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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

       필요한 것. 파딱.

        없어져야 하는 것. 나를 귀찮게 만드는 악성 민원인.

        결론. 악성 민원인을 파딱으로 만들자.

       

        마탑의 모든 연금학도들이 기립 박수를 칠 만큼 훌륭한 삼단 논법이 문을 열고 들어온 마리엘을 보는 순간 뇌리를 관통했다.

       

        “또 오셨군요. 이번에는 무슨 문제라고요?”

        “이놈의 기숙사는 정 가는 구석이라곤 단 하나도 없는 것이에요! 대체 왜! 겨울도 아닌데 수도관이 동파되어야 하는 거여요!?”

        “그건 마탑의 기후와 생태가 바깥과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뜻한 차라도 한 잔 드릴까요?”

        “됐으니까 빨리 수리나 해주는 것이에요. 덕분에 오늘 하루 종일 머리를 못 감았어요.”

       

        홀크로프트의 영애는 변함없이 요상한 말투에 요상한 머리모양, 그리고 요상하게 좋은 향을 풍겼다.

        칙칙한 사감실에 그녀가 들어오니 거적대기 두른 마법사가 난로를 쬘 때보다 방 안이 세 배쯤 밝아졌다.

       

        나는 곧장 자신의 방으로 가자는 마리엘의 말을 무시하고 찻잔을 꺼냈다.

        본인이 모를 뿐 이미 심사는 시작되었으니까.

       

        “이렇게 늦은 시간에 안 주무십니까?”

        “제 수면 시간은 관리인이 상관할 바가 아닌 것이에요. 게다가 이 시간에 찾아온 건 관리인이 하루 종일 부재중이었기 때문이어요.”

       

        다소 예민할 뿐 피곤한 기색이 없는 것도 모자라 업무 시간이 지나서 사감실에 방문한 것에 죄책감도 일절 보이지 않는다.

        참고로 지금은 새벽 3시였다.

       

        극악의 수면패턴과 얼굴에 철판을 깐 듯한 뻔뻔함.

        관리자로서 가져야 할 필수 덕목 두 가지에 추가점수를 2점 얻고 시작했다.

       

        정체를 모르는 다른 파딱들을 뽑을 때는 체크할 수 없었던 항목이지만 그녀의 외모에도 가산점이 들어갔다.

        완장의 정체가 사실 미소녀였다는 반전은 갤러리에 긍정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킬 테니까.

        물론 안 밝혀지는 게 가장 좋은 만큼 사소한 플러스일 뿐이다.

        진짜 평가는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향이 좋네요.”

        “생활부장님께 가끔 받습니다. 그래도 친한 친구 분들과 마시는 것보단 못할 겁니다.”

        “그치들은 친구도 아니어요. 겉으로만 친한 척 할 뿐, 뒤에서는 흉이나 보고 있을 게 뻔하니까요.”

        “교우관계 미비…… 1점.”

        “예?”

       

        차를 마시고 난 뒤, 나는 그녀를 따라 여자 기숙사로 들어갔다.

        방 자체는 여느 수습생들과 같이 평범했다.

        마법서 몇 권과 로브, 그리고 옷가지를 힘껏 구겨넣어 뒤틀린 나무 장 정도가 눈에 띄었다.

       

        “막힌 건 이 안쪽입니까?”

        “네. 세면대를 말하는 것이에요.”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 배관을 분해했다. 

        그리고 수도관을 막은 얼음을 정으로 두들겨 깨다 말고 위치 노트를 펼쳤다. 

        방의 ip주소를 체크하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뒤에서 팔짱 끼고 지켜보던 방 주인이 말을 걸어왔다.

        새초롬한 시선 끝에 미약한 경계의 빛이 담겨 있었다.

       

        “사진은 안 돼요, 신고할 것이어요.”

        “누가 남의 화장실 사진 같은 걸 찍습니까. 그보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요.”

        “뭐죠?”

        “그냥 나가서 살면 되지 왜 여기 계속 있습니까?”

       

        마리엘이 유독 내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 정도로 많이 찾아오는 이유는 단순히 그녀가 기숙사에 남아 있어서였다.

        1층은 말할 것도 없고 조금만 위로 올라가면 마법사들을 위한 호화시설이 널린 게 마탑이었다.

        실제로 비나처럼 저택 하나를 통째로 소유한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마탑에 들어온 이들은 대부분 귀족이거나 탑 내부에 후견인이 존재한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귀족과 연줄이 닿아보려는 학파에서 지원을 받으면 이런 추운 곳에서 벌벌 떨지 않아도 될 텐데.

        내 질문을 받은 마리엘은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관리인은 홀크로프트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군요. 저희는 그런 허영심 가득한 제도의 귀족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가문이어요!”

        “그렇습니까?”

        “당연하죠! 170년 전 황실 근위대였던 선조로부터 검을 하사받은 저의 증조부가 제하프 지역의 검은 산맥에서 당시 4대 재앙이라 불리우던 명계의 왕의 오른팔, 심연의 기사 토벌에 혁혁한 공을 세운 뒤로부터…….”

       

        일장연설을 한 귀로 흘리며 관리자 계정을 통해 마리엘의 방에서 접속한 위치 노트를 파악했다.

        벽이 얇고 유동인구도 많았지만 주로 이용한 아이디를 추리니 딱 하나가 검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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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 : 초천재금발미소녀

        글 : 629

        댓글 : 3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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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갓 입탑한 수습생이야말로 위치노트를 가장 많이 사용하기에 예상은 했지만 과연 훌륭했다.

        0년차임을 감안했을 때 절로 박수가 나오는 양이었다.

        글과 댓글의 비율도 이 정도면 제법 이상적이다.

        댓글이 많다는 의미는 곧 상호작용.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니 충분히 합격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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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 : 메테오는얼음마법

        글 : 322

        댓글 : 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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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 : 44층에갇혀있어요살

        글 : 53132

        댓글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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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중엔 이런 몹쓸 표본도 존재했으니 말이다.

        플러스 3점.

       

        “제 말 듣고 있나요 관리인?”

        “네, 그러니까 지금은 쇠락했지만 한 때 빛나던 백작가의 일원으로서의 긍지가 있다는 말이셨죠. 근데 그것과 기숙사에서 고생하는 게 무슨 상관인가요?”

        “훗, 관리인은 생각이 짧군요. 제가 밑바닥에서 맨손으로 기어 올라가 홀크로프트를 무시하는 귀족들을 뛰어넘게 되었을 때 그들을 깔보는 맛이 어떻겠어요?”

       

        즉, 더 극적인 연출을 위해 구태여 생고생을 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게 답니까?”

        “생각만 해도 기분 째지는 것이에요.”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표정을 보고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어차피 클린 라이트 유저인 내게 마리엘처럼 갤러리에 인생을 바친 인간은 이해가 안 될 부류였으니까.

       

        “어쨌거나 수고했어요. 관리인은 생각보다 말이 잘 통하네요.”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칭찬이 맞는 것이에요. 추후 제가 마탑에서 한 자리 차지하면 그땐 관리인에게도 좋은 일이 있을 것이에요.”

        “네, 뭐……. 그럼 가보겠습니다.”

       

        수도관을 고치고 밖으로 나온 나는 위치노트에 적힌 채점 결과를 확인했다.

        전체 점수 6점, 외모 보정 2점을 더해 총 8점이었다.

        마리엘은 열심히 노력했으나, 파딱이 되기 위한 엄격한 기준인 10점을 채우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이대로 유력한 후보를 놓쳐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갑자기 방 안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히끼야아아아악!! 과, 과, 관리이인!!’

       

        또 뭔데? 이번엔 변기라도 넘쳤나?

        곧장 문을 열고 들어선 내 상체에 푹신한 살덩어리가 휘감겼다.

        이제 물이 나오니 몸을 씻으려던 것인지 좀전보다 가벼운 차림으로 방에 있던 마리엘이었다.

        그녀는 벌벌 떨리는 손가락으로 꾸역꾸역 옷 가지들을 토해내는 자신의 옷장을 가리켰다.

       

        “쥐, 쥐가 나온 것이에요! 저 안에서어……!”

        “네, 가끔 그럴 수도 있습니다. 나무로 만들어졌으니까요.”

        “그럴 수도 있는 문제가 아니잖아요!! 빨리, 빨리 잡는 것이에요오!!”

       

        희끗한 윗가슴이 그대로 드러난 것도 개의치 않고 나를 붙잡고 흔들어댄다.

        그 덕에 노트를 보던 시선이 흐트러져 본의 아닌 광경을 눈에 담고 말았다.

       

        왼쪽 가슴 주변의, 얼핏 보면 실핏줄로 착각할 만큼 옅은 푸른 문양의 일부분.

        정령사들이 계약을 위해 새기는 정령문(精靈文)인가 싶었지만 그것과는 형태가 다르고, 무엇보다 불완전했다.

       

        “훌쩍, 가, 갔나요? 아니 잡았나요오……?”

        “아직요. 어디 보자…….”

       

        정신을 차린 나는 빗자루를 들고 옷장에 숨어 있던 쥐를 처리했다.

        그리고 여자 기숙사를 나와 사감실로 돌아간 뒤, 위치노트를 꺼내어 총점에 몸매 보정 2점을 추가했다.

        비록 막판 스퍼트로 추가 점수를 얻어 10점을 달성하긴 했으나 아직 마지막 테스트가 남아 있었다.

       

        갤러리의 완장이란 마치 플라잉 더치맨의 선장과도 같은 존재.

        누구나 꺼려하지만 반드시 존재해야만 하고, 무엇보다 손들고 시켜 달라는 놈에게는 절대 줘서는 안 되었다.

       

       

       

        *

       

        ====

        관리자

        [올해도 갤 관리 인원이 부족해진 관계로 신규 관리자를 뽑겠습니다]

       

        부관리자가 하고 싶은 분들은 손을 들거나 개인적으로 메시지를 보내 주세요.

       

       

       — 발

        — 징집 시즌 on

        — 재정신이면 누가 하겠냐고 ㅋㅋㅋㅋ

        — 파딱 되면 뭐 좋은 점 있나요?

         ㄴ ㅇㅇ 매달 3천골드씩 배당 나옴 

        ====

       

        다음날.

        ‘연금술을 위한 시약 조제법’ 강의를 듣고 있던 마리엘은 위치 노트에 올라온 공지를 확인했다.

        강의 시간에 필기보다 갤질을 더 많이했던 그녀는 파딱이 좋은 자리가 아니라는 걸 잘 알았다.

        예상대로 갤러리에선 누가 무급 노예 짓을 하겠냐는 비웃음이 대부분이었다.

       

        “한심하네요.”

       

        저런 반응 뒤에서 몇몇은 열심히 주딱에게 자신을 시켜달라 어필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수상할 정도로 활동이 많아진 고닉들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한심하다는 자조섞인 한 마디는 결코 그들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어젯밤, 자신의 실수로 기숙사의 관리인에게 문양을 노출한 일 때문이었다.

       

        ‘절대 보여선 안 되는 거였는데.’

       

        가문에 몰락을 가져온 ‘신비’의 파편이자 그녀가 탑에 들어온 이유.

        그리고, 다른 귀족들에게 비웃음 당하면서도 아직까지 1층을 올라가지 못하는 이유.

       

        정신없는 상황에서 못 봤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만약 들키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게 분명했다.

       

        ====

        ㅇㅇ

        [갤에서 맨날 어그로끌던 ㅊㅊㅈㄱㅂㅁㅅㄴ는 파딱선언 안함?]

       

        맨날 반역 하고 싶다 권력 잡으면 다 쓸어버릴거다 떠들더니 정작 이럴 땐 조용하네 ㅋ

       

        — 뭐야 저격임?

        — 깡통계네

        — 고닉들 죄다 튀어 나오니까 저격도 넘치는 거 봐 ㅋ

        — 딴데 가서 싸워라 

        — ㅇㅇ : 결국 말뿐이었냐고 ㅋㅋ

         ㄴ 초천재금발미소녀 : 그대의 모친인 것이에요

        ====

       

        머리가 무거우니 평소와 같은 갤질도 즐겁지 않았다.

        강의실은 곧 있을 어둠의 숲 탐험의 조를 짜느라 부산스러운 분위기였다.

        또 한 번 한숨을 푹 쉬며 그녀 자신도 더 늦기 전에 팀원을 구하려 자리에서 일어선 찰나.

       

        위치 노트가 울리며 또 다시 공지가 올라왔다.

       

        ====

        관리자

        [현 파딱들도 의욕 없어 보이고 다들 너무 놀리기만 해서 말하는 건데]

       

        올해부터 관리자들은 저와 직접 대면할 자리를 만들 계획입니다

        시기 미정, 장소 미정, 이상.

        ====

       

       “마리엘 님은 조를 구하셨나요?”

       “…….”

       “마리엘 님? 응? 어라?”

       “다들 무슨 일 있나요?”

       

       순간 강의실 전체가 정적에 휩싸였다.

       칠판을 지우던 당번도, 마법서를 챙기던 교수도, 바쁘게 다음 강의실로 이동하던 수습생들도 모두 위치노트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리고 이내 갤러리의 글 리젠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두통이 너무 심해 늦었습니다.
    몸이 으슬으슬한 게 아프려나보네요.
    날이 추운데 여러분도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하세용.

    오타 지적해주신 부분은 다 수정하고 있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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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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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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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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