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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0

       한여름이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그녀는 어떠한 미동도 없이 조각상처럼 서 있을 뿐이었다.

       

       갑자기 몸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가?

       불안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도는지라, 다급히 한여름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괜찮아요···?”

       

       “아, 응. 겨울이가 크앙해서 조금 놀랐어.”

       

       “놀랐어요?”

       

       “응. 언니 방금 심장 멈출 뻔한 거 있지?”

       

       심장이 멈출 뻔했다니.

       지금의 내가 절대로 그 정도까진 아닌데.

       다른 사람들은 다 멀쩡했는데, 왜 최상위 모험가인 한여름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연습을 통해 야성이 강화되기라도 한 걸까?

       뭔가 이상했지만, 한여름이 그렇다고 했으니까.

       앞으로는 조심해야 할 것 같았다.

       

       “죄송해요. 두 번 다시 안 그럴게요.”

       

       “아, 아냐! 언닌 계속하면 좋겠는데···?!”

       

       “계속이요? 하지만 방금···”

       

       심장이 멎을 뻔했다고 하지 않았나.

       그녀가 굳이 위험을 자초할 필요는 없었다.

       

       “그, 그게, 언니는 한번 겪으면 저항력이 엄청 높아지거든.”

       

       “그래요?”

       

       “으, 응. 그리고 언니가 볼 때 방금은 우연이었어. 왜, 활도 백 번 천 번 쏘다 보면 한 번 정도는 명중할 거 아니야.”

       

       “음···”

       

       백 번 천 번 연습하다가 우연히 야성이 튀어나왔다는 건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만 같았다.

       

       “겨울이도 거울보단 사람을 상대로 연습하는 게 낫지 않아?”

       

       “네, 그렇긴 해요.”

       

       “응. 그럼 앞으로도 계속 언니한테 크앙하자. 언닌 한 번 겪어봐서 괜찮거든.”

       

       확실히.

       거울보다는 사람이 낫긴 하지.

       나는 한여름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네. 그렇게 할게요.”

       

       “응!” 

       

       헤헤.

       한여름이 상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뭔가 행복해 보이는 미소였다.

       

       “그나저나 이거 다른 사람들한텐 하면 안 되겠죠?”

       

       “다른 사람들?”

       

       “네. 방금처럼 우연히 야성이 튀어나오면 위험할 거 같아서요.”

       

       내 물음에 한여름이 턱을 쓰다듬었다.

       고민에 잠긴듯싶었다.

       

       “음··· 겨울이랑 친한 사람한텐 해도 되지 않을까?”

       

       “친한 사람이요?”

       

       “응. 겨울이가 야성을 내보여도 해치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

       

       “아.”

       

       내가 엔시아의 야성을 맞닥트렸을 때처럼 말이지.

       엔시아가 피워낸 야성이 두려웠지만, 나를 해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었으니까.

       그녀의 말대로 친한 사람들에게는 해도 될 거 같았다.

       

       “네. 친한 사람들한테는 할게요. 근데 일단 던전에 다녀와야 할 거 같아요.”

       

       “응. 몸조심하고, 알았지?”

       

       “네에.”

       

       나는 한여름에게 손을 흔들어 준 뒤, 훈련실 밖을 빠져나갔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내가 나가는 순간 훈련실 내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야, 한여름! 친한 사람만 챙기냐!”

       

       “우우, 독점하지 마라.”

       

       독점하지 말라는 게 대체 무슨 뜻이지?

       한여름이 뭔가를 독점했나?

       나는 의문을 품은 채, 활을 챙기고 던전으로 향했다.

       

       훈련을 하더라도 돈은 벌어야 했으니까.

       

       

       **

       

       

       그날 오후.

       사냥을 다녀온 나는 연못 근처 벤치에 앉아 야성을 연습하고 있었다.

       

       함께 벤치에 앉아있는 소피아는 멀쩡했으나, 레비나스는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내 야성 때문은 아니었고, 그냥 레비나스가 두려움이 많은 탓이었다.

       

       “와, 왕아, 레비나스 많이 무섭다···”

       

       “미, 미안···”

       

       내 등과 벤치가 맞닿는 부분에 레비나스가 얼굴을 숨겼다.

       무섭게 한 건 나일진대, 내 몸에 숨어 안정감을 찾으려는 모습이 상당히 죄스러웠다.

       

       “소피아, 이렇게 하는 거 맞아요?”

       

       “그래,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 조급해하지 말거라. 활이랑은 달리 금방 다룰 수 있는 힘이 아니니까.”

       

       “아··· 혹시 얼마나 더 연습해야 할까요?”

       

       “못해도 십 년은 걸리겠지.”

       

       십 년이라니.

       내가 이 세계에서 살아온 시간보다 긴 시간이었다.

       놀란 마음에 두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굉장히 긴 시간이네요.”

       

       “그렇겠지. 네가 살아온 시간의 두 배를 훌쩍 넘기니까.”

       

       “두, 두 배요?”

       

       내가 살아온 시간의 두 배는 안 넘기는데.

       소피아한테 내 나이를 알려 준 적이 없었나?

       당황스러운 상황에 소피아만 바라보다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가 내가 살아온 모든 시간이 아닌, 수인족으로서 살아온 시간만 계산 했을지도 모른다고.

       

       확실히, 수인족의 부분에선 애 취급을 당해도 할 말이 없었다.

       나는 수인족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으니까.

       

       “다시 말하지만, 너무 조급해하지 말거라. 성인이 되기도 전에 야성을 다룬다는 건 굉장한 일이니까.”

       

       “굉장한 거예요?”

       

       “그래, 어떠한 수인족도 성인이 되기 전에 야성을 온전히 다루지는 못했다.”

       

       “그, 그렇군요···”

       

       내가 십 년을 더 수련한다고 해도 수인족의 나이로는 고작 열 살이었다.

       물론 실제로는 그것보다 많았지만, 적어도 수인족의 나이로는 그랬다.

       소피아가 왜 조급해하지 말라는지 알 것만 같았다.

       

       “그리고 네겐 재능도 있으니까.”

       

       “재, 재능이요? 저한테 재능이 있어요?”

       

       “긴 시간 야생에서 살아오지 않았더냐.”

       

       “아···!”

       

       야생.

       무덤하게 말한 소피아의 말에 큰 깨달음을 얻었다.

       엔시아와 아르고를 처음 만났던 그날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내가 야성적이라고 했었지.’

       

       긴 시간 야생에서 살아왔기에 야성적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야생에서 살면 야성을 키울 수 있다는 뜻이었다.

       

       “소피아! 저 깨달았어요!”

       

       “···무얼 말이냐?”

       

       “야성을 기르는 방법이요!”

       

       야만인처럼, 아니, 짐승처럼 야생에서 살아가다 보면 야성을 기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소피아를 비롯한 다른 수인족들이 내게 그런 말을 했었으니까.

       

       과거보다도 더 힘들게 야생에서 살아봐야지.

       모든 게 다 미래의 자신을 위해서였다.

       

       “뭔진 모르겠으나, 한 번 해보거라. 실패하더라도 경험일 테니까.”

       

       “네!”

       

       나는 다급히 컨테이너를 향해 달려갔다.

       야생에서 살기 위해 몇 가지 준비를 할 필요가 있었다.

       

       

       **

       

       

       권아린의 교육을 마치고 돌아온 한여름은 겨울의 앞에서 입을 헤 벌릴 수밖에 없었다.

       

       “오···”

       

       평소에도 낡고 찢어진 옷을 입고 다니는 겨울의 옷이 더욱 낡아 있었다.

       만화 속에서 보았던 원시인의 모습과 비슷했다.

       그 원시인이 겨울인지라 굉장히 귀엽긴 했지만.

       

       “겨울아, 옷이 왜 그래?”

       

       “저 야성을 기르려구요.”

       

       “야성···?”

       

       “네. 야생에서 살면 야성을 기를 수 있을 거예요.”

       

       소피아님께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긴 했지.

       한여름의 고개가 소피아를 향해 돌아갔다.

       

       “소피아님···?”

       

       “흐, 흠··· 틀린 말은 아니다만, 겨울이가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구나.”

       

       “가능은 하다는 거예요?”

       

       “···가능은 하지.”

       

       저런 무식한 방법이 가능하다니.

       그렇다면 하지 말라며 말리기도 힘들었다.

       아이의 성장을 말리는 부모는 세상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겨울아, 그래서 어떻게 하게?”

       

       “집 없이 살아 보려구요.”

       

       “지, 집 없이···?”

       

       “네.”

       

       퍽-!

       퍽-!

       

       겨울이 모종삽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흙 놀이를 하고 싶었던 레비나스가 옆에서 겨울을 도왔다.

       

       “레비나스도 땅 잘 파!”

       

       레비나스가 맨손으로 토끼처럼 땅굴을 팠다.

       그 속도가 상당해서 겨울이 보다 빨랐다.

       

       “땅은 왜 파는 거야?”

       

       “저 땅굴에서 자려구요.”

       

       “아이고, 세상에.”

       

       힘들게 길드 건물까지 데려왔는데, 다시 밖에서 살겠다고 하다니.

       심지어 컨테이너도 천막도 아닌 그냥 땅굴이었다.

       충격적인 상황에 한여름이 제 머리를 쥐어뜯었다.

       

       “레비나스도 땅굴 좋아한다! 레비나스도 땅속에서 자면 안 되냐?”

       

       “응. 그러면 땅굴을 조금 더 크게 파야돼.”

       

       “걱정마라! 레비나스는 땅파기의 천재다!”

       

       팍팍팍-!

       땅을 파는 레비나스를 보며 한여름이 두 눈을 감았다.

       확실히 겨울의 모습이 정말로 야성적이기는 했다.

       

       수인족의 야성을 피워올리려면 이만한 게 없을 테지만, 말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겨울아, 밥은 언니랑 먹을 거지?”

       

       “그게, 밥은 잡아 먹으려구요···”

       

       “잡아먹어···?”

       

       “네. 당분간은 정말 짐승처럼 살 거예요. 인간으로 살아온 만큼 다른 수인족보다 짐승적인 부분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짐승적인 부분이 부족해서 더 짐승처럼 살아 보겠다니,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세상 어느 수인족 보다도 야성적으로 살아온 게 겨울이었으니까.

       그 소피아조차 놀란 모습을 보일 정도였다.

       

       ‘엔시아랑 아르고가 맞았구나.’

       

       수인족보다도 야성적인게 최고의 왕 후보자라 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머리가 좋지 못한 엔시아와 아르고가 잘못된 판단을 내린 줄 알았는데, 이 정도면 소피아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겨울이 역대 어떠한 왕보다도 뛰어나다는 것을.

       

       ‘인간 출신이라 머리도 좋고, 야생성도 뛰어나다.’

       

       거기에 더해 마음씨도 곱고.

       

       아직 열 살도 채 되지 못한 아이가 저 정도라니.

       소피아가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애가 최고라 생각하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소피아님, 좋아하고 있으면 안 되죠.”

       

       “미, 미안하구나.”

       

       소피아가 머쓱함에 뺨을 긁적였다.

       어쩌다 이리 팔불출이 되어 버린 것인지.

       크흠 소피아가 목을 가다듬자, 한여름이 불만스레 팔짱을 꼈다.

       

       “그래서 이제 어떡하죠?”

       

       “일단 내버려 두자꾸나.”

       

       “내, 내버려 둬요?”

       

       “그래, 아이가 열심히 하는 걸 방해하고 싶지는 않구나. 딱히 틀린 방법도 아니고.”

       

       그렇긴 하지.

       한여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겨울이가 걱정되는 탓도 있었고, 공원 내 사람들에게 또 무슨 소리를 듣게 될지에 대한 걱정도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추천 또한 정말 감사합니다! 언제나 힘이 되네요!!

    짜잔!
    이젠 땅굴을 파고 산답니다!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이번에는 늦잠이 아니고, 글이 잘 안써졌어요!)

    ───
    딩딩딩님 57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굴뚝새님 5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푸딩좋아님 30코인, 10코인, 10코인, 15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얀파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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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s513님 5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후원이 엄청 많았네요!!

    푸딩좋아님 귀여운 겨울이 팬아트 감사합니다!
    얀파님 귀여운 겨울이 팬아트 감사합니다!
    정리해서 금방 팬아트 공지에 올릴게요! 꼭 봐주러 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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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s Kidnapped By The Strongest Guild

I Was Kidnapped By The Strongest Guild

최강 길드에 납치당했다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When I opened my eyes, I was in a den of mons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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