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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

    루크는 바닥에 앉아서 인상을 쓰며 마법서적을 읽고 있었다.

    “…….”

    루크가 고른 책이 어린이가 보기엔 굉장히 어렵고 난해한 ‘마법서적’이었기 때문이다.

    예르나가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책상에 가져가서 읽지, 왜 바닥에서 읽고있어?”

    “자리가 없잖은가. 책을 읽는데 방해하고싶지도 않고. 나는 바닥이어도 충분하니까.”

    루크 역시 애서가인만큼, 누군가 책을 읽을때 말을 거는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다만, 예르나가 그에겐 너무나도 고마운 인물이었기에 참을 뿐.

    그래서 루크는 남들이 책을 읽는 순간을 방해하지 않고자 하는 마음도 컸다.

    저기 앉아서 꾸벅꾸벅 졸면서 책을 읽는 남자조차도, 책을 읽는중이기는 하니 말이다.

    “그런데, 대체 무슨 책을 읽길래…….”

    예르나가 살짝 표지를 보니 그것은 ‘마법의 역사와 언어학’이라고 쓰여져 있었다.

    ‘저걸 골랐다고?’

    예르나는 당황했다.

    루크는 마법사가 꿈인 아이.

    그래서 저런 책을 갖고 싶었던 거겠지.

    확실히 그건 마법사들의 필독서니까.

    하지만 어른들도 머리를 싸매야하는 두껍고 어려운 책이었다.

    루크가 읽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생각했다.

    손님 몇명이 루크를 보며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어주며 지나치는걸 보고있자면, 자신 말고도 그리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고 확신한다.

    어떻게봐도, 어린이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닌 것이다.

    “그, 그거. 정말 이해할 수 있어서 고른거니?”

    루크는 예르나의 말에 책을 덮으며 말했다.

    “그럴 줄 알았네만, 생각보다 글을 읽기가 어렵구나.”

    “그야 그렇겠지, 너는 어린애잖아.”

    “…….”

    예르나는 그게 어린애의 투정이라고 생각했지만, 루크는 그런 뜻이 아니었다.

    루크는 과거에 아카데미의 학장이었으며, 각종 사전을 비롯해 수많은 논문을 읽어보았고, 또 당시에는 그것들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위치에 존재했으니 문장이 담는 의미가 얼마나 난해하느냐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것은 단순한 ‘시대의 차이’.

    사실 5000년의 괴리감은, 단순히 기술의 발전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전체적인 문법과 글자 자체가 크게 변한것은 아니지만, 결국 많은 문자들이 세월에 의해 형태가 생략되고 단순해져서 루크가 읽기 생소한 단어도 있었고, 특히나 클래스마법 특유의 ‘마법 언어’. 이건 정말 너무나도 달랐다.

    서클마법의 주 재료는, ‘의지’. 사용자의 의지를 중요시하며, 마법은 그 의지에 따라붙는 현상이다.

    따라서 상상과 의지의 구체화를 방향으로 나아갔으나, 클래스마법은 그 개념부터가 달랐다.

    클래스마법은 완벽하게 해석한 현상에 대한 원리로, 깔끔하게 조율된 ‘영창’을 주 재료로 삼아 마법을 현상화한다.

    현상을 일으키고자하는 확고한 의지가 있다면 영창을 생략하더라도 어느정도 세상이 의지에 화답하는 서클에 비해, 영창을 조금 틀리거나 순서를 뒤바꾸는 것 만으로도 전혀다른 효과가 나타나는 클래스마법.

    쉽게 비유하자면, 표음문자와 표의문자의 차이다.

    마법체계가 근본부터 달라진데다, 그 마법이 뿌리깊게 이어져온 시대의 언어역시 그 영향을 받아 조금씩, 어떤것은 크게 바뀌어버려 이해가 불가능한 문장이 꽤나 보였다.

    물론 루크에게 고고학적, 언어학적 지식이 없는것은 아니었지만, 매 문장마다 그것을 해석하고 번역하며 읽는것은 꽤나 피로감을 동반하는 일이었다.

    “조금 더 쉽게 풀어쓴 책이 있으면 좋을텐데…….”

    “아, 루크. 그렇다면 이건 어때?”

    ————

    “어때? 마음에 드니?”

    “정말 마음에 드는구나. 주석도 깔끔하고, 이해하기 쉬운 말로 쓰여져있어. 정말 고맙다.”

    “그래? 그럼 다행이긴 한데…….”

    루크의 귀가 파닥거리는걸 보니 어지간히 기분이 좋나보다 하고 미소지었던 예르나는, 루크가 소중하게 안고있는 책을 보며 생각했다.

    ‘학습지라니……. 진짜로 저런걸 좋아하는 아이는 내 생에 처음봐…….”

    결국 루크가 고른것은 ‘마법의 1클래스부터 4클래스까지, 차근차근 따라잡기’라는 이름의 학습지였다.

    그것도, 학습지코너에서 몇시간이나 비교하며 찾아낸 책.

    안내하던 서점직원도 조금 당황하여 이야기했었지.

    ‘어머, 이건 고학년용인데. 어린이가 읽기엔 조금……. 그림도 별로 없고요, 응용문제도 너무 딱딱하고 어려워서 잘 안팔리는 학습지인데요.’

    ‘이정도가 내게는 딱 알맞다. 꽤나 재미있구나.’

    ‘그러니……? 공부를 좋아하는가 보구나. 열심히 하렴.’ 

    제 자리로 돌아가면서도 몇번이고 루크를 확인하고는 했지.

    사실은, 지금 루크가 들고있는 학습지 말고도 꽤 많은 학습지가 예르나의 양 팔을 무게로써 짓누르고 있었다.

    물론 대부분이 루크의 나잇대에 걸맞는 책은 아니었지만.

    그중에 단 한권, ‘우리아이 언어공부, 한권으로 끝내요!’정도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이걸 다 읽을 수는 있나……?’

    물론 공부를 잘하고 좋아하는 녀석은 어딘가에 있겠지만, 학습지를 저토록이나 좋아하는 아이는 아마 없지 않을까.

    하지만 불안하기도 했다.

    이토록이나 사놓고 읽지 않는다면 곤란하니.

    학습도서 대량구매 이벤트라니, 속아넘어간거 아닌가?

    대량으로 구매한 학습지가 결국엔 헐값으로 중고매물이 되는 경우는, 예르나 그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도 그런 건 적지않게 일어나는 일이었으니까.

    그러니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걸 다 읽기는 할거야?”

    “물론이지, 읽지 않을거라면 구매하지도 않았을거다. 예르나, 그대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 그래…….”

    기껏해야 동화책 같은걸 생각했던 예르나지만, 루크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아무렴 어떠냐고 생각했다.

    그녀는 한번만 더 속아보기로 했다.

    ———

    예르나는 서에서 검사관으로 일하는 동료, 시에나 포르핀드의 직장방문에 차를 내어주며 자리에 앉았다.

    “벌써 너 내일 쉬는 날이야?”

    “응, 뭐 해야하는거 있었어?”

    “아니, 그냥 깜빡해서. 요즘 내가 좀 정신이 없어가지고.”

    예르나는 가볍게 웃으며 볼을 긁었다.

    시에나 포르핀드, 어릴적부터 친하게 지냈던 다크엘프였는데 꾸준히 교류하며 친분을 쌓아온지라 어른이 되어서도 이렇게 종종 만나고는 했다.

    게다가, 엘프는 마나에서 태어나고 마나와 생활하는 종족. 아무리 마법도시에도 마력이 충만하다지만, 그것은 인공적으로 배열을 손본 마나이므로 자연의 마나와는 다른 것이다.

    본래 숲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던 엘프.

    그렇게 주기적으로 충만한 숲의 마나를 받아들여야한다는 핑계로, 예르나가 당직을 설때면 가끔씩 찾아와 이렇게 신세를 지는것이 시에나의 일과중에 하나다.

    사실은, 아무리 자연의 마나라고해도 크게 다르진 않다.

    ‘어쩌면 피부미용과 숙면에 효과가 있을지도 모른다’정도의 미신적인 효과이기는 했지만 친구를 보는데엔 그런 핑계정도로도 충분했다.

    “뭐때문에 그리 정신이 없대, 너 설마……. 연애하니?”

    “미쳤어? 내가 무슨 연애를 해.”

    “하긴, 맨날 집, 숲, 집, 숲. 그러는데 네가 남자를 사귈 수 있을리가 없지. 나도 그냥 농담한거야.”

    “그런게 날 더 비참하게 해. 알아?”

    짐짓 화난척 표정을 지으며 찻잔을 들어올린 예르나가 찻잔을 입가에 가져가 한모금을 했다.

    제대로 우려진 차에 은은하게 배여있는 향이 꽤나 좋았다.

    역시 자연의 마나 속에서의 차 한잔은 각별한 법이지. 

    “그럼, 뭐가 그렇게 정신없게 했는데?”

    “저번에 내가 발견했던 그, 꼬마애 말이야. 기억해?”

    “응. 기억나. 걔가 왜?”

    시에나가 뒤로 묶어두었던 고무줄을 풀어내며 물었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서 편하게 소파에 기대려는 것이었다.

    새하얀 은발이 사락거리며 내려온다.

    그녀가 머리를 푸는것을 잠시 기다려준 예르나가 생각을 정리하고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 받아주는 시설을 아직도 찾지 못해서 내가 데리고 있거든? 그런데…….”

    밤하늘을 바라보며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쏟아내었다.

    ———-

    “심장에 서클이 있었다고?”

    “응. 저번에 검사할땐 몰랐어? 검사기에 그런건 안나오나?”

    “그건 뭐, 단순한 신원조회같은거니까……. 종족이나 성별, 키나 몸무게같은게 아니면 볼 수 없지. 그래도 조기에 발견해서 다행이네, 어떻게 됐어?”

    그녀의 질문에 예르나는 조금 표정이 어두워지며 대답했다.

    “그, 서클이 너무 완벽하게 동화되어있어서 제거할 수가 없대. 마력감응력도 너무 뛰어나고…….”

    “어머. 웬일이래.”

    서클을 지울 수 없다는건, 결국 평생을 심장에 폭탄을 달고 살아가야한다는 것이었다.

    의지를 통해 발현되는 서클마법의 특성상 발생하는 현상을 제어하거나 판단하기 쉽지않고, 마력을 다루는 감각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면 서클이 폭주해 심장을 옥죄어 크게 아프거나, 죽을수도 있는 무서운 ‘장애’, ‘질병’정도로 취급되는 현대다.

    하지만 다행히도 심장에 서클이 새겨지는 경우는 정말 드문 일이고,  제때 제거수술을 받으면 괜찮은지라, 사춘기의 시절에 겪는 가벼운 병 정도로 여겨지지만 말이다.

    “걔는 그게 어쩌다가 생겼다니?”

    “모르겠어ㅡ. 서클이 새겨질때의 영향인지, 기억을 못하더라고.”

    자연적으로 서클이 새겨지는데엔 꽤나 큰 계기가 필요했다.

    사춘기시절의 큰 감정의 동요라던가, 필사적인 욕망, 어쩌면 강렬한 기억.

    무엇이 트리거가 되어 루크의 심장에 남았을지는, 그 본인 말고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거, 혹시 걔 그거 아니야?”

    시에나가 꽤나 진중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뭔데?”

    예르나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 조금 긴장하며 이어질 말을 듣는다.

    “그, 이건 단순히 내 추측인데? 저번에 네가 검거했다는 노예상 말이야……. 정말로 ‘희귀한 동물’을 부자들에게 불법으로 팔아서 돈을 버는 녀석이었다나봐. 실제로, 옛날엔 노예 매매도 했던 모양이고……. 거기서 알짱거리던것도, 희귀한 생물을 붙잡아 팔아넘기려고 했던 것 같아.”

    “진짜야?”

    그녀는 역시 그럴거라 예상했던걸 확답을 받게되니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러나 시에나의 말은 거기서 끊기지 않았다.

    “어쩌면, 루크는 어떤 귀족한테 아주 심각한 학대를 받고있었던거 아닐까?

    거기서 필사적으로 도망치기위해, 어쩌면 지팡이 없이도 마력을 각성해야만 했던거지. 

    그 동화의 영웅처럼.

    동화에 나오는 대마법사 ‘루크 이루시’처럼 말이야ㅡ. 

    어쩌면, 루크는 자기를 대마법사 루크 이루시라고 생각하는 걸지도. 

    혹시, 그래서 ‘마법사’가 되고싶은게…….”

    “뭐?”

    이어진 시에나의 가설은 그럴 듯 했다.

    예르나가 어렴풋이 생각했던 루크의 과거와도 어느정도 통하는 면이 있었고, 동화속에 인물과 이름이 동일하다는건 흔하지 않은 일이기도 했으니.

    루크가 자신의 부모의 이름을 외우고 있었던걸 보면 성은 이루시가 맞을지도 모르지만, 이름은 루크가 아닐게 분명하다.

    그야, 루크는 남자의 이름이니까.

    어쩌면, 그녀는 자신의 성, 이루시와 같은 영웅의 동화를 보며 악몽같았던 노예의 생활에서 도망치는걸 꿈꾼게 아닐까?

    처음 보았을때의 그 멍자국들은…….

    또 검사결과는 인간이면서, 귀와 뿔이 매달린 그 외형…….

    변깃물로 샤워를 한다던가, 코코아나 참치캔같은 음식을 전혀 모른다던가.

    또, 모든걸 새로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그 눈과, 아무리 아이라지만 여자로서 기본적인 상식이 결여된 것 같은 행동거지…….

    루크가 기억하지 못하는 거지만, 정말 동물처럼 ‘길러지고’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 말투가 특이한건…….”

    “자신을 루크 이루시라고 생각하니까, 그에 걸맞은 말투를 하는게 아니겠어? 어린애잖아.”

    “…….”

    어쩌면, 루는 정말로 정신과 상담을 받아봐야할지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와, 대마법사의 정신과 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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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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