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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0

       6월 넷째 주 일요일.

         

       카바레의 1번 홀에 있는 사람들의 수는 2주 전 추첨식 때와 비교해서 몇 배는 많았다.

       대결에 임한 양 서커스단의 인원이 모두 자리에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은막의 서커스 쪽 사람들은 모두가 환상 마법사였다.

       그들은 ‘겉모습은 가짜’라는 사상을 온몸으로 표현하듯 대부분 후드를 눌러 쓰고 품이 큰 로브로 몸을 가리고 있었다.

         

       단장인 은막 아르노도 은빛 면사로 얼굴을 가렸고, 부단장은 큰 천으로 몸을 둘둘 두르고 눈 부위만 쏙 내놓고 있었다.

         

       다들 대결 결과를 두고 쑥덕대는 가운데 단장인 은막 아르노는 조용했다.

       그는 언제나 냉정함을 유지하기로 유명했다.

       그의 싸늘한 목소리도 그의 이미지에 한몫했다.

         

       그러나 그의 그런 모습은 세월이 만든 가면이었다.

       부단장은 단장의 손끝이 떨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소심하고 걱정 많은 그의 본성은 세월이 흘러도 그대로였다.

         

       “긴장돼?”

         

       그는 부단장의 말을 듣고 자조했다.

         

       그렇게 티가 났나.

         

       “첫 상대가 너무 안 좋았다. 탈출왕이라니.”

       “그건 상대도 비슷하게 생각할걸? 우리가 뭐 무명 서커스단이야? 상대도 압박을 많이 받았을 거야. 탈출왕은 무리하다가 쓰러지기도 했잖아.”

         

       부단장의 위로에 마음을 가라앉힌 아르노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입을 뗐다.

         

       “역시 며칠을 두고 시리즈 물로 갔어야 했나?”

         

       그는 중반부터 VIP들의 자리가 비어있던 것을 보았다.

       6일권을 끊은 그들은 반복되는 서사에 지루해했다.

         

       부단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랬다간 1일권, 2일권 관객들을 놓쳤을 거야.”

       “……장미 풍차도 정말 까다로운 과제를 냈군.”

       “그래도 아슬아슬한 곳까지는 밀어붙일 수 있었어.”

       “신입 덕분이지.”

         

       둘의 시선이 구석 자리로 향했다.

       간부들이 앉은 줄 맨 끝에는 수정구슬을 들고 이리저리 장난을 치고 있는 젊은 여인이 있었다.

         

       신입인 그녀가 이렇게 단장을 비롯한 간부들 옆에 앉을 수 있는 것은 그녀 역시 하나의 메모리 디스크를 맡은 책임자였기 때문이다.

         

       “확실히 ‘끼워 넣은’ 제품들의 매출이 좋더군.”

         

       이번에 환상 중간중간에 광고를 넣은 것은 그녀의 아이디어였다.

       그녀의 예전 직업은 점술가.

       암시로 손님들의 행동을 제어하고 유도하는 것은 그녀의 주특기였다.

         

       “왠지 떳떳하지 못한 방법 같지만…….”

       “나도 상대가 판도라만 아니었다면, 굳이 그런 방법까지 꺼내지 않았을 거다.”

         

       한편 판도라의 분위기는 은막 쪽과 정반대였다.

       단장이 흥분해서 큰 소리로 떠들어댔으며, 단원들은 대부분 침착했다.

         

       루이니는 자신의 사단을 둘러보며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이길 거다.”

         

       그러나 단원들의 호응은 없었다.

       단장을 바라보는 단원들의 표정은 싸늘했다.

       육면체 상자 속에서 여인의 머리가 쏙 튀어나오더니 말했다.

         

       “이기지 않으면 곤란하죠. 우리는 본선에서 쓰려고 했던 신작까지 보여줬는데.”

         

       그녀의 말에 루이니는 얼굴을 붉히며 헛기침을 했다.

         

       어제 오후.

       루이니는 혹시나 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다른 단원들이 말리는데도 기어이 아껴뒀던 미발표작을 꺼내 들었다.

         

       그건 이런 곳에서 꺼낼 만한 카드가 아니었다.

       굳이 본선이 아니더라도 좀 더 큰 무대에서 홍보를 꾸준히 한 다음에 선보여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지기 싫다는 마음에 그런 대형 폭탄을 경선 마지막 날에 대뜸 던지고 말았다.

         

       “솔직히 말씀해주세요. 여기가 유그 마로이네의 극장이 아니었더라도 그걸 꺼냈을까요?”

       “안 꺼내도 이기고 있었는데.”

       “괜한 짓 한 거지.”

       “윽.”

         

       루이니는 단원들의 항의에 대꾸할 말이 없는지 신음을 흘리며 입맛만 다셨다.

         

       장미 풍차 카바레의 총감독 유그 마로이네.

       업계에서 수십 년을 마주쳐 온 앙숙.

       확실히 그놈 앞에서 지는 모습을 보이기 싫다는 마음이 크게 작용했다.

         

       그렇게 시간이 30분쯤 흘렀을까.

       무대 뒤에서 브왈레가 상기된 얼굴로 걸어 나왔다.

       그는 예상을 상회하는 수입에 크게 흥분해 있었다.

         

       “방금 집계가 끝났습니다.”

         

       그는 손에 든 진행 카드를 내려다봤다.

         

       “Free to Enter, Pay to Enjoy. 1주 차 대결. 은막의 서커스 대 판도라 마술쇼. 그 승자를 발표하겠습니다.”

         

       모두의 눈이 브왈레의 입을 주목했다.

       기자들도 기사를 받아쓸 준비를 했다.

         

       “승자는…….”

         

       그가 팔을 들자 스포트라이트가 움직였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빛이 몰린 곳으로 집중되었다.

       그곳에는…….

         

       “판도라 마술쇼!”

         

       브왈레의 선언과 동시에 우레와 같은 갈채와 함성이 그들을 향해 쏟아졌다.

         

       잠시 멍하니 장내를 둘러보며 상황을 파악하고 있던 그들 중에서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역시 마술사 루이니였다.

       그는 손가락을 번쩍 하늘로 치켜들며 그의 대표적인 대사를 외쳤다.

         

       “단 1초도 나에게서 눈을 뗄 수 없을걸!”

         

       브왈레는 승부의 행방이 어디서 갈렸는지 하루하루의 매출과 전략을 비교해가며 설명했다.

         

       마지막에 차이를 크게 벌린 것은 그의 탈출 퍼즐이었다.

       6일째에 사람들은 남은 코인을 털기는 털어야 했는데, 아무래도 음식 같은 것보다 보관과 환금에 유리한 그의 퍼즐이 대상이 되었다.

         

       실제로 원더스타인 서커스단에서 내기에서 이긴 3명도 받은 코인을 쓸만한 곳이 마땅치 않아 퍼즐을 추가로 구매했다.

         

       모든 것인 환상으로 시작해 환상으로 끝나는 은막 쪽에는 물질적으로 남길만한 상품이 없었다.

       그 차이가 승패를 가른 것이다.

         

       “여행 중 기념품이 그래서 잘 팔리는 거죠. 사람들은 무형의 보물을 경험했으면서도 유형의 잡동사니를 손에 쥐어야 만족하는 법이니까.”

         

       브왈레가 간단한 뒷말을 덧붙였다.

         

       그 소란 속에서 승자와 패자가 서로를 바라봤다.

         

       쉽지 않은 승부였다.

       마지막까지 아슬아슬한 간격을 유지하며 엎치락뒤치락했다.

         

       은막과 탈출왕은 오랫동안 업계에서 활동해온 것치고 서로 접점이 별로 없었다.

       서로에 대해 소문으로 들은 게 대부분이었다.

         

       둘은 이번 승부를 통해 배운 것도 많고 얻은 것도 많았다.

       대결이라는 방식이었기에 누군가 이기고 누군가 지는 형태가 되었지만, 그것이 곧 공연자로서 우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두 사람은 잘 알고 있었다.

         

       어차피 이번의 패배가 대회의 탈락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었다.

       시간은 2년.

       기회는 얼마든지 더 있었다.

         

       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승패의 여운을 털어버리고, 업계의 거장들로서 인사를 나눌 시간이었다.

         

       서로를 향해 발을 떼려는 그때, 누군가가 소리쳤다.

         

       “잠깐!”

         

       목소리는 날카롭게 소란의 틈바구니를 파고들었다.

         

       “방금 그 결정에 이의 있습니다!”

         

       여기 있는 이들 중 다수가 개막식에도 참여했던 사람들이었다.

       ‘잠깐’과 ‘이의 있다’라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어깨를 움찔거린 건 그날의 기억 때문이었다.

       심지어 그 목소리의 주인 역시 그날에 들었던 사람의 것이었다.

         

       “도스빌 남작……님?”

         

       목소리의 주인을 본 브왈레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저 뻔뻔한 인간.

       여기가 어디라고 다시 들어온단 말인가.

       그 깽판을 쳐놓고는.

         

       “웬일입니까?”

         

       브왈레는 한껏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도스빌 남작은 순진한 얼굴로 대꾸했다.

         

       “왜요? 제가 못 올 곳을 왔습니까? 저는 엄연히 개막식 때 초청장을 받은 손님이자 이 카바레의 VIP인데요.”

         

       도스빌 남작은 입심으로 루즈에서 유명한 자였다.

       그와 말싸움을 해봤자 피곤해질 뿐이었다.

       브왈레는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저었다.

         

       “좋습니다, 남작님. 그럼 왜 나서신 거죠?”

         

       도스빌 남작의 차림새는 개막식 때 비해 남루했다.

       수염 역시 관리하지 못했는지 듬성듬성 나 있었으며, 머리카락 역시 단정하지 못했다.

         

       그 사건 이후로 그는 가정교사로 일하던 저택에서 쫓겨났고, 그를 법률 자문으로 쓰던 상회에서도 계약을 해지당했다.

       다들 베르그송 자작과 무스탕 후작의 눈치를 살핀 것이다.

         

       덕분에 그는 친구 집 다락방에서 숙식하며 지냈다.

       도시 귀족이 수입이 없으면 단숨에 빈민으로 몰락하는 거야 흔한 일이었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낄낄 웃으며 두 팔을 활짝 벌려 보였다.

         

       “그야 대회에 공정을 가하기 위해서죠. 결과에 문제가 좀 있거든요.”

       “우리 극장은 문제가 없었다고 봅니다만?”

         

       브왈레의 대꾸에 도스빌 남작은 손가락을 흔들었다.

         

       “아니, 있습니다. 그것도 결과에 영향이 갈 정도로 크게. 규칙 중에 다음과 같은 조항이 있지 않습니까?”

         

       그는 마치 눈앞에 종이가 있는 것처럼 읽는 시늉을 했다.

         

       “경품이나 상품을 내걸어 구매를 유도하는 것은 허용한다. 대신 매출에서 경품이나 상품의 가격만큼 뺀다.”

         

       브왈레는 불퉁한 목소리로 답했다.

         

       “양쪽에서 경품을 내건 행위는 없었는데요.”

       “아니, 있었죠.”

         

       그가 손가락을 들어 한 곳을 가리켰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곳으로 돌아갔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원더스타인 서커스단이 앉아 있었다.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 중에 베레모를 쓴 하얀 머리 소녀를 발견하고는 씩 미소지었다.

         

       “저기 있는 아가씨께서 분명 상당한 가치가 있는 상품을 받지 않았습니까?”

         

       여기저기서 아 하고 탄식이 터져 나왔다.

         

       탈출 퍼즐 4단계짜리를 그 자리에서 풀어낸 천재 마법사의 이야기는 꽤 화제가 되었다.

       그녀는 퍼즐의 원본을 받아갔다.

       그건 분명 퍼즐을 구매한 것에 대한 경품이라 할 수 있었다.

         

       판도라 측에서 회계사를 겸하고 있는 중년의 안경 쓴 남자가 일어섰다.

         

       “하, 하지만 이건 대회에 맞춰서 도입된 꼼수 같은 게 아닙니다. 최초 해결자에게 원본을 증정하는 건 우리 서커스단의 전통이라고요.”

       “아뇨, 아뇨, 아뇨. 대회에 맞춰서 도입되었냐 아니냐는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런 방식이 활용되면 이번 대회에서 내건 주제를 망칠 수 있으니 문제인 거죠. 이 규칙이 도입된 이유까지 설명해줘야 합니까?”

       “그, 그렇지만 저 원본은 파는 게 아닙니다. 가격이 없습니다! 재료 가격만 뺀다면 결과는…….”

         

       그의 말에 도스빌 남작은 잔인한 쾌감에 찬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뇨, 아뇨. 원자재 가격만 빼면 안 되죠. 규칙에는 분명 루즈 무역회관에 기록된 거래가를 기준으로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제가 말이죠. 그저께 회관에 가서 장부를 열람했거든요. 그런데 말입니다. 확실히 있더군요.”

         

       그가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냈다.

       거기에는 무역회관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네. 탈출 퍼즐 시리즈의 원형은 지난 6개월간 2개가 루즈를 거쳐 갔습니다. 둘 다 당시 매긴 관세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관세, 금속, 장식품. 이렇게 역으로 추산하면 그 시세를 유추할 수 있죠. 이런! 가격이 상당한데요? 휘익, 역시 탈출왕의 퍼즐답군요.”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커졌다.

       여론의 절반은 규정상 문제가 되지 않느냐는 그의 말에 동조했고, 절반은 탈출왕의 퍼즐은 원래부터 업계 사람들 다들 알고 있던 사실인데 뭐 문제 될 거 있냐고 따졌다.

         

       도스빌 남작은 자신이 만들어낸 소란을 돌아보며 히죽 웃었다.

         

       “잘 생각하세요. 이런 게 한 번 허용되면 뒤의 대결에서는 어떤 경품을 내걸고 어떤 꼼수가 등장할지 모릅니다. 확실히 해야죠.”

         

       그의 말이 정곡을 찔렀다.

       막말로 술을 10병 마실 때마다 누군가 다이아몬드 반지를 상품으로 준다면, 사람들은 미친 듯이 술만 살 것이다.

       경품과 상품 규정을 둔 것은 그런 부정을 방지할 목적으로 도입된 것이었다.

         

       탈출 퍼즐을 허용한다면 뒤에 오는 서커스단은 어떤 다른 방식으로 이 사례를 이용해서 교묘히 규칙을 피해갈지 몰랐다.

         

       “스, 승자 선언은 잠시 보류하겠습니다. 운영 회의를 거친 뒤 다, 다시 발표하죠…….”

         

       브왈레는 허둥지둥 무대 뒤로 사라졌다.

       승부의 열기로 가득했던 홀의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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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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