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80

       텔러-울람 설계.

         

        수소폭탄을 만드는 가장 간단한 모델이다. 

         

        원자폭탄을 기폭제로 수소 핵융합 반응을 끌어내서 폭발을 만들어내는 방식의 설계. 정석적이면서 가장 간단한 방법이다.

         

        원래 만들려고 했던 수소탄은 레이저-플라스마를 활용한 방식의 것이었다. 이건 현대 과학기술력만으로는 어림도 없어서 플레어 마법의 도움을 받아 개발하려고 했었다. 토카막을 챙겨온 것도 그 때문이었고.

         

        “응? 뭐냐니까?”

         

        이걸 로테에게 알려줄 수는 없었다. 알려주기도 어렵다. 완전히 이해할 때까지 물고 늘어지는 로테에게 핵물리학의 개념을 세세히 가르치는 건 시간상으로 무리였다.

         

        “나중에 알려줄게.”

         

        그래도 언젠가는 말을 해야 할 것이다. 때마침 잘 달리고 있던 마차가 멈췄다.

         

        마차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니었다. 나와 프레이는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무슨 상황인지 살폈다.

         

        차도가 끊겨있었다. 여기 앞에서부턴 도보였다.

         

        “읏차.”

         

        짐을 싸고 마차에서 내렸다. 오랜만에 밟아보는 땅이라 그런지 다리가 후들거렸다.

         

        우리는 살리에르 저택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로테의 본가는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몇 분 되지 않아 정문에 도착했다. 시종 열댓 명과 함께 격식 있는 차림을 한 부부가 이쪽으로 걸어왔다.

         

        붉은 머리칼에 붉은 눈동자를 한 장년 부부. 두 사람이 누구인지 유추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엄마! 아빠!”

        “로테, 로르웰! 무사했구나!”

         

        로테는 캐리어를 가져가는 것도 잊은 채 그대로 살리에르 백작 부부가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몸은 괜찮니?”

        “네, 괜찮아요.”

        “제때 만나러 가지 못해서 미안했다!”

         

        자기 딸을 걱정하는 살리에르 부부의 모습은 대중매체에서 보던 귀족 집안과는 전혀 달랐다. 평범하고 단란한 가정집 같았다.

         

        “와, 부럽다.”

         

        누군가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새어 나왔다. 프레이는 내가 있는 쪽을 흘겨보았다.

         

        이내 살리에르 백작이 나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네가 그 금안족 아이로구나. 우리 로테를 도와줘서 정말 고맙다.”

         

        제국식 예법. 본래는 손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취하는 손동작이었다. 갑자기 저자세로 나온 백작의 모습에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아, 아뇨… 이러지 않으셔도….”

        “괜찮아. 우리 아빠는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인사하시거든.”

        “아….”

         

        내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나도 이 집 딸내미 할래.

         

         

        **

         

         

        살리에르 백작은 나와 프레이를 따듯하게 맞이해 주셨다.

         

        저택에 들어오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식사였다. 짐을 풀 새도 없이 상다리 휘어지는 만찬이 눈앞에 펼쳐졌다.

         

        “오늘만큼은 씀씀이를 크게 가져야겠구나.”

         

        살리에르 백작은 평소에는 근검절약하는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게, 백작씩이나 되시는 분이 집안에 예술품 하나를 안 놔두고 계셨다. 시종인도 딱 필요한 만큼만 사용하고 있다.

         

        “전 그만 가보겠습니다.”

         

        식사가 끝난 뒤 프레이는 곧장 떠났다. 떠날 때 했던 제국식 예법이 아직도 뇌리에서 잊히질 않는다.

         

        내가 알고 있던 그 프레이 맞나?

         

        [그 순간만큼은 어느 나라 공주 같았어요.]

         

        선생님들 앞에서도 퍼질러 자고 있길래 그냥 머리 좀 좋은 왈가닥인 줄 알았더니. 

         

        역시 컨셉이었나?

         

        도개교를 넘어가는 프레이를 보며 우리는 손을 흔들었다. 도개교 아래로는 폭이 수백 미터는 되어 보이는 하천이 급물살을 타며 흐르고 있었다.

         

        “쟤는 왜 저기 가는 걸까?”

         

        서쪽 너머는 수인, 즉 야만족의 땅.

         

        수인족 중에는 금안족처럼 유목 생활을 하는 부족이 많지만, 그들의 성격은 산나물이나 캐고 살 만큼 유순하지 않다.

         

        산나물?

         

        “윽.”

         

        산나물 하니까 저번에 초콜릿에 박하잎을 섞어 먹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서쪽에 사는 수인족은 흉포하기로 유명해. 프레이가 저기 가서도 괜찮을지 모르겠어.”

        “즉석 연성을 사용할 줄 아는 애잖아. 뭔 일 생겨도 알아서 잘하겠지.”

        “그래도 저 너머가 위험한 건 여전해. 특히 요호족이 우리 영지에 내는 피해는 매년 심각했어.”

        “요호족?”

         

        버멜에게 들어서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정보 대조를 위해 모르는 척 한 번 더 물어봤다.

         

        “쉽게 말해 여우 수인이야. 여우 귀와 꼬리가 나 있는 애들. 치고 빠지는 전술이 특기라서 주변 마을을 약탈해도 잡기 어려워.”

        “와.”

        “특히 지금과 같은 때엔 조심해야 해.”

        “지금이 왜?”

        “곧 있으면 장마철이 다가오거든. 수인족은 힘은 강해도 유목 생활을 하는 특성상 자연재해에는 취약해. 곧 있으면 이 강이 범람할 거야. 그때 요호족이 우리 영지를 약탈하러 올 수도 있어.”

         

        수해, 수해라.

         

        확실히 이쪽 하천은 보도 높고 제방도 잘 쌓아놨다. 반면에 도개교 너머의 반대쪽은 자연 그 자체. 이만한 강이 범람했다간 서쪽은 쑥대밭이 될 것이다.

         

        우리는 저택으로 돌아왔다. 짐을 풀고 난 뒤로 나는 별채의 베란다로 향해 하천 전경을 내다보았다. 

         

        피치블렌드 산을 옆으로 끼고 있는 거대한 하천. 마치 장강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다만 강의 색깔은 아직 탁하지 않았다.

         

        맑디맑은 강물을 보니 낚시질이 마려워졌다.

         

        “그나저나 말이야.”

        “응.”

        “텔러인가 뭔가 하는 거 이제 알려줘.”

         

        큰일이다. 아까 양장본에 적고 있던 게 그대로 눈에 꽂혀버린 모양이다.

         

        “또 플레어 같은 거 만들고 있는 거지?”

        “아, 아니?”

         

        변명처럼 보이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텔러-울람 설계는 마도라고 보기엔 모호하다. 오히려 내가 살던 세계에서도 기술할 수 있는 핵물리학의 설계 이론이었다. 

         

        로테에게 가르칠 이유도, 가르칠 만한 시간도 없다. 나는 베란다에서 피치블렌드 산을 바라보며 내일 계획을 준비하고 있었다.

         

        [마법 관련된 거 아니면 딱히 쓰지도, 말하지도 마세요.]

         

        양장본의 태도가 이런 것도 있었고.

         

        어째서인지 양장본은 내가 로테에게 물리학 이론을 가르치려고 드는 걸 싫어하는 낌새였다. 마소 이론을 설명할 때 양성자나 전자 얘기를 할까 싶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이 책이 계속해서 훼방을 놓았다.

         

        ─ 마도이론은 마도로만 설명할 수 있도록 연습해 보세요. 그게 당신을 위한 길이니까.

         

        재수는 없어도 말을 따라야만 했다. 얘가 팁을 줘서 안 좋았던 적이 없었으니까. 적어도 지구로 귀환하기 위해서는 이 녀석의 말을 들어야만 했고.

         

        짤랑.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손에 은화가 다시 얹어졌다.

         

        “나 궁금하면 못 참는 거 알잖아.”

         

        나왔다. 돈으로 지식을 사려는 버릇.

         

        물론 로테는 천재니까 배운 건 금방 습득하겠지.

         

        가르쳐주면 분명 수소폭탄을 설계하는 데 큰 도움을 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손에 들어온 은화를 다시 뱉어냈다. 로테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로테를 포함한 그 누구에게도 수소폭탄의 설계법 연구를 같이하자고 제안하지 못하는 이유.

         

        제반 이론을 알려줄 시간이 부족해서?

         

        양장본이 단순히 알려주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사실 일차적인 변명에 불과하다. 진짜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알려주면 여러모로 위험할 거 같아서.”

         

        이건, 금단의 기술이니까.

         

        역사는 반복된다. 인간도 반복된다. 비록 지구의 인간과 아렌스 대륙의 인간은 다른 존재이지만, 비슷한 지능과 성정을 지녔다.

         

        인간, 엘프, 수인. 금안족을 제외한 그 어느 종족도 마법을 다룰 줄 안다. 마도라는 것은 정령의 도움을 받아 발현한다. 정령왕이 일찍이 축복을 내리면 한 가지 속성을 부여받아 다룰 수 있게 된다.

         

        반대로 말하자면, 정령이 원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마도를 끊어버릴 수 있다. 정령은 이 세상을 만든 여신의 대행자요, 또한 분신이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마도가 있었기에, 이곳 사람들은 제 분에 만족하면서 산다. 여신이라는 절대자를 경외했기에 힘을 부리는데 조금이라도 겸손해질 수 있었다. 

         

        이들에게, 마도보다 뛰어난 과학기술을 가르쳐 주면 안 된다. 로테처럼 선량한 마음을 지닌 이에게조차도 이 위력을 보여줘선 안 된다. 혹시라도 다른 이의 귀에 넘어갔다가 이들이 지구와 같은 역사를 반복하는 일을 볼 수는 없었다.

         

        “나 진짜 궁금해.”

        “미안하지만 절대 안 돼.”

         

        그래, 로테.

         

        비록 나는 텔러의 길을 걷지만.

         

        너는 오펜하이머로 남길 바란다.

         

         

        **

         

         

        에테르와 대화하고 나서 로테는 처음으로 얼굴을 구겼다. 

         

        ‘뭐야, 예전에는 하나 물어보면 친절하게 알려줬으면서!’

         

        그런데 이번에는 왜 저러는 걸까.

         

        “설마 진짜 위험한 건가?”

         

        만에 하나라도 자신에게 위해가 될 만한 마법이라면 에테르가 알려주지 않으려고 할 수도 있었다. 로테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 믿어야만 속이 후련할 것 같았다.

         

        그래도 착잡하다. 로테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마침 살리에르 백작이 업무를 끝마치던 때였다.

         

        “내 딸 왔니?”

         

        자신의 아버지, 크롬웰 살리에르 백작.

         

        크롬웰은 중앙 당정정치에서 밀려난 사람이었다. 계속해서 이상한 정책만 내놓던 황제에게 간언했다가 지금의 영지로 추방당한 모양새가 됐다.

         

        틀린 말이면 황제에게라도 서슴없이 말한다. 그런 아버지를 로테는 진심으로 존경했다.

         

        어쨌거나 살리에르 백작은 업무로 늘 바쁘다. 

         

        “무슨 일이시길래 이런 때에 부르셨어요?”

         

        처음은 잡담으로 시작했다.

         

        “아카데미에서 많이 배웠니?”

        “…네.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값진 연구도 했어요.”

        “그거 다행이구나. 몸은 어떻고?”

        “이제 괜찮아요.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살리에르 백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흐뭇한 미소를 지은 그가 말의 사슬을 이었다.

         

        “좋아. 슬슬 너에게도 말해줄 때가 되었구나.”

         

        본론이었다.

         

        로테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내가 널 이런 때에 부른 건 다른 게 아니야. 학교생활에 적응할 겸 성인이 된 너에게 알려줄 중대한 이야기가 있어서 그렇지.”

        “아버지?”

         

        낌새가 이상하다. 인자한 표정을 짓던 아버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닌 듯했다. 다만, 무언가를 결심한 얼굴이었다.

         

        “로테, 한 번만 말할 테니 집중해서 듣거라.”

         

        아버지가 말을 꺼냈다.

         

        “우리 가문에서도 비밀리에 연구 중인 마도가 있단다.”

       

    다음화 보기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