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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0

    뚜시뚜시.

    잠에서 깨어나니, 사방에서 나를 두들기는 느낌이 들었다.

    황금 사신들이 잔뜩 나타나서 나를 마구 때리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그리고 얘네들 내가 안 불러도 나올 수 있는 거였어?

    황금 사신들은 굉장히 다급해 보이는 눈치였다.

    내가 일어난 것을 눈치챈 황금 사신들은 때리는 것을 멈추고 손짓, 발짓을 해가면서 뭔가를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황금 사신의 얕은 지식으로 행하는 보디랭귀지는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다급한 상황만큼은 느껴졌다.

    다급한 거지? 

    그러면 우리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나는 유령화를 한 뒤 양팔을 활짝 벌렸다.

    황금 사신들도 유령화를 하더니 내 품 안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황금 사신들을 한 아름 품 안에 안고, 품에 들어가지 못한 황금 사신들은 내 온몸에 달라붙었다.

    영체끼리 맞닿으니 황금 사신이 하고 싶은 말을 알 수 있었다.

    강렬하고 단순한 생각.

    ‘위험해!’

    ‘애착 인간이 위험해!’

    정말 경각에 달한 것 같은 감정이 느껴져서, 나는 검은 펭귄에게 얻은 능력을 바로 사용했다.

    꺼질 것처럼 희미하게 일렁이는 황금 사신의 기척이 저 멀리서 느껴졌다.

    나는 그 기척을 향해서 능력을 사용했다.

    *

    능력을 사용해서 도착한 곳은 도저히 한국이라고 볼 수 없는 곳이었다.

    붉은 모래와 바위로 가득한 사막. 

    이런 곳이 한국에 있을 리가 없으니, 오브젝트로 일어난 현상이겠지.

    나를 향해 반가운 표정으로 뛰어드는 황금 사신 하나. 

    손으로 받아내고 보니 그 황금 사신은 완전히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왜 이렇게 다쳤어?

    품 안에 넣고 꼭 껴안으면서 장작을 넣어준다.

    한계 이상으로 부여된 장작은 소실된 팔 하나쯤은 순식간에 재생시켰다.

    수척해진 황금 사신은 순식간에 생기를 되찾고, 고맙다는 듯이 내 볼을 꼭 껴안았다.

    도대체 누가 황금 사신을 아프게 한 걸까.

    팔이 다친 꼴을 보니, 물리 면역 오브젝트에 겹치기를 사용한 여파로 보였다.

    보통은 쿨하게 전신을 던져서 공격하고, 황금 사신 정원에서 부활할 텐데.

    그렇게 하는 게 아프지 않아서 합리적인 선택인데, ‘애착 인간’인 서아를 오래 지키려고 팔 하나만을 쓴 거겠지.

    아마 황금 사신을 아프게 한 건, 눈앞에 있는 오브젝트로 보였다.

    붉은 바위로 이루어진 오브젝트, 그리고 아마도 물리 면역을 가진 오브젝트.

    파괴 조건은 <핵의 파괴.>.

    황금 사신을 다치게 해서 그런지 조금 짜증이 났다.

    나는 이제까지 수고했던 황금 사신을 떼어내서 서아에게로 돌려보냈다. 

    내가 짜증을 담아서 허공에 손을 휘두르자, 황금 사신 정원에서 수많은 황금 사신이 내 부름에 응했다. 

    ***

    검은 요원과 금발 소녀는 그들이 원했던 쉴 장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사실 발견할 수 있었다기보다는 발견할 수밖에 없었다.

    불타는 모래가 지평선에 닿은 광활하게 펼쳐진 붉은 사막 한가운데,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거대한 바윗덩어리.

    하품하는 입처럼 거대한 입구를 가진 동굴이었다. 

    거대한 크기와 독특한 존재감으로 사막을 지나는 누구라도 이정표로 삼을만한 등대였다.

    거대한 동굴이 만든 거대한 그늘과 동굴 특유의 서늘한 기운이 그들의 땀을 식혀주었다.

    “와, 이제 좀 쉴 수 있겠네요.”

    잘 정돈된 원피스를 입은 금발 소녀는 땀에 푹 젖은 옷을 펄럭거리며 앉기에 적당해 보이는 바위 위에 걸터앉았다.

    검은 요원은 긴장을 쉽게 풀지 않고, 동굴의 깊숙한 곳까지 꼼꼼히 확인하는 도중 쓸만한 것을 발견했다.

    동굴 내부에 거대한 호수가 존재하고 있었다.

    아마 지하수가 지면으로 올라와서 형성한 호수.

    호수 위편으로는 구멍이 뚫려서, 밤하늘이 그대로 비춰 보였다. 

    거울처럼 투명한 호수 표면에 비친 붉은 달과 별빛은 멋진 풍경을 만들었다.

    문득 이 상황이 오브젝트로 조난된 상황만 아니라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호숫물은 보통 사막에서 볼 수 있는 오아시스와는 달리 탁하지도 않고, 놀라울 정도로 맑고 투명한 물이었다.

    검은 요원이 간단히 확인해 보니, 음용이 가능한 물로 보였다.

    “아가씨. 여기 물이 있군요. 이걸로 꽤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검은 요원이 가지고 다니는 작은 물통에 호숫물을 담아서 금발 소녀에게 주었다.

    “와, 진짜 목말라서 죽을 것 같았는데 다행이네요.”

    “이제 구출이 올 때까지 버티는 게 가능해졌군요.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사고니까 구출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테니, 한시름 덜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금발 소녀는 불안이 꽤 많이 가신 표정이 되었다.

    사실 소녀는 거의 한계에 가까웠다.

    이상할 정도로 더운 날씨에 이동하기 힘든 사막 지형. 

    그리고 사람을 죽이는 오브젝트들이 돌아다니는 환경은 체력을 순식간에 빼앗기 마련이니 말이다.

    소녀의 상태를 고려해서 검은 요원이 말하지 않은 사실도 있었다.

    동굴 안은 놀라울 정도로 기온이 사람에게 적당했고, 깨끗한 물까지 주어졌다.

    거기에 더해서 발견하기 쉬운 장소?

    평범한 조난 상황이면 행운이라고 여길만한 상황이지만, 오브젝트와 엮인 상황이라면 별로 좋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마치 사람을 유혹하는 것 같은 장소라니?

    그렇다고 이 사막을 돌아다니면 하루도 채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검은 요원의 고민이 점점 깊어져만 갔다.

    ***

    세희 연구소 소장실 TV에서 강서구에서 발생한 이변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강서구 대부분이 투명한 장벽에 가로막혔고, 그 너머로 강서구는 온데간데없이 정체불명의 사막이 펼쳐져 있었다.

    내부에 있던 사람들의 생사는 불명.

    언제나 늑장 대응으로 욕을 먹던 협회는 이례적으로 빠르게 사건 해결을 나섰다.

    드디어 협회가 정신을 차렸다는 의견이 간간이 나올 정도였다.

    ‘서아 어떡해! 괜히 내가 안 간다고 해서!’

    그 소식을 듣자마자 자리에서 일어서 어디론가 달려가기 시작했다.

    향하는 곳은 세희 연구소에서 가장 깊숙한 곳, 회색 사신의 격리실.

    강서구를 가로막은 장벽도 사신이라면 어떻게든 해줄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생각이 떠올랐다.

    왠지, 예린이가 주로 하던 생각 같기는 했지만 지금 믿을 건 사신이뿐!

    협회는 쉽게 장벽을 뚫지 못하겠지, 뚫는다고 쳐도 다른 나라의 도움을 받거나 이미 늦은 상황에서 진입할 게 뻔했다.

    하지만 사신이가 손뼉 짝짝 치고 발로 몇 번 콩콩 차면 장벽이 부서지지 않을까?

    장벽만 없다면 협회의 대대적인 구조단이 진입할 테고 구출될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간 격리실 안에는 회색 사신은 없었다.

    한 무더기의 황금 사신들과 그 황금 사신과 놀고 있는 예린이뿐이었다.

    “언니, 어쩐 일이세요?”

    “회색 사신이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황금 사신이를 이렇게나 잔뜩 두고 간 걸 보면 꽤 멀리 간 거 아닐까요?”

    확실히 격리실 안에는 황금 사신이 가득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예요?” 

    예린이가 내 표정을 살피며 무슨 일이냐고 물어왔다.

    나는 대답 대신에 격리실 내부에 비치된 TV를 켜서 뉴스를 틀었다.

    [강서구 내부는 현재 정체불명의 사막지대가 펼쳐진 가운데, 내부 상황은 여전히 전혀 알 수가 없는 상태입니다.]

    때마침 뉴스에서는 강서구 장벽을 헬기 위에서 찍고 있는 장면이 나왔다. 

    “어! 저기 서아 언니가 출장간 곳 아니에요!?”

    “맞아. 그래서 회색 사신을 부르려고 했는데, 자리에 없네.”

    예린은 TV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어쩌죠?”

    “무슨 방법이라도 없을까요?”

    “… 아! 그래서 그런 건가?”

    횡설수설하던 예린이가 자기 혼자서 뭔가를 이해하길래, 물어봤더니 꽤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사실 지금은 회색 사신이 낮잠 자는 시간이거든요. 근데 사신이가 없어서 무슨 일인가 했는데, 저런 사건이 있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회색 사신이가 서아의 위기를 눈치채고 벌써 강서구로 떠났다는 뜻이야?”

    “그냥 제 예상이에요. 그냥 변덕으로 놀러 갔을 수도 있으니까 확실한 건 아니에요.”

    팡. 팡.

    예린이가 자기 옆자리를 비우더니 큰 소리가 나도록 두들겼다.

    “그럼, 언니도 여기서 같이 대기해야겠네요.”

    “뭐?”

    슬슬 소장실로 돌아가서 협회의 구조작업이 어떻게 진행 중인지 알아보려고 했는데, 예린이가 이상한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회색 사신이 돌아오는 걸 기다려야죠! 만약 사신이가 구하러 간 게 아니라 놀러 간 거면 최대한 빨리 만나서 강서구로 출발하는 게 베스트 아닌가요?”

    개소리가 분명했지만, 왠지 꽤 끌리는 이론이었다.

    “어차피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협회에 구조작업이 어떻게 되고 있냐고 물어보는 것밖에 못 하니까요. 이거라도 해야죠!”

    따뜻한 격리실에 푹신한 침대의 마력 때문일까? 

    아니면 따뜻한 황금 사신이와 말랑한 황금 사신이 때문일까.

    “어쩔 수 없네. 그래도 최소한의 조치는 해놔야겠어.” 

    핸드폰으로 세희 연구소에 전체 공지를 했다. 

    <보안팀은 회색 사신을 찾기 위해 푸딩을 들고 돌아다닐 것.>

    <연구원들도 업무를 볼 때, 푸딩을 옆에 두고 업무를 수행할 것.>

    <회색 사신을 발견할 경우 즉시 소장에게 연락할 것.>

    “이 정도면 할 수 있는 조치는 다 한 거겠지. 이제 남은 건 여기서 회색 사신을 기다리는 것뿐인가.”

    정말 어쩔 수 없이 예린이의 옆자리에 앉아서 귀여운 황금 사신이들과 놀아주기 시작했다.

    놀러 갔던 사신이가 돌아오면 빨리 강서구로 출발해야 하니까, 사신이의 격리실에서 기다리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서아에게 아무 일도 없어야 할 텐데.

    연구소 입장에서 연구원을 구하기 위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이 조금 불편했다.

    ***

    붉은 흙먼지가 흩날리는 사막에서 거대한 바위 큐브들이 힘을 잃고 땅바닥을 뒹굴었다.

    바닥에 산산조각이 나서 흩어진 붉은 구체는 무려 15개. 

    회색 사신이 나타나자, 상황은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황금 사신이들은 혼자 있을 때와 전혀 다르게 몸을 아끼지 않고 그대로 돌격해서 적을 그대로 박살 내버렸다.

    빠르고 간결하게 사태를 해결해 버린 것이다.

    오브젝트의 약점을 찔러서 파괴한 것으로 보이는 15기의 황금 사신이들은 회색 사신에게 달라붙어서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머지 황금 사신들은 그저 회색 사신 발치에 모여서 그걸 부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무표정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회색 사신. 

    “와!”

    여유로워 보이는 회색 사신을 향해서 박수를 짝짝.

    박수를 치자, 황금 사신이들도 내가 하는 행동을 멀뚱히 바라보더니 따라서 짝짝.

    “사신아 반가워! 고마워! 잘 왔어!” 

    벅찬 심정으로 회색 사신에게 달려가서 껴안았다. 

    정체불명의 오브젝트, 최고 위험도의 오브젝트,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오브젝트.

    내가 회색 사신을 꺼리던 수많은 이유가 생각났지만, 지금의 심정으로는 아무래도 상관없어졌다.

    반가움과 안도감, 고마움을 모두 담아서 꼭 껴안았다.

    그러자, 황금 사신이들도 우르르 몰려들어서 회색 사신과 나에게 마구 달라붙었다.

    회색 사신은 이런 상황이 불편한지, 왠지 모르게 뚱한 표정이라서 볼을 콕콕. 

    뚱한 표정의 회색 사신이 귀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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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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