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80

       “-심장이 가진 마성만 제거하고, 독기는 그대로 뒀습니다. 독 내성이 있다고 하셨으니, 오히려 독 내성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반나절 사이에 사람이 철인 3종 경기를 두 번 연속으로 출전한 것처럼 피로에 가득 절여졌다.

       그러한 평가가 아깝지 않은 데릭은 당장에라도 쓰러질 듯했지만, 눈빛만큼은 생기가 감돌았다.

         

       “약성이 워낙 강해서 조화롭지 않더군요, 그래서 수기와 토기, 목기 등이 깃든 세 가지 다른 단약도 준비했습니다. 순서대로 복용해야 해요.”

       “…음, 고맙다.”

         

       이한은 노력해준 그에게 담백한 감사만을 전했다.

       일장 연설하며 고마움을 표현할 수도 있지만, 그건 이한의 스타일이 아니었고, 그도 부담스러우리라.

       이를 아는지 데릭 또한 담백한 미소를 머금은 채.

         

       “…네에. 그럼 나머진 좀 이따…….”

         

       털썩.

         

       말을 채 끝내지 못하며 그대로 무너지고 말았다.

         

       “약은 이놈이 먹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이미 쓰러질 걸 예상한 이한은 쓰러지려는 놈을 붙잡고, 구석진 곳에 만들어진 해먹 위에 눕혔다.

       그리고선 책상 위에 놓인 약들을 보았다.

         

       화아악.

         

       “휘황찬란하구먼.”

         

       말투는 담백하지만 숨길 수 없는 놀라움이 눈에 깃든다.

       그저 단순히 가공만 원했을 뿐인데, 상상 이상의 것이 등장하지 않았는가.

         

       누가 봐도 알겠다, 이게 절세의 영약이란 걸.

         

       단순히 약에 불과함에도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데릭이 먹으라고 한 세 개의 단약.

         

       각각 물빛, 금빛, 초록빛을 내뿜는 영롱한 진주처럼 보였으며, 먹으면 곧장 입안에서 녹아버릴 것처럼 생겼다.

         

       ‘수기로 토기를 키우고, 토기로 목기를 성장시켜 온몸을 보호한다라, 이놈 이거 전공이 한의학이었나?’

         

       마치 음양오행의 조화를 이룬 듯한 비약.

       범상치 않기 짝이 없다.

       허나 저러한 비범한 비약조차 단 하나의 비약에 비할 바는 아닐 테지.

         

       “이건, 비약이 아니라 요물인데?”

         

       후욱!

         

       영롱한 붉은색 사파이어를 물처럼 녹일 수 있다면 이러하지 않을까.

       아름답게 빛나는 붉은색 액체가 형광물질마냥 빛을 발하였고, 내심 이런 걸 인간이 먹어도 되는 건가 싶다.

         

       하지만.

         

       “이것부터 먹으라고 그랬지.”

         

       이한은 망설이지 않았다.

       저토록 모든 심력을 쏟아 부은 비약이지 않은가, 어른된 도리로.

         

       ‘남김없이 먹어줘야지.’

         

       그는 곧장 세 개의 비약을 섭취했다.

       물처럼 녹을 것 같다는 생각과는 달리 비약은 삼킬 때까지 녹지 않았다.

       허나 그 세 가지 비약이 식도를 타고 들어가는 순간.

         

       쿠우웅!

         

       “!!!”

         

       어느 때와도 비교할 수 없는 강한 충격이 몸 내부를 덮쳤다.

       폭발이 난 개념은 아니었다.

       단지 그와 비견할 정도로 강렬한 현상이 몸속에서 일어난 거지.

         

       ‘이거 지금, 내 몸속 기운까지 다 가져가는 것 같은데?’

         

       세 개의 비약은 서로의 기운을 이용하여 존재감을 키울 뿐만 아니라, 아예 이한의 기운마저 먹어치우고 있었다.

       기껏 성직자에게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으며 회복시킨 활력과 기력 등이 모조리 다 빼앗기는 감각.

       누군가는 저를 독살하려고 일부러 이런 약을 먹게 했나 오해마저 하리라.

       그 정도로 이건 실시간으로 수명이 줄어드는 기분이다.

         

       그렇게 강렬한 거부감이 들고, 당장 비약을 뱉고 싶었으나-.

         

       ‘놔두면 될 것 같기도…?’

         

       이한은 아슬아슬할 때까지 자신의 기운이 먹어치우는 것을 방관했다.

       소심이가 그를 위협할 리 없다는 믿음이 있고, 무엇보다 비약의 기운이 목숨을 위협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도리어 무어랄까, 이 기운들이 자신의 활력을 흡수할수록 어딘가 몸속이 다른 의미로 시원해진다.

         

       있어도 하등 상관없지만, 딱히 없어도 되는 기운들이 사라지며 몸속 [용량]이 늘어난 것 같은….

         

       어딘지 억지로 그릇을 비워내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한동안 세 개의 비약이 제 마음대로 활개 칠 수 있도록 놔두길 수십 분.

         

       “……컥.”

         

       이한은 말할 기운도 잃은 채, 현기증이 났다.

       눈앞 시야마저 흐렸고, 당장 정신이라도 잃고 싶다.

         

       또한 만약 여기 거울이라도 있었다면 경악했었을 것이다.

       기골장대란 말이 무척이나 잘 어울렸던 그의 몸이 빼빼마르다 못해 말라비틀어지기 직전이었으니까.

       눈이 침침하고 거울이 없는 작금의 상황이 다행이 아닐 수 없는 바.

         

       그리고 제 몸에 일어난 변화조차 보지 못한 채 이한은 손을 뻗어 붉은색 액체가 든 병을 힘겹게 짚어들었다.

         

       무겁다.

         

       겨우 250g도 안 될 텐데, 들어 올리는 게 더할 나위 없이 힘겹다.

       고통과 괴로움, 수면욕과 식욕마저 제 마음대로 컨트롤 되지 않는다.

       뭐든 먹고 싶으면서도,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되니 그냥 누워 잠들고 싶은 두 개의 욕구가 각각 미치도록 치밀어 오른다.

         

       만약 색욕이 봉인당하지 않았다면 보기 민망한 모습이 연출되지 않았을까 싶은 초유의 상황.

         

       그러한 상황 속에서 이한은 오로지 ‘인내력’ 하나만으로 모든 욕망과 괴로움을 억눌렀다.

         

       참을성, 이것 하나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자부하는 그였기에 격통과 욕망이 통제 불가능한 물살처럼 온몸을 지배하려고 해도 그는 저항했다.

         

       ‘닥쳐라, 닥쳐라…, 닥쳐라-!’

         

       이한은 통제 불가한 제 몸 전체에 명령을 내렸다.

         

       내 몸이라면 내 의지를 따르라 명령하듯이.

         

       꿀꺽-.

         

       그리고 이한은 기어이 제 입안으로 붉은색 액체를 밀어 넣었다.

         

       으득!

         

       그건 마신다기보다, 씹는다는 행위에 가까웠다.

         

       분명 액체를 마시고 있는데, 마치 질긴 돼지 껍데기나 몸부림치는 산낙지를 먹는 것처럼 계속해서 입속에서 꿈틀거린다.

         

       “━━.”

         

       허나 이한은 한 방울도 액체를 흘리지 않았다.

       씹고, 또 씹기를 반복할 뿐.

       절대 입에서 나가지 못하도록 마냥 먹었고, 기어이.

         

       꿀꺽!

         

       남김없이 씹어 삼켜버렸다.

         

       그러나 삼킨 것이 시련의 시작이었을까.

         

       쿠웅-!

       쿠우우웅.

         

       저릿저릿, 하고 온몸이 감전된다.

       손가락보다 작은 소인(小人)이 있고, 자칫 실수로 그 소인을 삼키고 나니, 분노한 소인이 무지막지하게 큰 워 해머로 배 안을 연달아 때린다면 이런 느낌이 들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들 정도로 미친 격통이었고. 이한은 고통을 참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몸이 뒤집혔다.

         

       “끄으으윽….”

         

       비명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내지를 힘이 없고, 눈이 금방이라도 뒤집힐 듯해서.

       의식이 언제 꺼져도 이상할 게 없다.

         

       하늘이 노래진다.

       산모가 겪는다는 출산의 고통이 이러한 게 아닐까?

         

       ‘아니, 나 남잔데?’

         

       이한은 이게 맞냐며 잠시 어이가 없을 따름이었다.

       허나 생각할 여유가 있다는 건 아직 죽을 정도로 아프다는 건 아니란 의미다.

         

       아마 세 개의 비약이 가진 기운이 이토록 들소처럼 사나운 약성을 막아주는 거겠지.

         

       ‘하! 이게 약성이라고?!’

         

       약성이 강하다는 말은 들었다.

       이를 위해 세 개의 비약을 준비했다는 것도.

       하지만 약성이란 말로 퉁칠 수준이 아니지 않은가!?

         

       이한은 독기가 주는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며 그저 귀왕의 심장이 가진 약성 앞에 정신이 아득해질 따름이었다.

         

       만약 처음 먹었던 비약의 존재가 위장을 지켜주지 않았더라면 그는 진즉 고통 때문에 정신을 잃었으리라.

         

       ‘…차라리, 정신을 잃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어.’

         

       쓴웃음이 절로 나왔으나, 이한은 정신을 잃는 게 좋은 선택지가 아님을 안다.

       제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정확히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하여.

         

       ‘썩을! 누가 이기나 해보자.’

         

       푸욱.

         

       일순 혀를 물어 피를 내었다.

       쇠맛이 감돌았고, 또 다른 고통으로 기어이 그는 혼미한 정신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곧.

         

       “후우, 후우우!”

         

       탁, 타닥, 타다닥.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복싱 스텝.

       그는 쉐도우 복싱을 하듯 서서히 주먹을 뻗고 내밀길 시작했다.

         

       활력이란 게 없고, 피로함과 수면욕 등이 한없이 치솟는 상태의 몸.

       허나 고통으로 인해 제대로 잠도 들지 못하는 미치기 일보직전이 아닐 수 없다.

         

       그럼 차라리 몸을 억지로라도 움직여야 한다.

       정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다른 곳에 집중하는 것이 나을 테니까.

         

       타인이 보았다면 그냥 무식한 행위가 아닌가 싶지만, 이한은 기꺼이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 땀을 흘리는 것을 선택했다.

         

       후욱-!

         

       주먹을 뻗고 회수하길 반복한다.

       처음엔 한없이 느렸다.

       아무래도 몸 자체를 움직이는 행위가 지금은 한없이 고통스러웠으니까.

         

       꾸득!

         

       허나 이한은 고집을 부렸다.

       고통 따위엔 지지 않겠다는 듯이, 한없이 최선을 다하여 주먹을 뻗고, 몸을 움직였고, 점차 느릿하기 그지없던 주먹질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허공을 향한 주먹질.

       처음엔 파리 한 마리 못 잡을 허약한 주먹질이 아닐 수 없었으나, 이한이 주먹질이 진행될수록.

         

       후욱, 후우우욱!

         

       속도가 붙으며 주먹에는, 아니 전신에서 힘이 감돈다.

         

       전날 깨닫지 않았던가.

       부드러움 속에도 힘이 있음을.

       이렇듯 힘은 어디에나 존재하며, 근육이 풍선처럼 다 빠져나간 몸일지언정 힘을 발산하는 건 가능하다.

         

       어떠한 식으로든.

         

       그렇게 한없이 빨라지는 주먹질에는 위협스러운 날카로움이 깃들기 시작했다.

       비록 힘은 없을지언정, 송곳이나 대못과 같은 날카로움이 깃든 것이다.

         

       허나 이는 딱히 깨달음이랄 게 없다.

       그저 할 수 있는 것을 할 뿐이며, 고통과 덮쳐오는 수마에 대항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에 불과했지.

         

       그리고 그 몸부림은.

         

       꾸드득!

         

       점차 효력을 발휘하듯 약성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원래는 하루 온종일 걸려야 하는 과정이었으나, 그 상식을 무시하듯 이한은 몸을 강제로 움직이며 약성을 흡수, 아니 적응해갔다.

         

       “—–.”

         

       어느 순간부터 이한은 무아지경으로 주먹질을 할 뿐, 눈에는 초점이랄 게 없었다.

       의식이 반쯤 흐려진 상태에서 마냥 의지가 시키는 대로 몸이 움직일 따름.

         

       하여 그는 보지 못했다.

       점점 몸에서 치솟는.

         

       치이이익.

         

       수증기를 말이다.

         

       후우우욱.

         

       그의 몸속에서 배출되는 수증기의 정체는 지금껏 몸에 쌓여 있던 노폐물이었다.

       어릴 적 마법사가 강제로 삼키게 만든 정체불명의 약들의 부작용이라든가, 아니면 전쟁터를 전전하며 쌓인 시독과 같은.

       알게 모르게 쌓이고 쌓였던 것들이 그의 몸에서 땀처럼 흘러나왔고, 어느새 이한을 점령했던 묵직한 피로가 모조리 빠져나간 듯했다.

       거기다.

         

       콰앙! 콰아앙!

         

       약성은 한 발 더 나아가 홀쭉해졌던 그의 몸을 다시금 부풀게 만들었다.

       마냥 우락부락하게 부푼 것이 아니었다.

       분명 전에도 차돌처럼 딱딱한 몸이었으나, 이제는 뭐 차돌처럼 단단할 뿐만 아니라, 스프링이나 고무 같은 탄력성이 생긴 바.

         

       이미 한계까지 몸을 단련시켰기에, 육체의 발전여지가 한없이 미약할 뿐이다 싶었던 이한의 육체는 고무적인 성장을 넘어 도약을 이루고 있는 셈이었다.

         

       이는 ‘기연’이었다.

         

       그러나 이 기연이 있는 것을 단순히 약의 도움으로 치부할 순 없었다.

         

       이한이란 남자의 처절한 삶이, 보통 사람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치열하고도 목숨을 건 훈련이 있었기에 그 결실을 맺은 것이었지.

       만약 이한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영약을 먹었다면 이러한 성장은 꿈도 꾸지 못했으리라.

       그냥 비싼 영양제 하나 먹은 것에 불과했을 터.

         

       오로지 [그]이기에 얻어낸 도약적인 성장.

         

       이를 마냥 약의 도움으로 치부해선 안 될 말이었다.

         

       …다만, 안타깝게도 제 노력의 성과가 나타나는 이 역사적인 순간에서, 하필 무아지경 상태인 이한은 제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도 모르는 채 허공을 향한 주먹질을-. 아니,

         

       콰직, 콰지직!

         

       무의식의 백보신권을 반복할 따름이었다.

         

         

       하염없이 말이다.

         

         

         

         

         

       ──그리고, 십 분 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데릭은 경악하고 말았다.

         

       파괴되기 직전인 벽면을 확인한 것도 있지만….

         

       “그, 그걸 그냥 섭취하셨어요? 제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지도 않으시고?”

         

       “…….”

         

       “그, 분명 제가 쓰러지기 전에 복용 순서가 있다고 했는데, 혹시 기억 안 나세요? 아니, 그보다 안 아프셨어요? 그거 순서 안 지키고 드시면 불에다 기름을 붓는 격일 텐데….”

         

       “…….”

         

       “그, 그 고통 견뎌 내려다 골로 갈 수도 있을 텐데…….”

         

       “…으음.”

         

       “……많이 아프셨어요?”

         

       “크흠!”

         

       이한은 먼 산을 바라보았다.

       지하인지라 산도 보이지 않지만, 지금은 그러고 싶었다.

         

       그러며 생각한다.

         

       어쩐지….

         

       ‘…존나 아프더라니.’

         

       이래서 머리가 무식하면 몸이 고생한다는 교훈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며 새삼스럽게 재확인하는 기사였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