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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0

       “괜찮아지는 거 같아?”

         

       파스텔은 상비 해독제를 마신 멜리사를 살펴봤다.

         

       “진통 효과가 빠르고 좋네요. 악화하던 내상도 진정되는 게 잠시 동안은 괜찮겠어요. 이대로 의료진을 만나면 되겠죠.”

         

       멜리사가 가슴팍을 짚어보더니 조곤조곤 대답했다. 그리고 슬쩍 미소 지었다.

         

       “파스텔, 연금술에 뛰어난 소질이 있네요. 아니면 관련 상단을 인수하는 능력이 뛰어난 걸까요.”

         

       으아.

         

       완전 침착해.

         

       독가스 들이켜고도 이렇게 침착하게 자기 관조를 하다니.

         

       이게 남부 총사령관의 후계자?

         

       말랑핑크 파스텔은 못 따라가겠어.

         

       멜리사가 보라색 독가스 안개 너머를 가리켰다. 뿌옇게 일어난 가스로 뒤덮인 저 너머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은 채 총성이 들려왔다.

         

       “저는 됐으니 벨라몬트를 도와주러 가세요. 소란이 들려오는 게 좋은 상황 같진 않아요.”

         

       파스텔은 고개를 저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벨라몬트는 시급한 상황이 아니야. 널 대피시킨 다음 도우러 가면 될 거 같아.”

       『총성 직후 총탄을 쳐내는 창날 소리가 간헐적으로 울리고 있다. 총성과 창날 소리의 간격이 줄곧 일정한 걸 보아하니 총알이 날아가는 거리는 계속 같아. 서로 간에 거리를 좁히지도 벌리지도 않는 분명한 교착 상태지.』

         

       악마가 가스 너머의 소리만으로 전황을 간파했다.

         

       『준비한 살인 계획이라고 해도 준기사급을 죽이는 건 쉽지 않아. 테러범들은 공작 영애를 포위하곤 시간을 끌며 가스에 취하게 만들려는 거다. 가스에 면역인 기사급은 아니니 시간이 꽤 걸리긴 해도 확실한 방법이지.』

         

       악마님 완전 믿음직.

         

       “네?”

         

       멜리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감각에 예민하지 않은 마법사다운 순진한 반응.

         

       파스텔은 귀를 기울이는 제스처를 한 다음 의기양양하게 설명해 줬다.

         

       “나의 똑똑한 추리에 따르면 지금 들리는 소리는 교착 상태를 알리고 있어. 앨시어는 강하니까 테러범들이 어찌하지 못하고 견제만 하며 포위하고 있는 거야. 가스 공격으로 치명타를 가하려고.”

         

       멜리사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당신은 그런 것도 알 수 있나요. 얼마나 노력했을지 상상할 수 없어요.”

         

       학기 내내 파스텔에게 필기 성적이 밀렸다는 사실에 수긍하는 눈빛이었다.

         

       “당연하지! 이것만 아는 게 아니야!”

         

       파스텔은 멜리사를 빗자루에 태우며 안심시키기 위한 말을 추가로 했다.

         

       멜리사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 상황에 또 다른 걸 추론할 수 있다고요?”

       “응응! 난 똑똑하니까!”

       “어떤 추론이죠?”

       “그러니까, 그러니까…….”

         

       생각하던 파스텔은 잠시 눈을 굴렸다. 그러다 허리춤의 마검을 간절하게 내려봤다.

         

       악마님! 악마님!

         

       『왜 나를 보는 거냐.』

         

       어서! 어서!

         

       『흠.』

         

       빗자루 뒷부분에 어색하게 자리 잡던 멜리사가 의아하게 바라봤다.

         

       “어떤 추론이죠?”

         

       허억.

         

       나도 모르겠어!

         

       파스텔은 입이 벌어졌다.

         

       『굳이 따지자면, 테러범의 목적이 공작 영애 살인에만 있진 않아 보이는군. 테러범들이 과격파 마족이라 그렇다는 게 아니다. 독가스를 방출해 놓고 정작 방치할 뿐 인명 학살엔 제대로 활용하지 않으니 아예 다른 목적이 있어 보여.』

         

       악마가 생각하며 중얼거렸다.

         

       『아마 테러범들은 어지간하면 교착 상태를 풀 생각은 없을 거다. 총탄을 쳐내는 소리는 상공의 비공정에도 들리고 있지. 공작 영애가 살아 있다는 신호 때문에 비공정 포격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니 테러범에게 다른 속셈이 있다면 굳이 위험부담을 감수하진 않을 거다.』

         

       와아!

         

       악마님 생각이 바로 내 생각이었어!

         

       사실 똑똑한 파스텔은 이미 알고 있었는데 악마님이 잘 알고 있나 확인해 봤을 뿐!

         

       빗자루 앞부분에 타며 파스텔은 악마의 말을 후다닥 읊었다.

         

       멜리사가 감탄했다.

         

       뿌듯.

         

       “이제 안심했지? 의료진에 데려다줄게.”

         

       마석 조종의 권능을 부리자 사람 둘을 태운 하얀 빗자루가 우에엥거리며 힘겹게 떠올랐다.

         

       빗자루 친구, 엄살 부리지 말고 열심히 해봐.

         

       빗자루를 툭툭 쳤다. 빗자루가 바들바들 떨며 떠올랐다. 그러다 발이 지상에서 떨어질 정도 높이에서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았다. 비행 속도도 영 느리네.

         

       “고장 났나요?”

       “그냥 무겁나 봐.”

         

       잉.

         

       정신을 집중해 빗자루 내부를 감각해 보니 과부하로 마석 연료가 펑펑 소비되는 게 느껴졌다.

         

       2인승으로 주문할걸.

         

       멜리사가 신기해했다.

         

       “무게에 따라 성능이 달라지는 건가요? 그렇네요. 애초에 어떻게 날 수 있는 거죠? 대마법사도 아니고 비행이 가능하다니.”

         

       오잉.

         

       비행이 특이한 건가?

         

       마왕의 권능을 이렇게 눈에 띄게 사용하면 안 됐던 것?

         

       “빗자루 친구는 그냥, 빗자루 친구니까 날 수 있어.”

         

       빗자루잖아.

         

       멜리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빗자루 친구는 빗자루 친구니까 빗자루 친구인 거야.”

         

       응응.

         

       “그런 건가요?”

         

       멜리사가 아리송해하다가 대뜸 가스 안개 저편으로 막대 지팡이를 겨눴다.

         

       지팡이 끝에서 빛이 일었다. 상시 준비됐던 번개 탄환이 날아갔다. 순간 비명이 일며 가스 너머가 사람 모양으로 번쩍였다. 쓰러지는 소리가 났다.

         

       오잉.

         

       파스텔은 벙쪘다.

         

       멜리사가 주문을 다시 외워 마법을 장전하곤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제가 죽었나 확인차 보냈나 봐요. 어서 가죠. 빗자루로 고공비행이 안 되면 지면을 타고 경기장 출입구로 나가면 되겠어요. 도중에 벨라몬트의 상황도 살며시 접근해서 살피고요.”

       “으, 응.”

         

       멜리사 무서워.

         

       사람 죽이는 거 정말 한순간이구나.

         

       살인 0회차인 겁쟁이 파스텔(제정신)은 겪지 못한 경지야.

         

       잠자코 빗자루를 조종했다.

         

       총성이 들려 오는 영역을 우회하면서도 적당히 근접해 이동했다. 앨시어와 테러범들의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마른침을 꼴깍.

         

       『빗자루는 발소리가 안 나니 좋군. 가스 안개 속이니 테러범이 준기사급일지라도 쉽사리 눈치채지 못할 거다.』

         

       앗 그렇구나.

         

       안심.

         

       『테러가 끝나면 안개를 만드는 포션을 제작하는 것도 좋겠어. 안개 포션은 네가 덤벙대다가 실수로 깨트려도 주변이 안전할 거다.』

         

       잉.

         

       왜 악마님은 당연히 내가 실수로 깨트릴 거라 생각하는 걸까?

         

       믿음이 부족한가 봐.

         

       다 끝나면 침실에서 마비 포션을 저글링 하며 내 뛰어난 손놀림을 보여줘야겠어.

         

       파스텔은 다짐했다.

         

       애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꿈에도 모르는 악마는 성실하게 가르침을 줬다.

         

       『울리는 소리를 잘 들어 봐라. 공작 영애를 벽에 몰아놓고 포위했군. 귀를 기울이면 포위망을 구성한 테러범들의 소리가 들린다. 영애가 총탄을 창으로 쳐낼 때마다 포위망이 긴장하며 소리를 내고 있지. 훈련이 미숙한 병력의 전형적인 행태군.』

         

       파스텔은 귀를 기울였다. 마석 섭취를 과하게 해서 슬슬 인간을 너무 벗어나게 된 청각이 소리를 잘 들리게 해줬다.

         

       앨시어가 총탄을 쳐낼 때마다 포위망을 구성한 인원들이 움찔하자 서로 목소리를 내며 포위망을 재정비했다.

         

       우와, 정말 그런 듯.

         

       앨시어가 대뜸 달려들어 학살할까 봐 걱정되고, 동료들이 먼저 도망칠까 봐 두 배로 걱정되니 서로 신뢰를 확인하려고 목소리를 내는 거 같다.

         

       훈련이 미숙하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 거 같아.

         

       『이해했군. 이제 영애가 총탄을 쳐내는 소리와 테러범들의 목소리를 통해 각 인원의 위치를 가늠해 봐라.』

         

       네에.

         

       파스텔은 정신을 집중했다.

         

       공감각적인 연상이 소리를 이미지로 바꿨다. 앨시어와 포위망의 형상이 소리만으로 파악됐다.

         

       우왕?

         

       『표정을 보아하니 잘했군. 위치를 가늠했다면 이제 포위망을 구성한 무기를 추측해 볼 수 있다.』

         

       으엣, 그런가?

         

       『영애와 포위망 사이의 거리는 대략 5m다. 영애가 창을 사용한다는 걸 감안해도 넉넉한 거리니 포위망은 길이가 긴 병장기를 사용한다고 추측할 수 있지. 무난한 창 계통이겠지만 훈련 상태상 장비 일원화가 이루였을 거 같진 않으니 개인 장비도 섞여 있긴 할 거다.』

         

       파스텔은 눈을 굴리며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러다 고개를 끄덕였다.

         

       악마님 말이 맞는 거 같아!

         

       나쁜 테러범들, 창을 쓰다니!

         

       무려 창을 쓰다니!

         

       하여튼 나빠!

         

       파스텔은 진도가 과하게 빠른 듯한 악마의 가르침을 대강 머릿속에서 흘려 버렸다.

         

       빗자루 뒷자리의 멜리사를 돌아봤다. 목소리를 내면 들킬 거리인지라 눈빛만으로 대화를 나눴다.

         

       내 똑똑한 두뇌로 추론해 보니 완전한 교착 상태가 맞는 거 같아!

         

       가스 마신 멜리사까지 무리하며 싸울 필요는 없는 듯!

         

       멜리사가 보이지도 않는 보라색 가스 저편을 쳐다보다가 모르겠다는 얼굴로 대강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앨시어, 잠시만 버티고 있어. 멜리사만 의료진에게 데려다주고 금방 도우러 올게.

         

       나 말고 호르몬 친구가!

         

       포위망을 빙 돌며 빗자루를 우회시켰다.

         

       한차례 총성이 울렸다. 파스텔은 움찔했다가 들킨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안심했다.

         

       총을 쳐낸 앨시어의 비웃는 목소리가 들렸다.

         

       “소용없어. 기껏 준기사급 경지에 들고도 화약 병기에 의존하는 너 같은 테러범에게 죽을 만큼 내가 허접하진 않으니까. 동급 경지에도 격의 차이가 있어.”

         

       으에.

         

       멜리사와는 천지 차이인 성미.

         

       하지만 도발과 별개로 테러범은 반응하지 않고 견제에 집중하는 듯했다. 앨시어가 뭔가 움직임을 보이려 할 때마다 총성이 울렸다.

         

       앨시어가 총알을 쳐내곤 재정비했다.

         

       “아니면 경기장에 무모하게 비공정을 추락시키는 자살 테러밖에 못 하는 마족은 격조차 느끼지 못하는 건가? 추락 속에서 운 좋게 살아 운 좋게 성공하길 마왕에게 비는 것밖에 할 줄 모르-”

       “멋대로 말하지 마라!”

         

       테러범이 격분했다.

         

       뭔가 들어본 목소리에 파스텔은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기사단에 넘겨줬던 테러범 겸 마족 용병대장 같다.

         

       이름이 아마 트마우트 씨?

         

       “마왕님은 네까짓 게 멋대로 불러도 될 존재가 아니다!”

         

       으잉.

         

       그 사람 맞네.

         

       저기요, 기사단 여러분?

         

       일 처리를 왜 이렇게?

         

       “행운만 믿고 비공정을 추락시켰다고? 그럴 리가! 이 아카데미의 방호 장벽이 가진 약점을 간파한 거다!”

         

       트마우트가 총을 쏘며 말을 이었다.

         

       “입학 실기 시험 때 크래프트 후작이 비공정을 시험장에 추락시키고도 신체가 멀쩡했지! 하늘을 덮은 투명 장벽이 충돌을 상쇄해 준 덕분이다! 이건 그 데이터를 활용한 테러다! 운이 아니라 모든 것이 촘촘히 계획된 테러란 말이다!”

         

       오잉.

         

       왜 갑자기 내 이름이.

         

       앨시어가 바로 반응했다.

         

       “설마 그 유언비어가 사실인 거야? 하늘섬을 손에 넣으려는 크래프트가 테러를 조장해 먼저 아카데미부터 집어삼켰다고. 그다음은 기사단이라고.”

       “테러 조장?! 우리를 그따위로 보지 마라! 누가 그딴 가문의 수하냐!”

         

       트마우트가 격분했다. 주먹이 가슴팍을 거칠게 치는 소리가 났다.

         

       “나는 내 의지로, 내 심장으로 너희 인간들을 죽이러 온 거다!”

         

       총격이 하늘을 때렸다.

         

       “크래프트가 이곳이 체스판 위라 자백했더라도 이 선택은 내 의지란 말이다!”

       “뭐?”

         

       앨시어가 조용히 경악했다.

         

       “크래프트 본인이 인정했다고……?”

         

       그리고 파스텔은 덩달아 경악했다.

         

       그게 무슨 얘기세요?!

         

       저 그런 말 한 적 없어요!

         

       머릿속 어딘가에서 기억이 떠올랐다.

         

       저 트마우트 씨에게 크래프트 연기 모드로 흑막 발언을 했던 거 같다.

         

       허억.

         

       입이 벌어진 파스텔은 그대로 굳었다.

         

       눈을 굴리다가 머릿속에서 지우개로 기억을 슥슥 지웠다.

         

       슥슥 슥슥.

         

       깔끔.

         

       그리고 다시 생각했다.

         

       저 그런 말 한 적 없어요!

         

       으아아!

         

       억울해!

         

       강렬한 시선이 느껴지자 파스텔은 빗자루 뒷자리를 돌아봤다.

         

       멜리사가 뚫어져라 쳐다봤다.

         

       흑막을 보는 눈빛~.

         

       으아아!

         

       두 배로 억울해……!

         

       트마우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본인이 인정했던 건 물론이고 겁먹던 태도에서 한순간에 돌변해 조롱을-”

         

       우와악!

         

       폭로가 이어지려 하자 파스텔은 허겁지겁 빗자루를 쳤다.

         

       느리던 빗자루가 고장 나며 가속했다.

         

       슈우웅!

         

       현장 탈출……!

         

       잽싸게 의료진에 멜리사를 넘겨준 파스텔은 앨시어를 구하기 위해 전력으로 돌아갔다.

         

       사악한 테러범을 정의 구현하겠어……!

         

       절대 입막음 때문이 아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공지를 이 연재 분량에 잘못 올렸더군요.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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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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