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8

       연구는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환상을 통한 오감 구현. 내 컨트롤이 없어도 자동으로 움직이는 NPC들. 

       

       지금 이 상태만으로도 가상현실게임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초천재 대마법사 자색 마탑주 유나님의 힘을 빌려서 모델링 작업도 순조롭게 진행중이다. 무협이나 sf처럼 낯선 것들은 만드는 데 얼을 타던데, 마탑주가 경험한 것들은 상상 이상의 속도로 작업을 끝내더라.

       

       작업 인원이 둘로 늘자 예상치 못한 이점이 있었는데, 새로운 시각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이었다.

       마탑주는 집사의 목에 초커를 채울 것을 제안했고, 자색 마탑 여성진들의 만족도가 유의미하게 상승했다.

       

       이제 내게 필요한 건 하나 뿐이다. 

       반영구적으로 기동 가능한 동력원. 

       

       게임도 서버를 돌리려거든 서버실에다가 빵빵하게 전력을 공급해줘야 하지 않던가. 내 세계를 영구적으로 유지해 줄 수 있는 막대한 마력이 필요하다. 

       

       그런 물건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한 나라의 국보는 되어야 그런 출력이 나올 테니까.

       

       싸구려 마정석을 긁어 모아서 서버 유지에 들이붓는 건, 아무리 마탑으로 들어오는 지원금이 늘었다지만 쉽지 않은 금액이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 마탑주와 상담을 해 봤더니.

       

       “반영구적인 동력원⋯⋯ 이라. 으흠, 음. 내가 알기로는, 황실에 천년고룡의 드래곤 하트가 있어. 자연적으로 막대한 마력을 발생시키는⋯⋯ 마법사에게는 꿈의 아티팩트야.”

       

       “그럼 그걸 좀 달라고 해 볼까요?”

       

       “미쳤니?”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칼같이 미쳤니가 박히는 걸 보니 어려운 일인가보다.

       마탑주는 이후로도 몇 가지 반영구 동력원의 예시를 알려줬는데, 하나같이 구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칼 하나 챙긴 다음에 드래곤 멱을 따러 갈 수도 없는 노릇이라.

       

       “역시 황실에 영구 대여를 요청하는 게⋯⋯.”

       

       “그러니까 미쳤냐니까! 요, 요즘 정세도 흉흉하고. 조심해야 하는 타이밍이거든?!”

       

       “연구만 하다 보니까 바깥 세상 일을 잘 몰라서⋯⋯ 요새 어떤데요?”

       

       “으휴.”

       

       마탑주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환상 마법으로 화이트보드 하나를 만들어냈다.

       이게 환상 마법의 몇 안되는 장점이다. 종이 아끼기.

       

       “황제 폐하께서 3년 후에 후계자를 결정하겠다고 못을 박았어.”

       

       “오.”

       

       “황제 폐하 슬하에 자식은 셋. 첫째 황녀 일레인, 둘째 황자 이리드, 셋째 황자 스레도.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셋 모두 황위를 노리고 있어.”

       

       피비린내나는 암투와 음모의 냄새가 났다.

       황제 자리를 걸고 펼쳐지는 골육상쟁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

       

       “제국의 살을 깎아먹지 않는 선에서 ‘누가 더 제국을 부강하게 만들었는가’를 채점 기준으로 삼으셨대. 황제 폐하께서 방해는 묵인해도 친족살해 등은 엄벌을 내리겠다고 하셔서, 제법 조용해.”

       

       피비린내가 아니었구나.

       

       “첫째 황녀는 잃어버린 동쪽 땅의 수복에 열을 올리고 있고, 둘째 황자는 미래의 인재들을 육성하는 데에 집중, 셋째 황자는 아카데미에서 힘을 기르고 있대.”

       

       “여기 아카데미도 있어요? 귀족과 평민이 같이 들어가고, 일단은 실력제라고는 하지만 서로 알력싸움을 하고, 심심하면 온갖 테러가 벌어져서 전쟁터보다 위험한?”

       

       “귀족과 평민이 같이 입학하는 것도 맞고, 서로 싸우는 것도 맞고, 테러가 벌어지는 것도 맞지만, 전쟁터보다 위험할 리가 없잖니. 아카데미는 교육시설이야.”

       

       테러는 일어나는구나.

       역시 이세계에서도 아카데미의 국룰은 지켜지고 있었다.

       

       아카데미 하니까, 혹시 내 이세계 환생이 책 빙의 템플릿은 아닐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딱히 마왕이 부활하려고 하지도 않고, 뭔가 세계의 악의 축 같은 것도 없어서 아니겠다 싶었지만.

       

       내가 죽기 전의 트렌드가 원작 n년 전이 아니었던가. 또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다.

       

       자색 마탑주는 화이트보드에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키가 살짝 모자라서 까치발을 들고 있는 부분이 포인트다. 화이트보드를 좀 작은 걸로 만들었으면 되는 건데.

       

       “첫째 황녀는 귀족층의 지지를 받고 있고, 셋째 황자는 아카데미에서 신세대들과의 친목을 나누고 있어. 둘째 황자는 어중간한 약세라는 게 정설이야. 셋 다 추구하는 이상이 달라서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분명하게 갈리는데⋯⋯.”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한 귀로는 새겨 듣고, 다른 쪽 뇌로는 다른 걸 고민했다.

       

       자색 마탑주는 은근히 정치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하긴, 지원금을 다이렉트로 꽂아주는 곳에 황실이니만큼 관심이 안 갈 수가 없겠다. 

       

       다음 대 황제가 ‘환상 마법은 구리니까 연구비를 대 주지 않겠다’ 고 선언하면 그 날로 자색 마탑은 알거지 신세가 되지 않겠는가. 다른 귀족 스폰서들도 없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괜히 터무니 없는 것을 요구했다가 황제 후보에게 밉보이지 말고, 동력원은 천천히 알아보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히려 기회가 아닐까?

       

       다음 대 황제 후보들을 초대해서 내 TRPG로 혼을 쏙 빼놓는 것이다.

       그렇게 티알 중독자로 만들어서 TRPG-세션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몸으로 만들어버린 다음에, 다음 세션을 원한다면 드래곤 하트를 내놓으라고 협박하면 된다.

       

       일거양득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농담이다.

       

       내가 아무리 TRPG를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현실 감각을 엿 바꿔 먹은 사람은 아니다. 마탑주에게도 편한 사이니까 ‘남자 집사 대돌격’ 같은 것도 하는 거지.

       

       한 손에는 지원금, 다른 한 손에는 국가권력을 들고 있는 무시무시한 지배자에게 어그로를 끌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랬다가 목 날아가면 누가 책임진다는 말이냐.

       

       마탑주는 설명하고, 나는 딴 생각을 하는 기묘한 대치가 20분 정도 이어졌을 즈음.

       

       “마탑주님! 마탑주님! 급보입니다!”

       

       쾅쾅쾅쾅쾅.

       

       자기가 급해 죽겠다는 걸 온몸으로 티내는 선배가, 땀에 흠뻑 젖은 채로 문을 박차고 구르듯이 들어왔다. 

       

       자색 마탑주 유나는 유능하며 겸허한 인물이었으므로, ‘이 무례한 녀석!’ 하고 상대를 개구리로 만드는 대신 무슨 일이 터졌는지 경청하는 태도를 보였다.

       

       “2, 2황자님이⋯⋯ 지금 방문하신다고!”

       

       “?”

       

       자색 마탑주의 서늘한 시선이 나에게 쏘아졌다. 만년한철이었어도 예쁘게 구멍이 뚫릴 것 같은 날카로운 시선이었다. 나는 황급히 고개를 저어 부정했다. 

       

       “네가 몰래 편지 부친 거 아니야?”

       

       “아닙니다. 진짜 아님.”

       

       “네⋯⋯ TRPG를 걸고?”

       

       “TRPG 걸고.”

       

       그러자 원망할 곳이 사라져버린 마탑주는 분노가 가라앉았고, 분노가 가라앉으니 눌려 있었던 당황당혹걱정 등의 감정이 터져나왔다. 꽃이 시드는 모습을 본 적 있는가.

       

       꽃 시드는 모습을 천배속으로 가속하면 흡사 이런 장면일 것이다.

       

       마탑주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달달달 떨었다.

       

       

       “왜? 왜? 진짜 왜⋯⋯? 왜 자색 마탑에⋯⋯?”

       

       “음.”

       

       나는 최악의 가정 하나를 떠올렸다.

       

       “마탑 지원금 액수를 담당자가 잘못 적어서, 돌려받으러 오고 있다거나⋯⋯.”

       

       “흐에에에에엑!!”

       

       마탑주는 영혼이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상상만으로도 버티기 힘들 정도의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어쨌건, 2황자는 이미 온다고 한다. 우리가 황족을 문전박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맞설 수밖에.

       나는 마력을 끌어올렸다. 내 배후로부터 하트와 집사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제는 자율행동에 약간의 물리력 행사도 가능한 홀로그램 군단이다.

       

       “하트, 집사들과 함께 폐인 마법사들을 눈에 안 띄는 곳에 숨겨두도록.”

       

       “하잇!”

       

       환상의 군세가 흩어졌다. 자색 마탑에 굴러다니는 피폐한 마법사들을 숨기기 위하여.

       

       이건 일종의 응급치료에 불과했다. 제대로 된 지휘를 위해서는 자색 마탑주의 명령이 필요하다.

       

       나는 쓰러진 마탑주의 옆에 무릎을 꿇어 앉아서 사지를 주물렀다.  

       

       ⋯⋯눈대중으로는 얇다 싶었는데 생각보다 살집이 있었다. 살쪘다는 건 아니고, 적당할 정도로. 그리고 근육이 하나도 없어서 말랑말랑했다.

       

       혼절했던 마탑주가 게슴츠레 눈을 떴다.

       

       “꿈인⋯⋯ 거지? 내가 들었던 건⋯⋯.”

       

       “꿈이 아니에요, 탑주님. 정신을 차리셔야 합니다. 황족이 오니까!”

       

       “윽, 으그윽⋯⋯ 어째서⋯⋯.”

       

       “연구비를 위해서라도!”

       

       정신을 차리고도 낑낑 앓던 마탑주는, 지원금을 사수하기 위해 분연히 몸을 일으켰다.

       황족이 무슨 이유로 방문했는지는 모른다. 모른다면 모든 준비를 할 수 밖에 없다.

       

       마탑주는 탑 전역의 음성 재생 장치와 연결된 수정구를 집어 들었다.

       

       “찰리! 잘못했을 때 퍼포먼스용 반성문이랑 휠체어 보관하고 있지? 일단은 준비해 둬!”

       

       “오뤼나, 폐인같은 녀석들은 연구 A동에 몰아넣고 못 나오게⋯⋯ 하트가 옮기고 있어? 알았어. 그럼 얼굴 멀쩡한 녀석들 꽃단장 좀 시켜 둬!”

       

       “메이렐, C동 애들 다 끌고 나가서 마탑 1층부터 클린으로 싹 훑어!”

       

       

       나폴레옹을 실제로 본다면 이런 느낌이었을까⋯⋯?

       마탑주 유나 유렌스토 바이올렛아이리스는 완벽하게 준비를 끝마쳤다. 황자가 불미스러운 일로 왔을 때를 대비한 대성통곡용 물약에, 혹시 기습 감찰일 경우를 대비한 있어 보이는 연구실적까지.

       

       급한 불을 끄고 난 뒤, 마탑주는 내게 단단히 새겨두라고 말했다.

       

       “황족을 만나더라도 절대 버벅거리지 말고, 또박또박 대답하고, 시선 오래 마주치지 말고, 얼어붙어 있지도 말고, 무엇보다도 공손하게 행동해야 돼. 알겠지?!”

       

       ===============================================================

       

       “저, 저, 는, 그게, 유나, 유렌스토⋯⋯ 어, 자, 자색 마탑, 줏, 그, 바이올렛, 아이리쓰⋯⋯.”

       

       “⋯⋯⋯⋯.”

       

       마탑주는 버벅거리고, 더듬더듬 대답하고, 2황자와 눈을 마주친 채로 얼어붙어서 기계적으로 뚝딱거렸다. 

       

       나는 2황자가 젠틀한 신사이기를 기도할 수 밖에 없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스터 Ilham Senjaya.

    연참이란⋯⋯ 역혈기공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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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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