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8

       아프다.

       시발……더럽게 아파!

         

       총알이 내 몸을 관통했을 때부터 불로 전신을 지지는 듯한 고통이 계속되었다.

       그 자리에서 비명을 지르고 엉엉 울고 싶었다.

         

       고아원 시절.

       관리인들에게 몽둥이로 뒤지게 처맞은 적이 있었다.

       그때만큼이나 아팠다.

         

       고작 콩알만 한 총알이 그런 충격을 줄 수 있는 게 놀라웠다.

         

       “후후.”

         

       하지만 내 입에서 나올 수 있는 건 웃음뿐.

       항상 평정심을 가장하기에, 반사적인 욕설이나 비명도 허락하지 않는다.

         

       욕을 하려면 머릿속으로 대화를 나누듯 정돈된 단어로 나열해야 했다.

       당연히 그런 욕은 고통과 울분을 푸는 것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자작의 방에 들이닥친 저택 사람들.

         

       그들은 나와 엘라를 끌고 나가 따로 떨어트려 두었다.

       나는 지하 감옥에, 엘라는 위층의 어딘가에 가둬졌다.

         

       죄인을 위한 구급 조치 같은 건 없었다.

         

       저택 사람들이 보기에 나는 주인을 덮치려 한 파렴치한 악당이었다.

       죽으면 죽든지 하고 돌바닥에 그대로 내팽개쳐 두었다.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그들이 보는 앞에서 자작의 옷을 풀어헤치고 자작의 몸에 손을 댔다.

         

       그들이 당장 내 목을 매달지 않는 이유는 그저 주인을 돌보는 일이 더 급했기 때문이다.

         

       바닥은 내가 흘린 피로 질척였다.

       피바다 속에 잠겨서 나는 생사의 기로를 헤맸다.

         

       어떻게 총을 대신 맞을 생각을 했을까?

       무모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다.

         

       게임에서는 체력이 1만 남아도 퀘스트만 클리어하면 승리다.

       은신처로 돌아가거나 치료 캐릭터에게 말을 걸면 체력이 원상회복됐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체력이 1만 남았다는 것은 죽기 직전까지 몰렸다는 뜻이다.

         

       저택의 감옥 구석에서 나는 다가오는 죽음과 싸워야 했다.

       멀어지는 의식을 붙잡고 버텨야 했다.

         

       영화에서 본 적이 있다.

       이런 때 잠들면 그냥 죽는다.

       잠들면 신체 대사가 느려지면서 그대로 생명 유지 기능도 꺼져버리는 것이다.

         

       힘들어도 아파도 버텨야 했다.

         

       ‘바보 자식.’

         

       나는 나 자신을 욕했다.

         

       나는 이미 이것이 현실임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게임을 플레이하듯 허술하게 행동했다.

         

       -TT3의 프롤로그에 나오는 저택. 익숙한 곳이군.

       -아나이스 베르그송 자작? 나는 당신이 누군지 다 알고 있어.

       -오늘 밤 무슨 일이 생길지도 다 알고 있어.

       -구해주면 되는 거지? 쉽군.

         

       정말 귀족에게 후원을 받고자 했으면, 좀 더 조심스럽게, 저자세로 상대에게 다가갔어야 했다.

       정말 실제 목숨이 달린 일이라고 생각했다면,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공격을 퍼부어 피에르의 팔다리라도 분질러뒀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설득해야 할 상대를 얕보고, 위협이 되는 상대는 깔봤다.

         

       나는 무엇이 내 경계심을 이렇게 낮췄는지 알고 있었다.

       단순히 100만 유튜버의 자만심 때문만이 아니었다.

         

       ‘웃는 남자.’

         

       이 빌어먹을 고유 특성.

         

       웃는 남자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했다.

         

       몸에 구멍이 6개나 난 상황에서도 자작의 병을 고칠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 특성 덕분이었다.

         

       그러나 웃는 남자에게도 단점은 있었다.

       

       웃으면 경계심이 옅어졌다. 무모한 자신감이 생겼다.

       한 마디로 긴장감이 부족해졌다.

         

       웃으면 도파민이 분비된다고 했던가?

         

       그렇게 생각하면 웃는 남자는 참 무서운 특성이었다.

         

       도파민은 최강의 마약성 진통제라고 불리는 녀석이다.

       나는 24시간 마약에 취한 채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원더스타인이라는 역할에 심취하여,

       꿈꾸듯 말하며, 본능이 이끌리는 대로 행동했다

         

       지금 돌아보니 지난 나흘간 내가 한 행동들이 모두 뭔가 이상했다.

       야영장에 있었던 일도, 저택에 와서 있었던 일도 반쯤 넋을 놓은 상태에서 진행되었다.

         

       엄연히 다른 세상에 떨어졌는데, 기절한 만큼 놀라고, 죽을 만큼 무서워해야 정상 아닌가?

         

       아무리 내가 보통과 다른 인생을 살았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평범한 현대인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런 상황을 너무 태연하게 받아들였다.

         

       게임 속 세상에서 목숨을 건 게임.

         

       미친 상황이다.

       나는 죽음의 문턱에 와서야 그것을 자각할 수 있었다.

         

       웃는 남자.

       이놈이 내 정상적인 사고를 방해했다.

         

       언제나 평정심을 유지한다고?

         

       긴장하고 경계해야 할 상황에서 강제로 웃고 즐기게 만드는 것은 저주나 다름없었다.

         

       불길 속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다.

       거기까지는 좋다.

         

       그런데 불길 속에 뛰어드는 것도 아무렇지 않게 여긴다.

       그건 문제다.

         

       웃는 남자는 양날의 검이었다.

       지난 며칠처럼 나 자신의 역할에 취해 버리면 상황은 속수무책으로 흘러가 버린다.

         

       마치 TV 속 예능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것처럼.

       죽음을 향해 달려들면서도 멍청하게 웃고 있을 것이다.

         

       정신을 똑바로 못 차리면 다음엔 진짜 죽을 수 있었다.

         

       흐흐, 다음이라…….

         

       내게 ‘다음’이 올까?

         

       웃는 남자 덕분에 고통은 거의 안 느껴지지만, 그것이 상처를 낫게 하는 건 아니었다.

       내 몸은 빠른 속도로 죽어가고 있었다.

       

         

       특성: 급속 경직

       적용 부위: 혈관

       효과: 출혈이 발생했을 때, 혈관 주변부의 조직이 경직되면서 출혈을 지연시킵니다.

       비용: [데볼루트 2]

         

         

       임시방편으로 만든 능력으로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봤자 다른 스펙은 모두 평범한 인간이었다. 제대로 된 치료가 없으면 산다고 보장할 수 없었다.

         

       아니, 설사 내가 운 좋게 살아난다고 해도,

       자작이 죽어버리면?

         

       그러면 모든 게 끝장이다.

       퀘스트가 문제가 아니다.

       저택 사람들이 나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원작 퀘스트-후원자

         

       달성조건

       : 베르그송 자작으로부터 후원을 받아내십시오.

         

       성공 시 보상

       : [데볼루트 +5]

         

       실패 시 페널티

       : 없음.

         

         

       퀘스트가 아직 실패가 뜨지 않은 것으로 보아 자작은 살아있었다.

       그러나 병사들의 험악한 분위기로 보아, 의식은 차리지는 못한 거 같았다.

         

       아니, 어쩌면 영원히 의식을 차리지 못할 수도 있다.

       치료가 너무 늦은 것일 수도 있다.

         

       만약 자작이 죽게 된다면, 자작의 병을 치료하려 했다는 내 말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빨리, 빨리 서둘러라!”

         

       위층에서 사람들이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일군의 사람들이 지하 감옥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침대를 붙잡고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죽어도 그냥 당해줄 수는 없지.

       어떻게든 발버둥이라도 치다 죽을 테다.

         

       그러나 몸이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벽을 짚은 손이 미끄러지며 나는 피로 적셔진 바닥에 철퍼덕 쓰러졌다.

         

       그 순간 쾅 하며 지하 감옥의 문이 열렸다.

         

       “후후후…….”

         

       나를 둘러싸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의식을 잃었다.

         

       꿈속에서 나는 TT3의 프롤로그 스테이지, 베르그송 자작의 저택의 엔딩을 보았다.

         

         

       ***

         

         

       “내가 왜 조카를 죽이려 했냐고? 그건……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받았기 때문이오.”

       “그 제안이라는 게……뭡니까?”

         

       피에르는 대답 대신 펜던트를 열어 보였다.

       그곳에는 어떤 소녀의 사진이 있었다.

       피에르와 같은 갈색 머리에 비슷한 눈매를 한 아이였다.

         

       “죽은 내 딸을 다시 살려준다고 했소.”

       “모파상 씨…….”

         

       기사가 안타까운 신음을 냈다.

       도적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들이 지나온 길을 돌아봤을 때, 저런 제안은 좋은 결말을 맞이한 적이 없었다.

         

       피에르의 입에 걸린 자조적인 웃음은 그들의 예상이 맞았다는 걸 보여주었다.

         

       “그것 때문에 상회의 자금을 빼돌려 놈들을 지원했소. 죽은 자를 되살리는 제단. 그걸 건설하는 데 도움을 줬지.”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아나이스를 죽이지 못한 나는 그들을 찾아갔소. 이대로 가면 당신들이 하는 일이 들킬 것 같다고. 뭔가 조치해야 한다고. 하지만 내 이야기를 들은 그들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소. 원더스타인과 그들은 아주 잘 아는 사이라고. 원더스타인이 자작을 손에 넣었으면, 자신들을 방해할 일이 없을 거라고 했소. 그 말은 사실이었소.”

         

       피에르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숨결에는 지난 세월에 대한 회한이 담겨 있었다.

         

       “나는 이사회에서 사임하는 것으로 끝났소. 어떤 질책도 추궁도 없더군. 그 아이의 몸과 마음은 이미 원더스타인에게 사로잡힌 뒤였소. 아니, 나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그 아이가 그 검은 마도사에게 더 의존하게 된 걸지도…….”

         

       피에르는 죽은 조카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탄식을 내뱉었다.

         

       “따님은 어떻게……됐습니까?”

       “그들은 약속을 지켰소. 1년 정도 걸려서 나에게 딸을 보내주더군. 하지만 그 아이는…… 내 딸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내 딸이 아니었소……. 밤마다 마을의 가축들이 죽어 나가고, 사람들이 의문의 습격을 당하고……. 아아, 나는 어리석었소. 끝까지 모른 척했지……. 머리로는 알고 있으면서도……. 내 딸이 살아 돌아왔다는 걸 부정할 수 없었소…….”

         

       피에르는 눈물을 닦았다.

         

       기사는 사악한 자들의 횡포에 대한 분노로 몸을 떨었고, 마음 약한 도적은 슬픈 이야기에 눈물을 글썽였다. 냉철한 마법사는 인상을 살짝 찌푸리기만 했다.

         

       피에르는 숨을 고르더니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최근 내 조카를 포함하여, 세계 곳곳에서 원더스타인에게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괴물로 변하고 있소.”

       “네. 저희도 소식을 듣고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런지 아시오?”

       “그건 아직 모르겠습니다만……?”

       “내가 말한 원더스타인의 친구들. 죽은 자를 되살리는 제단……. 그들이 기거하는 섬이 다시 활발히 활동한다는 소식을 입수했소.”

       “죽은 자를 되살리는……설마?”

       “그렇소. 아마……검은 마도사가 돌아왔거나 돌아오는 중일 것이오.”

         

       그의 말에 도적이 이를 갈았다.

         

       “지긋지긋한 자식!”

       “플로랜드로 가시오. 그곳에 가면 더 자세한 소문을 들을 수 있을 거요.”

       “정보 감사합니다, 모파상 씨.”

       “대신…….”

         

       피에르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부탁 하나만 들어주시오.”

       “부탁이요?”

       “플로랜드 북서쪽에 나의 별장이 있소. 거기 지하에 나의 딸의 모습을 한……괴물이 갇혀 있소. 그녀를……죽여주시오.”

         

       마지막은 거의 바닥을 벅벅 긁는 목소리로 내뱉었다.

       용사들은 비록 딸의 모습을 한 괴물이지만, 그 죽음을 부탁하는 아버지의 심정이 어떤지 감히 상상하기 어려웠다.

         

       “알겠습니다…….”

         

       [‘서브 퀘스트-되살아난 딸’이 활성화되었습니다]

         

       “그럼 가시오.”

       “모파상 씨, 아직 저택이 완전히 안전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저희랑 같이…….”

         

       철컥.

         

       피에르가 품에서 리볼버를 꺼내 들었다.

         

       “나는 항상 호신용으로 총을 들고 다니오. 걱정하지 말고 가시오.”

         

       피에르의 단호한 태도에 용사들은 더 이상 그를 설득하지 못하고 저택을 빠져나왔다.

         

       그저 괴물만 퇴치하러 왔을 뿐인데, 생각보다 중요한 이야기를 들었다.

         

       죽은 자를 되살리는 제단.

       그리고 원더스타인의 부활.

         

       “플로랜드로 가야겠군.”

       “정말 원더스타인이 부활한 거라면…….”

       “우리가 처치해야겠죠.”

         

       저택을 떠나는 용사들.

         

       그들이 완전히 떠나고 난 후.

         

       저택 쪽에서 총성이 들렸다.

         

       탕-

         

       단 한 발의 총성.

       그리고 저택은 다시 고요해졌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