 내가 말 오줌을 마시라는 명령이라도 들어주겠다니까?”

        

       “……하아.”

        

       제이든은 다소 과장된 동작으로 한숨을 푹 내쉬면서 얼굴을 쓸어내린 뒤, 아주 예술적인 연속동작으로 그 쓸어내린 손을 나에게 척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실비아를 봐라. 그 몸가짐 하나하나에 기품이 실려있는 것을! 게다가 네가 허구한 날 검을 휘둘러도 귀족다운 절제되고 아름다운 동작만으로 모조리 피해버리지. 그뿐인가? 폐하를 알현할 때 조차 나이에 걸맞지 않은 아름다운 동작으로 예를 갖춘다. 너는 네 동생의 반만 닮아봐라!”

        

       그 모든 것이 전부 수백 수천 번 연습한 결과지만.

        

       뭐, 여기 있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보일 거다.

        

       ……그리고, 이것도 원작과 매우 벗어난 관계였다.

        

       내가 클레어 대신 있는 것은 둘째치고, 클레어는 제이든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옷을 깔끔하게 입고 귀족다운 몸가짐을 가진 사람을 좋아하는 제이든이 보기에 클레어가 입고 다니는 복장은 너무 ‘흉한’ 것이었으니까.

        

       물론 나는 그런 복장을 굳이 입고 다닐 생각도 없고, 이 이미지에 맞지도 않는다고 생각해서 최대한 깔끔하게 입고 다니긴 한다만.

        

       그게 제이든에게는 굉장히 호감을 느낄 요소였던 모양이다.

        

       덕분에 나는 제이든이 가장 아끼는 ‘여동생’이 되어버렸다.

        

       ……얼마나 아끼냐면, 언젠가 내가 남자친구를 사귀게 된다면 자신이 먼저 가서 그 자질을 알아보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닐 정도였다.

        

       그걸 니가 왜 알아봐, 이 미친놈아.

        

       아, 물론 이 인간은 원래도 조금 개그 캐릭터로서도 쓰이던 캐릭터였으니 아주 이해 못할 반응은 아니었다.

        

       “…….”

        

       아, 조금 전까지 호승심 가득한 표정이던 루카스의 표정이 진짜 형편없이 일그러져 버렸다.

        

       그래, 좀 그렇지? 미친놈이 보기에도 좀…… 페도스러워보이는 발언이긴 했다.

        

       고작 열두 살 짜리한테 아름답다느니 뭐라느니.

        

       물론 제이든은 그런 의도가 전혀 없었고, 그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할 뿐이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기품있는’ 같은 단어를 선택하면 안 되는 걸까?

        

       “자, 자, 실비아. 가자.”

        

       조금 전까지 완전히 양아치 같은 목소리로 말하던 루카스가 갑자기 엄청 자애로운 오빠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런 변태 옆에 있는 거 아니야.”

        

       “변태라니, 그게 무슨 개소리냐!”

        

       내 어깨를 잡고 몸을 돌려서 살짝살짝 미는 루카스에게 제이든이 강렬하게 항의하며 따라왔다.

        

       *

        

       황제의 아이들이란, 원래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문자 그대로의 뜻 외에는 뭐 어떻게 쓰일 일이 없는 단어다.

        

       하지만 이 게임…… 아니, 이 제국 내에서는 일종의 보통명사로써 쓰인다.

        

       평민들은 잘 모르겠지만, 귀족들 사이에서는 황제의 사조직 같은 단어로 쓰이는 단어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대체 어떻게 긁어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황제가 ‘아들과 딸’이라고 부르는 인간들은 죄다 특정 분야에서 인간의 범위를 벗어난 존재들 뿐이었다.

        

       ……따지자면 나도 그랬고.

        

       “오, 다들 와 있었네?”

        

       루카스가 알현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며 말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알현실에는 황제를 호위하는 기사들이 있어야 할 터였지만…… 지금 알현실 안에는 황제와 성인 여성 한 명, 그리고 남성 한 명만이 있었다.

        

       “오, 왔느냐.”

        

       게임상에서 악의 조직의 최종보스로 나오는 주제에, 우리를 부를 때는 퍽 아버지다운 목소리였다.

        

       아서 3세.

        

       ‘팬그리폰’의 화신.

        

       아제르나 제국의 역사상 가장 강력한 황권을 확립한 황제.

        

       세상의 모든 것을 자기 발아래 두겠다는 야심을 가진, 문자 그대로 ‘세계정복’을 바라는 악당이었다.

        

       그리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두 사람도 그런 ‘황제의 아이’ 중 하나였고.

        

       검은 머리카락이 등까지 내려오는 여리여리한 인상의 남자는 그 여리여리한 인상과는 다르게 무지 강한 권사였다. 저렇게 보여도 웃통을 벗으면 몸에 체지방이 있나 싶은 마른 근육의 몸이었다.

        

       말수가 적고, 얼굴도 반반해서 게임을 플레이하는 여성 유저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참고로 루카스도 꽤 인기 있는 캐릭터 중 하나였고.

        

       제이든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앉아있는, 조금 음침한 인상의 여자는 원작에선 클레어의 스승 격 되는 인물이다. 물론 관계상 ‘언니’라고 불렸었다.

        

       마치 채찍 같은 검을 휘두르는 여자. 참고로 원작 시작 시점에선 이미 고인이다. 어떻게 죽었는지는 나오지 않았고, 그저 클레어의 무기의 원주인으로만 등장했다.

        

       클레어를 참 귀여워했었는지 이것저것 많이 가르쳐줬다던데, 그 나쁜 성격까지 그대로 이어받아 버려서 클레어가 호불호 갈리는 캐릭터가 되는데 일조했다.

        

       ……아니지, 사실 그건 그냥 설정일 뿐이고 원래는 작가가 잘못한 거지만…… 뭐, 여기서 그런 걸 따져봐야 별 의미 없고.

        

       그나저나, 검술에 재능이 있다는 클레어가 그레이스 가에서는 어떤 검술을 배우게 될지 궁금하다. 눈이 옹이구멍이 아니라면 그레이스 남작은 반드시 클레어에게 검술을 가르칠 거고, 아카데미에도 보낼 테니까.

        

       진짜 딸인 황녀는 여기 없었다. 하긴, 원작에서 ‘황제의 아이’에게 느끼는 열등감이 일종의 캐릭터성이었으니까. 그 열등감을 뛰어넘는 과정이 캐릭터 스토리이기도 했고.

        

       그러면 혹시 나한테도 열등감을 느끼게 되려나.

        

       “기체후 일향 만강 하셨습니까.”

        

       “음.”

        

       내가 수백 번 연습한 자세로 무릎을 꿇으며 그렇게 말하자, 황제는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뒤쪽에서 크으, 하면서 감동하는 제이든의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너도 건강하였느냐.”

        

       오빠 호소인이 휘두른 검에 몸이 반으로 갈려 죽을 뻔했는데요.

        

       같은 말은 할 수 없었다.

        

       “예, 언제나처럼 수련하며 지냈습니다.”

        

       “훌륭하다. 스스로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진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 네 나이도 이제 충분하니, 조만간 임무를 내리도록 하겠다. 너무 걱정하지는 말거라. 네 능력이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임무일 테니.”

        

       악당치고는 말투가 진짜 인자한 아버지 같은 말투였지만, 저 임무는 분명 누군가를 죽이라는 임무일 게 뻔했다.

        

       아마 귀족파의 누군가를 죽이거나, 뭐 아니면 그 비슷한 상태로 만들라는 소리겠지. 원작에서도 황제가 몰래 죽인 귀족의 수가 두 자릿수라고 했다니까.

        

       심증은 있다. 하지만 황제를 탓하려면 그저 심증만으로는 곤란하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임무를 열두 살짜리 어린애한테 맡긴다는 시점에서, 이 양반은 역시 악당이 맞았다.

        

       아마 클레어의 성격이 삐뚤어지게 된 데는 이 황제도 한몫했으리라.

        

       “임무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아버지.”

        

       ‘황제의 아이’라는 명칭에 가장 경도되어있는 사람은 제이든이었다.

        

       인기가 없었던 이유도 여기 있다. 입체적인 면 없이, 철저하게 황제만 바라보는 캐릭터였으니까.

        

       “그래, 수고가 많았다. 백작은 살았겠지?”

        

       “예, 죽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씀은 아주 정확하게 알아들었을 겁니다.”

        

       “좋다.”

        

       제국 최고의 ‘기사’의 입에서 나올 말인가, 이게.

        

       “루카스.”

        

       “해결하고 왔슴다.”

        

       껄렁껄렁하게 대답하는 루스를 제이든이 노려보았지만, 황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훌륭하다. 내 자식들이 이렇게 일을 잘 해주니, 이 아버지는 기쁘구나. 앞으로도 부디 이렇게만 해다오.”

        

       인자한 미소를 짓는 황제.

        

       ……그리고 확신하건대, 저 미소 또한 진심이리라. 아이들이라는 것도, 아버지라는 말도. 이 황제는 전부 진심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기에, 이 사람이야말로 진짜 악당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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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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