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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0

    <80 – 마음에 걸리는 부분>

     

    트롤이 마부를 공범으로 만들고, 마부도 공범이 되기로 결정했다.

    정답은 맞췄지만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럼 그 뒤의 이야기를 들려주지.”

     

    디스트로이어는 떠올렸다.

    인간의 마음을 이해한 괴물의 섬뜩한 지혜.

    그리고 괴물과 한 통속이 된 인간의 뒤틀리고 잔인한 결단을.

     

     

    * *

     

     

    이번에도 지름길로 향하는 마차를 보며 디스트로이어는 물었다.

     

    “거긴 그때 트롤이 나왔던 길 아닌가?”

    “어쩔 수 없습니다. 지난 10년 사이에 북부로 향하는 대로는 산사태에 의해 봉쇄되었거든요. 고치고 또 고쳐도 계속되는 산사태에 영주도 포기했습니다.”

     

    자연이 분노한 탓이다.

    영주가 부덕한 탓이다.

    마부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지만 그것이 변명에 불과함을 디스트로이어는 알고 있었다.

     

    “손님은 혹시 희귀성의 법칙을 알고 있습니까?”

     

    마부는 이야기했다.

     

    “나무꾼이 백 명 있는 벌목캠프에 도끼를 판다고 칩시다. 만일 도끼가 만개나 있으면 나무꾼들은 생각하겠죠. 도끼가 저렇게 많은데 제 값을 주고 살 필요가 있냐고. 좀 더 싸게 사도되지 않겠냐고.”

    “반대로 나무꾼은 백 명인데 도끼는 열 개 밖에 없다면? 도끼를 얻은 사람은 무조건 남들보다 많은 나무를 캐서 비싸게 팔 수 있다면? 웃돈을 줘서라도 사게 됩니다.”

    “이 지름길을 지난다는 것은 제게 그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객석보다 화물수송 칸이 더욱 긴 개조마차에는 짐이 잔뜩 실려 있었다.

    평범한 마부가 십년 사이에 운임만으로 마차를 확장개조 할 자금을 벌었을 리는 없다.

    마을 간 무역으로 쏠쏠한 재미를 본 것이다.

     

    “그 트롤이 있는데도?”

    “그래서 앞에 사람이 갈 때만 이용했습니다.”

    “죄책감은 느끼지 못했나?”

    “이건 그저 교환입니다. 트롤은 사람을 편리하게 다지고, 저는 물건의 희소성을 늘릴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오직 저만 쓸 수 있는 편리한 교역길이죠.”

    “그럼 손님은 어째서 이 마차에 다시 타셨습니까?”

     

    마부가 물었다.

     

    “손님도 이 지름길이 빠른 것을 알고 있고, 돌아가는 길은 족히 몇 개월은 더 걸린다는 사실을 알기에 어쩔 수 없이 타협한 것 아닙니까?”

     

    우리는 공범이다.

    나를 탓하지 마라.

    마부의 간접적인 경고 이후, 대화는 없었다.

    트롤이 나타나는 갈림길에 도달하고.

    예전과 같이 사람이 묶인 길목에 도달하기 전까지.

    벼랑길에 한 명.

    대로변에 다섯 명.

    트롤은 전과 다름없는 시험을 준비했다.

    그 광경을 본 디스트로이어는 결심했다.

    괴물의 목을 베기로.

    초짜 용사파티의 일원이 아닌 베테랑 용사 디스트로이어의 손속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괴물은 거침없이 목이 떨어졌고, 고삐를 쥔 디스트로이어는 마차를 세웠다.

    목이 떨어진 마부는 마차 밑으로 굴러 떨어졌다.

     

     

    * *

     

     

    “알겠나? 베테랑 용사 디스트로이어가 마부를 죽인 이유도.”

    “사람의 목숨을 이용하는 마부의 인성이 괴물이나 다름없어서, 라는 거겠죠?”

    “그것뿐인가?”

     

    여분의 마차바퀴.

    영주도 포기한 통행로.

    이런 길을 이용할 마부는 그밖에 없다는 사실까지.

    정보는 충분했다.

    더 이상의 문답도 필요 없다.

     

    “희소성의 법칙은 핑계였어요.”

    “이유는?”

    “리스크 대비 리턴이 너무 크니까요.”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

     

    “마부는 매번 자신 대신 제물이 될 사람들을 앞에 보내고 뒤따라갔지만 매번 형편 좋게 여섯 명의 제물이 트롤에게 잡힐 수 있을까요?”

    “실수로 트롤이 한 명을 잡아먹는다면? 용병 한 병이 몰래 달아났다면? 싸움 도중 몇 명이 절벽으로 떨어졌으면?”

    “6명의 제물에 자신이 반드시 포함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어요. 제물이 반드시 6명이 될 거라는 보장도 없고요. 그런데도 마부는 확신했어요.”

     

    이 길은 돈이 된다고.

    이용할 수 있다고.

    그리고 실제로 이용했으며 부를 축적하기도 했다.

     

    “마부가 정말 운이 좋아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음…. 1년에 한 번씩 들렀다고 해도 무려 10번. 그걸 전부 운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디스트로이어는 은퇴한 전직용사.

    수많은 인간 군상을 보아왔을 사람.

    쉽게 믿지 않고 의심하는 것은 단명하지 않고 오래 모험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당연한 소양이다.

    인간을 향한 불신.

    불신을 향한 믿음.

    그것은, 디스트로이어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물론 운이 아니다.”

    “마부의 숨은 정체는 트롤과 손을 잡은 괴물조련사.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트롤의 실체는 1년에 한 번, 주기적으로 먹이를 공급하는 괴물조련사의 조련에 의한 연출.”

    “이곳은 위험하다. 함부로 토벌을 꿈꿔서는 안 된다. 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농간이었지.”

     

    트롤의 딜레마.

    주체가 되는 트롤은 괴물 트롤이 아닌 동족을 배신하는 인간 트롤에게 있었다.

    하긴, AOS게임도 그렇고 어딜 가나 트롤이 무섭지!

     

    “이 이야기로 교훈을 좀 얻었나?”

    “퀴즈를 내는 트롤을 조심하자?”

    “낯선 곳에 가서는 인간을 함부로 믿지 말라는 거다. 그가 호의를 베푼다면 특히 더.”

    “넹!”

    “넹은 뭐가 넹이냐. 아카데미도 마찬가지다. 모르는 교수가 간식이나 영약을 준다고 꼬셔도 함부로 넘어가고 그러면 안 된다.”

     

    언제 어디서 동족을 길바닥 위에 눕히고 짓밟고 지나가길 즐기는 트롤에게 걸릴지 모르니 말이다.

     

     

    * *

     

     

    오크노디가 돌아간 뒤.

    디스트로이어는 자신의 전용실로 돌아왔다.

     

    도축된 양가죽. 더블배럴샷건. 담배파이프.

    전시품처럼 벽에 걸린 장식품 사이에서 그가 눈길을 준 것은 담배파이프였다.

    그날, 마부가 마차에 실은 것은 대량의 담배와 담배파이프였다.

     

    ‘마약으로 만든 담배로 몬스터를 길들이다니. 참 골 때리는 녀석이었지.’

     

    마약에 뭘 갈아 넣었는지는 몰라도 목이 잘린 몸뚱이가 벌떡 일어나서 목을 제 몸통에 끼워 넣을 때에는 베테랑 용사인 그도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설마 대륙을 떠들썩하게 만든 불사자의 마약의 시초가 그곳이었을 줄은 누구도 몰랐겠지.’

     

    장시간 피우면 어떤 부상과 상처도 나으며 심지어 심장이 멎거나 뇌가 파괴되어도 되살아나는 말 그대로 불사자가 되는 마약.

    물론 그만한 기적에 부작용이 뒤따르지 않을 리가 없었다.

    뇌가 파괴되고 지능이 감소한다.

    몸이 녹색으로 변하며 점점 커진다.

    종국에는 걷잡을 수 없이 신체가 부풀어 오르며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거대한 살덩어리가 된다.

    세포분열횟수를 무한대로 늘려 부상을 회복하는 대신, 지금의 형체를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분열이 폭주해서 사람의 열 배 크기까지 부풀어 오른다.

    제물공양과 소환의식을 치르는 흑마법사들이 무척 좋아하는 <제물인간>을 만드는 마약이다.

     

    ‘뭐, 살점 하나 남기지 않고 전부 불태우면 죽지만.’

     

    나중에라도 약물감별로 담배의 정체를 식별하지 못했다면 경비들에게 섣불리 담배를 맡겼다가 근방에 불사자의 마약이 잔뜩 풀릴 뻔했다.

    다시 생각해도 참 아찔한 노릇이다.

    한편으로는 의문도 들었다.

    용사 니알라토텝은 어디까지 알고 있었을까.

    트롤이 인간을 공범으로 만들려던 것까지?

    실은 마부가 마수조련사라는 것까지?

    트롤이 피우던 담배가 불사자의 마약이며 그 부작용이 어떤 것인지까지?

    가난한 촌민들에게 마약담배를 나눠줘 대량의 제물을 만들고 소환의식을 치를 흑마법사들의 미래까지?

     

    뭐가 됐든, 혼자가 된 지금은 전부 모를 일이다.

    그런 시점에서 보자면 오크노디는 운이 좋다.

    만일 지금이 전란의 시대였다면 아카데미의 강의도 보다 실전적으로 변했겠지.

    15년 전.

    그리고 5년 전.

    초짜용사와 베테랑용사 시절에 그가 겪었던 일들을 오크노디도 동료들과 함께 겪고 다녔으리라.

     

    ‘하지만……. 그 꿈은 좀 마음에 걸리는군.’

     

    첫 번째 강의가 끝난 뒤.

    그는 연금학 교수를 찾아가 수면수련에 필요한 약물의 제조의뢰를 맡겼다.

    오크노디의 부족한 점을 파악하고 다음 강의에서 보충을 하는 커리큘럼 조사를 위한 꿈이었건만.

    자신의 키를 2m 30cm까지 늘리더니 제 것이 아닌 근육을 능숙하게 휘두르며 몬스터들을 문자 그대로 찢고 갈아버리지 않던가.

    피를 매개체로 발동하는 혈마법으로 광화까지 일으키며 날뛰는 꼴을 보면 이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전투경험이 아니라 방심하지 않는 것이다.

     

    ‘어디서 보기라도 한 걸까? 그런 거구의 인간을.’

     

    마음에 걸렸다.

    근육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았다.

    자각몽이라는 이유로 상식을 벗어나는 힘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다.

    신체의 성능과 근육이 발휘할 수 있는 위력을 명백히 이해하는 움직임이었다.

    마치 오랜 시간, 아주 가까이에서 몸을, 근육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분석한 것처럼.

     

    ‘본인이 아닌 이상에야 교관이겠군.’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이전.

    오크노디를 가르친 교관.

     

    “나다. 오랜만에 외부연락망을 쓸 일이 생겼다.”

     

    통신마법진에 손을 올린 디스트로이어.

    그는 말했다.

    오크노디의 꿈에서 본 거한의 스펙을.

     

    “오크노디의 스승 되는 인물의 강함은 범상치 않았다. 그의 정체를 최대한 신중하게 파악해라.”

     

    통신마법진의 건너편에서 답변이 돌아왔다.

    와이히엠하이 재단.

    그 아이는 재단의 아이인데 뒤를 캐도 괜찮냐고?

     

    “상관없다. 이쪽은 은퇴한 전대용사다. 수상쩍은 재단의 이사장 따위의 눈치를 볼 이유는 없다.”

     

    마찰이 생길 때의 방침을 정해주십시오.

    교신자의 요청에 디스트로이어는 답했다.

     

    “안전상황에서는 교전회피. 신분발각 위기에는 즉시격퇴. 신분이 발각된 이후에는 확실하게 처리한다. 오크노디의 스승만 아니라면 전부 죽여도 좋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집사와 메이드에게 몰아치는 피폐의 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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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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